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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박홍규 칼럼]후쿠자와와 우치무라-경향신문(07.07.12)

2007년 7월 13일 675

[박홍규 칼럼]후쿠자와와 우치무라 21세기에 와서 일본의 우익화가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미국 의회에서 ‘정신대’ 비난결의가 있었음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일본인들은 전혀 반성하는 자세가 아니어서 사실은 더욱 유감스럽다. 그 중에서 특히 유감인 것은 언론인, 교수, 지식인, 종교인, 대학생들의 무관심이다. 정치가들이나 서민들이야 언제 어디서나 마찬가지라고 해도 소위 지식인이라는 자들이 이렇게 무심한 것에 대해서는 정말 기가 차다. 그러나 그들의 선조인 대스승을 보면 그 나물에 그 밥,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일본의 만엔짜리 지폐에 그려진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 최고의 학자이자 언론인이자 일본 근대화와 민주주의의 아버지로서 그의 책 ‘학문의 권유’는 일찍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어 널리 읽혔다. 역시 한국에도 그 책들이 소개되어 잘 알려진 일본 현대정치학의 아버지 마루야마 마사오는 후쿠자와가 국가평등관에 입각한 국제인식의 소유자라는 점을 강조해 대단히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일본인다운 허울일 뿐이고, 실제로 후쿠자와는 국제관계를 약육강식의 우열관계로 파악하고 조선에 대해서는 멸시 일변도로 그 침략을 정당화했다. 강화도 사건 때 조선을 ‘소 야만국’이라고 부른 후쿠자와는 1882년 임오군란과 1884년 갑신정변 때 강력한 군사개입을 주장하고 무기까지 제공했으며, 천황의 직접 정복과 북경 공격까지 요구했다. 당시 그 글이 실린 그의 신문이 발행정지를 당했을 정도로 그것은 과격한 것이었으나, 그는 계속 조선은 완고한 야만국이니 일본이 무력으로 정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다시 발행정지를 당했다. 흔히 후쿠자와의 주장을 ‘탈아론(脫亞論)’, 즉 아시아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라고 하나, 그 내용이란 사실

‘이회영과 젊은 그들’…명문가 후손, 아나키스트 되다

2009년 12월 24일 643

<새책>‘이회영과 젊은 그들’…명문가 후손, 아나키스트 되다(헤럴드경제, 09.12.24)

경남도의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 결의안 채택

2009년 12월 24일 388

경남도의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 결의안 채택(노컷뉴스, 09.12.24)

일본계 이노우에 의원 위안부 결의안 반대 성명-연합뉴스(07.07.13)

2007년 7월 13일 400

일본계 이노우에 의원 위안부 결의안 반대 성명    “하원 통과 확실” 전망 속 막판 반대로비 치열 (워싱턴=연합뉴스) 이기창 특파원 = 일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곧 미 하원 전체회의에서 가결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일본계인 대니얼 이노우에 상원의원(민주.하와이주)이 결의안 반대 성명을 내 파장이 예상된다.미 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 저지활동을 총괄 지휘해온 것으로 알려진 이노우에 의원은 상원에 제출한 공식 성명을 통해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의 과거 사과와 배상으로 이미 매듭지어진 것으로 결의안이 통과될 경우 미일 관계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경고한 것으로 교도통신이 12일 보도했다.이노우에 의원은 특히 미국 정부도 과거 여러가지 악행을 저질렀지만 공식 사과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해 그의 성명이 미 의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이노우에 의원은 성명에서 과거 일본군의 위안부 학대는 묵과하거나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지만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배상은 전후 각국과의 수교협정을 통해 해결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왜 우리가 일본과의 선린관계를 위태롭게 할 결의안 채택에 나서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그는 또 과거 여러 명의 일본 총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거듭 사과를 했고, 일본 의회도 전쟁 범죄에 대한 사과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며 “그 정도 여러 차례 사과가 있었으면 충분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그는 특히 미국도 1941년 일본과의 전쟁이 발발한뒤 남미에 거주하던 일본계 주민들을 무단으로 잡아다가 일본에 억류된 미국인 전쟁포로들과의 교환을 위한 협상물로 사용했지만

