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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간]“결국 쫓겨나나” 우토로의 잠못드는 밤-한겨레신문(07.08.30)
[이순간]“결국 쫓겨나나” 우토로의 잠못드는 밤 강제징용촌 ‘우토로’ 내일 매매시한 일본 교토부 우지시 이세다초 우토로 51. 일제 때 군 비행장 건설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65가구 203명이 66년 동안 모여 살고 있다.이들 동포들이 차별과 가난 속에서 귀화를 거부하고 지켜온 ‘식민 역사의 상징’ 우토로 마을이 사라질 순간에 서 있다. 땅주인인 서일본식산이 정한 토지 매매 시한이 이제 하루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한국의 시민들이 힘을 합쳐 토지 매입 자금을 5억원 남짓을 모았지만, 토지 소유자가 요구하는 금액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향 경주를 떠나 이곳에서 살고있는 김순애(88) 할머니는 “땅주인이 강제로 나가라고 하면 나는 그냥 죽을 수밖에 없다. 이제 살면 몇 년을 살겠나? 아득하기만 하다”라고 한숨을 지었다.이 동네에서 제일 오래 살아온 문광자(87) 할머니는 “지난 20년 동안 강제퇴거 문제로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아왔다”고 회상하며 비행장 건설 때 동원돼 숨진 남편 리승길씨의 사진을 멍하니 바라봤다.
남북공동 안중근의거 100주년 모임 개성서 열려
남북공동 안중근의거 100주년 모임 개성서 열려(연합뉴스, 09.11.03)
김장훈.서경덕씨, 세계 언론에 동해홍보물 발송
김장훈.서경덕씨, 세계 언론에 동해홍보물 발송(연합뉴스, 09.11.04)
‘우토로 마을 살려주세요’ 프랑스인도 동참-머니투데이(07.08.29)
‘우토로 마을 살려주세요’ 프랑스인도 동참국내외 블로거들, 외국인 인터뷰 등 ‘우토로 운동’ 전개“바누아투에 살고 있는 찰스입니다. 우토로에 사는 한국인이 겪고 있는 고통에 가슴 아픕니다. 이들을 강제추방하는 것은 폭력적이고 충격적입니다. 한국정부가 그분들이 우토로에 정착할 수 있도록 강력하게 조치를 취했으면 좋겠습니다.”찰스는 남태평양 ‘바누아투’ 섬 프랑스학교 교사다. 같은 섬에 살고 있는 블로거 ‘블루팡고(Bluepang)’가 29일 그의 메시지를 동영상으로 한국의 누리꾼에게 전했다. ‘프랑스인이 우토로 마을분들에게 전하는 동참 메시지’란 제목 아래 ‘마을 철거 (결정) 3일 전’이란 부제가 붙었다.블로거들의 일본 우토로 마을 살리기 운동이 거세지고 있다. 이 운동은 몇몇 블로거가 다음블로그(blog.daum.net)에 ‘평화기념관 설립’ ‘역사테마파크 조성’ 등 아이디어를 내놓으면서 자발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해 전 세계의 한인들로 퍼지고 있다.외국인 인터뷰 시리즈를 기획한 ‘블루팡고’는 “제가 가만히 않아 성금도 내지 않으면서 입바른 소리만 해대는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바누아투의 프랑스인에 이어 호주인, 바누아투 현지인을 인터뷰해 우토로 주민들에게 희망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다.자신을 해외거주자라고 밝힌 블로거 ‘밀란’은 “다음캐시로 우토로 돕기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제안했다. 그는 “다음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적지만 돈(다음캐시)도 벌 수 있어 좋지만 한국에 자주 나갈 수 없는 해외거주자들은 사용이 어렵다”며 “우토로 같이 모금이 절실한 곳에 다음캐시를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했다.‘토토로의 숲’처럼 ‘우토로의 숲’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블로거 ‘그라시아/희영’은 “도쿄 인근 사야마 구릉지대의 360평 자투리땅인 일본 ‘토토로의 숲’은 1991년 수많은
[임춘웅 칼럼]아! ‘화려한 휴가’-내일신문(07.08.29)
[임춘웅 칼럼]아! ‘화려한 휴가’ 영화 ‘화려한 휴가’가 계속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영화가 개봉무렵부터 화제가 됐던 것은 광주민주항쟁 발생 4반세기만에 ‘광주’를 다룬 최초의 대중예술이란 점에서였다. ‘모래시계’등에서 한두 번 간접적으로 다룬 일은 있으나 ‘광주’를 정면으로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때문이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6·25전쟁 이후 가장 비극이라 할 광주민주항쟁이 그동안 한번도 대중예술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일이 없었다는 것 자체가 ‘광주’의 비극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폭동’이 ‘사태’로 ‘사태’가 다시 ‘민주항쟁’으로 바뀌었고 ‘망월동묘지’가 ‘국립묘지’로 승격됐음에도 ‘광주’는 여전히 ‘광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가해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전히 잘살고 있는데 피해자들은 아직도 ‘광주’를 말하는데 주저주저하고 있다. 