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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속리산 ‘친일파 공덕비’, 철거운동 시작되자 슬그머니 사라져

2015년 1월 28일 928

친일파들의 공적을 찬양하는 공덕비가 전국에 수백여개 있습니다. 이 공덕비를 철거하거나, 철거하지는 않더라도 비석 주인공의 친일행각을 기록한 이른바 ‘단죄비’를 그 공덕비 옆에 세우는 움직임이 7~8년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아직까지 10여건 정도 밖에 하지는 못했는데요, 충복 보은 속리산에서 철거 촉구 캠페인이 열린다고 해서 다녀왔습니다. 조아라 피디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친일파 방인혁의 공덕비입니다. 대표적인 친일파 기업인 방인혁은 일찍이 일제와 가깝게 지내며 특히 충북지역에 막강한 영향력을 휘둘렀습니다. 충북 청주군 축산조합장이던 1919년 당시, 3.1운동 확산 저지 운동을 하는가 하면 친일 공로를 인정받아 1921년 서울의 조선총독부 관료로 발탁됐습니다. 방인혁은 1921년 총독부 기관지 <조선>에 “조선의 제도는 병합 이전은 논의할 가지가 없다”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습니다. 방인혁은 1920년대 속리산 법주사안에 있는 암자 수정암 건립에 자금을 보탰고, 그 공로를 기리는 의미로 비석이 세워졌습니다. 지난해 6월부터 민족문제연구소 충북지부는 충북 보은군 속리산 법주사에 있는 방인혁 공덕비 철거운동을 벌여왔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어제 법주사 앞에서 이 공덕비를 철거하라는 시위를 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법주사가 지난달 비석을 비공개로 철거했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바로 이곳이 공덕비가 있던 자리입니다. 지금 보시는데로 이미 철거된 상태입니다. [박한용 /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친일파 공덕비가) 사회적 의제가 된 것이 최근의 일입니다. 1997~8년도부터 지역의 연구소 회원들이 지역의 공덕비를 보고 ‘문제가 있지 않느냐?’라는 제기가 있어서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무조건 철폐주의는 아닙니다. 일제 강점기에 친일파들이 어떤 식으로 주입됐는가? 하나의 존경의 대상으로,

‘만철’ 전성시대와 박정희 ‘친일 혈서’, 그리고 기시

2015년 1월 27일 1225

[달리는 철도에서 본 세계] <45> 만주의 삼두마차, 만철·관동군·만주국 1906년 발족한 남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는 초고속 증식 세포처럼 만주 일대에 철도망을 깔았다. 러시아가 소유한 동청철도 노선을 빼면 만주는 일본이 부설한 철도망으로 인해 쇠줄로 꽁꽁 묶인 땅이 되었다. 만철의 철도망이 확장될수록 이를 지키기 위한 군 병력도 더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포츠머스 조약 세칙에 따라 일본은 만철 노선 1킬로미터(km)당 15명의 수비 병력을 둘 수 있었다. 일본은 철도 보호를 명목으로 독립 수비대 6개 대대를 창설하여 철도 연변을 따라 배치했다. 이 철도 수비대는 1919년 관동군 창설의 모태가 된다. 나는 새도 떨어뜨리고 아이 울음도 멈추게 했다던 일본군 정예 부대 관동군의 시초는 철도 경비대였다. 이후 관동군은 만철을 수족으로 부리며 대륙 침략과 식민지 독립운동 탄압의 핵심 기관이 된다. 만철은 운행 10년을 넘긴 1917년 또 한 번 사세를 확장하게 된다. 일본의 정책에 따라 만철이 조선 철도를 관장하게 된 것이다. 조선총독부 산하의 조선 철도는 만철에 위탁되어 만철의 산하기관으로 편입되었다. 1911년 압록강 철교의 개통으로 조선과 만주가 이어지자 조선은 일본에서 대륙으로 들어가는 주요한 길목이 되었다. 시모노세키에서 부산까지의 짧은 뱃길은 상대적으로 긴 항해 끝에 도달해야 하는 다롄보다 경쟁력이 있었다. 1910년 조선을 먹어치운 일본은 이제 대륙 침략에 대한 야심을 더욱 노골화했고, 그 출발점인 조선 철도를 만철의 손에 맡김으로써 효용성을 극대화하려고 했다.  1919년 3월 1일은 한국 근대사의 분수령이

[김가희] 윤제균 감독에게 묻다!

