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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古宅서 日王 추모비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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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충북 옥천서 발견된 일왕(日王) 추모비


 


(옥천=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충북 옥천의 한 고택(古宅)에서 일왕(日王)을 추모하는 문구가 새겨진 비석이 발견됐다.

7일 옥천군 옥천읍 문정리 정태희(53)씨와 민족문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정씨 집 마당서 ‘명치천황어일주년제기념비(明治天皇御一週年祭紀念碑)’라는 비문이 새겨진 길이 170㎝, 너비 27㎝, 두께 23㎝의 비석이 발견됐다.

비석 뒷면에는 비(碑)를 만든 날을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 ‘대정이년칠월삼십일(大正二年七月三十日)’
이라는 문구도 새겨져 있다.

이 비는 2년 전 이 집을 매입한 정씨가 허물어진 사랑채를 철거하는 과정서 마루 밑 디딤돌로 쓰이던 것을 옮겨 세운 것으로 최근 한 시민이 민족문제연구소에 제보해 외부에 알려졌다.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47) 연구실장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나 일본인, 지방 친일권력 등에 의해 여러 형태와 내용의 기념물이 조성됐지만 해방 뒤 대부분 파괴되거나 사라져 지금은 흔치 않다"며 "일본의 122대 왕인 명치천황 사망 1주기를 추모하는 비석으로 보이지만 언제 누가 만들어졌는지는 종합적인 조사를 거쳐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시 대부분의 기념물에는 조성 날짜와 조성자(기관명) 이름이 함께 새겨졌는데 이 비석에는 날짜만 남았다"며 "민관 합작이거나 누군가 고의로 훼손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집 주인 정씨는 "160여년 된 이 집에는 일제 강점기 당대 최고의 지주가 살았던 것으로 전해들었다"며 "발견 당시 비의 상태로 봐 해방 이후 누군가가 고의로 디딤돌로 묻은 것으로 보이며 역사적 가치가 있을 것 같아 마당 귀퉁이에 옮겨 세웠놨다"고 말했다.

10여년 전 이 집 인근인 죽향초등학교 교정에서는 일제가 학생들에게 충성을 강요하기 위해 세운 ‘황국신민서사비’ 잔해가 발견됐다.<연합뉴스, 07.06.07>

 

 

일본
천황 사망 추모비 발견

구읍
춘추민속관에서, 추모비는 전국 유일

우리
고장에  일본 천황의 사망을 추모하는
비가 발견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구읍 춘추민속관
한쪽 구석에 있는  이 기념비는  대략
폭 27㎝, 높이 170㎝ , 너비 23㎝에 이르고
앞면에는 ‘명치천황어일주년제기념비(明治天皇御一週年祭紀念碑)’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으며뒷면에는 ‘대정이년칠월삼십일(大正二年七月三十日)’이라는
날짜가 뚜렷이 남아있다.

명치천황은
 일본의  제122대 왕으로  1867년
16세의  나이에 즉위하여 이듬해 9월
연호를
‘메이지(明治)’로 고치고 일본의
근대화를 이끌고 제국주의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한 왕으로  일본인들의  존경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1876년 강화도조약,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경술국치 등 침략의 원흉으로
꼽히는 인물.

대정
2년은  1913년으로,  명치천황이 사망한 1912년
7월 30일로부터 정확히 1주년이 되는 날이다.
즉, 이 비는 명치천황이  사망한 1주년을 추모하는
 기념비로 세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은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일본 천황의 사망 1주년을 추모하는 비석은
발견된 적이 없다”며 “친일잔재 유산으로
보존하고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단양군 단성면과 영춘면의  일본천황등극기념림비(1915),
황색연초도입25주년기념비

(1936)등 일제 강점기
때 세워진 많은 비들이 있지만  천황 사망 1주기를
추모하는 비석은유일하다는 이야기다.  이에
따라 민족문제연구소는  현재 건립을 진행 중인
‘일제 강점기민중생활역사관’에 기념비를
 이전, 전시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 비는 춘추민속관에 소재해 있는 만큼 집주인인
정태희(춘추민속관 대표)씨의 동의가 필요하다.

정씨는
“다른  곳으로 옮기기 보다 현재 위치한 곳에
표지석이나 안내문을 세우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지역에서 발견된  역사
유물인 만큼 우선적으로 지역민들을 위한 자료로
활용하자는 의견이다. 군 문화홍보과 박희태
과장은 “역사적, 교육적 사료로서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우선,
도 학예연구관에 의뢰해 조사를 한 뒤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정식 절차를 밟아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우리 고장에서는 이번에  발견된 ‘명치천황어일주년제기념비’
외에 1993년 죽향초 황국신민서사비,  1995년
동이초등학교  졸업생들이 문제를 제기해 안내면
장계리 향토전시관으로 옮긴 황국신민서사비와
2005년 논란을  일으켰던 죽향초등학교의  `구스노키
마사시게’  무사상 좌대  등 몇몇 친일 유적들이
발견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적들에
대한 역사교육자료 활용 등 체계적인 관리는
미흡한 실정이다.

이와
관련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방 사무국장은 “이번에발견된
 기념비는 쭉 그곳에  있었다”며 “옥천군에서는
자료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을 정도로 보존,
관리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기념비가 발견된 춘추민속관은 1856년에 건축된
고택으로, 일제 강점기 때 군내 제1의 지주이자
 국유지조합장,  관선도평의원 등을  지낸 오윤묵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의 소유주인
정태희가  2005년 5월 집을 인수 할 당시 기념비는
 ‘명치천황어일주년제기념비’라는 글귀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깊이로 파묻혀 있었다.
정씨는 “해방 이후 누군가땅에 묻어둔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고 말했다.<옥천신문,
07.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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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천황 사망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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