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리덩후이 [중앙일보]
말 많고 탈도 많은 야스쿠니 신사에 또 한 가지 화근을 남길 만한 참배객이 다녀갔다. 1988년부터 2000년까지 대만을 통치한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주 일본을 방문한 그는, 일본군 병사로 제2차 세계대전에 나갔다 숨진 두 살 위 형이 이와사토 다케노리란 일본식 이름으로 합사돼 있는 신사 본전에 참배했다.
많은 사람이 당혹스러워했다. “내 부모형제의 이름을 야스쿠니 신사의 명부에서 지워 달라”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다른 대만인 유족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지금 야스쿠니 신사에는 대만인 2만8000명뿐 아니라 조선인 2만1000명의 혼백도 합사돼 있다.
리덩후이는 대만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다. 국민당 정부의 장기 계엄 통치에 종지부를 찍고 처음으로 직접 선거를 실시한 주인공이다. “한 방울의 피도 안 흘리고 군사독재에서 민주체제로 탈바꿈시켰다”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한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리덩후이를 가장 높이 평가해 주는 쪽은 엉뚱하게도 일본의 우익 세력이다. 대표적 우익 선전가인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만화 ‘대만론'(2000)은 일제 식민통치가 오늘날 대만 번영의 밑거름이 됐다는 논리를 펼친다. 이 책에서 리덩후이는 ‘일본 정신’의 모델로 그려진다. 공(公)을 우선하는 자기희생, 평소에는 처신에 신중하지만 때가 오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용기, 끊임없는 자기 수양 등 일본인도 잊어버린 ‘무사(사무라이)도’를 리덩후이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도 이에 화답하듯 일제 통치를 찬양한다. “비적이 횡행하던 미개한 대만에서 1898년 (대만 총독부) 민정장관으로 부임한 고토 신페이는 페스트 등 질병을 뿌리뽑고, 교육 보급에 힘썼다. 오늘의 대만은 그가 쌓은 기초 위에 있다.” “나는 22세까지 일본인이었다. (교토대를 졸업할 때까지) 정통 일본식 교육을 받은 나의 교양은 일본의 전통에 이어진다.”
일본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리덩후이의 방문은 입국 허용에서부터 정치적 상징성을 띤다. 자민당 내에서 친대만파는 이념적으로 우익에 가깝고 친중파는 대체로 중도보수다. 그는 이번 방문에서 “야스쿠니 문제는 중국 대륙과 한반도에서 만들어낸 것”이라며 “일본의 대응은 너무 저자세”라는 지적까지 잊지 않았다. 일본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던 그를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흥분한 한 중국인이 집어던진 페트병 세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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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리덩후이-‘중앙'(07.06.10)
By 민족문제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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