2015년 1월 23일 596

<국제시장> 윤제균 감독에?게 묻다! 김가희(My On 정치미학연구소) 지난 1월 4일 영화 <국제 시장>을 봤다. 개인적으로 가족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이미 나와 있는 영화 평을 대충 살펴보고 나니 그다지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느 기사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민주화가 빠진 산업화 이야기다’라는 평을 읽었고, 영화에 대한 홍보 영상들을 보니 그러한 평이 일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지난 토요일 아침에 갑자기 엄마로부터 전화가 와서 <국제시장>을 보고 싶으니 예매를 하란다. 참고로 나의 어머니는 작년에 일흔을 넘기셨다. 해방둥이보다 일년 앞서 태어나셨으니 대충 해방둥이라 해 두자. 엄마의 흔치 않은 요구는 당연히 딸로서 들어줘야 하는 일이라, 엄마 집에서 가까운 대형극장에 예매를 하려했는데, 맨 앞좌석 몇 군데 빼고 이미 다 예매가 끝나서, 집에서 가까운 구립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볼 때 멀티플렉스를 이용해서인지, 우리 동네 영화관은 시설이 괜찮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항상 한산하다. 그러나 평소 극장의 모습과 다르게 이날 <국제시장>은 거의 전 좌석이 찼으며, 영화를 보기 위해 와서 기다리는 시간 동안 사람들로 나름 북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영화의 제목은 <국제시장>이지만, 영화 시작할 때 부제목이라 할지 영어 제목이라 할지 모르겠는 “Ode to My Father” 이란 다른 제목이 나왔다. <국제시장>이란 제목이 국제시장이 가지는 사회적, 역사적, 정치적 맥락에 대한 여러

[이만열 칼럼] ‘건국절’ 논란과 역사의식

2015년 1월 23일 2551

‘건국절’ 논란과 역사의식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건국절’ 논란이 다시 재연되고 있다. 이 논란은 원래, 2008년 2월에 취임한 MB 정권이 느닷없이 그 해를 ‘건국 60년’이라 하고, 그 해 8월 15일을 광복절 대신 ‘건국절’이라고 하겠다는 데서 시작되었다. 그러자 광복회를 비롯한 독립운동 단체들은 거세게 반대했다.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원로들은 정부가 수여한 독립유공자 훈장까지 반납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이 바람에 ‘건국절’ 제정을 발의한 의원들도 스스로 그 법안을 철회했다. 정부도 이미 그 부당함을 알고 접었던 ‘건국절’ 문제에 다시 불쏘시개를 들이민 것은 일부 국회의원들이다. 얼마 전에 ‘건국절’ 제정을 입법 발의한 것이다. 이들이 어떤 성향의 의원들인지 알 수 없으나 이와 관련 이종찬은 “이상하게도 이런 주장을 하는 주동자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대개 친일파에 속해 있거나 그 선조들이 친일파로 일제에게 빌붙어 많은 공적(?)을 세운 자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게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그런 DNA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일까?” 라고 했다. 건국절 제정을 입법발의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건국절’ 제정을 주장하는 이들은 대한민국의 건국이 1948년 8월 15일에 이뤄졌다고 보고 ‘8·15’를 광복절 대신 ‘건국절’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과 정신이 타당할까? 우선 우리 헌법에 대한민국의 건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1948년에 제정한 제헌 헌법 전문(前文)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기미 3·1 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성명] 인권변호사에 대한 적반하장의 수사는 또 하나의 국가범죄이다

