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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8월15일 야스쿠니 참배 보류”-연합뉴스(07.08.07)
“아베, 8월15일 야스쿠니 참배 보류”<도쿄신문> (도쿄=연합뉴스) 이홍기 특파원 = 참의원 선거 대참패로 궁지에 몰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종전기념일인 오는 15일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보류하기로 했다고 도쿄(東京)신문이 7일 보도했다.아베 총리는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 관계 악화가 우려되는데다 지난달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여당의 참패로 정권 기반이 취약해짐에 따라 더이상의 정국혼란을 피하기 위해 야스쿠니 참배를 하지않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신문은 전했다.전임자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는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밝힌 공약을 이행한다는 명분 등을 내세워 작년 종전기념일에 취임후 처음으로 야스쿠니참배를 강행, 한중 양국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했었다.고이즈미 전총리는 취임후 재작년까지도 한중 양국의 반대를 무시하고 매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 정상외교가 단절되는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크게 악화시켰었다.아베 총리는 지금까지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지지해 왔으며, 자신도 관방장관이던 지난해 4월 야스쿠니를 비밀리에 참배한 바 있다. 그러나 총리 취임후에는 한.중 양국에 대한 배려로 참배를 자제해왔다.아베 총리는 자신의 야스쿠니 참배 여부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한다는 방침을 견지하고 있어 종전기념일 이후인 10월 17일부터 20일까지의 가을 대제기간 등을 이용해 참배할 것인지 여부도 불투명하다고 신문은 전했다.
[정동 초대석]96세 독립군 김형석 장군-뉴스메이커(07.08.09)
[정동 초대석]96세 독립군 김형석 장군 “독립군 잡으러 다니던 사람들 아직도 득세” 중국 인민대회당(우리의 국회에 해당)에서 받은 서호를 들어 보이는 김형석 장군. 그는 “친일행위가 밝혀지면 3대를 멸한 중국과 비교해 우리 사회의 일제 잔재 청산은 정말 형 편없다” 고 비판했다. “人生如滄海一粟 受盡苦難餘生矣망망대해에 좁쌀 같은 인생이지만 갖은 고생을 다하고 남은 인생이라一寸丹心報國 兩行淚爲思親일편단심 나라를 위하면서도 가족 생각에 눈물로 세월을 보냈네.一身報國有萬死 雙 向人無再靑나라를 위해 만 번 죽어도 할말 있나, 백발이 되었으니 다시 젊어질 수 없구나.人生自古誰無死 留取丹心照汗靑예부터 누구나 다 죽는다, 영구히 역사에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1912년생, 96세의 독립군은 느리지만 또렷하게 읊조렸다. 유년시절, 식민지 조국을 떠나 중국에서 항일전투를 펼치며 살아온 시절, 그 안에서 뿔뿔이 흩어져 여태껏 생사조차 알 길이 없는 가족들에 대한 연민이 눈가에 이슬로 맺혔다. 독립군 김형석 장군. 그는 평북 철산(鐵山) 출신으로, 1918년 독립운동에 뜻을 둔 부친을 따라 중국 동북 지방으로 이주해 봉천성 허용현에서 독립군이 창설한 학교에 다니다가 일본군의 만주 침공을 피해 중국 각지를 전전했다. “1919년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시어 생계를 위해 중국인 집에 저관(猪管, 돼지몰이)으로 들어갈 정도로 어려운 유년시절이었다”는 김 장군은 이후 중국 장개석 휘하의 국부군에서 고급장교로 복무하면서 항일투쟁과 독립군을 지원하였으며 국부군에서 한국인 고 김홍일 장군에 이어 두 번째로 장군에 진급했다. 1944년 대령으로 강소성 제3전구 사령관으로 있을 때는 독립군 제15지 대장을 겸임하면서 독립군을 적극 지원했다. “가족과
[안중근 항일르포]이토 히로부미 저격장소 안내판도 없어-세계일보(07.08.06)
