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록원이 확인한 40여장의 기록철에는 박씨가 1894년 평안도 안주군에서 태어나 교사로 재직하다 1919년 자원입대했다고 기록돼 있다.
박씨는 일본 첩보기관 소속으로 중국군에 침투한 뒤 정기적으로 중국군 장성의 동향을 파악해 보고하고 10여명의 중국군 장성을 포섭했다.
박씨의 최종 직책은 만주군 보급대장으로 계급은 중장이었다. 박씨는 1946년 1월 평양에서 소련군에 체포돼 2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여러 수용소를 전전하면서 10년간 복역한 그는 1956년 본인 희망에 따라 일본으로 송환됐다. 앞서 박씨는 수용소에서 총리와 철도청장 등 일본의 유력 인사에게 수차례 탄원 편지를 보냈다.
또 1945년 2월 54세에 중령 예편한 김인욱씨는 이듬해 1월 북한에서 체포돼 1950년 일본으로 송환됐고, 최석건 중위는 1945년 11월 체포돼 1947년 수용소에서 사망하는 등 6000여명의 조선인 출신 일본군과 친일행위자들이 소련 군정 시절 북한에서 붙잡혀 처벌받았다. 이들은 소련 보위성 산하 전쟁포로수용소에 분산 수용됐다가 원하는 곳으로 송환됐다.
공개된 기록에는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수용소가 6곳이었으며 1948년 2162명의 조선인 전쟁포로 및 친일행위자가 송환됐고 49년 83명, 50년 189명, 51년 2483명 등 모두 4817명이 송환된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군사문서보존소 관계자는 “수용소에서 사망했거나 소련에 귀화한 조선인도 상당수 있었다는 점에서 5000∼6000명의 전쟁포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국가기록원은 올 하반기 군사문서보존소가 보관 중인 조선인 전쟁포로와 친일행위자 기록을 마이크로 필름 형태로 넘겨받기로 지난 5일 약정을 체결했다.<쿠키뉴스, 07.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