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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대 친일파 상속토지 발견
내일신문 김은광 기자 이완용 민영휘 등 친일파들이 민족을 배신한 대가로 막대한 토지를 획득했고, 해방 60년이 지났지만 그토지의 상당부분을 후손들이 현재도 소유하고 있음이 확인됐다.‘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위원장 김창국·조사위원회)’는 민영휘 송병준 이완용 권중현 이근택 고영희 이지용 조중응 등 대표적 친일파 10여명의 가계도를 그려 후손들의 토지소유현황을 파악한 결과 공시지가 100억원 가량의 상속받은 땅을 찾아냈다.관련법에 따르면 상속 토지가 친일의 대가로 얻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현 소유자가 입증해야 한다. 입증을 하지 못하면 국고에 귀속된다.지난 8월 18일 출범한 조사위원회는 조사대상 친일파 400여명 중에서 1차로 을사오적 정미칠적에 대해 행정전산망 확인과 족보·호적 대조작업을 통해 이같은 성과를 거뒀다고 7일 밝혔다.조사위원회 관계자는 “행정전산망을 이용해 작업을 하지만 당시 친일파들이 주민등록번호가 없기 때문에 족보나 제적·호적 등을 일일이 대조한 뒤 확인할 수 있었다”며 “국고 귀속 대상에 오른 친일 재산이 상당한 것으로 확인돼 환수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조상 땅 찾아주오” 신청했다 송병준 후손 ‘딱 걸렸네’(한겨레신문, 06.10.19)김갑순 후손 60억 ‘친일땅’ 또 찾았다(경향신문, 05.09.14)친일파 김갑순 후손, 행정도시 주변 ‘조상땅’ 되찾아(오마이뉴스, 05.09.14)친일파 손녀 ‘돈벼락’(서울신문, 05.09.15)친일파 갑부 김갑순 후손, 또 수십억대 땅 찾았다(한겨레신문, 05.09.14)친일파 김갑순 손녀 수십억대 횡재(한국일보, 05.09.14)‘조상땅찾기’로 6200평 횡재 주인공은 공주갑부 김갑순 후손(쿠키뉴스, 05.09.15)‘조상땅 대박’은 김갑순 후손(‘조선’, 05.09.14)[휴지통]김갑순 후손 조상땅찾기로 수십억 챙겨(‘동아’, 05.09.15) 조사위원회는 오는 17일 열리는 제7차 전원위원회에서 ‘친일
친일재산 몰수, 위헌?…8일 공개변론
친일재산 몰수, 위헌?…8일 공개변론(뉴시스, 10.04.03)
친일 환수재산 기금 1,725억원 규모
친일 환수재산 기금 1,725억원 규모(한국일보, 10.03.21)
일부 보수단체 상대 명예훼손 소송에서 우리 연구소 승소
연합뉴스 김태종 기자 (서울=연합뉴스) 김태종 기자 =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편찬은 `이적행위’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이적행위로 본 보수시민단체는 민족문제연구소와 사전 편찬자들이 입은 명예훼손을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한창호 부장판사)는 7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임준열 소장, 윤경로 사전 편찬위원장 등이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 등 보수시민ㆍ언론단체 대표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들은 연대해 원고들에게 6천5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민문연 해체시키지 못하면 대한민국이 해체된다”(연구소, 06.03.31)박정희지지자 단체 소속원 몰려와 연구소 현판 떼어내(연구소, 05.10.28) 재판부는 “남북이 대치하고 국가보안법이 시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색깔론을 들어 특정 단체를 이적단체로 지목하고 공격하는 경우 그 단체는 반사회세력으로 몰려 사회적 명성ㆍ평판이 크게 훼손된다. 피고들이 `원고 법인이 이적단체고 친일청산작업은 이적행위’라는 사실을 적시함으로써 원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원고들이 민족을 우선시하는 통일을 지향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친일파 청산을 하지 못한 인물로 판단해 친일명단에 포함시키는 등 `친일인사 명단’을 작성한 것은 통일관과 좌우 이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하다. 이 사실만으로 원고 법인이 친북단체라거나 친일인명사전 편찬작업을 이적행위라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보수를 표방하고 있는 단체의 대표자인 피고들의 입장에서 원고들이 행한 친일인명사전 편찬작업의 문제점과 원고들의 통일관 내지 사상성향 등에 대한 비판과 분석 기사를 게재한 것은 분단현실에 비춰볼 때 일반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며
