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top-introduce[1]](/wp-content/uploads/2016/02/img-top-news1.png)
주요기사
“위안부 문제 별일 아니다” 아베 외교브레인 망언-서울신문(07.06.07)
“위안부 문제 별일 아니다” 아베 외교브레인 망언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교 브레인인 오카자키 히사히코 전 태국 주재 대사는 5일 도쿄의 한 강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당시 시대 상황에 비춰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는 취지의 ‘망언’을 했다.6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오카자키 전 대사는 “20세기는 중국에서 수천만명이 죽었으며,(옛 소련에서는) 스탈린의 숙청으로 수백만명이 죽었고, 미국도 원자폭탄과 공중 폭격을 했다.”면서 “일본의 위안부는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아베 총리가 지난 4월 미국 방문 때 “20세기는 인권이 모든 지역에서 침해를 당한 시대”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언급한 배경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위안부 문제 별일 아니다” 아베 외교브레인 망언-서울신문(07.06.07)
“위안부 문제 별일 아니다” 아베 외교브레인 망언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교 브레인인 오카자키 히사히코 전 태국 주재 대사는 5일 도쿄의 한 강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당시 시대 상황에 비춰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는 취지의 ‘망언’을 했다.6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오카자키 전 대사는 “20세기는 중국에서 수천만명이 죽었으며,(옛 소련에서는) 스탈린의 숙청으로 수백만명이 죽었고, 미국도 원자폭탄과 공중 폭격을 했다.”면서 “일본의 위안부는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아베 총리가 지난 4월 미국 방문 때 “20세기는 인권이 모든 지역에서 침해를 당한 시대”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언급한 배경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국치’ 100년, 속죄와 화해
이만열·숙명여대 명예교수 내년은 ‘국치(國恥)’ 100년이 되는 해다. 1910년 일제가 대한제국의 주권을 강탈한 ‘한일합방’ 한 세기가 되는 해다. 민간에서는 벌써부터 이 해를 그냥 보내지 않겠다고 벼르면서 시민들의 역사의식을 높이려고 준비하고 있다. 올해 <친일인명사전>(3권)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24권)가 간행된 것은 ‘국치’ 100주년을 앞두고 친일문제를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자부한다. ‘국치’ 100년을 맞아 한·일관계가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기성세대는 마땅히 고민해야 한다. 속죄(贖罪)와 화해를 화두로 내세우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필자는 단도직입적으로 하토야마 정권이, ‘한일합병’은 애초부터 무효라고 주장하는 한국 측 주장에 화답할 것을 그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이런 처방이 고 려되지 못한다면, 한일협정의 재검토가 필요하겠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과제는 1965년 6월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의 불명확성을 수정, 보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일본의 침략사실과 강점에 대한 시인, 사죄 명시,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규정, ‘반환’이라는 단어 하나 명시하지 못한 한일문화재협정 등의 문제를 대폭 수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장기적인 과제는 잠시 접어두고 내년에 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언급하겠다. 그것은 바로 하토야마 정부가 ‘한일합방조약’ 체결 100년을 맞아 그 조약은 물론이고 1905년의 ‘을사조약’ 등 강제 체결된 한말의 제 조약이 원천 무효였다고 선언하는 것이다.일본의 ‘합병무효 선언’ 해결책하토야마 정권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인색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것은 종래 이웃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었던 자민당 정권의 몰염치한 태도와는 다른 자세이며, 일본 국민의 바람과도
