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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리덩후이 “韓·中, 야스쿠니 참배 비난 안돼” 망언-경향신문(07.06.11)

2007년 6월 14일 305

리덩후이 “韓·中, 야스쿠니 참배 비난 안돼” 망언   리덩후이(李登輝) 전 대만 총통의 야스쿠니 관련 망언이 관련국간의 외교문제로 비화될 조짐이다.최근 방일 기간 중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리덩후이 전 총통이 “야스쿠니 문제는 한국과 중국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발언한데 대해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자, 일본 아소 다로 외상은 “문제 없다”고 일축했다.리 전 총통은 일본 방문 마지막 날인 9일 도쿄의 일본외국특파원협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야스쿠니 문제는 국내 문제를 처리할 수 없는 한국과 중국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젊은이들의 혼을 위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그는 특히 “(한국과 중국 등) 외국 정부로부터 비판 받을 이유는 없다”면서 그는 “(한국 중국 등의 야스쿠니 참배 비판에 대해) 일본 정치가 너무 약했다”고 일본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주문했다.이어 산케이신문은 아소 다로 외상이 10일 강연을 통해 “리 전 총통은 84살로 일선에서 물러난 사람이며, 형이 야스쿠니 신사에서 제사 지내는 만큼 참배에 어떤 문제가 있느냐”며 참배 지지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다.한편 방일 기간 중 거침없는 친일행각을 보인 리 전 총통은 도쿄 나리타국제공항 출국장에서 30대 중국인 남성이 던진 페트병 세례를 받는 수모를 당했다.

리덩후이 “韓·中, 야스쿠니 참배 비난 안돼” 망언-경향신문(07.06.11)

2007년 6월 14일 347

리덩후이 “韓·中, 야스쿠니 참배 비난 안돼” 망언   리덩후이(李登輝) 전 대만 총통의 야스쿠니 관련 망언이 관련국간의 외교문제로 비화될 조짐이다.최근 방일 기간 중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리덩후이 전 총통이 “야스쿠니 문제는 한국과 중국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발언한데 대해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자, 일본 아소 다로 외상은 “문제 없다”고 일축했다.리 전 총통은 일본 방문 마지막 날인 9일 도쿄의 일본외국특파원협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야스쿠니 문제는 국내 문제를 처리할 수 없는 한국과 중국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젊은이들의 혼을 위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그는 특히 “(한국과 중국 등) 외국 정부로부터 비판 받을 이유는 없다”면서 그는 “(한국 중국 등의 야스쿠니 참배 비판에 대해) 일본 정치가 너무 약했다”고 일본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주문했다.이어 산케이신문은 아소 다로 외상이 10일 강연을 통해 “리 전 총통은 84살로 일선에서 물러난 사람이며, 형이 야스쿠니 신사에서 제사 지내는 만큼 참배에 어떤 문제가 있느냐”며 참배 지지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다.한편 방일 기간 중 거침없는 친일행각을 보인 리 전 총통은 도쿄 나리타국제공항 출국장에서 30대 중국인 남성이 던진 페트병 세례를 받는 수모를 당했다.

[이 주일의 역사] 경성부민관 개관(1935.12.10) 外

2009년 12월 7일 465

[이 주일의 역사] 경성부민관 개관(1935.12.10) 外(부산일보, 09.12.07)

[홍천]“최승희 선양사업 혈세 낭비”

2009년 12월 7일 349

[홍천]“최승희 선양사업 혈세 낭비”(강원일보, 09.12.07)

“사법부가 친일청산에 더 나서도록 해주었다”-오마이뉴스(07.06.11)