[안중근 항일르포]이토 히로부미 저격장소 안내판도 없어 安의사 수감됐던 독방 안중근 의사가 수감생활을 했던 독방. 내부에는 안 의사가 사용 했던 필기구와 책상, 침구 등이 정리돼 있다. 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 조선총독부 초대 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일본 추밀원(樞密院) 의장을 태운 특별열차가 하얼빈역에 도착했다.열차에서 내린 이토는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프체프의 안내로 의장대를 사열하며 걸어가고 있었다.안중근 의사는 이토가 자신의 앞을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권총 방아쇠를 7차례 당겼다.이토를 향해 3발을 쏴 명중시켰고,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俊彦) 등을 향해 4발을 쐈다.안 의사는 그 자리에 서서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를 세 차례 외친 뒤 달려드는 러시아 헌병에게 순순히 붙잡혔다.안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 한국을 떠난 탐방대는 열흘간의 일정 중 6일째 되는 날 하얼빈역 의거 현장에 도착했다.야간열차로 밤새 달려 하얼빈역에 도착한 탐방대는 기차에서 내려 플랫폼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갑자기 멈춰섰다.이곳이 주변과 다른 것이라고는 바닥에 삼각형과 사각형의 작은 표시가 있다는 것뿐 어떤 안내판조차 설치돼 있지 않았다.하지만 이곳이 바로 안 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역사의 현장이다.삼각형은 안 의사가 총을 쏜 지점이고, 사각형은 이토가 총을 맞고 쓰러진 자리라는 설명이다. 이 작은 표시 2개가 역사의 현장임을 알려주는 유일한 단서인 셈이다.탐방대원들은 역사적인 의거 현장이 설명도 없이 고작 삼각형과 사각형으로만 표시된 것도 바로 지난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안중근, 하얼빈에서의 11일’의 저자인 서명훈(77) 전 하얼빈시 민족종교사무국 부국장은 “플랫폼의
[정동 초대석]96세 독립군 김형석 장군-뉴스메이커(07.08.09)
[정동 초대석]96세 독립군 김형석 장군 “독립군 잡으러 다니던 사람들 아직도 득세” 중국 인민대회당(우리의 국회에 해당)에서 받은 서호를 들어 보이는 김형석 장군. 그는 “친일행위가 밝혀지면 3대를 멸한 중국과 비교해 우리 사회의 일제 잔재 청산은 정말 형 편없다” 고 비판했다. “人生如滄海一粟 受盡苦難餘生矣망망대해에 좁쌀 같은 인생이지만 갖은 고생을 다하고 남은 인생이라一寸丹心報國 兩行淚爲思親일편단심 나라를 위하면서도 가족 생각에 눈물로 세월을 보냈네.一身報國有萬死 雙 向人無再靑나라를 위해 만 번 죽어도 할말 있나, 백발이 되었으니 다시 젊어질 수 없구나.人生自古誰無死 留取丹心照汗靑예부터 누구나 다 죽는다, 영구히 역사에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1912년생, 96세의 독립군은 느리지만 또렷하게 읊조렸다. 유년시절, 식민지 조국을 떠나 중국에서 항일전투를 펼치며 살아온 시절, 그 안에서 뿔뿔이 흩어져 여태껏 생사조차 알 길이 없는 가족들에 대한 연민이 눈가에 이슬로 맺혔다. 독립군 김형석 장군. 그는 평북 철산(鐵山) 출신으로, 1918년 독립운동에 뜻을 둔 부친을 따라 중국 동북 지방으로 이주해 봉천성 허용현에서 독립군이 창설한 학교에 다니다가 일본군의 만주 침공을 피해 중국 각지를 전전했다. “1919년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시어 생계를 위해 중국인 집에 저관(猪管, 돼지몰이)으로 들어갈 정도로 어려운 유년시절이었다”는 김 장군은 이후 중국 장개석 휘하의 국부군에서 고급장교로 복무하면서 항일투쟁과 독립군을 지원하였으며 국부군에서 한국인 고 김홍일 장군에 이어 두 번째로 장군에 진급했다. 1944년 대령으로 강소성 제3전구 사령관으로 있을 때는 독립군 제15지 대장을 겸임하면서 독립군을 적극 지원했다. “가족과
『친일인명사전』초판 1쇄 매진, 2쇄 작업 중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여러분과 시민들의 호응에 힘입어『친일인명사전』초판 1쇄 전질이 매진되었습니다. 예상 밖의 주문량으로 인해 완납자와 도서관, 서점 출고분을 우선적으로 발송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친일인명사전 ‘뜨거운 반응’ 초판 매진에 2쇄 추진(경향신문, 10.01.12) 현재 2쇄 작업이 진행 중이며, 2월 중순 제작이 완료될 예정이오니 예약하신 회원님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2쇄가 나오는 대로 연락드리고 발송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부평구 신문’ 촬영기자 성기창씨…일제 건물 카메라에 담아
‘부평구 신문’ 촬영기자 성기창씨…일제 건물 카메라에 담아(경향신문, 10.01.22)
‘강점기 비췄던 민족교육의 횃불’
‘강점기 비췄던 민족교육의 횃불’(한겨레신문, 10.01.18)
미쓰비시, 집회신고서 선점…비난 ‘비등’
미쓰비시, 집회신고서 선점…비난 ‘비등’(프라임경제, 10.01.20)
“정권교체때 기록 파기는 일제 관행”-경향신문(07.08.06)
