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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에서]“독도 지키고 싶다면 논리를 세계 알려라”
[캠퍼스에서]“독도 지키고 싶다면 논리를 세계 알려라”(아시아경제, 09.10.06)
아물지 않은 ‘전쟁 상처’ 증언… 가해·피해 ‘역사 화해’ 나선다-경향신문(07.09.10)
아물지 않은 ‘전쟁 상처’ 증언… 가해·피해 ‘역사 화해’ 나선다 일본 관동군 출신인 이케다 고이치(85)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 중이다. 그는 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 러시아와의 전선에 투입됐다가 종전 후에도 귀국하지 못하고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강제노역을 했던 60만 일본군 전쟁 포로들 중 한 명이다.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모르는 전쟁 통에 ‘젊음’을 그렇게 흘려보낸 뒤 1948년 9월 조국에 돌아왔지만 패전국 일본에서 그는 ‘영웅’이 아니었다. 러시아 정부는 물론이고, 그가 사랑했던 조국마저 그를 외면하는데 대해 그저 망연할 뿐이었다.그는 “추운 시베리아에서 겪었던 고통보다 조국의 차가운 태도에 화가 나고 가슴이 더 아팠다”고 한다. 그는 “책임과 용서는 둘 중 하나라도 빠지면 의미가 없다. 일본 정부와 군수기업들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진다면 나는 그들을 용서하겠다”는 생각으로 1999년 일본 정부와 군수기업을 상대로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전쟁으로 인해 치러야 했던 노역과 피, 땀, 눈물을 보상해 달라”는 것이었다. 소송은 기각당했다.한국인의 입장에서 이케다는 침략국 일본의 가해자 중의 한 명이지만, 그 역시 일본 군국주의 안에서 희생된 피해자이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한국에 와서 자신의 체험을 증언한다. 서울에서 열리는 ‘제1회 세계 역사NGO대회’의 일환으로 마련된 ‘가해와 피해-피해자 증언대회’에서다. 15일 서울 정동 사랑의열매 회관에서 열리는 증언대회에는 이케다 외에도 강제징용돼 B·C급 전범이 된 조선인들 모임인 동진회 대표 이학래씨(82)와 한국인 원폭피해자협회 대표 곽귀훈씨(83)도 자신들의 전쟁 체험을 증언한다. 양미강 대회 운영위원장은 “피해자들의
국가기록원, 훼손된 국가 중요기록물 6천매 복원-헤럴드경제(07.09.10)
국가기록원, 훼손된 국가 중요기록물 6천매 복원 국가기록원은 지난 2004년부터 훼손된 국가 중요기록물 복원 작업을 실시한 결과 8월말(3년 8개월)까지 근대 건축설계도ㆍ토지조사부ㆍ형사판결문ㆍ일제강제연행자명부 등 국가 중요 기록물 총 66,347매를 복원했다고 10일 밝혔다.특히 국가기록원은 근대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서대문 형무소ㆍ대한의원(현 서울대학교병원 부설연구소)ㆍ서울시청사 등 현재 보유하고 있는 근대 건축물 설계도면 26,232매 중 75%(19,733매)를 복원 처리함으로써 향후 마이크로필름 촬영ㆍ디지털화 등을 통해 일반 및 학술열람에 제공할 방침이다.근대 건축설계 도면의 사료적 가치는 그당시 공사 과정과 재료 및 기술의 실제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건축 및 문화, 생활사적 측면에서 사료적 가치를 높이 평가 받고 있다.한국예술종합학교 우동선 건축과 교수는 “이번 복원기록물은 멸실된 건축물에 관한 도면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도면의 보존ㆍ복원처리 작업은 건축사 연구의 대상을 더욱 넓히고 연구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실제로 토지조사부의 경우 현재 토지소유권과 같은 재산관계 증빙자료로 열람 요청이 많은 기록물 가운데 하나다.또한 형사판결문(33권, 15,015매), 수형인명부, 제소자신분카드 등 독립운동 관련 기록물도 복원된 기록물을 바탕으로 숨겨져 있던 독립운동가 발굴하는 중요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고 있다.특히 일제 말기 강제로 연행된 한국인들이 등재되어 있는 일제강제연행자명부(544권 48만명)는 복원을 통해 일제강제징용진상규명위원회가 일제강점하의 피해자 진상 규명 등 진실을 밝히는데 실질적인 근거자료로 활용하고 있다.국가기록원은 앞으로도 기록물 보존ㆍ복원처리 전문기관으로서 훼손되어 멸실의 위기에 처한 국가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중요기록물에 대해 지속적인 수선ㆍ복원 작업을 실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안중근 이야기 뮤지컬 ‘영웅’, 관객들 기대감 고조