2007년 6월 13일 356

“사법부가 친일청산에 더 나서도록 해주었다” [인터뷰] 박노정 진주민예총 회장              ▲ 박노정 진주민예총 회장.              ⓒ 오마이뉴스 윤성효   “친일화가가 그린 논개영정을 뜯어냈다고 해서 교도소까지 갔다 왔다. 오히려 잘 됐다. 앞으로 더 철저하게 지역 곳곳에 있는 친일·일재잔재들을 찾아내서 바로 세우도록 하겠다.”진주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를 지낸 박노정(57) 진주민예총 회장이 11일 한 말이다. 진주지역 50여개 단체로 구성된 ‘독도수호 진주시민운동본부’는 2005년 5월 10일 의기사에 걸려 있던 김은호 작 ‘미인도 논개’ 복사본(일명 논개영정)을 뜯어냈다.박 회장과 하정우·정유근·유재수씨는 ‘건조물 침입’과 ‘공용물건손상’ 혐의로 기소되어 법원으로부터 각각 벌금 500만원씩 선고받았다. 이들은 검찰의 기소와 법원의 선고에 항의하는 뜻으로 벌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 5월 28일 노역장 유치를 선언하고 진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1주일만인 6월 3일 출소했다.진주시민운동본부는 앞으로 지역에서 다양한 친일·일제잔재 청산운동에 나서기로 했다. 조만간 단체 대표들이 모여 구체적인 사업 방향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이 단체가 앞으로 정리해 나갈 사업으로는 ▲’친일가수’인 남인수의 이름을 딴 가요제를 없애거나 변경하는 문제와 ▲뒤벼리 절벽에 새겨진 친일인사들의 이름을 처리하는 문제 ▲친일 인사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던 비석(비석군)이 진주성 안에 있는 문제 등이다. 진주성 호국종각에 새겨진 이은상의 시 처리 문제도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박노정 회장을 만나 출소 뒤 소감과 앞으로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 교도소에서 나온 뒤 주변의 반응은?“친일·일제 잔재 청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 같다. 대개 사람들은 그 일은 누군가는 해야 할

“사법부가 친일청산에 더 나서도록 해주었다”-오마이뉴스(07.06.11)

2007년 6월 13일 327

“사법부가 친일청산에 더 나서도록 해주었다” [인터뷰] 박노정 진주민예총 회장              ▲ 박노정 진주민예총 회장.              ⓒ 오마이뉴스 윤성효   “친일화가가 그린 논개영정을 뜯어냈다고 해서 교도소까지 갔다 왔다. 오히려 잘 됐다. 앞으로 더 철저하게 지역 곳곳에 있는 친일·일재잔재들을 찾아내서 바로 세우도록 하겠다.”진주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를 지낸 박노정(57) 진주민예총 회장이 11일 한 말이다. 진주지역 50여개 단체로 구성된 ‘독도수호 진주시민운동본부’는 2005년 5월 10일 의기사에 걸려 있던 김은호 작 ‘미인도 논개’ 복사본(일명 논개영정)을 뜯어냈다.박 회장과 하정우·정유근·유재수씨는 ‘건조물 침입’과 ‘공용물건손상’ 혐의로 기소되어 법원으로부터 각각 벌금 500만원씩 선고받았다. 이들은 검찰의 기소와 법원의 선고에 항의하는 뜻으로 벌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 5월 28일 노역장 유치를 선언하고 진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1주일만인 6월 3일 출소했다.진주시민운동본부는 앞으로 지역에서 다양한 친일·일제잔재 청산운동에 나서기로 했다. 조만간 단체 대표들이 모여 구체적인 사업 방향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이 단체가 앞으로 정리해 나갈 사업으로는 ▲’친일가수’인 남인수의 이름을 딴 가요제를 없애거나 변경하는 문제와 ▲뒤벼리 절벽에 새겨진 친일인사들의 이름을 처리하는 문제 ▲친일 인사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던 비석(비석군)이 진주성 안에 있는 문제 등이다. 진주성 호국종각에 새겨진 이은상의 시 처리 문제도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박노정 회장을 만나 출소 뒤 소감과 앞으로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 교도소에서 나온 뒤 주변의 반응은?“친일·일제 잔재 청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 같다. 대개 사람들은 그 일은 누군가는 해야 할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분들의 후손님께

2009년 12월 7일 808

박재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나 자신도 그때 태어났다면 어찌 마땅히 독립운동을 하였으리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여 인명사전에 오른 심정 아플 것임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한편 그 엄혹한 시기에 고난 속에서도 독립을 위해 싸웠던 분들과 일제하에 고통 당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어찌 숙연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각각 여러 사정은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 시점에서는 부끄럽다거나 그 점은 송구스럽다거나 하는 말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고통과 수치와 분노를 털어버린다면 국민들의 마음도 조상님들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그렇..<기사 발췌>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분들의 후손님께(한겨레신문, 09.12.04) 