하나의 진실을 정반대로 봐 둘째로는 이 영화가 예상을 깨고 공전의 히트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휴가’는 개봉 5주째인 23일 현재 625만을 끌어모으는 근래 보기드문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이래 역사물로서는 최대의 관객동원 기록을 세우고 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관객수 1000만을 돌파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특이한 점은 광주민주항쟁을 아는 40대 이상의 장·노년층 뿐 아니라 20대의 젊은 세대도 많이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셋째로는 이 영화가 보는 사람에 따라 평가의 시각이 정반대여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의 영화를 두고 지역따라 이념따라 개인 성향따라 확연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광주’보다 더 비극적인 현실인지도 모른다.“인간은 대부분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만 보려고 한다”는 말이 있다. 하나의 ‘광주’를 두고도
일제강점기 宮의 굴욕
일제강점기 宮의 굴욕(서울신문, 09.11.04)
日징용피해자 ‘미불임금’ 국내서도 패소
日징용피해자 ‘미불임금’ 국내서도 패소(연합뉴스, 09.11.04)
[유성문의 길]나눔의 집과 수요집회-뉴스메이커(07.08.28)
[유성문의 길]나눔의 집과 수요집회 우산을잃어버리다 강일출 할머니는 1943년 가을에 동원되어, 1944년 정초 목단강위안소에 도착, 이후 1945년 해방되기 얼마 전 탈출할 때까지 위안부로 생활했다.할머니는 1928년 10월 26일 경북 상주군 화동면 의산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아이를 모두 열둘을 낳았는데 일출은 그중 막내다. 일출이 태어났을 때 이미 위의 다섯 형제가 죽어 일곱이 남았다. 일출이 막내니 부모는 이미 많이 늙었고 농사를 지었다.…그때 방으로 데리고 갔어. 그러다가 뭐 첨에 가고 거석하니까니, 나는 그때 그거 여자들보다 나이가 어리고 작고 하니까니 애기 같지. 젖도 송긋 안 일어났으니까니. 그것도 안 왔어요. 여자들 오는 것도.…하고 나서 그 담에는 또 거석하니까니 피도 나고 이러니까니 약이랑 넣어야 되잖아요. 그러니 딴 방에다 옮겼어요. 그래 가지고 그때는 나이도 어리고 쪼그만 하니까, 자꾸 바꿔서 부르니까, 그러고 나서 내가 그렇게 막 오줌 싸면 막 피가 나오고 이러니까, 그것들이 그 담에는 딴 방으로 날 옮겨주데요. 그래 가지고 병원에 가서 약도 넣고 했어요. 그 쪼그만한 걸. 그래 그렇게 해가지고, 또 내가 좀 있다가 내가 좀 앓았어. 막 그러니까, 요 아래가 헐고 하니까 또 열이 나요. 열이 나다 또 나쁜 병이 또 왔지. 그래 엎친 데다 뭐 덮치게 됐지.여름이 되자 군인들은 일출의 병이 다른 사람들에게 옮는다고 차에 태워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도착해보니 산기슭에 장작을 쌓아놓았다.“불을 놓고 기름을 붓고 사람을
“벽골제는 방조제” 조정래 소설 근거 비판한 이영훈 교수 새 주장-‘중앙'(07.08.30)
“벽골제는 방조제” 조정래 소설 근거 비판한 이영훈 교수 새 주장이영훈(55·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소설가 조정래(64)씨의 역사소설 『아리랑』(전12권)의 역사적 근거를 재차 비판하며 새로운 주장을 내놨다.삼국시대에 조성된 국내 최대 규모의 저수지로 알려져 있는 벽골제가 사실은 바닷물의 침입을 막는 방조제(防潮堤)라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이같은 새로운 학설을 뉴라이트재단 기관지 ‘시대정신’ 가을호에 발표했다.이 주장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이 교수와 조 작가와의 논란 때문이다. 이 교수는 ‘시대정신’여름호에서 “『아리랑』의 주무대인 김제평야가 소설에서처럼 원래부터 비옥한 땅이 아니라 황무지였으며, 곡창지대로 변한 것은 일제 식민지기에 개발된 수리사업 때문이었다”는 주장을 했었다. 이에 대해 조씨는 대학 강연 등을 통해 “백제시대부터 벽골제라는 국내 최대의 수리시설이 있었다”고 반박한 바 있다.이 교수는 “15세기 초 『세종실록지리지』 김제군편을 보면, 벽골제에 대해 ‘신라 흘해왕 21년에 비로소 둑을 쌓았는데, 길이가 1800보다. 본조 태종 15년에 다시 쌓았으나 이익은 적고 폐단은 많았으므로 곧 허물어뜨렸다’라고 돼있다”며 “조선왕조 500년 내내 벽골제는 허물어진 상태에 있었다”고 말했다.이 교수는 이어 “현장 답사와 19세기 말~20세기 초 지도로 분석해 볼 때 광대한 평야지대를 막아 저수지를 만든다는 발상은 실현되기 어렵다”라고 주장했다.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 촉구’ 행사 다채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 촉구’ 행사 다채(ytn, 09.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