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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아물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의 상처

2009년 10월 1일 663

아물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의 상처(연합뉴스, 09.09.24)

민족일보 조용수 선생 묘소 참배 안내

2007년 9월 6일 957

    민족문제연구소   ▲ 고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경기 동부지부(지부장 김하욱)는 추석 명절을 맞아 오는 9일 민족일보 사건으로 박정희 정권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한 후 현재 남한산성 안에 모셔져 있는  고 조용수 선생의 묘소를 찾아 참배할 예정이다. (아래 참조)   <아래> – 때 : 9월 9일(일) 낮 12시– 모이는 곳 : 경기 광주시 중부면 검복리 94-1 개미촌  식당 앞(남한산성 내 검복리 주차장 부근)– 문의 : 김하욱 지부장 017-395-0965– 회비 : 1만원– 벌초, 참배 후 점심 식사 예정   조용수 선생은 1961년 2월 13일 평화적 통일과  부정부패 고발, 노동대중의 권익 옹호 등을 목표로 창간된 민족일보의 사장이었다.  민족일보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분출하던 평화통일과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욕구에  부응하며 급성장해  가판 순위 1위를 기록하기도 했으나 창간 3개월 만인 5월 19일 박정희 군사반란 정부에 의해 강제 폐간당하고 만다.     관련기사 사법부, 정의의 보루로서 진실 밝히라(한겨레신문, 06.12.03)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45주기 추모식 열려(한겨레신문, 06.12.17)     이후 박정희 군사정권의 충실한 하수인 역할을 자처했던 ‘혁명검찰부’는 7월 23일 조용수 사장에 대해 간첩혐의를  적용해 기소하고 이어서 ‘혁명재판부’는 바로 그 해 12월 21일 일사천리로 사형을  집행해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민족일보 사건의  진실규명과 조용수 선생의 명예회복을  위해 평생을 바친 동생 조용준 선생은 법원에 이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하였고 법원은 46년 만인 지난

“비적은 항일군”…유치환 친일시 증거 찾아-오마이뉴스(07.09.05)

2007년 9월 6일 998

"비적은 항일군"…유치환 친일시 증거 찾아 일본 현지서 만주 항일군 토벌·효수 기록 등 발굴        ▲ 관동군 사령부에서 발행한 <비적정보월보 제4호> 지도 ⓒ 전갑생  관동군사령부  유치환의 시 ‘수(首)’에 나오는 ‘비적’을 놓고 몇 년째 친일시 논쟁이 거듭되고 있다. 또한 내년 유치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경남 통영시에서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뜻있는 사람들은 통영시가 친일작가 키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필자는 과연 그가 친일문인인지 아닌지, 다시금 ‘수’를 통해 따져보고자 한다. 일제시대 ‘비적’ 기록을 찾아서 일본을 가다  ▲ 유치환은 극작가인 형 유치진과 함께 친일문인으로 의심받고 있다.   필자는 2004년 10월 5일 <오마이뉴스>에 "유치환 시의 ‘비적’이 항일독립군 아니라고?"라는 글을 통하여 ‘비적’은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던 무장항일독립군(이하 항일군)이라고 역설하였다. 그 이후 통영시와 보수적인 문인단체인 문인협회 등에서는 ‘비적은 단순한 도둑떼일 뿐이다’라고 본질을 왜곡하였다.또한 유치환을 옹호하는 문인단체와 소속 일부 회원들이 ‘정말 가성네거리에 효수된 사람이 독립군인지 밝혀내라’고 역공을 펼쳤다. 비적이 항일군이 아니라는 증거를 내세우지도 못한 채 말이다.필자는 ‘비적’이 항일군임을 밝히고자 지난 7월 29일부터 8월 6일까지 일본의 방위성 방위연구소, 국립국회도서관, 외무성 외교사료관을 직접 방문하여 사료를 수집하였다. 그 결과는 고 임종국 선생이 주장한 내용과 다르지 않았고, 약 3년간 필자가 주장한 대로 ‘비적’이 항일군이었음이 뒷받침하는 근거들을 찾아냈다.  ▲ 항일군 장조인. 1940년 3월 1일 항일군 장조인이 하얼빈 부근에서 전투를 벌였다는

‘식민지 관계 청산은 왜 이루어…’

2009년 10월 1일 747

<신간> ‘식민지 관계 청산은 왜 이루어…’(연합뉴스, 09.09.30)

정대협, 日 하토야마 총리에 ‘위안부’ 문제해결 서한 전달

2009년 10월 1일 631

정대협, 日 하토야마 총리에 ‘위안부’ 문제해결 서한 전달(뉴시스, 09.09.30)