친일인명사전에 도내출신 128명 수록

2009년 12월 4일 399

친일인명사전에 도내출신 128명 수록(전북일보, 09.12.03)

[야스쿠니 캠페인] 대만 노인 마사오의 야스쿠니

2007년 6월 12일 483

    한겨레21 길윤형 기자   청년의 이름은 이와사토 마사오였다. 1923년 1월15일 대만 타이베이현 산즈향(鄕)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일제시대 경찰이었다. 부친의 임지가 바뀜에 따라 소년 마사오는 이사를 자주 다녔다. 소학교 3학년 때까지 단수이소학교를 다니다 부친을 따라 난강소학교로 전학갔고, 다시 2년을 채우지 못하고 고향 산즈소학교로 옮겨 졸업을 했다. 당시 동기들은 “그는 공부를 매우 잘하는 학생이었으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 5월30일, 리덩후이 전 대만 총통(가운데)은 웃는 얼굴로 나리타 공항에 들어섰다. 그는 “태평양전쟁에서 숨진 형을 위해 야스쿠니신사를 찾겠다”고 말했다.(사진/ AFP PHOTO/ TOSHIFUMI) 일본 유학이 최대 소원이었던 수재마사오는 주위의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수재였다. 하지만 타이베이에 있는 타이베이사범학교에 응시했다가 보기 좋게 낙방했다. 다시 청궁중학교에 응시했지만 낙방하고 만다. 어린 마사오는 참담한 실패를 견딜 수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가 재수를 했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마사오는 이듬해 중학교 입시에 다시 실패했고 마지못해 고향의 산즈중학교에 입학했다. 잇따른 실패에 맞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싶었던 듯 중학교에 다닐 때는 검도에 매진했다.고등학교 입시가 앞으로 다가왔다. 마사오는 다시 타이베이로 가 최고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타이베이고등학교에 응시했다. 합격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3년 과정을 2년 만에 독학으로 마칠 만큼 맹렬히 공부했다. 당시 동기들은 “최대 소원이었던 일본 유학을 위해 밤새워 공부만 했던 친구”로 그를 기억했다.마사오의 소원은 현실이 됐다. 그는 도쿄제국대학과 더불어 당대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던 교토제국대학 농업경제학과에 당당히

“반민특위 60주년 우표 NO”…우정본부 몰역사성 도마에

2007년 6월 11일 470

    경향신문 김다슬 기자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가  실시하고 있는 기념우표 발행사업의 우표 선정 기준이 애매하고 역사적인 판단에서 자의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3월 우정사업본부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출범 60주년’ 기념우표 발행을 신청했다. 연구소는 “친일청산과 정의 실현이라는 뜻을 되새기기 위해 우표발행을 하려 했 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5월21일 반민특위 기념우표가  발행대상에  선정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기념우표로는 ‘상수도 사업 100주년’, ‘한국구세군 사역 100주년’ 등이 선정됐다.연구소측은 기념우표선정 결과에 대해 강하게 의문을 제기했다. 왜 선정 대상에서  제외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정사업본부의  몰역사성을 탓하기도 했다.  연구소 관계 자는 “친일청산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지금, 반민특위 출범이 (우표 발행이 결정된) 다른 사업들만큼의 가치도 없다는 말이냐”고 반문했다.우정사업본부측에서는  ‘역사적인 사건의 경우 50주년,  100주년 단위에 한해서 우표 발행을 한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경찰 창설 60년,  사대부고 60년, 광복 60년,  이봉창 순국 60년 우표’ 등이 발행된 적이 있어 설득력이 약하다.  연구소는 “결국 위원들이 구체적인 기준  없이 그때그때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기념우표 선정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서울대병원의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은 일제 식민 통치 시절에 세워진 대한의원의  역사를 인정하고 식민 통치를 미화한다는 이유로 친일 논란이 불거졌다. 또 ‘대한의원 100주년’과 내용면에서  별반 다르지 않은  ‘경북대병원 100주년’ 기념우표는 심의에서 탈락해 위원들의 입맛에 따라 기준이 달라진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연구소는  우정사업본부측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