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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거리의 원로’ 증언록…“부끄러운 시대 기록해야만 했다”

2015년 2월 12일 1241

☞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집중 인터뷰 듣기 (2015.02.17) ▲잊히지 않는 것과 잊을 수 없는 것>을 쓴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이 시대가 부끄러워, 잊지 않기 위해서 책을 썼다”고 했다. 옷깃에 단 리본 배지가 눈에 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이만열 교수, 5년 만에 산문집 펴내 4대강 사업·세월호 참사 등 다룬 2010년 이후 50여편 포함 62편 묶어 2003년 퇴직뒤 거침없는 현실 발언 “젊은이들, 정의 실행부터 고민해야 제 이득 위해 신앙·직위 이용한 MB 속죄해야 할 이가 자서전 내다니” 이 책에는 1993년부터 2015년 1월까지 20여년 동안 쓴 글 가운데 62편을 묶었다. 이 중 50여편이 2010년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대에 쓴 글들로 4대강 사업, 미네르바 사건, 세월호 참사,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 등을 다뤘다. 한국 사회와 교회에 “분노하라”, “고백하라”며 준엄하게 꾸짖는 글이 대부분이다. 지난 6일, 한겨레신문사를 방문한 그의 옷자락에는 세월호 참사를 기리는 노란 리본 배지가 여전히 붙어있었다. “주위에서 떼라고 야단이지만 아직 배지를 다는 건 ‘속죄하자’는 뜻이 있다. 이런 세태 속에서 글을 쓴다는 것이 여간 괴롭지 않다. 하지만 증언해야만 했다.” 세월호 유족의 단식농성장 옆에서 태연히 통닭을 뜯는 “일베류의 ‘패륜과 야만’” 행위에 더해 “십자가를 내세워 단식농성자들을 ‘종북’으로 몰아가는 듯한 행태”를 보며 그는 “십자가가 남을 저주하는 데에 사용되듯 이렇게 남용되어도 괜찮은 것인지 ‘종북’을 소리높여 외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묻고 싶다”고 책에 썼다. 이 교수는

민족문제연구소 수원지부, 이달호 지부장 취임

2015년 2월 12일 707

“지금은 해방 정국 못지않게 엄중한 시점이기에 책임이 막중” 각오 밝혀 ▲ 이달호 민족문제연구소 수원지부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뉴스피크] 민족문제연구소 수원지부 제8대 지부장에 이달호 전 수원화성박물관장이 취임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수원지부는 지난 10일 오후 수원화성박물관 영상교육실(수원시 팔달구 소재)에서 제7대, 8대 지부장 이취임식을 개최했다. 행사에서는 제7대 지부장을 역임한 이호헌 선생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주현 매원감리교회 담임목사, 양훈도 대안미디어 너머 대표, 민진영 경기민언련 사무처장,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김영호 병학연구소 소장 등 60여명이 자리를 함께 해 축하의 뜻을 전했다. 이달호 지부장은 취임사를 통해 “올해는 조국해방 70년이자, 분단 70년이 되는 해인데, 우리나라의 분단원인은 1905년 카스라테프트 조약에 따른 미국을 배후로 한 일본이다”면서 “지금은 해방 정국 못지않게 엄중한 시점이기에 책임이 막중하다”고 각오를 밝혔다. 또한 “민족 문제를 남북의 문제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 국제정세까지 보면서 민족의 동질성을 찾고, 자주성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달호 지부장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를 졸업했으며, 한양대학교 사학과 석사를 거쳐 상명대학교 사학과에서 ‘화성 건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기도사편찬위원회 상임위원, 수원시 학예연구사를 거쳐 수원화성박물관을 역임한 바 있다. 현재 수원화성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 배추 방동규 선생과 신용승 민족문제연구소 수원지부 상임고문이 대담을 나누고 있다. 이취임식에 이어 방동규 선생(<배추가 돌아왔다> 저자.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 ‘조선 3대 구라’로 불리며 별명 이 ‘배추’임) 초청 좌잠회가 열려 파란만장한