[이만열칼럼]‘국치’ 100년, 속죄와 화해
[이만열칼럼]‘국치’ 100년, 속죄와 화해(경향신문, 09.12.03)
아베 참모, ‘위안부는 문제거리도 안돼’-한겨레신문(07.06.06)
아베 참모, ‘위안부는 문제거리도 안돼’ 외교 참모 오카자키“20세기엔 모든 지역서 인권침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교 브레인으로 알려진 오카자키 히사히코 전 타이대사가 5일 도쿄의 한 강연에서 “위안부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폭언을 했다고 <아사히신문>이 6일 보도했다.오카자키는 “20세기에는 중국에서도 몇천만명이 살해됐다. (옛 소련의) 스탈린의 숙청 때도 몇백만명이 죽었고, 미국도 원폭을 투하하거나 공중폭격을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아베 총리가 지난 4월 미국 방문 때 “20세기는 인권이 모든 지역에서 침해를 당한 시대”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언급한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런 주장을 폈다고 신문은 전했다. 오카자키는 아베 총리에게 방미 전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 과정에서 이 표현(‘20세기는 인권침해의 시대’)을 사용하라고 조언했다고 밝히기도 했다.오카자키는 또 자민당 일부 의원들이 주장하는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조사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의) 공급이 충분한 경우에는 강제할 필요가 없다. 어느 정도 보수를 제공하고 (일본군 위안부를) 모집해서 공급이 충분했다는 자료가 갖춰져 있다면 좋겠으나, (위안부로) 돈을 모아 자신의 기생집을 연 놈들이 (그런 사실을) 보고할 리가 없다”며 부정적 의견을 나타냈다.오카자키는 일본의 대표적 친미 우익 논객이다. 2005년 ‘새로운 역사교서를 만드는 모임’의 역사교과서 편찬작업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그는 2006년 8월 <산케이신문>에 기고한 ‘(야스쿠니신사의 전쟁박물관인) 유슈칸으로부터 미숙한 반미사관을 없애라’라는 글을 통해, 2차 대전 발발 원인을 미국 쪽으로 돌리는 잘못된 기술이 미-일 관계를 해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아베 참모, ‘위안부는 문제거리도 안돼’-한겨레신문(07.06.06)
아베 참모, ‘위안부는 문제거리도 안돼’ 외교 참모 오카자키“20세기엔 모든 지역서 인권침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교 브레인으로 알려진 오카자키 히사히코 전 타이대사가 5일 도쿄의 한 강연에서 “위안부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폭언을 했다고 <아사히신문>이 6일 보도했다.오카자키는 “20세기에는 중국에서도 몇천만명이 살해됐다. (옛 소련의) 스탈린의 숙청 때도 몇백만명이 죽었고, 미국도 원폭을 투하하거나 공중폭격을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아베 총리가 지난 4월 미국 방문 때 “20세기는 인권이 모든 지역에서 침해를 당한 시대”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언급한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런 주장을 폈다고 신문은 전했다. 오카자키는 아베 총리에게 방미 전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 과정에서 이 표현(‘20세기는 인권침해의 시대’)을 사용하라고 조언했다고 밝히기도 했다.오카자키는 또 자민당 일부 의원들이 주장하는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조사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의) 공급이 충분한 경우에는 강제할 필요가 없다. 어느 정도 보수를 제공하고 (일본군 위안부를) 모집해서 공급이 충분했다는 자료가 갖춰져 있다면 좋겠으나, (위안부로) 돈을 모아 자신의 기생집을 연 놈들이 (그런 사실을) 보고할 리가 없다”며 부정적 의견을 나타냈다.오카자키는 일본의 대표적 친미 우익 논객이다. 2005년 ‘새로운 역사교서를 만드는 모임’의 역사교과서 편찬작업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그는 2006년 8월 <산케이신문>에 기고한 ‘(야스쿠니신사의 전쟁박물관인) 유슈칸으로부터 미숙한 반미사관을 없애라’라는 글을 통해, 2차 대전 발발 원인을 미국 쪽으로 돌리는 잘못된 기술이 미-일 관계를 해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일본인들 마음의 고향