제2회 임종국상 시상식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 보도자료내려받기 굴욕적인 한일협정 체결 이후 민족의 자성을 촉구하고자 친일문제 연구에 일생을 바쳤던 고 임종국 선생(1929∼1989)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임종국상’제2회 시상식이 11월 9일(목) 오후 7시, 한국언론재단 20층 프레스클럽에서 열린다.임종국상은 ‘친일청산’, ‘역사정의 실현’, ‘민족사 정립’이라는 선생의 높은 뜻과 정신을 계승하는 개인과단체를 학술· 언론· 사회 등 세 부문에서 선정해 수여한다.제2회 수상자 심사에는 심사위원장인 이이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을 비롯,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소설가 조정래 선생, 언론인 주섭일 선생, 함세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이참여했다.심사위원회는 부문별 3~4배수로 추천된 후보자들에 대한 열띤 토론을 거쳐 지난 1일 수상자를 최종 결정했는데, 학술부문 허수열(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언론부문 이은희(Q채널/History채널 사업부장겸 편성팀장), 사회부문 최용규(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등 3인이다. 관련기사 ‘임종국상’ 학술-허수열, 언론-이은희, 사회 최용규(미디어오늘, 06.11.10)최용규 의원 등 ‘제2회 임종국 상’ 수상(내일신문, 06.11.08) 학술부문의 허수열 교수는 『개발 없는 개발-일제하, 조선 경제개발의 현상과 본질』(2005)을 통해 종래 일제강점기 경제사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이른바 ‘수탈론’과 ‘개발론’의 평행적 대립을 극복하고, ‘개발 없는 개발’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일제 식민지배의 실상을 해명했다. 그는 당시의 농업개발, 공업개발, 조선인 인적자본의 형성 등을 통계로 분석해 일제의 조선개발은 일본인들에 의한 일본인들을 위한 개발이었을 뿐, 조선인들에게는 수혜가 돌아가지 않았음을 실증적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해방 후 남겨진 식민지기 성장의 유산이란 것도 매우 제한적인 것이었으며, 이마저도 분단과 한국전쟁을 통해 거의 소멸됨으로써 오늘날의 한국
친일파 청산 없이는 대한민국 역사는 단 한걸음도 진보할 수 없다
<나정영 칼럼>친일파 청산 없이는 대한민국 역사는 단 한걸음도 진보할 수 없다(시사서울, 10.03.26)
친일파 고(故) 김백일 장군 동상 건립 논란
친일파 고(故) 김백일 장군 동상 건립 논란(강원일보, 10.04.02)
400년을 이어온 의병의 맥을 기리다
오마이뉴스 박도 기자 ▲ 녹천 고광순 의병대장 순국 100주년 추모대제 ⓒ 박도 의병 집안에 의병이 나다 ▲ 녹천 고광순 의병대장 ⓒ 녹천기념사업회 1392년 건국한 조선왕조는 200년간 태평성대를 누렸다. 꼭 200년이 지난 1592년 임진년, 왜적들이 조총을 들고서 평화로운 조선을 침략했다. 뜻밖에 국난을 당한 나라는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관군도 수령도 우왕좌왕 도적의 무리를 당하지 못하고 몸을 숨기기에 바빴다. 임금마저도 초라한 행차로 쫓겨다녔다. “… 경명은 보잘것없는 선비다. 다만 충성만을 생각하고 힘이 없음을 생각지 않는다. 국가존망의 위기에 어찌 감히 제 몸을 아낄 수 있으랴. 의(義)로써 마땅히 나라를 위하여 죽어야 한다.”담양에서 창의(倡義, 국난에 나라를 위하여 의병을 일으킴)한 고경명은 6천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금산에 침입한 왜군과 싸우다가 그의 두 아들 종후, 인후와 함께 장렬히 전사하였다. 임진 국난에 나라를 구한 충의(忠義)의 귀감이었다.어리석은 나라와 백성들은 똑같은 역사를 되풀이한다. 300년이 지난 1890년대에 와서 원수 왜적이 다시 대포를 앞세우고 우리나라를 침략하였다. 고경명(高敬命), 종후(從厚) 인후(因厚) 삼부자의 후손으로 인후의 사손(祀孫, 제사를 받드는 후손) 고광순(高光洵)이 60세 노구임에도 오로지 충의의 신념으로 담양 창평에서 창의하여 10여 년간 왜군과 혈전을 벌이다가 1907년 9월 11일(양 10월 17일)에 그와 함께 처음부터 싸워온 고제량 등 10여 선두 지휘자들이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 서편에서 왜군의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하였다. 조선 강점을 앞두고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학생독립운동기념일’ 첫 기념식-연합뉴스(06.11.03)
‘학생독립운동기념일’ 첫 기념식 (서울=연합뉴스) 이성한 기자 = ‘학생의 날’에서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승격된 11월 3일을 맞아 국가 차원의 기념식이 처음 열렸다.교육인적자원부는 3일 오전 서울 이화여자고등학교 유관순기념관에서 김신일 교육부총리와 학생독립운동 유관단체, 학생 등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학생독립운동기념일’ 제정을 기리는 기념식을 열었다.1929년 11월3일 광주에서 메이지(明治) 일왕의 생일인 ‘명치절’ 축하행사에 강제 동원된 학생들은 일본의 폭압적인 식민통치에 반발해 거리 곳곳에서 ‘조선독립만세’ 운동을 벌였고 정부는 1953년 이 날을 `학생의 날’로 제정했다.학생의 날은 1973년 폐지됐다가 1984년 부활됐으나 기념식은 광주에서 소규모로 개최돼왔다.김 부총리는 기념사에서 학생들에게 “선열들이 초석을 다져놓은 민주화의 꽃을 활짝 피울 수 있도록 힘쓰고 우리나라가 선진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도록 역량을 길러야 한다”고 당부했다.이날 각 시ㆍ도 교육청도 별도의 기념행사를 열었으며 각급 학교에서는 학생독립운동을 소개하는 계기교육을 실시했다.
[사설]일본의 독도 도발 우리의 대응책은
[사설]일본의 독도 도발 우리의 대응책은(뉴스천지, 10.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