[야스쿠니 캠페인] 바자회를 즐기는 두 가지 방법

-0001년 11월 30일 837

    한겨레21 길윤형 기자   9월이 닥쳤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보자. 서우영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이번 야스쿠니신사 캠페인의 목적은 지난 2월27일 한국인 유족과 생존합사자 등 11명이 도쿄 지방재판소에 낸 야스쿠니신사 무단합사 철폐 요구 소송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송의 피고는 야스쿠니신사와 일본 정부로, 첫 재판 날짜는 9월7일로 정해졌다.  여러 번 되풀이된 얘기지만 태평양전쟁 피해자와 그 유족들이 일본 재판소에서 소송을 진행하려면 적잖은 돈이 든다. 3박4일 정도의 일정으로 일본에 가려면 비행기삯과 숙박비 등을 합쳐 지출되는 비용이 1인당 최소 100만원. 일행이 5명이라면 비용은 500만원으로 불어난다. 심리가 두 달에 한 번쯤 열리면 1년에 3천만원, 재판이 5년 정도 이어지면 모두 1억5천만원가량의 기금이 필요하다. 그동안 이 비용을 감당해온 것은 일본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재판지원회였다.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회장은 “이제 일본 지원단체들도 노령화됐다”며 “지금처럼 무작정 일본 사회에 기댈 순 없다”고 말했다.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서우영 실장은 “결국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작은 참여”라며 “9월15일 명동으로 나오면 ‘야스쿠니신사 무단합사 철폐소송 지원을 위한 바자회’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먼저, 바자회의 날짜는 9월15일 토요일, 장소는 서울 명동성당과 명동CGV 사이길의 중간쯤에 자리한 신한은행(옛 조흥은행) 사거리로 확정됐다. 바자회 참가는 당일 행사장 참가와 물품 기증을 통해 할 수 있다. 물품 접수는 9월7일까지 한다.  관련기사 전몰자묘원은 대안인가(한겨레21, 07.08.23)대학생 평화유람단의 일본 기행(한겨레21, 07.08.16)잃어버린 아버지의 주검과 혼백(한겨레21, 07.08.16)야스쿠니를 보는 제3의

재일위안부 고통의 기억, 법정투쟁 10년 다큐멘터리 영화 완성-도쿄신문(07.08.30)

-0001년 11월 30일 611

재일위안부 고통의 기억, 법정투쟁 10년 다큐멘터리 영화 완성 한일멤버에 의한 이색 다큐멘터리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가 올 여름 완성됐다. 1990년대 ‘재일한국인’으로서 단 한사람 ‘구일본군의 위안부였다’고 이름을 밝히고 10년에 걸쳐 국가배상재판에서 싸워온 송신도(85, 미야기현 거주)씨와 지원자들의 교류를 그렸다. 재판에서는 패소했지만 고통의 기억을 공개한 송씨의 말은 미래를 향하고 있다.송씨는 1923년 일본식민지하의 한국 충청도에서 태어났다. 16살 때 부모가 결정한 결혼으로부터 도망, “전장에서 국가를 위해 일하면 결혼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한국인에게 속아 구일본이 점령한 중국의 거리에 있는 위안소로 끌려갔다.일본의 위안부문제를 둘러싸고 한국인 피해자 김학순씨(고인)가 도쿄지법에 제소한 91년 일본의 지원단체가 개최한 전화상담에 송씨에 관한 익명정보가 전해졌다.‘재일위안부재판을 지지하는 모임’이 결성돼 93년 송씨는 일본정부를 상대로 제소. 10년간의 싸움은 2003년 최고재판소에서 패소가 확정됐지만 반세기나 가슴에 담아두었던 상념을 토해내고 자신의 체험을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송씨는 바뀌어 갔다.“일본인은 (일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국가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을 위해서다.” 송씨의 염원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전범기업, 광주서 나가라”

2009년 10월 1일 632

“전범기업, 광주서 나가라”(한겨레신문, 09.09.30)

태안3지구 개발 파경 주민대책위 ‘용주사 친일행각’ 폭로

2009년 10월 1일 611

태안3지구 개발 파경 주민대책위 ‘용주사 친일행각’ 폭로(아시아투데이, 09.09.28)

‘일본해’(동해) 호칭, 한국 연내 협의 타진-산케이신문(07.08.31)

-0001년 11월 30일 555

‘일본해’(동해) 호칭, 한국 연내 협의 타진 북한도 보조, 日정부 받아들일 생각 ‘일본해’ 호칭에 대해 한국이 ‘동해’와의 병기를 요구하고 있는 문제와 관련 한국정부가 외교당국자에 의한 협의를 일본정부에게 요구하고 있는 사실이 30일 밝혀졌다. 일본 정부는 응할 방침으로 연내개최를 시야에 두고 일정조정에 들어갔다. 연말에 대통령선거도 앞둔 한국은 10월에 7년만의 남북정상회담을 실시하는 등 북한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고 있어 일본해호칭문제에서 공동보조를 취하는 한국, 북한 양국이 향후 일본에 대한 압력을 강화시켜 나갈 가능성이 있다. 한일 양국은 한국이 유엔 지명표준화회의에서 이 문제를 제기한 2002년 이후 연1회의 페이스로 실무자협의를 실시해 왔다. 올해는 2월 해상보안청과 한국국립해양조사원에 의한 수로당국간협의가 실시됐다. 다만 협의에서는 “일본해의 명칭은 식민지시절에 강요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측에 대해 일본측은 식민지지배 이전인 19세기 초에는 歐美의 지도에서 ‘일본해’호칭이 정착돼 있었던 점이나 유엔 등에서 일본해의 호칭이 사용되고 있는 점을 들어 반론했다.한국측은 “일본이 협의에 비협력적”이라며 양국간 협의 그 자체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일본측의 반론에 효과적으로 재반론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이달 27일의 유엔지명표준화회의에서는 한국과 같이 북한도 일본은 “원래 ‘조선의 동해’였던 것을 식민지시절에 ‘일본해’로 바꾸었다”며 호칭의 정정을 요구했다. 한국과 북한이 협조해 일본과 대립하는 구도가 선명해졌다.이런 가운데 한국측은 일본해호칭문제를 둘러싼 남북연대를 ‘순풍’으로 삼아 연내 두 번째가 되는 협의개최를 요구해 온 것으로 보인다.일본 외무성관계자는 “올해는 이미 수로당국간협의를 실시해 외무성과 한국외교통상부에 의한 협의를 제안해 왔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