친일파 비호 위한 독립투쟁 세력의 무력화

2015년 2월 11일 1140

임정을 정통성, 국가관과 국민주권을 승계했다는 뜻. [한국NGO신문] 은동기 기자 = 새날희망연대는 6일 국가인권위원회 8층에서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의 ‘건국절과 국부론‘을 주제로 제67차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임소장은 펀석촌 김기림의 시, ‘우리들의 8월로’를 소개하면서 서두를 열었다. 들과 거리, 바다와 기업(企業)도 모도다 비치어 새 나라 세워 가리라 한낱 벌거숭이로 돌아가 이 나라 지추돌 고이는 다만 조약돌이고저 원하던 오 – 우리들의 8월로 돌아가자. 임소장은 “1945년 8월 15일은 그 절차와 연유야 어쨌든 한국인에게 ‘해방’으로 다가왔으나 ‘해방의 날’은 오래지 않아 ‘광복절'(1949년 10월 1일 공식적인 기념일로 지정)로 둔갑, 분단 고착화와 친일파들이 지배하는 역사로 변질되고 말았다.”면서 허울이야 ‘광복’이라지만 ‘해방’도 ‘광복’도 다 분단독재 체제 아래서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고 개탄했다. ▲ 새날희망연대 제67차 포럼 *은동기 그는 “그 8월의 이상과 열정이 싸늘한 재로 변해버린 21세기의 한국은 ‘건국절’ 운운하는 역사의 쿠데타란 유령이 배회하게 되었다.”면서 “파시즘이라는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묘지 속의 낡은 관에서 빠져나온 ‘건국절’이란 낮도깨비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의 국민적인 여망을 할퀴려고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을 갈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소장에 의하면 ‘건국절’의 논리는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우상화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 우상이 저지른 모든 역사적인 죄악을 미화시키거나 침묵시키려 시도한다. 이런 역사인식은 해방공간 3년을 ‘건국’ 지지와 그 방해 세력(좌익)의 흑백 대결 구도로만 농단한다. 오늘이 바로 그때와 똑 같은 혼란기라고 우겨대며, 그 해결책으로 서북청년단의 부활 같은 ‘파시즘적인 애국주의’

‘국제적 호구’의 역사는 흐른다

2015년 2월 11일 594

<박물관이 살아 있다> 시리즈에 나오는 캐릭터 중 하나인 콧수염 난 ‘테디’를 기억하지? 그 ‘테디’는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이고, 테디는 그의 애칭이야. 영화 속의 천진한 모습과는 별개로 그는 한국과 상당한 악연을 가진 사람이지. 필리핀은 미국이, 한국은 일본이 먹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을 승인한 사람이 바로 그였거든. 루스벨트는 대한제국을 두고 이런 말을 하기도 해. ‘우정이란 자신을 지킬 힘을 지닌 상대끼리 가능한 것이다. 한국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주먹 한번 휘두르지 못했다.’ 그는 전쟁에 참전해 큰 공을 세웠고 무력이라는 현실적 힘을 숭상하는 사람이었어. ‘말은 부드럽게 하되 큼직한 몽둥이를 항상 갖고 다녀라.’ 그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지. 그런 그에게 ‘우리 독립을 지켜주세요’라며 울먹이기는 잘하지만 도무지 자신을 위해 ‘주먹 한번 휘두를’ 줄 모르는 한국은 경멸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거야. 대한제국은 왜 그렇게 무기력했을까. 루스벨트의 핀잔처럼 왜 ‘주먹 한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했을까. 분명한 건 대한제국 황제와 그 많았던 대소 신하들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포기해서였던 건 아니라는 사실이야. 특히 ‘강병(强兵)’을 갖고 싶었던 마음은 오히려 누구 못지않았을 거야. 1902년 무렵의 통계를 보면 대한제국은 예산의 근 40%를 국방비로 쓰고 있단 말이지. 오늘날 국방비 많이 쓰기로 유명한 북한도 15% 정도이니 대한제국의 ‘강병’에 대한 집착(?)을 짐작할 수 있지 않겠니? 아무리 가난한 나라였다고 해도 이 정도면 웬만한 ‘몽둥이’를 갖출 수준은 충분히 되었을 거야. 하지만 문제는

