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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故히로히토 일왕 A급전범 합사 반대-경향신문(07.08.06)

2007년 8월 6일 421

故히로히토 일왕 A급전범 합사 반대   고 히로히토(裕仁·1901~89) 일왕이 야스쿠니(靖國)신사의 A급 전범 합사는 관련국에 화근을 남길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A급 전범 합사를 정당화하고 있는 일본 우파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5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히로히토 일왕은 생전에 도쿠가와 요시히로 시종장에게 A급 전범 합사 반대의 뜻을 밝히면서 그 이유로 훗날 관련국에 화근을 남길 수 있으며, 전사자의 영혼을 위무한다는 신사의 성격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히로히토 일왕이 야스쿠니신사의 A급 전범 합사에 불쾌감을 표시했다는 사실은 그동안 자료 등을 통해 알려진 바 있으나, 구체적인 이유가 밝혀진 것은 처음이다.히로히토 일왕의 이같은 발언은 시인인 오카노 히로히코(岡野弘彦·83)가 도쿠가와의 증언을 담아 최근 펴낸 저서 ‘사계절의 노래’에서 확인됐다. 오카노에 따르면 도쿠가와는 “(일왕이)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사람들의 영혼을 위무하기 위한 것이란 (야스쿠니신사의) 성격과 맞지 않고, 또 전쟁과 관련이 있는 나라와 장래에 깊은 화근을 남길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노백린장군 84주기 추모식

2010년 1월 22일 632

노백린장군 84주기 추모식(연합뉴스, 10.01.21)

[책과 삶]100년전,통감 관저 자리 아십니까

2010년 1월 19일 439

[책과 삶]100년전,통감 관저 자리 아십니까(경향신문, 10.01.15)

[기고]일본 ‘천황’의 한국방문에 앞서

2010년 1월 19일 475

[기고]일본 ‘천황’의 한국방문에 앞서(경향신문, 10.01.15)

히로히토前일왕, 야스쿠니A급전범 합사 반대 이유 “전쟁 관련국과 깊은 화근될 것”-서울신문(07.08.05)

2007년 8월 6일 475

히로히토 前일왕, 야스쿠니 A급전범 합사 반대 이유 “전쟁 관련국과 깊은 화근될 것”   히로히토 전 일왕이 야스쿠니 신사의 A급 전범 합사와 관련,“전쟁과 관련이 있는 나라와 앞으로 깊은 화근을 남기게 될 것”이라며 합사를 경계했던 이유가 밝혀졌다고 도쿄신문이 5일 보도했다. 또 “전사자의 영혼을 달래는 신사의 성격이 변한다.”며 A급 전범의 합사에 우려도 표시했다.히로히토의 이같은 발언은 최측근이었던 고(故) 도쿠가와 요시히로 시종장이 지난 1986년 가을 왕실의 시 지도를 맡아왔던 시인인 오카노 히로히코(83)에게 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오카노는 지난해 말 출간한 저서 ‘사계의 노래’에도 히로히토 전 일왕의 이 발언을 실었다.히로히토 전 일왕이 야스쿠니신사의 A급 전범 합사에 불쾌감을 나타냈다는 사실은 도미타 도모히코 전 궁내청장관의 메모 등을 통해 알려졌으나 구체적인 이유는 지금껏 명확하지 않았었다.도쿠가와 시종장은 히로히토 전 일왕의 시에 대한 상담을 위해 오카노를 방문한 자리에서 “윗분이 A급전범 합사에 대해 반대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유는 두 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하나는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숨진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신사의) 성격과 맞지 않고, 또 하나는 전쟁과 관련이 있는 나라와 장래에 깊은 화근을 남길 우려가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는 것이다.히로히토 전 일왕은 제2차대전이 끝난 뒤 모두 8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으나 A급 전범의 합사 사실이 드러나기 전인 1975년 11월이 마지막이었다. 합사는 1978년 10월 비밀리에 이루어진 뒤 이듬해 4월 언론에 보도됐다. 현 아키히토 일왕은 즉위 이후

“히로히토, A급 전범 합사 반대”… 야스쿠니 참배 그래도 계속되나-한국일보(07.08.05)

2007년 8월 6일 379

“히로히토, A급 전범 합사 반대”… 야스쿠니 참배 그래도 계속되나 우경화가 진행되고 있는 일본에서는 과거사 문제가 쳇바퀴처럼 돌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역사교과서 문제가 시들하면 독도 문제가 부상하고, 군대위안부 문제가 잠잠해지면 야스쿠니(靖國)신사 문제가 시끄러웠다. 특히 8월은 ‘야스쿠니 문제의 달’이다. 한국 언론사의 도쿄 특파원들이 야스쿠니 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올해도 뜨거운 8월이 찾아왔다. 한 시민단체는 보수ㆍ우익 성향의 정치가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의 8ㆍ15 참배를 막아야 한다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8ㆍ15 참배 공약을 강행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전 총리와는 달리 후임인 아베 신조(安倍晋三)총리가 8ㆍ15참배를 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그렇다고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이 상황에서 침략전쟁 당시의 천황 히로히토(裕人ㆍ1901~1989)가 A급 전범의 야스쿠니 합사를 우려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4일자 도쿄신문에 따르면 그는 A급 전범의 합사에 대해 “전사자의 영령을 달래는 신사의 성격이 변질된다”“전쟁 관계국가와의 사이에 장래 깊은 화근을 남길 것”이라고 걱정했다.시종장이었던 도쿠가와 요시히로(德川義寬ㆍ작고)가 히로히토의 와카(和歌)선생이었던 오카노 히로히코(岡野弘彦ㆍ83) 시인에게 전한 천황의 ‘말씀’이었다.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7월 닛케이(日經)신문이 보도한 ‘도미다 메모’에서도 히로히토 천황의 본심이 알려졌다. 도미다 아사히코(富田朝彦ㆍ작고) 궁내청장관이 기록한 메모는 그가 A급 전범 합사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표시한 후 “그래서 나는 이후 참배하지 않았고, 그것이 내 마음”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4월 아사히(朝日)신문이 보도한 히로히토의 시종 우리베 료고(卜部亮吾ㆍ작고)의 일기에서는 ‘직접적으로는 A급전범 합사가 어의에 맞지 않았다’(2001년 7월 31일 일기)는 내용이 소개됐다.그러나 주류

