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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보도자료] 12·3 계엄 1년을 맞이하여, 시민이 만들어 낸 빛의 전시가 서울과 부산에서 개최됩니다

2025년 12월 2일 485

☞ 다운로드: [보도자료] 12·3 계엄 1년을 맞이하여, 시민이 만들어 낸 빛의 전시가 서울과 부산에서 개최됩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2024년 12월 3일 이후 민주주의를 지켜낸 시민의 이야기를 기록하여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전’을 2025년 5월 16일부터 2025년 10월 19일까지 개최하였습니다.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전’은 자신의 시위용품을 공공의 영역으로 기증해 준 518명의 기증자가 있었기에 개최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증 행위를 넘어서 시민 스스로가 기록자가 되는 ‘시민 아카이브’였습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년을 맞이하는 2025년 12월 3일부터 부산민주공원이 주관하고 식민지역사박물관이 공동주최로 참여한 ‘시민헌정 아카이브전-시민의 빛, 부산에서 타오르다’를 개최합니다. 또한,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도 ‘빛의 연대기 展’을 개최합니다. 12·3 비상계엄 1년을 맞이하여 개최되는 이번 전시들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은 탄핵 광장에서 시민들이 기록자가 되어 기증한 다수의 시위용품을 출품하였습니다. ‘시민헌정 아카이브전-시민의 빛, 부산에서 타오르다’에는 깃발, 응원봉, 뜨개손피켓, 손편지, 머리띠, 멜로디언 등 160여 점을, ‘빛의 연대기 展’에는 스티커 기증·수집품 300여 점과 리우작가의 작품 2점(<전봉준투쟁단>, <남태령의 분필작가>)을 출품하였습니다. 이 전시들은 12월 3일 내란의 밤으로부터 123일 동안 민주주의를 지켜낸 시민들이 시위용품을 단순히 기증하고 관람하는 수동의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기록자가 되어 전시를 만드는 공적인 주체로 참여한 ‘시민 아카이브 전시’입니다. 개인의 시위용품이 집단의 기억이 되어 기록되기까지 그 안에 담긴 무수한 이야기와 소망들을 만나러 12월 3일부터 부산민주공원과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열리는 시민 아카이브 전시에 많은 관람 부탁드립니다. [붙임3. 부산민주공원 출품작 중 일부 깃발]

[경향신문] 계엄군 지휘관이 5·18유공자와 나란히 ‘국립묘지’에···“이런 역사적 모순이 어딨나”

2025년 12월 1일 252

5·18, 12·12 가담 군인 다수 대전·서울현충원 안장 국립묘지, 형사처벌 전력만 없다면 안장 가능 “현재로선 친일파도 가능···새 기준 마련해야” “이장 어려운 경우 ‘범죄 행위 표기’라도 검토를” 국립묘지에 묻힌 12·12군사반란과 5·18민주화운동 유혈진압 관련자들에 대한 안장 기준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5·18단체는 반헌법적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피해자인 5·18유공자들과 마찬가지로 국립묘지에 안장된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한다. 5·18기념재단은 30일 “광주 시민들과 지난 29일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아 신군부 인사들의 묘를 직접 확인하는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현충원 탐방에는 5·18기념재단과 5·18공로자회, 5·18부상자회, 오월어머니집, 전남대 5·18연구소, 일반 시민 등이 함께했다. 대전현충원에는 5·18당시 광주 시민 유혈진압에 관여한 계엄군 지휘관들이 다수 안장돼 있다. 유혈진압을 승인한 당시 진종채 2군사령관, 전남북계엄분소장을 맡아 작전을 지휘한 소준열 전투병과교육사령관, 계엄군으로 투입된 박준병 20사단장, 홍성률 1군단 보안부대장 등이 대표적이다. 12·12군사반란에 가담한 신군부 핵심 인사들도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 5·18기념재단은 1979년 12·12군사반란에 가담한 신군부 핵심 인사 34명 가운데 18명이 사망했는데 이 중 13명이 국립묘지에 안장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대전현충원에 10명 서울현충원에 3명이 묻혀있다. 12·12와 5·18등 반헌법적 범죄에 연루된 신군부 세력이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당시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는 무공훈장 수훈자나 장성급 장교, 20년 이상 군에 복무한 사람들이다. 형사처벌 전력만 없다면 안장될 수 있다. 5·18기념재단은 “헌정질서를 파괴한 국가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인 5·18유공자와 마찬가지로 ‘국가 명예’

민족사랑 2025년 11월호

2025년 11월 25일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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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대전현충원 걸으며 듣는 네 가지 이야기