한국사 왜곡 논란 ‘교학사 대사전’ 집단 구매 나선 초등 교장들

2015년 2월 11일 432

ㆍ서울 중구청에 구입비 120만원씩 지원 일괄 신청하기로 서울 중구의 일부 초등학교 교장들이 집단적으로 교학사의 <한국사대사전>을 학교에 비치해 역사 수업 보조교재로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2013년 4월 교학사가 출간한 10권짜리 이 책은 제주 4·3 사건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친일·독재를 미화해 역사왜곡 논란이 제기된 책이다. 서울 중구 ㄱ초등학교 교장은 10일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지난달 중부교육지원청 학교급식 관련 연수에서 만난 중구청 관내 교장들 사이에서 구청 지원을 받아 <한국사대사전>을 구매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얘기가 나와 교장들의 동의를 받아 일괄 신청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ㄴ초등학교는 지난 6일자로 작성한 사업계획서에서 5~6학년 학생 330명을 대상으로 ‘한국사 교수·학습 자료 구입’ 명목으로 지원금 120만원을 중구청에 신청키로 했다. 계획서는 “한국사 교육에 중추적인 역할을 할 한국사 교수·학습 자료를 구입해 바른 한국사 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음”이라고 사업 목적을 밝히고 있다. 현재 중구 4개 초등학교가 신청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대표집필자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근대사 부문 집필에 참여한 <한국사대사전>은 출간 직후부터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여 있다. 이 책은 제주 4·3 사건을 ‘제주도 전역에서 남조선노동당 계열의 민간유격대들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여 일으킨 폭동사건’으로 규정하며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언급하지 않고 사망자들을 일방적으로 폭도로 몰았다. 책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나 5·16, 유신 등도 미화하는 해석을 담고 있다. ㄴ초등학교 한 교사는 “지금이 유신시대도 아니고 도서선정위원회 논의를 거치지도 않고

유죄 ‘파기 환송’한 대법 판사 겨냥 ‘북괴 앞잡이’ 괴벽보 나붙어

2015년 2월 9일 600

ㆍ[의혹과 진실 – (18) 동백림 거점대남 공작단 사건 (下) ■ 대법원의 파기 환송 판결인즉 당시의 분위기로 보아 법원의 판결에 별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2심 판결은 ‘역시나’였다. 1심과 마찬가지로 피고인 전원 유죄에다 일부 형량만 높이거나 낮추는 정도였다. 즉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정하룡·임석훈은 사형으로 바뀌었고, 반대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조영수는 무기징역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윤이상은 징역 15년으로 낮추는 선에서 2심은 끝났다(1968년 4월13일). 그런데 상고심에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이변(?)이 일어났다. 즉 1968년 7월30일 대법원(재판장 김치걸, 사광욱·최윤모·주운화 대법원판사)은 원판결(서울고등법원 판결) 중 피고인 정하룡·조영수·김중환·천병희·윤이상 등 12명에 대한 각 유죄 부분을 파기하고, 그 사건을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한다는 판결을 선고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원심이 일부 피고인에 대해 반공법상의 회합죄와 잠입죄, 국가보안법과 형법상의 간첩죄 등을 유죄로 인정한 것은 잘못이며, 일부 피고인에 대한 양형(윤이상 징역 15년, 임석훈 사형)도 지나치게 무겁다는 것이 요지였다. 검찰은 보안사범이나 간첩사범을 처벌하는 데 큰 차질을 초래하는 좋지 못한 판결이라는 비판을 내세우며 크게 반발했다. ▲일러스트 | 박건웅 ■ ‘빨갱이 판사 몰아내자’ 잇단 괴벽보·괴문서 이런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자 서울 시내에 ‘애국시민회’ 명의로 ‘김일성의 판사를 잡아내라’ ‘북괴와 야합하여 기회를 노리는 붉은 도당을 처단하라’는 전단이 뿌려졌다(8월2일). 이어서 대법원 바로 옆에 있는 배재중학교 담장을 비롯해 법무부, 반도호텔, 태평로 일대에 역시 애국시민회 이름으로 된 괴벽보가 나붙었다. 거기에도 대법원 판결을 비난하는 살벌한 문구가 넘쳐나고

