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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못 다 이룬 독립의 꿈, 반민특위 위원장 김상덕

2004년 11월 7일 1131

“못 다 이룬 독립의 꿈” – 반민특위 위원장 김상덕방송일 : 11월 12일(금) 22:00~23:00 /KBS 1TV연출 : 김정중PD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김상덕반민특위 위원장 김상덕. 그는 1919년 일본 유학생 시절 2·8 독립선언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였다. 이 일로 옥고를 치르고 그는 바로 중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김상덕은 1944년 임시정부의 문화부장으로 선출되어 독립운동을 하던 중 해방을 맞는다. 1948년 제헌국회 때 고향인 경북 고령에서 출마해 국회의원이 되었다, 1949년 1월, 반민특위가 구성되었고 친일파의 처단은 새로운 국가 건설에 반드시 거쳐가야 할 과정이었다. 김상덕은 반민특위의 위원장으로 선출돼 해방 직후 민족의 과제였던 친일 청산의 과업을 진두지휘하게 된다. 반민특위의 수난과 좌절반민특위는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을 시작으로 친일 문학인 이광수, 33인의 한 사람 최린의 체포 등 여론의 주목을 받으며 역사적 과제를 이루어나간다. 하지만 반민특위의 앞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친일파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특위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으며, 국무회의에서 체포된 친일파의 석방을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반민특위 위원장인 김상덕의 관사를 방문해 직접적인 관여를 하기도 했다.색깔 공세도 이어졌다. 친일세력은 공산당과 싸우는 투사로 변신했다. 반공투사인 자신들을 잡아넣는 반민특위는 공산당이라는 논리로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친일청산에 적극적이던 소장의원들이 체포되는 상황도 연출된다.무산 되어버린 친일파 청산친일 경찰 노덕술의 체포는 반민특위의 험난한 앞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를 체포하고 고문앞장 섰던 친일경찰은 미군정을 등에

임종국 선생 뜻 받들어 친일 청산 실현

2004년 11월 6일 1043

        윤평호(뮈토스) 기자          ▲ 정철용 반민특위 조사관이 추모식에 참석, 친일청산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2004 윤평호   친일파의 실체를 규명, 친일청산의 학문적 기초를 다진 고 임종국 선생 15주기 추모식이 6일 충남 천안에서 열렸다.최근 친일청산에 대한 높은 사회적 관심을 반영하듯 추모제에는 어느 해보다 많은 지인들과 인사들이 참석, 선생의 업적과 정신을 떠올리며 친일청산의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추모식은 지난 89년 11월 오랜 지병과의 싸움 끝에 타계한 선생이 잠들어 있는 천안시 광덕면 천안공원묘원 내 무학지구 철쭉 4-1 묘역에서 열렸다.추모식을 주최한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와 천안민주단체협의회(의장 김치철) 관계자들 및 선생의 유족, 지인들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후 2시에 시작한 추모식은 쾌청한 늦가을 날씨 속에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의 사회로 1시간 가량 진행됐다.“최근 친일청산운동 상징하듯 날씨도 맑아”   ▲ 추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2004 윤평호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인사말을 통해 “예년에는 추모식을 할 때면 비가 오거나 날씨가 매우 추웠다”며 “오늘은 최근 친일청산운동을 상징하듯 날씨도 맑다”고 말했다. “추모식 준비가 갈수록 잘되고 참석인원도 늘고 있다. 추모식이 잘 될수록 친일파 청산도 그만큼 잘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 저나 여기 오신 여러분이나 선생을 존경하는 마음은 조금도 기울지 않다. 그 마음이 전 국민에 뿌리내려 친일파 청산이 올바르게 되도록 힘쓰자.”임헌영 소장의 인사말이 끝난

한.일학계 “日 무력으로 한국병합 단행”(종합)

2010년 10월 22일 314

한.일학계 “日 무력으로 한국병합 단행”(종합)(연합뉴스, 10.10.22)

한·일 학계 “日, 무력동원해 韓 강제병합”

2010년 10월 22일 312

한·일 학계 “日, 무력동원해 韓 강제병합”(아주경제, 10.10.22)

“친일문인 추념 편지쓰기 국고 환수해야”

