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기사
오자와 민주당 간사장 “일본, 신념있는 대미외교 과제”
오자와 민주당 간사장 “일본, 신념있는 대미외교 과제”(경향신문, 09.12.07)
[NGO 칼럼]약탈문화재 환수운동의 과제
[NGO 칼럼]약탈문화재 환수운동의 과제(내일신문, 09.12.04)
일본 신문, ‘황국영웅’ 조작 보도에 반성-한겨레신문(07.06.13)
일본 신문, ‘황국영웅’ 조작 보도에 반성 “폭탄을 몸에 두르고 (적의) 철조망에 뛰어들어 터뜨림으로써 자신과 함께 그것을 분쇄해, 장렬하게 폭사하고 보병의 돌격로를 연 3명의 용사가 있다.” 만주사변이 발생한 이듬해인 1932년 2월24일치 일본 <아사히신문>은 중국 상하이 특파원발로 ‘육탄 3용사’ 기사를 내보냈다. 같은날 경쟁지인 <마이니치신문>도 비슷한 내용의 특파원 기사를 보도했다.육군성은 이 보도가 나온 직후 즉각 ‘3용사’에 훈장 수여를 결정했다. 이어 교과서에 이 내용을 게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두 신문 보도를 이용한 대대적인 선전전에 나섰다. 아사히는 2월26일 상보를 실은 데 이어 27일 ‘민족정신의 극치’라는 내용의 사설을 싣고, 세명의 죽음을 ‘야마토 정신’(일본의 고유한 정신)의 특질이라고 찬양했다. 아사히는 ‘3용사의 영웅담’을 담은 소책자를 만들어 전국 초등학교에 무료로 배포했다. 또 아사히와 마이니치는 현상금까지 내걸고 추모곡 공모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아사히는 13일 75년 전의 이 보도가 엉터리라고 털어놓고, 1개면을 털어 반성하는 내용의 기사들을 실었다. 신문은 중국 침략 전쟁의 초기 단계에서 벌어진 자사의 영웅만들기에 대해 ‘신문이 꾸며낸 영웅’ ‘특종경쟁, 미담만들기’로 규정했다. ‘3용사’의 실체는 현장에 가지도 않은 당시 특파원들이 전선에서 돌아온 장교의 얘기만 듣고 꾸며낸 미담이었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이렇게 만들어진 자기희생의 미화는 나중에 특공대의 바탕이 됐다”고 자성했다.“3용사로 알려진 사람은 애초 폭탄의 도화선에 불을 붙여 철조망에 내던지고 재빨리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도중 한명이 쓰러져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그냥 돌아왔다. 그러자 상관은 ‘천황과
일본 신문, ‘황국영웅’ 조작 보도에 반성-한겨레신문(07.06.13)
일본 신문, ‘황국영웅’ 조작 보도에 반성 “폭탄을 몸에 두르고 (적의) 철조망에 뛰어들어 터뜨림으로써 자신과 함께 그것을 분쇄해, 장렬하게 폭사하고 보병의 돌격로를 연 3명의 용사가 있다.” 만주사변이 발생한 이듬해인 1932년 2월24일치 일본 <아사히신문>은 중국 상하이 특파원발로 ‘육탄 3용사’ 기사를 내보냈다. 같은날 경쟁지인 <마이니치신문>도 비슷한 내용의 특파원 기사를 보도했다.육군성은 이 보도가 나온 직후 즉각 ‘3용사’에 훈장 수여를 결정했다. 이어 교과서에 이 내용을 게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두 신문 보도를 이용한 대대적인 선전전에 나섰다. 아사히는 2월26일 상보를 실은 데 이어 27일 ‘민족정신의 극치’라는 내용의 사설을 싣고, 세명의 죽음을 ‘야마토 정신’(일본의 고유한 정신)의 특질이라고 찬양했다. 아사히는 ‘3용사의 영웅담’을 담은 소책자를 만들어 전국 초등학교에 무료로 배포했다. 또 아사히와 마이니치는 현상금까지 내걸고 추모곡 공모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아사히는 13일 75년 전의 이 보도가 엉터리라고 털어놓고, 1개면을 털어 반성하는 내용의 기사들을 실었다. 신문은 중국 침략 전쟁의 초기 단계에서 벌어진 자사의 영웅만들기에 대해 ‘신문이 꾸며낸 영웅’ ‘특종경쟁, 미담만들기’로 규정했다. ‘3용사’의 실체는 현장에 가지도 않은 당시 특파원들이 전선에서 돌아온 장교의 얘기만 듣고 꾸며낸 미담이었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이렇게 만들어진 자기희생의 미화는 나중에 특공대의 바탕이 됐다”고 자성했다.“3용사로 알려진 사람은 애초 폭탄의 도화선에 불을 붙여 철조망에 내던지고 재빨리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도중 한명이 쓰러져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그냥 돌아왔다. 그러자 상관은 ‘천황과
[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닌자 어쌔신’과 ‘청연’의 이중잣대
[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닌자 어쌔신’과 ‘청연’의 이중잣대(동아일보, 09.12.08)
8일 ‘단재 선생 탄신 129주년 헌화식’ 열려