2025년 11월 25일 294

제8회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대전자주통일평화연대, 현충원평화해설단 등 대전지역 단체들은 11월 23일(일) 오후 2시, 대전현충원에서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를 열고, 애국지사들의 삶을 돌아보며 나라 사랑의 마음과 평화통일 의식을 높였다. 지난 2018년 처음 시작된 이 행사는 올해로 8회를 맞았고, 올해 행사는 대전자주통일평화연대,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역위원회, 유성평화너머,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대전모임, 현충원평화해설단, 진보당유성구위원회가 함께 주최했다. 주최단체를 대표해 인사말에 나선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대전모임 진경모 운영위원은 “현충원에는 우리 역사에 진짜 잊어서는 안 될 훌륭한 분들이 많이 있다”며, “오늘 행사에 참석한 여러분들이 많이 배워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성평화너머 추도엽 공동대표는 “해방 이후 올바른 청산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제강점기에 친일파로 또는 친일 경찰로 또는 일본군으로 복무했던 사람들이 한국전쟁 때는 신분을 세탁해서 한국군으로 참전을 해서 훈장을 받고 또 사후에는 국립묘지에 모셔져 독립운동가와 함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대전현충원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며 국립묘지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걷기 대회는 ‘역사 정의 실현’, ‘대전현충원과 서울의 봄’, ‘끝나지 않은 독립운동’,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이들’ 코스로 4가지 코스가 준비되었고, 참가자들은 그중 한 곳을 선택해 걸었다. 각각의 코스는 1.5km에서 2.5km가량 걸으며 해설사가 동행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역사 정의 실현’ 코스에서는 조선민족혁명당 사건으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른 이재상(독립유공자1-1-497)과 그를 재판했던 조선총독부 판사 민복기(국가사회공헌자-18)가 불편하게 공존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할 수 있었다. ‘대전현충원과 서울의 봄’ 코스는 12.12군사쿠데타 당시 반란군

[한겨레] “두개골 깨져 숨져” 증언에도…‘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동원 부인 여전

2025년 11월 21일 340

“한반도 출신 사도광산 노동자가 위험한 갱내 작업에 종사한 비율이 높았음을 나타내는 기록이 남아 있다.” 21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아이카와향토박물관 별관 2층.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실에선 한국어와 일본어를 포함한 5개 나라 음성으로 이런 무미건조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조선인들의 ‘강제노동’ 관련 기록은 없다. 지난해에 이어 일본 정부가 보였던 태도와 마찬가지로 전시실도 지난 1년간 달라진 게 없었다. 7평(23㎡) 남짓 공간에는 “(조선인을 포함한) ‘징용’은 법령에 기반한 것”이라는 안내 문구가 담겼다. 조선인들이 한달 평균 28일 일했고, 처우개선 쟁의를 벌인 일, 사다리 가설 작업 도중 사망 실태 등 가혹한 노동 환경 일부를 기록했지만, 끝내 강제동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전시관 한쪽 구석에는 어느 조선인 노동자의 나무 도시락통 하나가 말끔한 모습으로 놓여 있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 당시 “전체 역사를 알리겠다”고 했지만 강제동원 기록을 제외하는 꼼수로 대응하고 있다. 2022년 민족문제연구소와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가 낸 ‘사도광산과 조선인 강제노동’ 보고서에는 조선인 110여명의 기구한 사연들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갱내에서 떨어져 두개골이 깨지는 사고를 당했다.” 1941년 충남 청양군에서 사도섬에 끌려간 김주환은 이렇게 갱도 내에서 참혹하게 숨졌다. 그해 10월20일 오전 7시, 불과 25살 나이였다. 같은 해 사도섬에서 바위 깨는 작업에 투입된 노병구는 “갱도 안에선 추락·승강기·누전·발파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일본인 기숙사감의 말을 듣지 않으면 매를 맞아야 했다. 이기상은 31살 때 이곳

[시사IN] 장화 신고 누운 바닷속 유골 “한·일 정부 움직여야”

