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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한·일 100년 대기획] (11) 고노 요헤이 일본 중의원 前의장 특별인터뷰

2010년 3월 12일 333

[한·일 100년 대기획] (11) 고노 요헤이 일본 중의원 前의장 특별인터뷰(서울신문, 10.03.10)

[인터뷰] 강상중 교수 “한국, 조선인 문제 반성 필요”

2010년 3월 12일 329

[인터뷰] 강상중 교수 “한국, 조선인 문제 반성 필요”(아시아투데이, 10.03.09)

친일파 재산환수위 을사오적 등 400명 가계도 파악 ‘주력’-경향신문(06.09.18)

2006년 9월 27일 506

친일파 재산환수위 을사오적 등 400명 가계도 파악 ‘주력’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이하 재산조사위)가 문을 연 지 18일로 한달째를 맞았다.재산조사위의 지금까지 결과물은 친일반민족행위자 6명의 토지 총 34만1천8백97㎡에 대해 ‘조사 개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지난 8일까지 3차례의 전원위원회를 통해 나온 결정이며, 아직까지 친일파 후손들의 이의신청은 없었다.오는 22일 제4차 전원위원회를 통해 새로운 인물 및 재산에 대한 ‘조사 개시 결정’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현재 재산조사위는 ‘을사오적’과 ‘정미칠적’ 중심의 친일파 400여명을 조사 중이며, 이들 후손의 가계도를 파악하는 데 가장 주력하고 있다.그러나 조사활동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가계도만 조사하는 데도 당시 친일파들은 주민등록번호가 없기 때문에 족보나 제적·호적 등을 일일이 대조한 뒤에야 확정할 수 있어 어려움이 많다.출범 당시 조사항목 중 하나였던 ‘일본인 명의의 토지’나 400명 직권조사 대상 이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자료조사 차원에 머물고 있다. 1주일에 1~2건 정도 일반인들의 제보가 들어오기도 하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재산조사위가 문을 연 지는 한 달이 됐지만 별정직 공무원 등을 채용한 지는 이제 겨우 1주일째다. 자체 공무원 등 51명의 임명식을 지난 11일에야 마쳤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50여명 되지만 조사인력도 더 충원해야 할 상황이고 아직 부서 정리가 채 되지 않았다.법적으로 미비된 측면도 재산조사위를 어렵게 하는 부분 중 하나이다. 현재 부당이득 환수를 위한 공소시효는 10년이다. 상당수 친일재산이 제3자에게 매각됐다는 경향신문 보도와 관련, 부당이득 반환 청구에 대한 추가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조사위 입장이다.재산조사위

징게 맹갱 외에밋들 김제 전시회

2006년 9월 27일 632

    뉴시스 박대성 기자   전북 김제시와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이 공동주최하고 김제시 아리랑문학관과 (사)민족문제연구소가 공동주관한 특별전 ‘징게 맹갱 외에밋들’(부제 : 조정래의 아리랑과 식민지 조선인의 삶)이 서울전시를 성황리 마치고 내달 2일부터 1개월간 김제 아리랑문학관에 전시된다.   ▲ 소설 ‘아리랑’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관련기사  일제 강점기 ‘민초들 삶’ 생생히(한겨레신문, 06.09.28)   전시회의 제목이 된 ‘징게 맹갱 외에밋들’은 ‘김제.만경 너른 들’을 뜻하는 지역말로 누대로 민족의 쌀창고 역할을 해왔던 호남벌의 대표적 평야 징게맹갱 외에밋들과 그 땅의 사람들이 일제당국의 철저한 경제·문화적 수탈 속에서 어떤 선택과 대응으로 살아가는지를 역사적 사건들과 함께 그려냈다. 소설 아리랑은 쌀수탈을 시작으로 온갖 물산의 수탈, 역사와 전통에 대한 유린과 그 모든 경제.문화적 수탈 위에 인간사냥에 가까운 강제징용.징병, 검은댕기의 어린 소녀들까지 끌려가야했던 아픈 역사가고스란히 응축돼 있다.이번 특별전시는 문학텍스트 아리랑을 전시자료로 재현하기 위해 다양한 실물자료(농촌지도자를 꿈꾼 청년의 일기, 추억을 담은 졸업앨범, 교과서에 쓴 낙서, 무수히 자행된 학살 기록사진, 징용.징병 피해자들이 남긴 유품, 일제 시정선전 자료 등) 및 설치미술, 캐릭터 구성, 아리랑의 연대를 따라 재구성된 패널 및 영상 등을 통해 구성됐다.<뉴시스, 06.09.27>

하토야마 , 지지율 급락…총리 생명 건 초강수

2010년 3월 12일 344

하토야마 , 지지율 급락…총리 생명 건 초강수(아시아투데이, 10.03.08)

하토야마, 뿔난 한국 달래기?

