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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응모-김성수의 친일은 ‘역사적 사실’이다

2009년 12월 2일 1525

방응모, 김성수 친일반민족행위자 포함 관련 <조선><동아> 보도에 대한 논평 민주언론시민연합 지난달 27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가 친일반민족행위자 1005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진상규명위는 1949년 중단된 제헌국회 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의 작업을 국가기구가 이어받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그러나 이번 발표 내용을 보면 몇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진상규명위의 설치 근거가 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대한 특별법’은 ‘친일행위’를 일제에 ‘주도적, 적극적, 중심적으로 협력한 경우’로 한정하고 공문서 위주의 증거주의 원칙을 적용하다 보니 친일 범위가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8일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인물 4389명에 비하면 채 4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박정희 전 대통령, 김창룡 전 특무부대장 등 대표적인 친일인사들이 명단에서 빠지기도 했다. 따라서 진상규명위의 명단이 친일반민족 행위 전체를 파악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뒤집어 말하면 적어도 이번 진상규명위가 밝힌 친일 인물들은 ‘공문서 위주의 확실한 친일 증거’가 확보된 인물들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진상규명위의 명단에 김성수 동아일보 창업주, 방응모 전 조선일보 사장이 포함된 것을 놓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가히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고 있다. 방응모는 일제 침략 정책 협력을 주장하고 군수업체 조선항공공업주식회사 및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인으로 활동한 게 친일 행위로 인정됐고, 김성수는 징병 찬양 및 선전, 선동, 학병 동원을 독려하고 역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인과 이사로 활동한 것이 친일 행위로 인정됐다. 사실 진상규명위의 명단 발표가 아니더라도 방응모, 김성수의 친일 행각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자성과

리덩후이 前 대만 총통, 야스쿠니 참배 의향-東京(07.05.31)

-0001년 11월 30일 415

리덩후이 前 대만 총통, 야스쿠니 참배 의향 리덩후이 前 대만총통은 30일 일본을 방문,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병사로서 전사한 형이 모셔져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할 의향을 밝혔다. 실현된다면 종전 후 첫 참배가 된다. 나리타 공항에서 기자단에게 “아직 시간은 정하지 않았다. 모처럼 왔으니 형을 만나러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방일에 대해 중국이 비판을 강화하고 있는 데 대한 질문에는, “강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6월 9일까지의 일본 체재 중, 미야기현 등 마츠오 바쇼의 ‘오쿠노 호소미치’의 흔적을 돌아보는 외에 도쿄도내에서 강연을 예정하고 있다. 일본 정치가와의 면회예정을 묻자 “없다. 문화학술, 오쿠노 호소미치, 그것 뿐”이라며 부정했다. 아베 총리, “개인신앙의 자유” 아베 총리는 30일 밤, 방일한 대만의 리덩후이 前 총통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의향을 밝힌 데 대해 “(리 前 총통은) 사적 개인으로서 방일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당연히 신앙의 자유가 있으며 본인이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 前 총통의 방일이 중일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부정했다.

리덩후이 前 대만 총통, 야스쿠니 참배 의향-東京(07.05.31)

-0001년 11월 30일 421

리덩후이 前 대만 총통, 야스쿠니 참배 의향 리덩후이 前 대만총통은 30일 일본을 방문,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병사로서 전사한 형이 모셔져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할 의향을 밝혔다. 실현된다면 종전 후 첫 참배가 된다. 나리타 공항에서 기자단에게 “아직 시간은 정하지 않았다. 모처럼 왔으니 형을 만나러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방일에 대해 중국이 비판을 강화하고 있는 데 대한 질문에는, “강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6월 9일까지의 일본 체재 중, 미야기현 등 마츠오 바쇼의 ‘오쿠노 호소미치’의 흔적을 돌아보는 외에 도쿄도내에서 강연을 예정하고 있다. 일본 정치가와의 면회예정을 묻자 “없다. 문화학술, 오쿠노 호소미치, 그것 뿐”이라며 부정했다. 아베 총리, “개인신앙의 자유” 아베 총리는 30일 밤, 방일한 대만의 리덩후이 前 총통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의향을 밝힌 데 대해 “(리 前 총통은) 사적 개인으로서 방일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당연히 신앙의 자유가 있으며 본인이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 前 총통의 방일이 중일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부정했다.