2025년 11월 20일 382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 83년 만인 지난 8월, 바닷속에서 두개골 등 유골이 발견됐다. 일본의 시민단체가 잠수 조사를 벌인 결과다. 그러나 유골 수습 2개월이 지나도록 DNA 감정은 진전이 없다. 기적이 일어났다. 1942년 2월3일 일본 야마구치현의 해저 탄광인 ‘조세이 탄광’이 무너져내려 조선인 136명을 포함한 183명이 사망한 지 83년이 지난 2025년 8월25일, 그 탄광에서 일하다 숨진 노동자들의 것으로 보이는 대퇴골(허벅지뼈) 등 뼈 세 점이 바닷속에서 발견됐다. 다음 날인 8월26일에는 두개골이 나왔다. 일본의 시민단체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하 ‘새기는 모임’)이 크라우드펀딩으로 자금을 모아 옛 갱도를 찾고, 잠수부들을 투입한 결과다. 같은 장소에서 유골 4구가 추가로 발견됨에 따라, ‘새기는 모임’은 내년 2월 일본인 잠수부 이사지 요시타카 씨와 세계 각지의 잠수부 6명을 투입해 또다시 잠수 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이를 포함해 내년의 유골 수습 프로젝트에 필요한 비용 3500만 엔(약 3억2784만원)을 확보하기 위해 모금을 진행 중이다(chouseitankou.com/한글-페이지).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에도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유골을 유족들에게 돌려주기 위해서는 DNA 감정이 필요하다. ‘새기는 모임’은 한국인 희생자 25명과 일본인 희생자 4명에 해당하는 DNA 정보를 일본 경찰청에 제출했다. 그러나 유골 수습 두 달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다고 한다. 감정을 일본 정부가 할지 한국 정부가 할지, 어떤 방식일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면담차 한국을 방문한 ‘새기는 모임’의 이노우에 요코 공동대표(75)와 우에다

[노컷뉴스] ‘학원침투 간첩 조작 사건’ 50주년…국가폭력 피해자 행사 열린다

2025년 11월 19일 370

11·22 사건…박정희 유신정권 국가폭력 사례 유신정권의 ’11·22 학원 침투 간첩단 검거’ 사건 50주년을 맞아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투쟁을 기리는 행사가 열린다. 한일 과거사 청산 문제를 연구하는 민족문제연구소와 국가폭력생존자회 등은 오는 21일과 22일 ‘국가폭력 피해자와 함께하는 치유와 평화의 한마당’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오는 21일에는 오후 3시 서울 종로구에 있는 향린교회에서 11·22사건 국가폭력 피해당사자와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토크쇼가 열릴 예정이다. 22일 오후 3시에는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피해자들의 인권회복 투쟁을 위로하는 콘서트가 열린다. 11·22 사건(재일교포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은 박정희 유신정권의 대표적인 국가 폭력 사례다. 1975년 11월 22일 당시 중앙정보부는 ‘북괴의 지령으로 국내에 잠입한 간첩 일당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재일동포 유학생 17명과 서울의대·한신대·부산대 대학생들이 간첩 누명을 쓰고 대규모로 옥살이를 했다. 이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재심 권고로 당시 구속됐던 피해자들이 줄줄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군부독재의 국가폭력에 의해 삶과 청춘을 유린당한 모든 국가폭력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기념행사”라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화는 이들의 희생에 빚지고 있음을 기억하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2025-11-18> 노컷뉴스 ☞기사원문: ‘학원침투 간첩 조작 사건’ 50주년…국가폭력 피해자 행사 열린다 ※관련기사 ☞한겨레: 유신 국가 폭력에 휘말린 재일한국인…‘11·22사건’ 기념 행사

[오마이뉴스] “을사늑약 120년, 일본 역사부정-군국주의 부활 규탄”

2025년 11월 18일 325

[현장]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국가 책임 회피 비판… “한일-한미일 군사협력 중단해야” 을사늑약 120주년을 맞아 시민사회단체들이 일본의 역사 부정과 군국주의를 규탄하고, 한국 정부에 과거사를 외면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을사늑약 120년, 역사정의와 평화 그리고 올바른 한일관계를 위한 각계 인사 기자회견’이 지난 17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렸다. 정의연대,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자유언론실천재단, 자주통일평화연대, 민족문제연구소 등 단체 대표들이 참석했다. 기자회견문에서 참가자들은 “다카이치 총리는 위안부 강제성 부정, 무라야마 담화 수정 주장,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극우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가 역사 왜곡과 국가 책임 회피를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 총리가 공식 석상에서 대만 개입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매우 위험한 선례”라며 “군사대국화와 대만 군사 개입 야욕을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후쿠시마 오염수, 사도광산, 간토대학살, 재일 조선인 차별 등 핵심 이슈를 외면한 것은 역사 정의의 포기”라며 “정부의 과거사 외면 및 굴욕 외교”를 비판했다. 참가자들은 “한국 정부 또한 과거사를 외면하고 굴욕적인 외교를 이어가고 있다”며 “일본의 전쟁 가능성을 전제한 모든 군사협력, 한일·한미일 군사협력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발언에 나선 이나영 정의연대 이사장은 “을사늑약은 국제법상 명백히 무효이며,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강제동원, 학살, 성노예제 등 구조적 범죄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박석운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공동대표는 “을사늑약 120년, 두 번째 60갑자의 해를 맞아 반복되는 일본 군국주의의 어두운 흐름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보도자료] 아름답지만 슬픈, 그러나 희망을 놓지 않은 독립운동가의 발자취『김산 따라 아리랑 로드로』 출간