8일 ‘단재 선생 탄신 129주년 헌화식’ 열려(뉴시스, 09.12.07)
[분수대] 리덩후이-‘중앙'(07.06.10)
[분수대] 리덩후이 [중앙일보] 말 많고 탈도 많은 야스쿠니 신사에 또 한 가지 화근을 남길 만한 참배객이 다녀갔다. 1988년부터 2000년까지 대만을 통치한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주 일본을 방문한 그는, 일본군 병사로 제2차 세계대전에 나갔다 숨진 두 살 위 형이 이와사토 다케노리란 일본식 이름으로 합사돼 있는 신사 본전에 참배했다.많은 사람이 당혹스러워했다. “내 부모형제의 이름을 야스쿠니 신사의 명부에서 지워 달라”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다른 대만인 유족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지금 야스쿠니 신사에는 대만인 2만8000명뿐 아니라 조선인 2만1000명의 혼백도 합사돼 있다.리덩후이는 대만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다. 국민당 정부의 장기 계엄 통치에 종지부를 찍고 처음으로 직접 선거를 실시한 주인공이다. “한 방울의 피도 안 흘리고 군사독재에서 민주체제로 탈바꿈시켰다”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한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그런데 리덩후이를 가장 높이 평가해 주는 쪽은 엉뚱하게도 일본의 우익 세력이다. 대표적 우익 선전가인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만화 ‘대만론'(2000)은 일제 식민통치가 오늘날 대만 번영의 밑거름이 됐다는 논리를 펼친다. 이 책에서 리덩후이는 ‘일본 정신’의 모델로 그려진다. 공(公)을 우선하는 자기희생, 평소에는 처신에 신중하지만 때가 오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용기, 끊임없는 자기 수양 등 일본인도 잊어버린 ‘무사(사무라이)도’를 리덩후이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그도 이에 화답하듯 일제 통치를 찬양한다. “비적이 횡행하던 미개한 대만에서 1898년 (대만 총독부) 민정장관으로 부임한 고토 신페이는 페스트
[분수대] 리덩후이-‘중앙'(07.06.10)
[분수대] 리덩후이 [중앙일보] 말 많고 탈도 많은 야스쿠니 신사에 또 한 가지 화근을 남길 만한 참배객이 다녀갔다. 1988년부터 2000년까지 대만을 통치한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주 일본을 방문한 그는, 일본군 병사로 제2차 세계대전에 나갔다 숨진 두 살 위 형이 이와사토 다케노리란 일본식 이름으로 합사돼 있는 신사 본전에 참배했다.많은 사람이 당혹스러워했다. “내 부모형제의 이름을 야스쿠니 신사의 명부에서 지워 달라”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다른 대만인 유족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지금 야스쿠니 신사에는 대만인 2만8000명뿐 아니라 조선인 2만1000명의 혼백도 합사돼 있다.리덩후이는 대만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다. 국민당 정부의 장기 계엄 통치에 종지부를 찍고 처음으로 직접 선거를 실시한 주인공이다. “한 방울의 피도 안 흘리고 군사독재에서 민주체제로 탈바꿈시켰다”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한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그런데 리덩후이를 가장 높이 평가해 주는 쪽은 엉뚱하게도 일본의 우익 세력이다. 대표적 우익 선전가인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만화 ‘대만론'(2000)은 일제 식민통치가 오늘날 대만 번영의 밑거름이 됐다는 논리를 펼친다. 이 책에서 리덩후이는 ‘일본 정신’의 모델로 그려진다. 공(公)을 우선하는 자기희생, 평소에는 처신에 신중하지만 때가 오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용기, 끊임없는 자기 수양 등 일본인도 잊어버린 ‘무사(사무라이)도’를 리덩후이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그도 이에 화답하듯 일제 통치를 찬양한다. “비적이 횡행하던 미개한 대만에서 1898년 (대만 총독부) 민정장관으로 부임한 고토 신페이는 페스트
김원웅 전의원 “단재선생을 대전정신으로”
김원웅 전의원 “단재선생을 대전정신으로”(연합뉴스, 09.12.07)
타지에서 민족주의 교육에 앞장선 계봉우 선생
타지에서 민족주의 교육에 앞장선 계봉우 선생(뉴스천지, 09.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