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uge collection of 3400+ free website templates, WP themes and more http://jartheme.com/ at the biggest community-driven free web design site.

주요기사

왕산 허위의 죽음… 웃고 있는 한 사람

2014년 11월 23일 1034

[박도 실록소설 ‘들꽃’ (14)] # 제4장 압록강을 건너다 ①  <들꽃> 해제 제목 ‘들꽃’은 일제강점기에 황량한 만주벌판에서 나라를 되찾고자 일제 침략자들과 싸운 항일 독립전사들을 말한다. 이 작품은 필자가 이역에서 불꽃처럼 이름도 없이 산화한 독립전사들의 전투지와 순국한 곳을 찾아가는 여정(旅程)으로, 그분들의 희생비를 찾아가 한 아름 들꽃을 바치고 돌아온 이야기다. – 작가의 말 ▲ 철쭉꽃으로, 꽃말은 ‘사랑의 즐거움’이다. (장소제공; 강원도 횡성 자작나무숲 미술관) ⓒ 박도 만장(輓章)이 십리를 잇다 왕산 허위가 경성감옥에서 감옥 개설 제1호로 교수형을 당하자 뜻있는 백성들은 피울음을 울었다. 일제의 감시 속에 고향 구미 임은동에서 치른 허위의 장례에는 만사(輓詞, 고인을 추모하여 지은 글)와 제문(祭文)이 장례기간 동안 이어졌고, 상여 뒤를 따르는 만장(輓章)이 십 리를 이었다. 하지만 구미 임은동 바로 이웃 마을 칠곡 오태동(현재는 구미시 오태동)에 사는 전 국무총리 장택상의 아버지 장승원(張承遠)은 비탄에 빠지기는커녕 속으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까닭은 왕산 허위에게 경상도 관찰사 벼슬자리 값으로 갚기로 한 20만 원을 통째로 떼어먹어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 사연은 이러하다. 장승원은 집안 대대로 영남 제1의 만석꾼 갑부였다. 그는 늘 돈은 많았지만 벼슬이 없는 것을 자탄하다가 이웃 고을 왕산 허위가 고종 임금의 신임을 얻어 중추원의관, 평리원수반판사, 비서원승 등 고관에 오르는 것을 보고 20만 원을 고액권으로 바꿔 보스턴 가죽 가방에 넣고 한양(서울)으로 올라갔다. 그는 왕산 집 문을 두드렸다. 인동

[세월호 특집다큐]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2014년 11월 22일 408

  ▲ [세월호 특집 다큐]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 Origin link: http://docucow.com/29 다큐창작소에서는 지금까지 밝혀진 방대한 자료들을 검토하여 세월호 특집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전개과정과 구조활동의 문제점, 수사과정의 의혹, 침몰의 진짜 원인, 검찰 수사결과의 문제점, 정부-여당-정치인-극우단체들의 행태, 진실 추구의 필요성 등을 담았습니다. 본 영상이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밑거름이 되어 소중한 가족을 잃어버린 유가족들의 한을 풀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구성/연출: 김상규 ㅣ조 연 출: 최아람 ㅣ 내레이션: 정훈석 제작: 다큐창작소,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미디어팀, 세월호참사가족대책위원회  