안중근 이야기 뮤지컬 ‘영웅’, 관객들 기대감 고조(노컷뉴스, 09.10.04)
남산, 제국주의 통치 타운이 되다
제국주의 통치 타운이 되다 [2009.10.09 제780호] [기획연재- 돌아온 산, 남산]1부 2회 일제시대 남산 ①… 통감부·헌병대사령부 등 탄압기구와 조선신궁·신사 입주한 식민지배 상징으로 탈바꿈 조선의 500년 도읍 한양의 남쪽 수호산인 남산이 왜색으로 오염되기 시작한 것은 1880년대 중반부터다. 임오군란(1882)과 갑신정변(1884)으로 정국이 요동친 뒤 1885년 지금의 예장동(藝場洞) 일대에 일본인 거류지가 형성됐다. 본디 남산 주자동 막바지에 있던 평평한 넓은 잔디밭은 영문(營門) 군졸들이 기예를 연마하던 곳이었고, 단오절이 되면 청소년패가 씨름을 겨누던 곳이다. 그러기에 예장(藝場)이었다. ≫ 1929년 조선총독부는 서울 경복궁 안마당에서 조선박람회를 개최해 조선왕조를 우롱하며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당시 조선 8도에서 모여든 박람회 관광객에게 개화한 경성의 근대상을 보여주며 자연스레 자신들의 지배를 합리화한 것이다. 박람회 당시 제작된 일종의 관광 가이드인 이 지도에는 행사가 열린 경복궁 일대와 남산의 조선신궁은 강조돼 자세히 그려진 반면,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목숨을 잃은 서대문형무소는 나와 있지조차 않다. 사진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군대 머물던 터 다시 찾은 일본 그런데 임진왜란 중에 일본군 부대가 지금 조선호텔 자리인 남별궁에 지원부를 마련하고, 예장동에 일본군 1500여 명이 진을 치고 왜성을 쌓아 1년간 이곳에 주둔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이곳을 ‘왜장터’로 불렀다. 그로부터 300년이 지난 뒤 제국주의 침략자로 들어온 일본인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정한론의 선구자로 기리며 이곳을 자신들의 성역처럼 여겨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남산
제주평화박물관·일 마쓰시로대본영 교류 협력-제주일보(07.09.07)
제주평화박물관·일 마쓰시로대본영 교류 협력 제주평화박물관과 일제 침략전쟁의 상징인 일본 나가노현 마쓰시로대본영 지하호가 한일 평화를 위한 교류와 협력에 나선다.제주평화박물관은 일본 나가노 ‘마쓰시로대본영의 보존을 추진하는 모임’과 함께 내년 5월께 일본 침략전쟁의 상징인 마쓰시로대본영의 공사에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에 관한 전시회와 평화 테마 음악회를 제주에서 개최한다고 6일 밝혔다.또 매년 여가기행을 테마로 실시되고 있는 나가노시 중·고교 수학여행단의 목적지를 제주로 유치하는데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이번 평화박물관과 마쓰시로대본영 지하호 보존회의 협력은 일제 침략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는 제주평화박물관과 마쓰시로대본영 지하호의 교류를 통해 한일 평화와 공존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마쓰시로대본영 지하호는 2차대전 말기 일본 군부가 본토결전의 최후 거점으로 극비리에 왕족의 주거지와 전쟁사령부인 대본영, 정부 각 성·청 등을 이전한다는 계획 아래 만든 것으로 하루 6000∼7000명의 강제징용된 조선인 노동자가 공사에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이영근 제주평화박물관 관장과 홍명표 제주특별자치도관광협회 회장 등은 지난달 31일부터 4일까지 4박5일간의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해 교류협력 행사를 이끌어냈다.이영근 제주평화박물관 관장은 “한일교류 행사를 통해 전쟁의 비참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한편 양국 후손들에게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회]조선인 피폭자 죽어서도 ‘푸대접’-뉴스메이커(07.09.11)
