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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징용의 아픈 역사’ 고국 땅 못 밟은 유해 아직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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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73년 됐지만 타국에 방치
‘유텐지’ 700구·‘콘죠인’ 131구
“시민단체, 문제해결 힘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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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시민네트워크 도노히라 요시히코 대표가 2일 ‘한국인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봉환을 위한 국제회의’에서 전쟁 후에도 남겨진 유골들의 현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3.4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해방된 지 73년이 지났지만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으로 희생된 수많은 사람의 유골이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유골은 일본과 동남아시아 각국, 그리고 태평양제도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방치돼 있다.

이와 관련, 동아시아시민네트워크 도노히라 요시히코 대표는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한국인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봉환을 위한 국제회의’에서 발제를 통해 전쟁 후의 현 실태와 향후 과제에 대해 설명했다.

도노히라 대표는 “36년간 일제의 식민지 지배로 많은 조선인이 강제적 노동에 연행됐다”며 “이후 조선인은 중국인 노동자와 함께 홋카이도를 포함한 일본 전역에서 사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정부는 중국인 노동자 유골조사는 진행했으나 조선인 노동자 유골 조사는 하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이 흘러왔다”고 전했다.

도노히라 대표에 따르면, 오늘날 상징적인 두 곳에 조선인 유골이 남아있다. 첫 번째 장소는 도쿄 메구로구에 유텐지라는 불교 사원이다. 경내의 한켠에 납골당이 있으며 지금도 700구의 조선인 군인·군속(군무원) 유골이 남겨져 있다. 아직 봉환되지 못한 조선인 군인·군속의 유골은 전쟁 후 후생성(현재는 후생노동성)이 관리해 왔다. 1971년에 참배를 쉽게 하기 위한 조치로 유텐지에 맡겨지게 됐다고 한다.

두 번째 장소는 토코로자와시에 있는 콘죠인이다. 이곳에는 조선인 유골 131구가 모셔져 있다. 일본이 전쟁에 진 1945년 당시, 강제노동에 동원됐거나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남게 된 조선인은 200만명이 넘었다.

8월 15일 이후 대다수의 조선인은 조선에 돌아가고자 했으나 귀국선이 충분하지 않았고 귀국을 서두르던 조선인은 다양한 방법으로 마련된 배로 해협을 건너려 했다.

승선자는 초만원상태였다. 바로 그때 2개의 큰 태풍이 큐슈지방을 덮쳤다. 휘몰아치는 파도와 강풍에 휩쓸린 많은 조선인이 조난당했고, 이들의 유해는 이키섬과 스시마 섬의 해안으로 떠밀려 왔고 살아남은 조선인이나 지역사람에 의해 매장됐다. 고향으로 가지 못한 이들의 유해는 이후 콘죠인에 모셔졌다. 이 두 곳의 유골은 후생노동성이 관리 중이다.

문제는 유골 반환에 대한 적극적인 움직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도노히라 대표는 “한일 간 배상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주장해 온 것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체결’에 의해 모든 게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것”이라며 “유골 문제 등 다양한 문제의 법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오늘날까지 일관되게 유지해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본 정부는 조선인 군인·군속에 관련해서는 구일본제국군대와 직접 채용관계에 있었다고 해서, 유골에 관해서도 가능한 범위에서 한국으로 반환해왔다. 지난 2004년 12월 ‘한일 수뇌회담’을 통해 반환된 유텐지의 군인·군속 유골 423구가 이에 해당된다.

반면 기업에 의해서 연행되고 희생된 노동자, 즉 ‘민간 징용자’의 유골은 일본 정부가 책임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는 유골 반환을 위해 힘쓰고 있다. 그 결실로 지난 2015년에 ‘강제노동희생자 추도 유골·봉환 위원회’가 115위의 유골을 반환했다.

도노히라 대표는 “일본의 한 시민으로서 이 문제를 방치하고 있을 수 없다”라며 “정부만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한일 시민단체가 힘을 모아 유골을 하루라도 빨리 유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콘죠인과 유텐지 유골 반환 문제와 더불어 북한 출신 유골 반환 문제도 풀어나가겠다고 밝혔다.

<2018.03.04> 천지일보

☞기사원문: ‘강제 징용의 아픈 역사’ 고국 땅 못 밟은 유해 아직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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