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역사 50년 파헤쳐도 목말라”

■ 진해 지역 연구서 12권 발간한 향토사학자 황정덕 옹
한 우물을 판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도 ‘지역’을 우물 삼아 판다는 것은 더욱 그렇다. 돈이나 명예와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지역사를 장장 50년 동안 내리 팠다.
황정덕(79)씨는 경남 진해의 향토사학자다. 그의 말을 빌리면 ‘진해·웅천향토문화연구회’ 향토사학자다. 웅천이라는 옛 지명이 굳이 들어간 것은 일제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라고 했다. “바다(海)를 진압(鎭)하겠다는 일제의 욕심이 진해(鎭海)라는 지명에 담겨 있죠. 고유 명칭은 ‘웅천’입니다.”
그는 지난 1985년 ‘진해향토문화연구소’를 개설했다. 학교장 퇴임 직후다. 물론 지역사 연구는 훨씬 이전인 30대 때부터 시작했다. 부산에서 첫 교편을 잡아 1956년 진해여고로 옮겨온 뒤부터라고 했다. 진해는 4대째 살아온 그의 고향이었다.
“국토와 국사만큼 향토와 지역사에 대해 궁금했죠.” 그는 당시 국어와 역사를 담당했다. 하지만 당시만해도 책자는 물론 자료조차 흔하지 않았다. 그의 ‘광적인’ 자료수집은 이런 배경에서 시작됐다. 닥치는 대로 모으고 분류했다. 정리된 분야는 책으로 펴냈다. ‘내 고장 사적순례(1966)’는 그때 출간됐다. 하지만 본격적인 자료 조사와 저술은 학교장 퇴임 전후에 이뤄졌다.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 때였죠.” 토요일 밤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하루종일 국립중앙도서관에 머물다 일요일 밤차로 내려왔다. 그런 일이 몇 년 동안 반복됐다. 서울대 규장각과 국사편찬위원회,대학 도서관,신문사,법원,헌병대,경찰서 등도 찾아다녔다.
중앙사에서 지역사를 따로 떼내는 ‘지루한’ 작업의 연속이었다. 작은 실마리를 따라 사람을 수소문하고 발언을 채록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일본 출장도 당연히 잦았다. 진해와 관련된 자료가 있다는 소문만 들리면 무작정 찾아나섰다. “군사재판 자료는 국내에서 찾기가 어려웠죠. 일제가 패전과 함께 다 불태웠거든….”
‘진해시사(1987)’ ‘국역 웅천현 읍지(1993)’ ‘이야기 진해사(1997)’ ‘진해의 문화유적(1998)’ ‘진해의 땅이름 이야기(2000)’ ‘진해의 민속(2001)’ ‘진해지역 항일독립운동사(2004)’ 등의 책이 그런 과정을 거쳤다. 지난해에는 ‘충무공 이순신과 우리 고장’을 펴냈다. 올해도 지난 13일 증보판 성격의 ‘진해·웅천의 지리지(2006)’를 엮었다. 그렇게 출판된 지역 관련 책이 지금까지 12권이나 됐다.
‘진해지역 독립운동사’를 통해서는 자칫 묻힐 뻔했던 19명의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를 발굴했다. 이 중 7명은 그가 직접 공적서류를 꾸며 국가 포상까지 이끌어냈다. 그 공로로 국가보훈처장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그는 하지만 “감사패가 달갑지 않다”고 했다. “나라와 지역을 위해 목숨을 걸고도 국가 인정을 못 받은 인사가 아직 수두룩합니다.” 감사패를 줄 여유가 있으면 국가가 자료 발굴에 더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그는 당부했다. 독립유공자 유족들의 힘든 삶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최근 한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독립유공자 후손 10명 중 8명이 고졸 이하의 학력자이고 이들 중 6명은 ‘하층 생활’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이 아니더라도 충성의 대가는 참담했다.
수십년간 경계없이 자료를 수집하다보니 희귀자료를 접하는 경우도 있었다. 1912년 일본이 작성한 ‘군항 진해 대시가 계획도’는 그중의 하나였다. “계획도를 보니 이완용과 송병준,이하영,윤덕영,민병석 등 5명의 매국노 별장 부지가 표기돼 있더군요.” 이 계획은 결국 일본군부 사정으로 무산됐지만 자칫 진해에 매국노 별장이 들어설 뻔했다고 그는 분개했다.
“지역사는 국사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우리 삶의 뿌리나 다름없죠.” 지역사가 건전해야 국사가 강해질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소외되고 폄하된 지역사가 아닌 삶의 주체로서 연구가 필요한 이유도 그렇다고 했다. 그는 사무실이자 집인 진해의 작은 아파트에서 아내와 단 둘이 살고 있다. 하지만 아파트는 옛 자료와 지도,서적,복사기 등에 공간을 빼앗긴지 오래된 듯했다. 눅눅했다. 아니 향기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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