진실화해위 영문책자 배포중단, ‘불편한 진실’ 담겨서?

2010년 1월 18일 370

진실화해위 영문책자 배포중단, ‘불편한 진실’ 담겨서?(민중의소리, 10.01.18)

생존 위안부 할머니 87명뿐…“해결 서둘러야”

2010년 1월 18일 494

생존 위안부 할머니 87명뿐…“해결 서둘러야”(연합뉴스, 10.01.17)

“야스쿠니 전범 합사 깊은 화근 남길 것” -한겨레신문(07.08.05)

2007년 8월 6일 382

“야스쿠니 전범 합사 깊은 화근 남길 것” 히로히토 일왕, 생전에 우려     » 원폭 희생 한국인 위령제 / 일본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한국인 위령비 앞에서 1945년 미군의 원자폭탄 투하로 숨진 한국인들을 위한 추모식이 5일 열리고 있다. 추모식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 62돌(7일)을 앞두고 열렸다. 히로시마/AFP 연합     히로히토(연호 쇼와, 1901~1989) 전 일왕이 야스쿠니 신사에 A급 전범이 합사된 데 대해 “전사자의 영혼을 위무한다는 신사의 성격이 변한다” “전쟁과 관련이 있는 나라와 향후 깊은 화근을 남기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고 〈도쿄신문〉 등 일본언론이 4일 보도했다.히로히토 전 일왕의 이런 우려는 일본 고유 정형시인 ‘와카’ 시인인 오카노 히로히코(83)의 저서 〈사계의 노래〉를 통해 공개됐다. 그는 지난 1986년 가을께 친분이 있던 도쿠가와 시종장이 히로히토의 와카 작품에 대한 상담을 위해 자신을 방문한 자리에서 히로히토의 우려를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히로히토의 최측근이었던 도쿠가와는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히로히토의 우울함을 표현한 와카의 한 대목을 언급하며 “전하가 A급전범 합사에 대해 반대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신다. 이유는 두가지”라고 말했다. 도쿠가와는 이어 “하나는 나라를 위해 전투에 임했다 전사한 사람들의 영령을 위무하기 위한 것이란 (야스쿠니 신사의) 성격이 변하게 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전쟁과 관련이 있는 나라와 장래에 깊은 화근을 남길 우려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히로히토는 모두 8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으나 A급 전범 합사 사실이 드러난 뒤에는 참배를 중단했다.

모 경제인과 일본군 위안부-노컷뉴스(07.08.02)

2007년 8월 3일 338

모 경제인과 일본군 위안부 미국 의회는 청산 해야 할 과거는 결코 묻어두고 지나갈 수 없다는 결의를 했다.반면 한국의 모 경제단체 회장은 대선 예비후보의 검증 논란에 대해 “옛날 일을 자꾸 들추어내면 답이 없다”면서 과거의 비리를 덮어두자는 식의 주장을 했다. 이런 발상은 기득권층 보수주의자들의 일반적 생각인 듯하다.예를 들면 친일파 청산작업을 추진할 때 그들은 “과거를 들추어 뭘 하냐, 미래를 생각하기도 바쁜데”라며 반대했다. 5·18광주 학살 사건 진상 조사가 시작될 때도 “지나간 일은 용서하고 화합해야만 국가가 발전한다. 분란을 조장하지 말라”며 거부의사를 폈다.국가도 마찬가지다. 신생 대한민국에 비하면 일본은 과거의 지배와 착취로 거대한 기득권을 소유한 보수지배 국수주의 국가다. 그들에게 들추어내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다면 전쟁범죄와 일본군 위안부의 만행 등일 것이다.그중 일본군 위안부는 아마 가장 들추어내기 싫은 과거사일 것이다. 2005년 11월 26일 아소 다로 일본 외상은 한 강연에서 신사참배와 위안부를 문제 삼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서 한국과 중국뿐이어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깔아 뭉개버리려고 했던 것 같았다.그런데 그로부터 2년도 안되어 미국 의회에서 일본정부를 규탄하는 위안부 문제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과거사를 들추어 내지 않으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 했어도 역사의 심판 앞에서는 불가항력이었다. 일본은 망신과 수치를 당하고 크게 상처를 입은 후에야 끝내는 제자리에 돌아오게 되었다.역사가 두려운 줄 안다면 신사참배와 교과서 왜곡에 대한 과거사도 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