2025년 11월 18일 481

☞ 다운로드: [보도자료] 아름답지만 슬픈, 그러나 희망을 놓지 않은 독립운동가의 발자취『김산 따라 아리랑 로드로』 출간 [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는 11월 10일 김산 따라 아리랑로드로-혁명과 반혁명의 광둥 3년을 찾아서를 출간했다. 이 책은 아리랑 노래를 통해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 김산(金山, 장지락)의 햇수로 4년, 기간으로 만 3년간의 ‘광둥 시절’을 사건사적 배경과 전체 맥락을 실제와 최대한 가깝게 재구성하면서 순차대로 복원시켜 보려는 소박한 시도다. 이 책의 저자 김영범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는 의열단, 조선의용대 등 의열투쟁을 비롯한 독립운동사 연구에 독보적인 업적을 쌓아온 사회학자이다. 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2020년부터 진행한 ‘아리랑 답사’ 심화작업의 하나로 진행된 ‘아리랑 로드’ 사전 답사에 참여하면서 이 책을 집필하기로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이 책의 1부. ‘김산과 광저우 봉기’는 김산의 ‘광둥 시절’의 배경이 되는 중국 국민혁명의 소용돌이 속 국공합작과 분열의 시기, 광저우 봉기와 의열단의 기의 가담에 대한 사건사적 배경과 아리랑 로드의 이야기를 엮어 김산의 행적을 자세히 다룬다. 2부. ‘100년 후의 옛길과 격정의 흔적들’에서 광저우 시내의 황포군관학교 유지와 광저우기의 기념관부터 시작해, 김산이 퇴각했던 화현(花縣), 룽먼현(龍門縣)을 거쳐 하이루펑의 펑파이 생가 그리고 최종 탈출지였던 산터우(汕頭)까지 이어지는 고난의 로드를 직접 추적한다. 저자는 답사를 마무리하며 ‘역사란 하나가 아니고 여러 겹의 것이며 언제나 그럴 수밖에 없음도 다시금 실감했다’고 소회를 남긴다. 이는 김산의 흔적을 쫓으며 현장에서 느낀 감회와 수많은 역사적 평가들이 겹쳐진 결과일 것이다. 김산의 ‘광둥

[새책소개] 『김산 따라 아리랑 로드로』

2025년 11월 12일 2675

바로가기 >>>☞ [도서구매]  [주요내용] 『김산 따라 아리랑 로드로 ― 혁명과 반혁명의 광둥 3년을 찾아서』 민족문제연구소는 11월 10일 『김산 따라 아리랑로드로-혁명과 반혁명의 광둥 3년을 찾아서』를 출간했다. 이 책은 아리랑 노래를 통해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 김산(金山, 장지락)의 햇수로 4년, 기간으로 만 3년간의 ‘광둥 시절’을 사건사적 배경과 전체 맥락을 실제와 최대한 가깝게 재구성하면서 순차대로 복원시켜 보려는 시도다. 제19회 임종국상 학술상 수상자인 김영범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는 의열단, 조선의용대 등 의열투쟁을 비롯한 독립운동사 연구에 독보적인 업적을 쌓아온 사회학자이다. 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2020년부터 진행한 ‘아리랑 답사’ 심화작업의 하나로 진행된 ‘아리랑 로드’ 사전 답사에 참여하면서 이 책을 집필하기로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저자는 답사를 마무리하며 “역사란 하나가 아니고 여러 겹의 것이며 언제나 그럴 수밖에 없음도 다시금 실감했다”고 소회를 남긴다. 이는 김산의 흔적을 쫓으며 현장에서 느낀 감회와 수많은 역사적 평가들이 혼재된 결과일 것이다. 김산의 ‘광둥 시절’은 표면적으로 ‘패배’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김산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혁명적 낭만주의와 ‘패배’가 있었기에 조국 독립이라는 ‘승리’도 가능했다. 최근 들어 독립운동가 중 사회주의 계열 활동으로 인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이 재조명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산에게 아리랑은 ‘비극의 상징이고 죽음의 노래이며, 아름답지만 슬픈 노래’였다. 전투에서 패하고 먹을 것을 찾아 헤맬 때 동지들과 부르던 것은 ‘패배의 노래’였지만, 절망의 심연에 빠져들 때 이 노래는 ‘희망의 숨구멍 같은 노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