2004년 11월 6일 1553

      윤성효(cjnews) 기자    ▲ 친일청산시민행동연대는 5일 경남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청마 추념 편지쓰기대회’에 대한 국고 지원금 환수를 촉구했다. ⓒ2004 오마이뉴스 윤성효 문화관광부가 국고를 지원한 지역 문학행사에 친일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을 기리는 행사가 되지 않도록 시정요구했지만, 지역 문인단체가 시정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보여 시민단체가 국고 환수를 촉구하고 나섰다.논란이 되고 있는 행사는 ‘청마추념 편지쓰기대회’다. 이 행사는 통영문협과 통영시가 문화관광부로부터 국고 400만원을 지원받아 지난 2일 통영에서 열렸다.통영문협은 “한국 시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대시인 청마 유치환 선생님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현대 문명 속에 차츰 잊혀져 가는 편지에 대한 그리움을 일깨우기 위해 개최한다”고 밝혔다. ▲ ‘청마 추념 편지쓰기대회’ 안내 팸플릿. ⓒ2004 오마이뉴스 윤성효이같은 행사 소식이 알려지자 친일청산시민행동연대(준)와 전교조 경남지부 등에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친일 인물을 추념하는 편지쓰기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이에 문화관광부는 통영시에 공문을 보내 “청마추념편지쓰기대회는 당초의 계획과는 다르니 특정인을 추념하는 행사에 국고 지원금을 사용하지 말라”고 시정요구했다.그런데 행사는 당초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지역신문 등에 ‘청마추념편지쓰기대회’라는 제목으로 광고를 내기도 했으며, 행사 명칭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다. 또 팸플릿도 ‘문학강연 & 청마 추념편지쓰기대회’라 했으며, 행사 내용도 대부분 유치환을 기리는 편지쓰기였다.편지쓰기는 지역 초·중·고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유치환의 친일 혐의를 부인한 인하대 홍정선 교수의 강연을 들은 뒤 열렸다. 통영문협은 국민일보 문일 기획취재부장이 쓴 ‘데스크칼럼 : 죽은 시인의 비애’를 관련 자료로 나눠주기도

1장 팔릴때마다 50~60원 기부

2004년 11월 4일 677

나눔실천 음반기획사 ‘에그뮤직’인디밴드 ‘잔향’도 동참 박경훈 에그뮤직 대표(앞줄 왼쪽)는 지난해 10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음반기획사를 차렸다. 회사를 만든 뒤 처음 사업계획을 세우면서 나눔을 주요한 사업의 하나로 정했다. 음반이 1장 판매될 때마다 50원씩, 수입음반의 경우 장당 60원씩을 민족문제연구소와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그는 3년동안 직장에 다닐 때도 민족문제연구소에 다달이 3만원씩 기부를 해왔다.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관심이 있어서다. 유니세프는 대학때부터 후원을 해왔다고 한다. 박 대표는 젊어서부터 음반기획자를 꿈꿨다. 여느 사람처럼 샐러리맨이 됐지만 그 꿈은 도리어 더 강해졌다. 퇴근 뒤부터 관련 지식을 배우는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서울재즈아카데미에서 6개월동안 뮤직 비즈니스 과정을 들었다. 그가 처음 만든 앨범에 참여한 인디밴드 ‘잔향’은 이곳을 다닐 때 인연을 맺은 이들이다. 졸업작품을 고민하던 그는 ‘잔향’을 만난 뒤 아예 졸업작품을 창립 기획 앨범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만큼 ‘잔향’의 음악성에 끌렸다. 지금까지 나온 음반은 창립 앨범 1개밖에 없다. 전파는 자주 탔지만 많이 팔리지는 않았다. 당초 예상한 만큼의 나눔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박 대표는 11월부터 출시되는 수입음반의 판매에 기대를 걸고 있다. 11월부터 미국의 그룹 ‘알란 파슨즈 프로젝트’의 앨범을 발매할 계획이며 영국의 기타리스트 존 메이얼의 70살 생일 기념 라이브 앨범도 준비중이다. 프랑스 재즈밴드 마종의 음반과 누구나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라운지 음악을 담은 음반도 6장 정도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박 대표의 나눔을 듣고

경술국치100년 박경훈 개인전, ‘알뜨르서 아시아를 보다’

2010년 10월 22일 378

경술국치100년 박경훈 개인전, ‘알뜨르서 아시아를 보다’(제주의소리, 10.10.22)

“청산리 대첩 애국정신 계승해야”