일본인들 마음의 고향(한겨레신문, 09.12.02)
예스24, 전 임직원 ‘뮤지컬 송년회’
예스24, 전 임직원 ‘뮤지컬 송년회’(세계일보, 09.12.02)
옥천 古宅서 日王 추모비 발견
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충북 옥천서 발견된 일왕(日王) 추모비 (옥천=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충북 옥천의 한 고택(古宅)에서 일왕(日王)을 추모하는 문구가 새겨진 비석이 발견됐다.7일 옥천군 옥천읍 문정리 정태희(53)씨와 민족문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정씨 집 마당서 ‘명치천황어일주년제기념비(明治天皇御一週年祭紀念碑)’라는 비문이 새겨진 길이 170㎝, 너비 27㎝, 두께 23㎝의 비석이 발견됐다.비석 뒷면에는 비(碑)를 만든 날을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 ‘대정이년칠월삼십일(大正二年七月三十日)’이라는 문구도 새겨져 있다.이 비는 2년 전 이 집을 매입한 정씨가 허물어진 사랑채를 철거하는 과정서 마루 밑 디딤돌로 쓰이던 것을 옮겨 세운 것으로 최근 한 시민이 민족문제연구소에 제보해 외부에 알려졌다.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47) 연구실장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나 일본인, 지방 친일권력 등에 의해 여러 형태와 내용의 기념물이 조성됐지만 해방 뒤 대부분 파괴되거나 사라져 지금은 흔치 않다"며 "일본의 122대 왕인 명치천황 사망 1주기를 추모하는 비석으로 보이지만 언제 누가 만들어졌는지는 종합적인 조사를 거쳐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이어 "당시 대부분의 기념물에는 조성 날짜와 조성자(기관명) 이름이 함께 새겨졌는데 이 비석에는 날짜만 남았다"며 "민관 합작이거나 누군가 고의로 훼손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집 주인 정씨는 "160여년 된 이 집에는 일제 강점기 당대 최고의 지주가 살았던 것으로 전해들었다"며 "발견 당시 비의 상태로 봐 해방 이후 누군가가 고의로 디딤돌로 묻은 것으로 보이며 역사적 가치가 있을 것 같아 마당 귀퉁이에 옮겨 세웠놨다"고 말했다.10여년 전 이 집 인근인
조선 출신 만주군 장성 첫 확인… 국가기록원, 러 문서보존소서 입증자료 발견
쿠키뉴스 황일송 기자 일제 때 조선인으로 자원입대해 만주국 군대의 중장까지 오른 인물을 포함, 일본군에 가담한 조선인들과 전쟁포로 등 4800여명의 인적 기록을 담은 문건이 러시아에서 발견됐다. 특히 광복 이후 남한에서 미군정하에 친일파들이 계속 득세했던 것과 달리 북한에서는 소련군이 전쟁포로들을 상대로 친일행적 조사를 주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행정자치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6일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국립군사문서보존소에서 만주군 보급대장 박병두(朴柄斗) 중장이 1946년 1월 반민족 행위로 소련군에 의해 체포돼 징역 2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56년 일본으로 송환된 기록을 찾았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은 “만주군 장성급 중 조선인이 있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나온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국가기록원이 확인한 40여장의 기록철에는 박씨가 1894년 평안도 안주군에서 태어나 교사로 재직하다 1919년 자원입대했다고 기록돼 있다.박씨는 일본 첩보기관 소속으로 중국군에 침투한 뒤 정기적으로 중국군 장성의 동향을 파악해 보고하고 10여명의 중국군 장성을 포섭했다.박씨의 최종 직책은 만주군 보급대장으로 계급은 중장이었다. 박씨는 1946년 1월 평양에서 소련군에 체포돼 2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여러 수용소를 전전하면서 10년간 복역한 그는 1956년 본인 희망에 따라 일본으로 송환됐다. 앞서 박씨는 수용소에서 총리와 철도청장 등 일본의 유력 인사에게 수차례 탄원 편지를 보냈다.또 1945년 2월 54세에 중령 예편한 김인욱씨는 이듬해 1월 북한에서 체포돼 1950년 일본으로 송환됐고, 최석건 중위는 1945년 11월 체포돼 1947년 수용소에서 사망하는 등 6000여명의 조선인 출신 일본군과 친일행위자들이 소련 군정 시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