한일대화 재개, 위안부 해법 나올까

2014년 11월 22일 419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독려’ 발언 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기 위한 한국과 일본의 대화가 재개될 예정이어서 해법이 마련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일 양국은 오는 27일 서울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5차 국장급협의를 열기로 했다. 지난 9월 19일 도쿄에서 열린 지 약 두 달 만이다. 지난 네 차례의 만남에서 평행선을 달렸던 한일 국장급협의가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양국 정상이 국장급협의부터 한중일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의욕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지난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만찬 중 한일 국장급협의가 잘 진전되도록 독려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박 대통령은 이어 지난 13일 미얀마 네피도에서 열린 아세안+3정상회의에서 한중일 외교장관회담과 한중일 3국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제안했다. “머지 않은 장래에 한중일 외교장관회담이 개최되고, 이를 토대로 한중일 3국 정상회담도 개최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힌 것이다. 한중일 정상회담은 당장 한일정상회담을 열기 어려운 만큼 우회로가 필요한 우리 정부나, 동북아시아에서 외교적 고립을 피하려 하는 일본정부 입장에서나 마다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박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한중일 외교장관회의를 조기에 열어 정상회담 개최로 이어 나가고 싶다”며 환영의 뜻을 나타낸 바 있다. 따라서 다음주 열기로 한 한일 국장급협의는 결과에 따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법의 계기를 마련하고 한중일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목이 될 수 있다. 이와

소녀이야기 (Herstory)

2014년 11월 21일 326

    ▲ 소녀 이야기 (Herstory)      ※ English Subtitle Link: http://youtu.be/zYjXIye73ks※ Japanese Subtitle Link: (http://youtu.be/aEm6VYRjmCM)※영문판 1080p 고화질 (http://youtu.be/c9ihg1g8ZjU) ※감독 김준기 (Directed By Kim Junki (http://blog.naver.com/herstory2011))※목소리 故 정서운 Dubbed by Jeong Seowoon (1924~2004)

인왕산 기세에 밀린 경복궁의 좌청룡 낙산(駱山)

2014년 11월 21일 1738

<새연재> 유영호의 서울 성곽 역사기행 (15) 낙산·삼선평·비우당·정순왕후 송씨 흔적들. ▲ 낙산 성곽 : 혜화문~동대문 답사구간. [자료-유영호] 낙산 성곽(혜화문 ~ 동대문 구간) 조선왕조의 적장자 세습을 힘들게 한 <낙산(駱山)> <돈암장>에서 <혜화문>쪽으로 돌아와 다시 성곽 길을 걷기로 하자. 한양의 내사산 가운데 가장 낮은 낙산성곽 길이다. 분명 산은 산이로되 해발 125미터의 낮은 산이라 등산한다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이다. 이 산은 그 모양이 낙타와 같이 생겼다 하여 낙타산(駱駝山), 타락산(駝駱山)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낙산성곽 바로 옆에 위치한 마을이름은 마을주민의 65%가 65세 이상이라 ‘장수마을’로 불린다. 이곳은 일제시대를 거쳐 6.25 전쟁 시기 피난을 다니던 사람들과 농촌을 떠나 도시로 돈을 벌러 왔던 빈민들이 정착하면서 구릉지형이었던 삼선동에 집을 지어 살기 시작한 곳이다. 주민들의 기본 거주기간이 40년 이상이라 마을공동체가 다른 곳보다 잘 발달되어있다고 하니 비탈진 언덕, 좁은 골목길 등이 달동네를 연상시키지만 왠지 정겹게 느껴지는 곳이다. 장수마을을 옆으로 바라보며 산책하듯 걸어 올랐지만 금방 정상에 있는 낙산공원에 도착하였다. 경복궁은 좌청룡, 우백호로 낙산과 인왕산을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 풍수지리에 따르면 좌청룡은 장남을 상징하며, 우백호는 차남을 상징한다. 하지만 장남에 해당하는 좌청룡 낙산이 낮고, 차남에 해당하는 우백호 인왕산이 높고 험준한 까닭에 조선왕조는 적장자(정실부인이 낳은 맏아들) 세습이 드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적으로 26번 있었던 왕위계승에서 적장자로 순탄하게 계승된 경우는 단 여섯 명에 불과하다. 그 여섯 명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식민지근대화론 허구 까발리는 일제 통계