2015년 1월 23일 1508

[성명] 인권변호사에 대한 적반하장의 수사는 또 하나의 국가범죄이다 검찰의 서슬이 시퍼렇다. 그 어떤 잘못도 용납할 수 없다는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 변호사법을 위반했다고 호령한다. 법을 어겼으면 조목조목 따져보면 될 일이다. 그런데 잘잘못을 가리기도 전에 수십억을 독식한 파렴치한으로 만들고 있다. 수사를 하기도 전에 여론재판부터 하는 이유는 이 변호사들이 우리 사회 인권의 보루였기 때문일 것이다. 70년대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불의에 눈감지 않으려 했던 사람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독재정권에 끌려가 모진 수사를 받고 재판정에 섰을 때,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 외로울 때 곁을 지켜주고, 법적 지원을 했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민변은 우리 사회 약자의 동반자였고, 독재정권과 그 하수인들에게는 가장 큰 저항세력이었다. 민변 소속 6인의 변호사에 대한 수사 명분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의문사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 재직 당시 취급했던 사건과 관련된 민·형사 소송을 대리하고, 수임료를 받아 변호사법 위반을 했다는 혐의이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분노할 일이다. 먼저 이들 변호사들이 과거 관계한 사안이 무엇인지부터 되새겨보자. 두 위원회는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반인권적 범죄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의문사위는 과거 정권에서 국가 공권력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분명한 사건들을 조사하는 국가기구였다. 진화위는 한국전쟁 과정에서 학살당한 민간인의 희생과 과거 정권에서의 의문사를 포함한 인권침해사건을 조사하였다. 여기서 인권침해사건은 조작 간첩사건, 납북어부 사건, 민주화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사건 등 수많은

[2015.01.21] 천황의 충견 친일경찰 1부

2015년 1월 23일 397

▲ [2015.01.21] 백년전쟁 : 천황의 충견 친일경찰 1부 ☞ [팟빵]: http://www.podbbang.com/ch/6647?e=21603452 ☞ [다운]: http://down-cocendn.x-cdn.com/data1/guitarkirk/150121nrh1.mp3  

“일제강점기 나라 처지 불화로 고발”

2015년 1월 22일 963

② 서울 흥천사 감로도 전쟁 참혹성 민족의 생활상 여과 없이 사실적으로 묘사 포화에 휩싸인 전쟁터에서 앞으로 진격하는 군인들, 포탄을 난사하는 육중한 탱크, 신식법복을 입은 법관이 등장하는 재판, 조련사의 지시에 따라 코끼리가 재주를 부리는 모습, 전통 가마행렬까지…. 일제강점기 전쟁의 참혹성과 우리 민족의 생활상이 한 눈에 담긴 그림은 뜻밖에도 일반 풍속화가 아니라 감로도(甘露圖)라는 불화이다. 중생들에게 감로와 같은 법문을 베풀어 해탈에 이르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감로도는 현실의 희로애락을 다양하고 생동감 있게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중에서도 1939년 11월에 제작된 서울 성북구 흥천사의 감로도로는 당시 암울했던 사회실상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어 전문가들의 연구 대상이 돼 왔다. 그러나 해방 이후 친일의 흔적이라는 오해를 받아 한동안 작품의 전모가 감춰지기도 했다. 흰 칠로 일부 장면(전쟁, 통감부, 신사 등)을 가리거나 종이로 덧댄 것이다. 다행히 심한 훼손은 없고 전반적인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최근 들어 이 감로도가 일제의 잔혹한 식민통치에 대한 비판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근현대시기 소중한 유물로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 불화는 당시 암울했던 사회실상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이 감로도는 비극을 상징하는 전쟁장면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보통 감로도에 전쟁 장면을 하나 정도 넣었는데 흥천사 감로도에는 모두 5장면으로 배치하고 있다. 공중에서는 긴박하게 전투가 벌어지고 있고 아래에는 전사자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또 다른 한 쪽에는 칠흑 같은 어둠