‘오욕과 저항의 역사’를 말한다

2007년 7월 12일 705

    사무총장 조세열  중명전 활용계획 내려받기   덕수궁 서편 정동극장 골목 후미진 곳에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조차 생소한 궁궐 건축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1899년 경운궁(덕수궁)의 별채로 지어진 중명전이다. 중명전의 본래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으로 고종황제의 외교사절단 접견소  또는  연회장으로 활용되었으며  궁궐 도서관의  기능도 있었다고 한다. 중명전의  가치는 건축사적 측면과 역사적 의의 두 가지로 접근해 볼 수 있다. 러시아공관 설계자인 사바찐이 설계하였다고 추정되는 이 건물은 궁궐 내에 지어진 최초의 양관(洋館) 중 하나이다. 화강석 기         ▲ 중명전 ⓒ 민족문제연구소    단에 벽돌로 축조된 지하 1층 지상 2층의 르네상스식 건물로, 무지개형 창과 2층 서쪽의 베란다는 다른 근대 건축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으로 평가된다. 전체적으로 단순한 외형을 갖추고 있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균형감과 절제미가 돋보이는  건물이다. 1925년 화재 이후 벽체만  남아 있던 것을 중건하였으므로 원형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건축사적인 가치보다  주목해야 할 측면은 중명전이 지니는 역사적 의의이다. 중명전은 대한제국 말기 오욕과  저항의 역사를 증언하는 비운의 장소이다.  1904년 경운궁의 화재로 고종황제가 중명전으로 이거(移居)하였으며, 1905년 11월 7일 이곳에서 치욕의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망국의  현장이 되고 말았다.  이에 항거하여 고종은 1907년 4월 헤이그 밀사를 접견하고 밀지를 전달하였으며 이 사건으로  강제 퇴위하게 되었다.   1915년 일제가 덕수궁을 축소 훼손하면서 경성구락부(Seoul Union)에 임대하여 1960년대까지 외국인 사교클럽으로

경남도·거제시의회,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 결의문’ 채택

2009년 12월 24일 446

경남도·거제시의회,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 결의문’ 채택(오마이뉴스, 09.12.24)

하토야마 정권, `99엔` 이어 `독도`까지 뒤통수?

2009년 12월 24일 648

하토야마 정권, `99엔` 이어 `독도`까지 뒤통수?(이데일리, 09.12.24)

‘땅 사기’ 친일파 송병준 후손에 실형

2007년 7월 12일 635

    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국가 소유 부동산을 자신의 땅이라고 속이고 매매대금을 가로챈 친일파 송병준의 증손자 송모(62)씨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 남부지법 형사5단독 오덕식 판사는 12일 “국방부 소유 토지를 자신의 땅이라고 속여 매매대금 2억2천여만원을 챙긴 혐의(사기)로 기소된 송모씨에게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송씨는 2002년 5월23일께 서울 종로구 관훈동 이모씨의 사무실에서 “증조부의 땅이었던 인천 부평구 산곡동 미군 부대 캠프마켓 일대를 국방부에서 다 돌려주기로 했다”고 속여 1억원을 매매대금 명목으로 받아냈다. 송씨는 이어 같은해 7월께 유모씨에게 “국방부에서 증조부 소유 토지를 명의이전 해주기로 했으니 인천부평구 산곡동 소재 토지를 매수하면 2002년 9월까지 소유권을 이전해 주겠다”고 속여 1억2천만원을 가로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가가 부동산을 넘겨주기로 약속한 적이 없음에도 피해자들에게 곧 소유권을 취득할 것처럼 행동하며 국방부에 로비자금이 필요해 일부를 미리 싼 가격에 매도하겠다고 속여 2억2천만원을 편취하는 등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송씨가 피해자들로부터 편취한 돈을 모아 다시 국가를 상대로 이 사건 부동산 등에 대한 소유권보존등기말소소송을 제기한 점 등을 고려할때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연합뉴스, 07.07.12>

각국공원 복원은 ‘제국의 추억’?-한겨레신문(07.07.06)

2007년 7월 11일 772

각국공원 복원은 ‘제국의 추억’? 인천 자유공원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세창양행. 존스톤 별장. 알렌별장의 옛 모습. ‘존스톤별장’ 등 근대건축물 재건축 두고 논란 재연시민단체 “제국주의 침탈공간이었을 뿐” 중단 촉구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근대공원인 각국공원(현재의 자유공원)의 복원사업을 놓고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이 공원은 인천항 개항과 함께 들어온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독일, 영국 열강의 합의로 조성된 거류지(조계) 사이에 공동영역으로 조성됐다. 이 곳엔 옛 건물들이 사라지고 맥아더장군 동상,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자유의 여신상 등이 대신하고 있다.논란은 2005년 인천시가 중구 송학동 각국공원 중심부 6만8710㎡를 새로 정비해 100년 전의 모습으로 복원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복원사업은 ‘존스톤별장’ ‘영국대사관’ ‘세창양행사택’ ‘알렌별장’ ‘러시아영사관’ 등 당시 대표적 근대건축물 5개를 276억원을 들여 2011년까지 복원하겠다는 내용이다. 시는 현재 공원 정상에 있는 한미수교100주년 기념탑 자리에 있었던 존슨톤 별장의 복원을 위해 3억원을 들여 기본설계 용역을 하고 있다.인천의 대표적 시민단체인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와 인천경실련,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 등 3개 단체는 7일 “역사인식과 지역 정체성에 반해 복원의 가치판단을 다시 해야 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며 복원사업의 잠정 중단과 재검토를 요구했다. 당시 각국공원은 사실상 일본조계지로 제국주의 침탈 공간이었고, 존스톤별장과 세창양행사택은 독일 제국주의적 자본이 지어 사용한 건축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 이들 건축물 복원에 필요한 건축적 자료가 없고, 원래위치가 아닌 곳에 복원하겠다는 계획이어서 역사유산의 보전·복원의 핵심인 진정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논리다.이런 논란은 사업

일본, 학습지도요령서 독도 영유권 언급

2009년 12월 24일 557

일본, 학습지도요령서 독도 영유권 언급(mbn, 09.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