2014년 11월 21일 949

▲자신의 연구실 자료들 앞에 선 <숫자로 본 식민지 조선>의 엮은이 이계형 국민대 한국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사진 한승동 선임기자 1920~30년대 조선총독부 자료의 진실 당대 지식인의 행간 읽기와 뒤집어 읽기 숫자로 본 식민지 조선 이계형·전병무 편저/역사공간·2만4000원 식민지근대화론의 어디가 어떻게 잘못됐는지를 일제 통계자료들을 통해 자세히 보여주는 책이 나왔다. 한국근대사를 전공한 이계형·전병무 두 연구자 편저 <숫자로 본 식민지 조선>이다. 원래 독립운동가요, 사회주의자였던 이여성과 김세용이 1931~1935년에 모두 5집까지 냈던 <숫자 조선연구>를 다시 손질해서 낸 책인데, 주로 전문 연구자들 사이에서만 알려져 있던 읽기 까다로운 이 책을 일반인들도 읽기 쉽게 만들었다. 침략자의 식민지배가 근대화의 밑거름이 됐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은 그것 자체의 논리를 가질 순 있으나 그 근대화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느냐는 점을 따지고 들어가면 근본적인 한계에 봉착한다. <숫자로 본 식민지 조선>은 그런 관점에서 식민지근대화론의 허구성을 “가장 구체적으로, 가장 설득력있게 까발리는 굉장히 중요한 문서”라고 이계형(47) 국민대 한국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말했다. 조선총독부 공인 자료를 활용한데다 검열까지 통과해야 했기에 일제 비판 내용 상당부분이 삭제되는 등 한계가 있고 일부 인용상의 오류도 있으나, 이 교수는 “저자들이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지 문맥이나 행간을 읽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 제목만 남은 삭제된 부분을 통해서도 많은 진실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1980년대에 영인본으로 나와 전문가들이나 보던 이 책을 2000년대 들어 촉발된 식민지근대화론·건국절 논란을 지켜보면서 일반인들도 볼 수 있게

국정교과서 채택논란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가

2014년 11월 20일 396

[인터뷰]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이준식  [한국뉴스투데이 이성관 기자]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임명된 후 정부에서는 국정교과서에 대한 담론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왔다. 황장관은 모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해 국론 통일을 위해 통합된 역사 교육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미 역사정의실천연대에서는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고 정부의 고시가 있을 경우 강력하게 반발할 것을 예고한 바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이자 민족문제연구소의 연구위원을 맡고 있는 이준식 씨를 만나 이야기 나누었다. 정부에서는 국정교과서 문제를 담론으로 이끌어 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관련자의 발언 내용을 보면 논의를 하자는 취지보다는 국정교과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부는 국정교과서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인데요. 민족문제연구소의 입장은 어떤 것이죠? 역사학계에서 저희 민족문제연구소보다도 더 큰 범위의 연대가 이루어지는 곳이 역사정의실천연대입니다. 국정교과서에 대해서는 이곳에서 앞장서고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지금 정부는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려는 태도를 계속해서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뉴라이트 계열 역사학자를 제외한 거의 99%의 역사학계는 국정교과서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담론화 시키려면 언론의 도움이 필요한데 제가 알기로는 보수신문에서도 국정교과서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연초에는 일제히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밀어붙인다면 커다란 반대에 부딪칠 것입니다. ▲이준식 연구위원님  그렇다면 역사학계가 그렇게 반대함에도 밀어붙이는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공식적인 이유는 국론 통일이라고 하던데. 국론통일이라는 말자체가 우습죠. 19세기,

[2014.11.19] 을사늑약 특집 친일파 열전 이완용2편

2014년 11월 20일 342

※[2014.11.19] 라디오 백년전쟁 – 을사늑약 특집 친일파 열전 이완용2편 ☞[팟빵]: http://www.podbbang.com/ch/6647?e=21545200 ☞[다운]: http://down-cocendn.x-cdn.com/data1/guitarkirk/141119nrh1.mp3  

“민족 위해 순국한 열사, 이토록 욕 보이다니”