2010년 3월 12일 308

하토야마, 뿔난 한국 달래기?(아시아투데이, 10.03.08)

[사설] 빼돌린 친일파 재산 남김없이 환수해야-경향신문(06.09.11)

2006년 9월 27일 438

[사설] 빼돌린 친일파 재산 남김없이 환수해야     서울 종로구 운니동 일본문화원 건물의 소유주는 거물급 친일파 조중응의 손녀인 조모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모 주식회사이다. 제국주의 일본은 국권 찬탈에 협조한 대가로 조중응에게 엄청난 재산을 주고, 현재의 일본 정부는 조중응의 후손에게 임대료를 주고 있는 기막힌 아이러니가 대를 이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일본문화원 건물은 친일파 재산환수의 대상이 아니다. 조씨가 조부로부터 직접 상속 받은 재산이 아닌 데다 소유주도 조씨 개인이 아닌 주식회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친일 민족반역자 후손들의 상당수가 제3자에게 재산을 매각한 뒤 일본 등지에 귀화하거나 해외이민을 떠났다고 한다. 경향신문 보도(2006년 9월11일자 8면)에 따르면 조중응의 후손들은 조중응이 을사늑약에 찬성한 대가로 일제에 받은 경기 남양주시 70여만㎡ 토지를 제3자에게 매각한 뒤 모두 일본으로 귀화했고, 국내에는 손녀 조씨만 남아 있다는 소식이다. 또 중추원 참의 등을 지낸 정교원의 후손들은 정교원이 전국 각지에 소유했던 토지와 임야를 매각한 뒤 양도소득세도 내지 않고 미국 이민을 떠났으며, 중추원 의장을 지낸 민영휘의 증손자 민모씨는 ‘겨울연가’ 촬영지로 잘 알려진 춘천 남이섬을 주식회사 명의로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우리가 여러 차례 강조했거니와 친일 민족반역자들이 매국의 대가로 받은 재산은 일종의 ‘장물(贓物)’이다. 그것이 원래 상태로 있건, 양도 등으로 형태가 바뀌었건 간에 반드시 원래 소유주인 국가와 국민에게 되돌아와야 한다. 따라서 친일파 후손들이 토지를 처분했을 경우 고의성(故意性)을 철저히 밝혀내야 하며, 그 연결고리의 규명이 어려울 경우 부당이득

“풀뿌리 역사 50년 파헤쳐도 목말라”-부산일보(06.09.19)

2006년 9월 27일 483

“풀뿌리 역사 50년 파헤쳐도 목말라”     ■ 진해 지역 연구서 12권 발간한 향토사학자 황정덕 옹  한 우물을 판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도 ‘지역’을 우물 삼아 판다는 것은 더욱 그렇다. 돈이나 명예와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지역사를 장장 50년 동안 내리 팠다. 황정덕(79)씨는 경남 진해의 향토사학자다. 그의 말을 빌리면 ‘진해·웅천향토문화연구회’ 향토사학자다. 웅천이라는 옛 지명이 굳이 들어간 것은 일제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라고 했다. “바다(海)를 진압(鎭)하겠다는 일제의 욕심이 진해(鎭海)라는 지명에 담겨 있죠. 고유 명칭은 ‘웅천’입니다.” 그는 지난 1985년 ‘진해향토문화연구소’를 개설했다. 학교장 퇴임 직후다. 물론 지역사 연구는 훨씬 이전인 30대 때부터 시작했다. 부산에서 첫 교편을 잡아 1956년 진해여고로 옮겨온 뒤부터라고 했다. 진해는 4대째 살아온 그의 고향이었다. “국토와 국사만큼 향토와 지역사에 대해 궁금했죠.” 그는 당시 국어와 역사를 담당했다. 하지만 당시만해도 책자는 물론 자료조차 흔하지 않았다. 그의 ‘광적인’ 자료수집은 이런 배경에서 시작됐다. 닥치는 대로 모으고 분류했다. 정리된 분야는 책으로 펴냈다. ‘내 고장 사적순례(1966)’는 그때 출간됐다. 하지만 본격적인 자료 조사와 저술은 학교장 퇴임 전후에 이뤄졌다.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 때였죠.” 토요일 밤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하루종일 국립중앙도서관에 머물다 일요일 밤차로 내려왔다. 그런 일이 몇 년 동안 반복됐다. 서울대 규장각과 국사편찬위원회,대학 도서관,신문사,법원,헌병대,경찰서 등도 찾아다녔다. 중앙사에서 지역사를 따로 떼내는 ‘지루한’ 작업의 연속이었다. 작은 실마리를 따라 사람을 수소문하고 발언을

100년전 그 때의 절망처럼…그 곳엔 아직 망국의 恨이…

2010년 3월 12일 414

100년전 그 때의 절망처럼…그 곳엔 아직 망국의 恨이…(한국경제, 10.03.05)

일제 식민정책의 본질 파헤쳐

2010년 3월 12일 341

일제 식민정책의 본질 파헤쳐(세계일보, 10.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