2010년 10월 22일 302

“청산리 대첩 애국정신 계승해야”(천지일보, 10.10.22)

친일특별전엔 침묵, 일본해는 맹공

2004년 11월 4일 959

      이수강 기자 sugang@mediatoday.co.kr   독립기념관에 전시 중인 지도에 ‘일본해’ 표기가 있다고 문제삼은 일부 언론의 비판 보도에 대해 해당 전시의 주관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는 3일 “전시 주관단체로서 관리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면서도 “일부 언론의 비뚤어진 보도로 연구소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고 비판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구체적으로 적시한 보도는 SBS와 중앙일보의 기사. SBS는 2일 오후 8시뉴스에서 <독립기념관, ‘일본해’ 지도 전시했다 철거>를, 중앙일보는 3일자 지면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 세계지도 독립기념관에 전시해 물의>를 보도했다. SBS는 보도에서 “다른 나라 지도에 동해가 일본해로 돼 있어도 가슴을 칠 일인데 우리나라, 그것도 독립기념관에 걸린 지도에 동해가 일본해라고 버젓이 적혀 있다”(앵커 멘트)며 “독립기념관 측은 일본의 시민단체가 제공한 자료를 그대로 쓰다보니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해명했다. 또 문제가 된 ‘일본해’ 부분을 종이로 가려놨는데 관람객들이 떼버렸다며 오히려 책임을 관람객들한테 돌렸다”고 전했다.          ▲ SBS 11월2일 오후8시 뉴스   또 중앙일보는 “독립기념관이 동해를 영문 ‘일본해’(Sea of Japan)를 표기한 세계지도를 전시하다 1일 관람객과 네티즌에게 발견돼 거센 항의를 받자 2일 이를 철거했다”면서 독립기념관 홍보팀장이 “중국 남단 하이난섬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외국 지도를 사용…수정용 스티커(시트지)를 붙여서 ‘일본해’라는 표기를 가렸는데 무슨 이유인지 두 번씩이나 떨어졌다”고 해명했다는 내용을 전했다.         ▲ 중앙일보 11월3일자 기사   이에 민족문제연구소는 3일 <‘해남도 특별전’ 관련보도에 대한 해명>을 내어 경위를 해명하고 일부 언론의 보도태도를

[새 책] 잊혀진 혁명가 정이형

2004년 11월 4일 1608

          독립운동가 정이형을 아십니까?   일제시대 가장 오랜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는 누구일까. 최장 장기수는 22년간 복역한 아나키스트 박열(1902~74)이다.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무정부주의 운동에 투신한 그는 1923년 일왕 암살을 실행하려던 직전에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그는 무기징역을 받아 해방 때까지 옥살이를 계속한다.만주의 독립운동가 중에서는 정이형(1897∼1956·사진)이 대표적이다. 다물청년당, 고려공산당을 결성해 독립운동을 벌이던 그는 1927년 붙잡혀 수감되어 8·15까지 18년간의 긴 영어의 생활을 보낸다. 해방 후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의 지도자로 활약하다 1950년 북한으로 건너간 박열과 달리 정이형은 남한에서 정부 수립에 참여한다. 정이형이 남한 정치사에서 기록된 것은 친일파 청산의 선봉에 섰다는 사실이다. 그는 1947년 남조선과도입법의회 의원으로서 ‘친일파 숙청법’을 기초하는 한편 백범 김구 등과 함께 남북통일 운동을 전개한다. 이후 정이형은 곧 역사 속에서 잊혀져 갔다. 사후 7년 뒤에 정부에서 그를 독립유공자로 선정했으나 학계는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무장투쟁을 전개했으면서도 독립운동 단체의 통합과 통일을 강조하며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만주지역에서의 독립운동에 대한 자료가 크게 부족한 것도 한 원인이었다. 한 역사학자의 노력으로 역사 속에 묻힐 뻔한 정이형의 행적이 복원됐다. 수원대 박환 교수가 출간한 ‘잊혀진 혁명가-정이형’(국학자료원)은 식민지시대와 해방 공간에서 독립운동과 민족통일에 앞장 섰던 한 민족지도자의 삶을 새로 발굴한 자료와 함께 꼼꼼하게 보여준다. 20여년간 만주와 러시아 일대의 항일운동사를 연구해온 박교수는 책 서문에서 “정이형의 자료를 접하면서 이토록 강렬한 항일의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