[사회]조선인 피폭자 죽어서도 ‘푸대접’ 대구 KYC, 나가사키 역사의 현장을 가다…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성찰하고 있는가?” 배에서 바라본 군칸지마.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합천에는 한국에서 유일한 ‘원폭 피해자 복지관’이 있다.그곳에 거주하는 80여 분의 원폭 피해자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자가 되고, 말벗이 되는 것을 시작으로, 그분들이 자신의 생애를 구술로 증언한 것을 기록하여 핵무기의 참상과 원폭 피해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대구 KYC 평화 길라잡이들이 나가사키로 ‘평화 기행’을 떠났다. 강제징용 생지옥 하시마 탄광 한수산의 소설 ‘까마귀’의 무대인 하시마 탄광,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나가사키 항에서 배를 타고 30분 후 강제 연행과 노동으로 잘 알려진 미쓰비시조선의 본거지인 타카즈마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다시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배를 빌려서 군칸지마로 향했다. 군칸지마에 자리 잡은 하시마 탄광은 석탄의 내장량이 많고 질이 좋아 군수물자의 중요 공급원으로 조선인과 중국인 징용자들을 작업에 동원했고 피폭 당시 엄청난 피해를 받은 곳이라고 한다.이곳을 안내하는 시바토 토시야키씨(자원봉사자)는 “쿤칸지마는 살아 있는 지옥이다. 조선사람, 중국사람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 일본사람 중에도 돈 없고, 못 배운 사람들이 생계의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하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시바토씨의 아버지도 이곳 출신으로 일본이 쿤칸지마의 아픔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은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진정한 의미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피폭 후 하시마 탄광에서 살아나온 이들이 없었고, 전쟁이 끝나고 탄광을 폐쇄할 때 관련 기록들을 모두 소각했다고
– 일본인에게 사랑받는 얼굴이 된 미륵상 –
일본 국보 1호 광륭사 목조미륵보살반가상 성형수술하다(2편) 이윤옥·김영조 “(광륭사 미륵상)의 얼굴 부분에 손대기 전 형(型)을 떠놓은 것이 도쿄예술대학에 보존되어 있다. 이것을 보면 현재의 얼굴과 다르며 한국국립박물관 불상(한국 국보 제83호) 얼굴과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즉, 조선풍이었던 얼굴을 명치 수리 시에 일본풍의 얼굴 다시 말해 일본인이 좋아하는 얼굴로 고쳐 놓아 버린 것이다.” “像の頭部を型をとったものが東京の芸大に保存されている。これをみると現在の像の顔と異なっており、韓立博物館の像の顔に近い容相を示しているのである。つまり 朝鮮風であった顔を明治の修理のさい、日本風の顔、さらにいえば日本人好みの顔になおしてしまった。『아스카불에 보는 일본과 조선』116-117쪽일본 국보 제1호 목조미륵보살반가상(이하, 미륵상)의 얼굴이 수리되었으며 그것도 수리 전과 수리 후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는 말을 한 사람은 일본 미술사학자 나가이 신이치 교수이다.고대 조선인이 만든 일본 국보 제1호 미륵상은 오래전부터 여러 논쟁 속에 휘말려 왔다. 『일본서기』등 역사적 문헌은 “신라에서 보내온 것”이라고 하여 이 불상이 신라인의 작품임을 증언하고 있지만 이를 두고 일본 쪽 학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변명을 계속 하면서 이 미륵상은 고대조선인이 만든 것이 아님을 필사적으로 연구해 왔다. 그간 일본 학자들이 논란을 벌여 온 것을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다.(1) 누가 만들었나? 조선인이냐? 일본인이냐?(2) 재질이 무엇이냐? 적송(아까마츠)이냐? 녹나무(구스노키)냐?그럼 먼저 불상 제작자에 대한 논쟁을 살펴보자. (1) 누가 만들었나? 조선인이냐? 일본인이냐? 이 미륵상은 일본서기에 신라에서 보내온 것이라고 했으므로 한국산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일본 학자들의 논쟁은 무의미하다. 다만, 만든 나라가 신라냐 백제냐에는 이견이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홍윤기 교수의 『홍윤기의 역사기행<79> 교토 고류지』글을 인용해서 정리해본다.교토대학 사학과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교수는 “현존하는
