려되지 못한다면, 한일협정의 재검토가 필요하겠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과제는 1965년 6월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의 불명확성을 수정, 보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일본의 침략사실과 강점에 대한 시인, 사죄 명시,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규정, ‘반환’이라는 단어 하나 명시하지 못한 한일문화재협정 등의 문제를 대폭 수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장기적인 과제는 잠시 접어두고 내년에 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언급하겠다. 그것은 바로 하토야마 정부가 ‘한일합방조약’ 체결 100년을 맞아 그 조약은 물론이고 1905년의 ‘을사조약’ 등 강제 체결된 한말의 제 조약이 원천 무효였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일본의 ‘합병무효 선언’ 해결책
하토야마 정권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인색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것은 종래 이웃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었던 자민당 정권의 몰염치한 태도와는 다른 자세이며, 일본 국민의 바람과도 일치한다고 본다. 한국인의 기억에서 도저히 지워버릴 수 없는 ‘국치’, 그 100년을 맞아 하토야마 총리가 포착하기에 따라서는 한국인을 감동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하토야마 총리는 그의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에 날개를 달 수도 있다. 이 같은 제안은 와다 하루키 교수 등 일본 식자층에서도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1905년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간 ‘을사조약’이나 1910년 ‘한일합방조약’이 국제법적 정당성을 갖지 못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일본은 1965년 체결된 한일기본조약 제2조, “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와 관련,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의 기점을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때부터라고 주장한다. 이는 한국 측이 기본조약 교섭 과정에서 구 조약의 무효화 기점을 1904년 한일의정서까지 소급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한 것과는 다르다. 일본 측의 이 같은 주장은 일제의 한국 강점을 정당화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 태도를 갖고 있는 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한국인의 용서와 화해를 기대할 수 없다.
필자는 최근 <제노사이드와 한국 근대>라는 책을 입수하여 일별했다. 동학농민혁명 때부터 시작된 일본군의 학살만행이 전·후기 의병과 3·1운동, 경신참변 및 관동대진재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였는가를 서술했다. 제노사이드와 다를 바 없는 일제 강점기에 징병 징용으로 끌려간 한국인까지 합하면 수백만명에 이른다. 그들 대부분은 유해조차 거두지 못했고, 2만1000여구는 죽어서도 ‘대일본제국의 신민’으로 야스쿠니에 억류되어 있다. 이것이 제사를 통해 해마다 조상들을 만나야 하는 한국인들이 쉽게 화해하지 못하는 한 이유라면 이해하겠는가.
한국을 감동시킬 수 있는 기회
한 때 이명박 대통령의 초청으로 일본 국왕이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환영한다. 그러나 그의 방문은 한·일관계를 화해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될 때 의미가 있다. 그건 한국 방문에 앞서 그의 선조들이 저지른 죄과를 사죄하는 정도의 속죄행위라도 선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속죄 없이 화해와 용서가 가능할까. 그가 ‘통석(痛惜)의 염(念)’을 표한 적이 있지만 그것이 사죄를 뜻하는 말이 아님은 식자들에 의해서 이미 지적된 바다.<경향신문, 09.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