2014년 11월 20일 411

[박도 실록소설 ‘들꽃’ (13)] # 제3장 허위의 순국과 임은 허씨의 망명 ④ <들꽃> 해제 제목 ‘들꽃’은 일제강점기에 황량한 만주벌판에서 나라를 되찾고자 일제 침략자들과 싸운 항일 독립전사들을 말한다. 이 작품은 필자가 이역에서 불꽃처럼 이름도 없이 산화한 독립전사들의 전투지와 순국한 곳을 찾아가는 여정(旅程)으로, 그분들의 희생비를 찾아가 한 아름 들꽃을 바치고 돌아온 이야기다. – 작가의 말 ▲ 진달래꽃, 이 소설의 주인공 허형식 장군은 고향의 진달래꽃을 그리워했다고 전한다. ⓒ 박도 군말 오늘의 구미는 615평방미터에 인구 40만 명이 넘는 우리나라 최대의 내륙 산업도시이지만, 한 세기 전에는 선산군 구미면으로 인구 1만 명 안팎의 자그마한 고을이었다. 고을 남쪽으로는 해발 976 미터의 금오산이 이 지방의 수호신처럼 우둑 솟아있고, 고을 동쪽으로는 함지박을 덮어놓은 모양의 천생산이 숱한 전설을 지닌 채 고을문화를 살찌우고 있다. 낙동강은 금오산과 천생산 사이를 큰 뱀처럼 구불구불 흘러내리고, 그 유역에는 기름진 구미 해평 평야가 수천 년이래 이곳 사람들의 곳간이 되어왔다. 우리나라 어느 산하인들 애절한 얘기가 없으련만 이 구미에도 유사 이래 많은 얘기들을 안고 있다. ▲허위 13도창의군 군사장(좌), 장택상 전 수도경찰청장(가운데), 박정희 전 대통령(우 ) ⓒ 왕산기념관/창랑기념사업회/자료사진  우리나라 근현대사만 보더라도 구한말 13도 창의군 군사장 왕산 허위 집안, 13대째 만석꾼 영남제일의 대부호로 해방 후 수도경찰총장, 초대 외무부장관,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장택상 집안, 그리고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일군(만군) 육군 중위로

청년 8명 사형당한 그날, 조선은 유언 조작

2014년 11월 20일 817

[조선일보 대해부 3권] “박정희 유신은 조국 앞날에 가장 알맞은 조치”  올해로 창간 94년을 맞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전체 지면을 분석한 책이 각각 5권으로 출간됐습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일제강점기, 4·19혁명부터 1987년 민주화운동까지,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주요 사건을 어떻게 기록했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에 각 책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새로운 권력이 들어설 때마다 권력을 찬양하던 조선일보 역사는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 때도 이어졌다. 이승만을 지지하던 조선일보는 그를 무너뜨린 4·19혁명이 일어나자 혁명을 지지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일으키자 태도를 바꾸었다.  1961년 5월16일 0시 15분경 육군소장 박정희 일행이 서울 영등포 문래동의 6관구사령부에 도착하면서 쿠데타가 시작됐다. 해병여단 1개 대대, 포병단, 공수단이 서울시내를 점령했다.  조선일보는 이 사건을 처음에는 ‘쿠데타’라고 명명했다가 이틀 뒤인 18일에는 사설 <혁명에 바치는 찬사>를 싣는다. “우리는 세 가지 점에서 그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첫째는 군사혁명이 무혈혁명의 전격적이었다는 것이요, 둘째로는 군사혁명위원회가 발표한 혁명공약에서 발견할 수 있고, 셋째로는 국내외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중앙정보부가 개입된 증권파동, 워커힐사건, 새나라자동차사건, 빠찡꼬사건 등 4대 의혹 사건에 대해서도 침묵했다. 조선일보는 중정 간부들이 법원이나 군법회의에 재판을 받는 일에 대해 보도하지 않았다.  1966년 10월 박정희가 광화문에 탱크를 동원해 비상계엄령을 내린 후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및 정치활동을 중지시키는 헌정쿠데타 ‘유신’을 선포했을 때도 찬양했다. 조선일보는 사설 <평화통일을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