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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천황 사망 추모비 발견 구읍
춘추민속관에서, 추모비는 전국 유일
우리
고장에 일본 천황의 사망을 추모하는
비가 발견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구읍 춘추민속관
한쪽 구석에 있는 이 기념비는 대략
폭 27㎝, 높이 170㎝ , 너비 23㎝에 이르고
앞면에는 ‘명치천황어일주년제기념비(明治天皇御一週年祭紀念碑)’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으며뒷면에는 ‘대정이년칠월삼십일(大正二年七月三十日)’이라는
날짜가 뚜렷이 남아있다.
명치천황은
일본의 제122대 왕으로 1867년
16세의 나이에 즉위하여 이듬해 9월
연호를 ‘메이지(明治)’로 고치고 일본의
근대화를 이끌고 제국주의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한 왕으로 일본인들의 존경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1876년 강화도조약,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경술국치 등 침략의 원흉으로
꼽히는 인물.
대정
2년은 1913년으로, 명치천황이 사망한 1912년
7월 30일로부터 정확히 1주년이 되는 날이다.
즉, 이 비는 명치천황이 사망한 1주년을 추모하는
기념비로 세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은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일본 천황의 사망 1주년을 추모하는 비석은
발견된 적이 없다”며 “친일잔재 유산으로
보존하고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단양군 단성면과 영춘면의 일본천황등극기념림비(1915),
황색연초도입25주년기념비 (1936)등 일제 강점기
때 세워진 많은 비들이 있지만 천황 사망 1주기를
추모하는 비석은유일하다는 이야기다. 이에
따라 민족문제연구소는 현재 건립을 진행 중인
‘일제 강점기민중생활역사관’에 기념비를
이전, 전시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 비는 춘추민속관에 소재해 있는 만큼 집주인인
정태희(춘추민속관 대표)씨의 동의가 필요하다.
정씨는
“다른 곳으로 옮기기 보다 현재 위치한 곳에
표지석이나 안내문을 세우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지역에서 발견된 역사
유물인 만큼 우선적으로 지역민들을 위한 자료로
활용하자는 의견이다. 군 문화홍보과 박희태
과장은 “역사적, 교육적 사료로서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우선,
도 학예연구관에 의뢰해 조사를 한 뒤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정식 절차를 밟아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우리 고장에서는 이번에 발견된 ‘명치천황어일주년제기념비’
외에 1993년 죽향초 황국신민서사비, 1995년
동이초등학교 졸업생들이 문제를 제기해 안내면
장계리 향토전시관으로 옮긴 황국신민서사비와
2005년 논란을 일으켰던 죽향초등학교의 `구스노키
마사시게’ 무사상 좌대 등 몇몇 친일 유적들이
발견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적들에
대한 역사교육자료 활용 등 체계적인 관리는
미흡한 실정이다.
이와
관련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방 사무국장은 “이번에발견된
기념비는 쭉 그곳에 있었다”며 “옥천군에서는
자료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을 정도로 보존,
관리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기념비가 발견된 춘추민속관은 1856년에 건축된
고택으로, 일제 강점기 때 군내 제1의 지주이자
국유지조합장, 관선도평의원 등을 지낸 오윤묵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의 소유주인
정태희가 2005년 5월 집을 인수 할 당시 기념비는
‘명치천황어일주년제기념비’라는 글귀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깊이로 파묻혀 있었다.
정씨는 “해방 이후 누군가땅에 묻어둔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고 말했다.<옥천신문,
07.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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