“또 친일문인이냐, ‘이원수 문학탐방로’ 취소하라”

2015년 2월 9일 748

창원시 ‘문학탐방 코스 조성’ 계획에 이원수 포함 … 시민대책위 ‘취소 촉구’ “또 이원수냐. 창원시가 기릴 만한 인물이 그렇게 없나. 친일문인을 또 기려서 문학탐방로를 만든단 말이냐.” 9일 오후 창원시청 브리핑룸을 찾은 한 시민단체 관계자가 한 말이다. 열린사회희망연대, 경남진보연합 등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친일작가 이원수기념사업저지 창원시민대책위’가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 ‘친일작가 이원수기념사업저지 창원시민대책위원회’는 9일 오후 창원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창원시는 친일작가 이원수 문학탐방로 계획을 즉각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 윤성효 최근 창원시는 ‘문학탐방 코스 조성’ 계획을 세웠다. 그 가운데 친일행적이 뚜렷한 아동문학가 이원수(1911~1981)가 들어 있다. 창원시는 신라시대 문장가 최치원, 시인 김달진과 함께 이원수를 끼워넣었다. 창원시는 대학교수와 여행작가, 관광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통해 올 상반기 안으로 문학탐방코스 개발을 완료할 예정이다. 창원시는 이원수가 지은 동시 “고향의 봄”에 초점을 맞춘다는 계획이다. 이원수 문학탐방로 계획이 알려지자 시민사회단체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창원시는 2011년 이원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계획했다가 말썽을 빚었고, 논란 끝에 창원시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은 단체가 돈을 반납하기도 했다. 이원수의 친일행적은 뚜렷하다. 그는 조선금융연합조직회 기관지인 <반도의 빛>에 1942~1943년 사이 “… 우리도 자라서 어서 자라서 굳센 일본병정 되겠습니다”는 내용의 “지원병을 보내며” 등을 남겼다. 이원수는 2008년에 나온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헌법정신 짓밟는 짓을 해서는 안된다” 백남해 열린사회희망연대 상임대표와 이경희 경남진보연합 고문, 이순일 교사(태봉고) 등이 참여한 ‘친일작가 이원수기념사업저지 창원시민대책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2015.02.04] 천황의 충견 친일경찰 3부

2015년 2월 7일 722

▲[2015.02.04] 백년전쟁 : 천황의 충견 친일경찰 3부 ☞ [팟빵]: http://www.podbbang.com/ch/6647?e=21616060 ☞ [다운]: http://down-cocendn.x-cdn.com/data1/guitarkirk/150204nrh1.mp3

일, 패전 직전 미군 상륙 대비 격납고·동굴진지 구축 ‘요새화’

