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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칼럼]후쿠자와와 우치무라-경향신문(07.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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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칼럼]후쿠자와와 우치무라


21세기에 와서 일본의 우익화가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미국 의회에서 ‘정신대’ 비난결의가 있었음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일본인들은 전혀 반성하는 자세가 아니어서 사실은 더욱 유감스럽다. 그 중에서 특히 유감인 것은 언론인, 교수, 지식인, 종교인, 대학생들의 무관심이다. 정치가들이나 서민들이야 언제 어디서나 마찬가지라고 해도 소위 지식인이라는 자들이 이렇게 무심한 것에 대해서는 정말 기가 차다. 그러나 그들의 선조인 대스승을 보면 그 나물에 그 밥,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일본의 만엔짜리 지폐에 그려진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 최고의 학자이자 언론인이자 일본 근대화와 민주주의의 아버지로서 그의 책 ‘학문의 권유’는 일찍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어 널리 읽혔다. 역시 한국에도 그 책들이 소개되어 잘 알려진 일본 현대정치학의 아버지 마루야마 마사오는 후쿠자와가 국가평등관에 입각한 국제인식의 소유자라는 점을 강조해 대단히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일본인다운 허울일 뿐이고, 실제로 후쿠자와는 국제관계를 약육강식의 우열관계로 파악하고 조선에 대해서는 멸시 일변도로 그 침략을 정당화했다. 강화도 사건 때 조선을 ‘소 야만국’이라고 부른 후쿠자와는 1882년 임오군란과 1884년 갑신정변 때 강력한 군사개입을 주장하고 무기까지 제공했으며, 천황의 직접 정복과 북경 공격까지 요구했다. 당시 그 글이 실린 그의 신문이 발행정지를 당했을 정도로 그것은 과격한 것이었으나, 그는 계속 조선은 완고한 야만국이니 일본이 무력으로 정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다시 발행정지를 당했다. 흔히 후쿠자와의 주장을 ‘탈아론(脫亞論)’, 즉 아시아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라고 하나, 그 내용이란 사실 ‘침아론(侵亞論)’, 즉 아시아를 침략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었는데, 이는 당시의 정치인들도 과격하다고 보았을 정도였다.


-한일합방 정당화한 일본인들-


후쿠자와는 당시 대두된 아시아 연대론을 공상이라고 일축하고 청일전쟁을 문명과 야만의 전쟁으로 보았으며 문명화를 위해 타국의 실권을 장악하는 것은 내정간섭이 아니라고 하고, 특히 조선에 대한 무력행사는 조선인이 ‘연약 무염치’하기 때문이라는 등 갖은 멸시의 말을 퍼붓고 그 책임을 조선인에게 돌렸다. 심지어 조선은 나라도 아니고, 조선인은 소 말 돼지 개와 다름이 없으며, 사지가 마비되어 자동능력이 없는 병신이고, 부패한 유학자의 소굴이며, 국민은 노예라고 하는 등 갖은 악담을 퍼부었다.

그는 김옥균 등 개화파를 가르쳐 친일파로 만들어 일본의 침략을 쉽게 했고, 청일전쟁 때는 수구파인 대원군과도 결탁하는 등 조선을 패망시키는 데 그 어느 파벌도 가리지 않았다. 그런 그를 한국에서는 조선 근대화를 지원한 은인으로 모신다니 기가 차다.

한편 한국에는 일본 기독교를 대표하는 우치무라 간조를 스승으로 모시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그는 청일전쟁 등에 대해 후쿠자와와 조금도 다름없는 일본국가주의자로 일관했고, 그 후 일시 조선에 관심을 기울이기는 했으나 조선 독립에는 전혀 무관심했다. 1910년 이후에도 그는 조선기독교인에게 관심을 가졌을 뿐 조선 독립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3·1운동에 조선 기독교인이 참가하여 구속당했어도 철저히 무관심했다. 그는 오로지 그리스도를 일본인과 한국인이 열심히 함께 믿어 ‘진정한’ 한일합병을 추구하자고 했고, 그런 그를 함석헌과 김교신이 열심히 따랐다.

마찬가지로 비애의 미를 한국미라고 했던 야나기 무네요시나, 한국문화를 샤머니즘으로 본 아키바 다카시 등 인문사회 과학자나 예술가를 따르는 후학들이 지금도 한국과 일본에 너무나 많다. 아니 한국에서는 그들이 해방 후는 물론 지금까지도 모든 학문과 예술 분야의 대가연하고 있어서 기가 차다.


-한국지식인들마저 추종 ‘아연’-


개화파 이후 지금까지의 친일파 중에는 이완용 등 악질적인 매국노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들도 많다. 동시에 이완용을 귀여워한 이토 히로부미만이 아니라 김옥균을 귀여워한 후쿠자와나 그 비슷한 학자, 종교인, 예술가 등이 지금까지도 한국과 일본에 너무나 많다. 친일 정치가나 관료나 군인이나 기업가들을 친일매국노라고 해서 매도하기란 쉽다. 그러나 학문과 예술과 종교의 이름으로 일제 식민지 문화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자들이나 그들이 만든 현대 한국의 학문과 예술이라는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 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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