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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욕과 저항의 역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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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총장 조세열


 중명전 활용계획 내려받기


 


덕수궁 서편 정동극장 골목 후미진 곳에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조차 생소한 궁궐 건축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1899년 경운궁(덕수궁)의 별채로 지어진 중명전이다. 중명전의 본래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으로 고종황제의 외교사절단 접견소  또는  연회장으로 활용되었으며  궁궐 도서관의  기능도 있었다고 한다.

 중명전의  가치는 건축사적 측면과 역사적 의의 두 가지로 접근해 볼 수 있다. 러시아공관 설계자인 사바찐이 설계하였다고 추정되는 이 건물은 궁궐 내에 지어진 최초의 양관(洋館) 중 하나이다. 화강석 기


 



      ▲ 중명전 ⓒ 민족문제연구소


 


 단에 벽돌로 축조된 지하 1층 지상 2층의 르네상스식 건물로, 무지개형 창과 2층 서쪽의 베란다는 다른 근대 건축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으로 평가된다. 전체적으로 단순한 외형을 갖추고 있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균형감과 절제미가 돋보이는  건물이다. 1925년 화재 이후 벽체만  남아 있던 것을 중건하였으므로 원형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건축사적인 가치보다  주목해야 할 측면은 중명전이 지니는 역사적 의의이다. 중명전은 대한제국 말기 오욕과  저항의 역사를 증언하는 비운의 장소이다.  1904년 경운궁의 화재로 고종황제가 중명전으로 이거(移居)하였으며, 1905년 11월 7일 이곳에서 치욕의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망국의  현장이 되고 말았다.  이에 항거하여 고종은 1907년 4월 헤이그 밀사를 접견하고 밀지를 전달하였으며 이 사건으로  강제 퇴위하게 되었다.   1915년 일제가 덕수궁을 축소 훼손하면서 경성구락부(Seoul Union)에 임대하여 1960년대까지 외국인 사교클럽으로 사용되었다. 1963년 일본에서 귀국한 영친왕 이은과 부인 이방자 여사에게 거처로 기증되었으나, 1976년 이후 민간 기업으로 소유권이 넘어간 뒤 관리 소홀과 개조 등으로  원형을 짐작 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고 말았다.  1983년에 이르러서야 서울시 유형문화재 53호로  지정되어 명목상 문화재로 취급 받기 시작 했으나 사무실과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등 사실상 방치 상태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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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서울시 의회가 “투자가치가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매입예산  전액을 삭감함으로써,  한국근대사의 의미 있는  현장이 사라져 갈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 때 부터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어  중명전 복원 운동을 시작하였다. 연구소는 서울시의 몰역사적ㆍ몰가치적 결정을 비판하면서, 남아있는 유일의 국망(國亡) 사적지인 중명전을 근대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서울시가  청계천 등 가시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현안사업에 매달리면서 중명전에 대한 투자(?)를 포기하자,  결국 2003년 문화관광부가  이를 매입하여 정동극장에 소유권을 넘겨주었다. 그



  ▲ 일제강점기의 중명전


러나 정동극장을 관리주체로 한 문화관광부의 결정은  다시 여론의  반대에 직면하게 되었다. 정동극장은 일부 공간을 역사전시실로  배정하는 등 진일보한 공간계획을 내어 놓았으나, 완전한 복원과 역사적 배경에 걸맞는 활용을 바라는 시민사회의 요구에는 미흡할 수밖에 없었으며, 관리주체로서 적격인가에 대한 시비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한편 복원 예산을 둘러싼 서울시와 문화재청의 책임 전가도 사업을  지연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다행히 중명전의 소유권이 작년 9월 문화재청으로 이관되면서 중명전의 복원과 활용방향이 정리되고 있다.


 








▲ 왼쪽부터 이준, 이상설, 이위종


 7월 13일부터  9월 2일까지 중명전에서 열리는 ‘대한제국 1907 헤이그 특사’전은 비운의 중명전이 본래의 모습을 찾고 제자리를 찾아가는 서막이라고 볼  수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고궁박물관이 기획하고  문화재청이 주최하는 이번 전시회에는  중명전의 건축사적 위상, 을사늑약과 헤이그 특사 등 우리 근대사와 관련된 사료와 그림판이 다수 소개된다.  문화재청은 복원이 완료되는 대로 중명전을  근대역사관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오욕과 저항의 근대사를 조명하고 을사오적 등 매국적들의 죄상을 백일하에 전시함으로써 잊어서는 아니될


국망의 교훈을 얻을 수 있으리라 본다.

 살아있는 역사교육이 망국의 현장에서 이루어질 날도  이제 멀지 않은 것 같다.  마침내 역사의 현장을 보존 활용하려는 시민사회의 오랜 기간에 걸친 끈질긴 노력이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오마이뉴스,
07.07.13>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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