‘부민관의거’ 주역 강윤국 선생 별세
민족문제연구소 ▲ 왼쪽부터 강윤국, 조문기, 유만수 선생(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자료) ‘부민관의거’ 주역이셨던 독립운동가 강윤국(康潤國 본명 강백) 선생이 3일 오전 8시 30분 향년 8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발인은 5일 서울보훈병원, 장지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4묘역이다.일제 패망 직전인 1945년 7월 24일 오후 7시 경성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건물)에서 일본 중의원까지 지낸 친일 거두 박춘금이 조직한 대의당(大義黨) 주최로 ‘아세아민족분격대회(亞細亞民族憤激大會)’라는 대규모 친일 어용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는 조선총독, 정무총감, 조선군사령관을 비롯해 이성근, 김동환, 김은연, 고원훈, 손영목 등 당시 대표적 친일파들과 만주 중국에서 온 대표들도 참가했다.그러나 국내 비밀 독립운동결사체인 대한애국청년단의 유만수 조문기 강윤국 선생 등은 대회장에 다이너마이트 2개를 설치, 폭파시킴으로써 대회를 무산시켰다. ‘부민관의거’로 불리는 이 날의 거사는 경성 한복판에서 침략원흉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며 의혈투쟁의 대미를 장식한 쾌거로 평가받고 있다. 강윤국 선생의 명복을 빌며, 부민관의거 당시를 회고한 조문기 선생의 회고록『슬픈 조국의 노래』일부를 발췌한다. 친일 반역자의 거동을 살피던 5월의 어느 날, 나는 애청(대한애국청년단의 줄임말)의 긴급회의 소집 전보를 받았다. 전보를 불태우고 서울로 출발했다. 유만수의 집에는 주요 동지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유만수는 내가 들어서자 문을 굳게 닫고 중요한 보고를 했다. “드디어 박춘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명월관에서 대의당을 결성한다고 한다.” 핵심 인원은 박춘금 외 이성근, 김동환, 김은연, 고원훈, 손영목 등 당시 1급 친일반역자들이었다. (중간 줄임)그러나 박춘금은 당 결성으로만 끝나지 않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그들이
-연합뉴스(07.09.05)
<한-일 모두에 짐이 된 비극의 현대사> 극단 물리 신작 ‘짐’ 극단 물리 ‘짐’(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일제 강점기는 피해자인 한국과 가해자 일본 모두에 상처가 됐다. 한국에는 씻을 수 없는 고통과 한(恨)을 줬다는 점에서, 가해자 일본에는 영혼을 갉아먹는 죄책감이라는 트라우마를 남겼다는 점에서 그러하다.20-26일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되는 극단 물리의 신작 ‘짐'(정복근 작ㆍ한태숙 연출)은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을 소재로 한국과 일본 양쪽 모두에 짐이 된 양국 현대사를 조명하는 연극.일본 군함 우키시마호는 2차대전 종전 직후인 1945년 8월24일 일제에 강제 징용됐던 조선인 노무자와 가족들을 태우고 부산항으로 향하던 중 갑자기 폭음과 함께 두 동강이 나면서 침몰해 수천여명이 목숨을 잃었다.40대의 정치인 김윤식이 어느 날 낯선 일본 여인으로부터 아주 오래된 짐보따리를 편지와 함께 전해받는 것으로 연극은 시작한다. 발신자는 요시코라는 일본 여인.당신의 물건이 틀림없으니 소포를 받으라는 요시코와 자신의 물건이 아니니 받지 않겠다는 김윤식은 옥신각신하며 서로에게 짐을 떠넘긴다.정체불명의 짐을 받느냐 마느냐를 두고 계속 공방전을 벌이던 두 사람은 차츰 낡은 짐보따리에 얽힌 과거의 유령들과 마주친다.문제의 짐과 하등 연관이 없음을 주장하며 수령을 거부하던 김윤식은 어느날 그 짐의 주인일 지도 모를 자신의 고모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두 사람이 사생결단이라도 하듯 짐보따리를 밀어내는 까닭은 짐이 비단 물리적인 것만은 아니기 때문. 낡은 짐보따리는 죄책감, 책임감 등을 상징하기에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짐을 떠넘기려는 행위는 비단 김윤식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