[원주]“도내 의병 연합활동 전국 조직화 토대”

2009년 12월 1일 456

[원주]“도내 의병 연합활동 전국 조직화 토대”(강원일보, 09.11.28)

3차 친일 명단, 친일인명사전과 비교해보니…

2009년 12월 1일 494

3차 친일 명단, 친일인명사전과 비교해보니…(경향신문, 09.11.27)

‘새역모’ 역사교과서, 후소샤가 발행거부-每日(07.06.01)

2007년 6월 1일 397

‘새역모’ 역사교과서, 후소샤가 발행거부후소샤에서 발행하는 중학교사회과학교과서를 집필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31일 후소샤가 새역모가 집필한 교과서의 계속적 발행을 거부했다고 발표했다. 새역모는 ‘회의 이념을 지키겠다’며 새롭게 발행할 출판사를 공모하기로 결정했다. 교육위원회의 교과서 채택시 각지에서 파문을 확산시킨 역사교과서가 존망의 위기에 서있는 형국이다.후소샤가 새역모에 송부한 문서에 의하면 후소샤는 “새역모의 조직내에 혼란이 일어나 사실상 분열하는 상황에 있다”고 지적하고 “폭넓은 추천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설명했다.30일자로 새역모회장에 취임한 후지오카 노부가츠씨는 조직분열을 부정하며 “(새역모가 집필한 교과서의) 역사를 쓰는 골격은 종래의 교과서와 다른 재미있는 것이다. 이를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전 새역모 회장이었던 야기 히데츠구씨 등이 설립한 일본교육재생기구와 협력해 별도의 역사교과서를 발행할 것으로 보인다. 후소샤는 “새역모의 동향에 관해서는 코멘트를 자제하고 싶다”고 하고 있다.

‘새역모’ 역사교과서, 후소샤가 발행거부-每日(07.06.01)

2007년 6월 1일 362

‘새역모’ 역사교과서, 후소샤가 발행거부후소샤에서 발행하는 중학교사회과학교과서를 집필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31일 후소샤가 새역모가 집필한 교과서의 계속적 발행을 거부했다고 발표했다. 새역모는 ‘회의 이념을 지키겠다’며 새롭게 발행할 출판사를 공모하기로 결정했다. 교육위원회의 교과서 채택시 각지에서 파문을 확산시킨 역사교과서가 존망의 위기에 서있는 형국이다.후소샤가 새역모에 송부한 문서에 의하면 후소샤는 “새역모의 조직내에 혼란이 일어나 사실상 분열하는 상황에 있다”고 지적하고 “폭넓은 추천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설명했다.30일자로 새역모회장에 취임한 후지오카 노부가츠씨는 조직분열을 부정하며 “(새역모가 집필한 교과서의) 역사를 쓰는 골격은 종래의 교과서와 다른 재미있는 것이다. 이를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전 새역모 회장이었던 야기 히데츠구씨 등이 설립한 일본교육재생기구와 협력해 별도의 역사교과서를 발행할 것으로 보인다. 후소샤는 “새역모의 동향에 관해서는 코멘트를 자제하고 싶다”고 하고 있다.

3차 친일명단 704명 발표, 친일규명위 해산

2009년 12월 1일 506

3차 친일명단 704명 발표, 친일규명위 해산(bbs, 09.11.27)

칠군자 마을에 항일지사의 빗돌이 외롭다

2009년 12월 1일 474

칠군자 마을에 항일지사의 빗돌이 외롭다(오마이뉴스, 09.11.30)

‘일본서기’ 허가없이 우리이야기 윤색-대전일보(07.05.29)

2007년 6월 1일 712

‘일본서기’ 허가없이 우리이야기 윤색   기록에는 공론을 거치거나 상대와 합의한 것이 있는가 하면 일방적인 것도 있다. 일본의 ‘일본서기’는 우리의 허가 없이 우리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윤색한 기록물이다. 그래서 기록 그대로를 믿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기록 중에도 패망한 나라의 기록에는 자의적인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있다. 그래서 기록은 검증을 필요로 한다. 독도를 탐하는 일본은 우리의 기록도 철저히 검토하고 그 허점을 기반으로 주장의 당위성을 확보하려 한다. 그 치밀한 노력에 겁을 내는 사람도 있으나, 진실을 떠난 웅변이기에 공허하다. 일본이 우리의 자료를 활용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한문과 한글을 이해하면 쉽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일본 자료는 한문과 일본어의 능력이 있어도 어렵다. 일본 특유의 표기가 있어 도움을 받거나 그들이 작업한 것을 인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학습하면 읽지 못할 것도 없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자료를 공유하려는 학자가 나타나면 존경심까지 솟는다.우리는 비교적 우리와 비슷한 주장을 하는 일본인을 양심적이라거나 친한 인사라 한다. 틀린 말은 아니나 맞는 말도 아니다. 그들은 많은 자료를 섭렵했기 때문에 학문에 충실한 것일 뿐이다. 특별히 한국이 좋다거나 양심적이라서가 아니다. 하긴 자료가 있어도 숨기거나 왜곡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훌륭하다 해야 할지도 모른다.조선 숙종 때의 일이다. 안용복은 울릉도에서 일하다 납치당해 에도까지 끌려갔다가 그곳에서 장군을 만나 울릉도가 조선 영토임을 주장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증서를 받아 귀국하는 도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