“정권교체때 기록 파기는 일제 관행” “일제 식민지 아래에서의 비밀기록 관리는 비밀기록이 가질 수 있는 폐해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예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관행이 최근까지도 이어져 왔다는 것이죠.” 자신의 직업을 ‘아키비스트(archivist)’라고 소개하는 박성진씨(46)와 이승일씨(37)는 지난 5일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최근 ‘조선총독부 공문서-일제시기 기록관리와 식민지배’(역사비평사)라는 책을 펴냈다. 일제 식민지 역사 전공자로 박사학위를 받은 두 사람은 각각 국가기록원과 국회기록보존소에 근무하며 틈틈이 책을 썼다. 이들은 식민지기 조선총독부 공문서의 변천 과정과 양식, 분류방식 등을 고찰하면서 일제시기 확립된 공공기록 관리방식이 해방 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줬다. 대표적인 것이 비밀기록 관리다. 비밀기록 부분 집필을 맡은 박씨는 “현재 일제시기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에게 의미가 있는 주요 기록물은 표지 앞장에 ‘비(비)’ ‘극비(극비)’ ‘엄비(嚴비)’ 등이 표기된 비밀문서들이지만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박씨에 따르면 일제의 경찰조직인 경무국을 중심으로 한 비밀문서 관리체계는 비밀 기준을 ‘기밀을 요하는 것’ ‘당연히 기밀로 해야 할 사항’ 등으로 모호하게 규정해 기록물 생산자의 자의적 판단에 맡겨두는 식이었다. 주로 일본 본국에서 보내온 식민지 조선 통치 정책 내용이나 지방경찰의 보안과, 고등경찰과 등에서 경무국에 보고한 식민지민들의 동향들이 그 대상이 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전모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국가기록원에서 근무하는 박성진씨(오른쪽)와 국회기록보존소에서 근무하는 이승일씨. 두 사람은 기록을 생산하고 평가, 보존, 활용하는 ‘아키비스트’다. /이상훈기자 기록의 생산만큼이나 폐기 역시 자의적으로 이뤄졌다. ‘비밀기록물은 소각할 것’이라는
[기고] 광복 62주년을 맞아-매일신문(07.08.09)
[기고] 광복 62주년을 맞아 오는 8월 15일은 제62주년 광복절이다.광복절은 1945년 8월15일 일제의 치하에서 국권을 되찾은 것을 경축하기 위한 국경일로, 1949년 10월 1일 제정된’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8월 15일을 ‘광복절’로 정하였다.光復(광복)이란 말 그대로 ‘빛이 되돌아왔다’라는 의미로 암흑과 질곡의 일제 치하에서 우리 민족의 국운과 희망을 되찾은 날이다. 일제 하의 35년을 돌아보면 우리나라처럼 오랜 세월동안 한결같이 제국주의와 강대국의 무력침략에 맞서 거부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한 나라도 흔치 않다.그 이면에는 자신의 안위는 물론 가족까지 뒤로한 채 오직 내 한 몸 기꺼이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치고자 했던 선열들의 숭고한 나라사랑정신이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지금 우리에게는 이러한 나라사랑정신을 널리 선양하여 이 정신이 선진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국민정신의 핵심가치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하겠다. 이를 위해 국가보훈처에서는 보훈선양사업을 적극 추진해나가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선열들을 고국의 품에서 편안히 안식할 수 있도록 유해봉환사업과, 광복 이후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에 휘말려 독립운동사의 상당부분이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틀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이념의 굴레를 벗고 독립운동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또한’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등의 제정을 통해 민족정기를 되살리는 운동이 꾸준히 추진되고 있다.우리주변에서 흔하지 않게 들려오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왜곡사건, 중국의 東北工程(동북공정)이라는 가당찮은 행위들은 과거의 역사조차 외면하는 강대국의 반성하지 않는 파렴치한 소치라고 볼 수 있으며,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나라사랑정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