2015년 2월 6일 793

ㆍ제주 대정읍 ▲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19기 보존… 태평양 전쟁의 상흔 그대로 간직 셋알오름 진지는 트럭 통행도 가능 “평화 되새기는 유산으로 활용을” ▲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전투기를 격납하기 위해 제주도민을 강제동원해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에 건설한 남제주 비행기 격납고(등록문화재 39호). 제주를 출격 기지로 건설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지상 건축물로, 당시 20기가 건설됐고 현재 19기가 보존돼 있다. 일본군은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군에 패배하면서 수세에 몰린다. 미군은 1944년 7월 사이판을 점령하고, 이듬해 필리핀마저 함락했다. 일본 본토는 연합군의 직접적인 상륙 공격 위협에 놓이게 된다. 일본군은 1945년 2월 미군의 상륙 공격으로부터 본토를 방어하기 위해 육·해군 결전 작전을 세우게 되고, 이를 ‘결호(決號)작전’이라 불렀다. 결호작전은 1호부터 7호까지 지역별로 구분했다. 작전지역 중 결1~6호는 일본 본토였으나 유일하게 일본 이외 지역으로 제주도가 ‘결7호 작전’에 포함됐다. 본토를 방어하기 위한 마지막 거점지로 제주가 선택된 것이다. 일본군은 미군이 규슈 방면으로 상륙해 침공할 경우 제주도를 본토 공격의 거점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일본은 결7호 작전을 위해 제58군 사령부를 제주에 주둔시켰다. 제주도 조사결과 1945년 3월 3000여명에 불과하던 제주 주둔 일본군은 결7호 작전을 위해 7만5000명까지 늘어났다. 일본군은 제주도 전역을 요새화했다. 그 중에서도 미군의 유력한 상륙지점인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 일대에 집중적으로 군사시설을 구축했다. 대정읍 알뜨르 비행장 주변에는 태평양전쟁과 관련한 13개의 등록문화재 중 8개가 몰려 있다. 등록문화재 이외에도 60여개의 군사시설이

[재판으로 본 현대사](17) 동백림 거점 대남 공작단 사건 (中)

2015년 2월 6일 1606

ㆍ친구 강빈구 신고 안 했다고… 천상병 시인 전기고문 고초 ■ 동백림사건 연계 혐의로 기소된 서울대 ‘민비연’ 사건 서울지검 공안부는 동백림사건에 관련하여 중정으로부터 2차로 송치받은 소위 민비연(민족주의비교연구회) 사건 관계자 7명을 별도로 구속 기소했다. 중정은 민비연을 동백림사건과 연계된 조직으로 발표하였는데, 거기엔 서울대 황성모 교수가 연결 고리로 설정되어 있었다. 황 교수는 독일에 유학하여 학위를 얻고 귀국하였는데, 중정은 그가 유학 당시 동백림에서 북한 측에 포섭되어 북한의 지령을 수행하기 위해 귀국 후 민비연을 조직하고 그 지도교수로서 학생 시위를 선동하여 정부를 전복하고 사회주의정권의 수립을 기도하였다고 발표했다. 민비연은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학생들의 연구 서클이었는데, 그때 기소된 피고인은 다음과 같다. 황성모(41·서울대 문리대 교수·민비연 지도교수), 김중태(25·신민당 운영위원·민비연 2대 회장), 현승일(24·서울대 출판부원·민비연 3대 회장), 이종률(26·동아일보 기자·민비연 초대 회장), 박범진(26·조선일보 기자·민비연 3대 총무부장), 박지동(27·동아일보 기자·민비연 5대 회장), 김도현(23·무직·민비연 회원). 이들은 훗날 정치·사회·언론 등 각계에서 자주 이름이 거론되는 인물들이었다. 그중 황성모는 간첩죄와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로, 나머지 사람들은 반국가단체의 구성 또는 가입, 지도적 역할 수행 등 혐의로 기소되었다. 요컨대 ‘민비연’이 반국가단체라는 전제 아래 재판에 회부되었던 것이다. 실은 1964~1965년 한일회담 반대시위가 격화되었을 때 김중태·현승일이 이끄는 민비연이 학생운동을 주도하는 조직으로 널리 알려져 검거된 바도 있다.(제2차 민비연 사건) ▲일러스트 | 박건웅 ■ 검사 구형, 사형 6명에 무기징역도 4명이나 동백림사건 피고인 34명에 대한 첫 공판은 1967년 11월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