함세웅 신부 “민주세력 하나 돼야” 결집 호소

2015년 1월 22일 399

민주수호 광주운동본부(준), ‘한국 민주주의 미래’ 함세웅 신부 초청강연 열어 민주화운동 원로인 함세웅 신부(72)는 광주에서 강연을 통해 ‘민주세력 결집’ 역설했다. 함세웅 신부(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는 20일 오후 광주YMCA 무진관에서 민주수호 광주운동본부(준)의 초청으로 ‘한국 민주주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날 강연회에는 김정길 6.15공동위원회 광주전남본부 상임대표, 리명한 한국작가회의 고문, 통합진보당 해산과 함께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한 오병윤 전 의원을 비롯해 광주시민 200여명이 귀를 기울였다. “‘민주성지’ 광주, 목숨바칠 각오 되새겨야” 함세웅 신부는 이날 강연회를 통해 “항일독립운동정신과 친일잔재 척결의 물줄기, 민주화 반독재 투쟁 물줄기, 분단세력 타파와 통일운동의 물줄기가 각각 따로 흘러가는데 하나로 모아야겠다. 신자유주의에 맞서 부패세력 척결하는 새로운 시대 진보의 물줄기까지 하나로 모아야 한다”면서 “가장 급한 것은 하나가 되는 일이다. 하나가 돼서 이 불의한 정권을 퇴치하자”고 역설했다. 함 신부는 “1970~80년대는 불의한 정권에 항거하면 감옥에 끌려가던 때였다. 단순한 시대였다. 그런데 지금은 감옥에 끌려가지 않는다. 벌도 벌금으로 대신한다”면서 “대응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물리적으로 싸우기 보다는 대통령의 후보시절 이야기를 통해 ‘당신은 약속을 안 지키는 거짓말쟁이’라고 설득하고 꾸짖어야 되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부에서는 광주를 ‘민주성지’라 하면 부담되는 것 같은데, ‘이건 숙명이야’ 하고 목숨 바칠 각오를 되새겨야 한다”며 “경남에서는 민주수호 경남운동본부가 이미 설립됐다. 2015년에는 바로 그런 자생적인 모임이 생겨나야 하고 또 생겨났다. 이제 하나로 묶는 일이 준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함세웅 신부(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가 20일 오후

한국PD연합회 “극우 조영기 교수 내정 철회하라”

2015년 1월 21일 478

청와대 방통심의위원에 조영기 교수 내정에 극렬 반발 [정미하기자] 한국PD연합회는 청와대가 윤석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 후임으로 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를 내정한 것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한국PD연합회는 20일 성명서를 통해 “조 교수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극우쪽 입장을 대변한 인물”이라며 “극우편향적 방송통신심의위원이 공직에 올라서 행정적 준사법적 권한을 행사할 경우,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붕괴시키는 흉기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보수성향이 강한 인물로 알려져있다. 조 교수는 인터넷 상의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사이버보안법을 제정해 ‘종북’을 차단하자고 주장한 바 있으며 친일파 청산을 ‘종북’으로 보는 역사관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또한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자학사관의 대표 사례”라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국정원 댓글활동에 대해선 “18대 대선 때 국정원 댓글때문에 표심을 바꾼 유권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되는지 의문스럽다. 수 백 개의 댓글로 정치조작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 억지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며 불법 정치개입을 옹호했다. 한국PD협회는 “박근혜 대통령은 편향적 이념논쟁의 극단적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만을 골라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앉혀 우리 사회의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며 “박효종 교수는 역사교육을 이념전쟁터로 만들어 황폐화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던 인물이고 함귀용 변호사는 2010년 참여연대의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에 대한 UN서한에 대해 ‘배후에 누군가(간첩)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던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국PD협회는 “대통령이 임명한 방통심의위원 3명 모두 극우편향 일색”이라며 “대통령은 한 정파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라고 꼬집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있던가?

2015년 1월 19일 340

▲ 17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가 함께 한 1000일 순례 모습. ‘빛고을 1000일 순례’ 64일째인 17일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가 함께 했습니다.   지난 2009년 10월5일부터 208일 동안 ‘미쓰비시 자동차 광주판매장’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던 역사적인 자리에서 출발 했습니다. ‘근로정신대’ 문제를 알리고 동참케 했던 시발점이 된 장소였죠. 영업 수익을 남기지 못해 철수시켜버린 성과도 이뤄냈답니다. 더 나아가 서울·부산 등지에 있던 ‘미쓰비시 자동차 판매장’도 모두 철수시켜 버린 일로 이어지기도 했죠.   그리 멀지 않는 곳곳에 일제·친일의 잔재가 버젓이 자리하고 식민지 설움이 방치된 채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 추운 겨울, 응달에 맨살로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옹골찬 기운으로 청산하며 바꿔가면서 새날을 열어 가고 있으니 빛고을의 빛은 밝기만 합니다.   ‘빛고을 1000일 순례’가 오욕의 역사도 속박의 설움도 모두 극복하고 치유하는 따뜻한 어머니 품이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찬바람 맞으며 순례하신 모든 분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잊지 맙시다. 세월호 참사.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단재 신채호 – 김희용<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광주시민상주모임> <2015-01-19> 광주드림 ☞기사원문: [세월호 ‘시민 상주’ 일기]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