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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경향신문] 장도리(2.24)

2015년 2월 24일 583

“친일작품 쓴 유치환·이원수 맨얼굴 봐야”

2015년 2월 24일 630

▲왼쪽부터 유치환 시인, 이원수 아동문학가. 박태일 교수 ‘…부왜문학’ 펴내 유치환 5편·이원수 5편 분석 “항일세력 죽음 능멸하는 등 식민 시대 제 이득만 꾀해” <깃발> <행복>의 시인 유치환(왼쪽 사진)과 <고향의 봄>의 이원수(오른쪽)의 친일 문학을 규명한 연구서가 나왔다. 박태일 경남대 국문과 교수는 새로 낸 책 <유치환과 이원수의 부왜문학>(소명출판)에서 이 두 문인의 친일 작품을 공개하면서 이들에 대한 역사적·문학적 평가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2004년에 낸 책 <경남·부산 지역문학 연구 1>에서 이 두사람과 소설가 김정한 등 세 문인의 친일 혐의를 제기한 바 있다. 새로 낸 책에서 박 교수는 유치환(1908~1967)이 1940년대 전반기 만주 체류 때 쓴 시 네편과 산문 한편에 친일 혐의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가운데 “이 적은 가성(街城) 네거리에/ 비적(匪敵)의 머리 두 개 높이 내걸려 있도다” “질서를 보전하려면 인명도 계구(鷄狗)와 같을 수 있도다”라는 구절이 나오는 <수(首)>라는 작품은 항일 세력으로 추정되는 이의 죽음을 반대쪽에 서서 능멸하며 “타자의 ‘생명’에 대한 잔혹한 가학심리까지 내보이고 있”다고 박 교수는 비판한다. 이와 함께 “‘대동아전쟁’ 승리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새 음악 건설, 새 미래 건설, 그것을 짊어지고 나갈 새 세대의 도래”라는 주제를 담은 <전야>와 “아세아의 산맥 넘에서/ 동방의 새벽을 이르키다”라는 구절이 포함된 <북두성> 역시 친일 작품으로 읽힌다고 그는 파악했다. 박 교수는 이런 시들이 ‘대동아전쟁’을 찬양하고 ‘황국신민’으로서 각오를 다진 노골적인 친일 산문 <대동아전쟁과

“역사를 과거의 일로만 보지 말자“

2015년 2월 23일 1085

<광복 70주년 릴레이 인터뷰 ③>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과 17일 연구소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근현대사 140년의 획기를 이루는 시기다. 외세 침탈을 받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역사에 대해 제대로 진단해보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모색하는 중대한 전환점이라고 본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이라는 대역사(役事)를 통해 우리 사회에 큰 파문을 던졌던 민족문제연구소의 조세열 사무총장은 올해를 ‘해방 70년’ 만이 아니라 ‘근현대사 140년’이라는 보다 큰 안목에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5년의 역사적 의미는 1875년 운요호 사건으로부터 일제 식민 36년을 포함해 일제 침략 70년 만에 해방됐고, 그 이후 불완전하지만 해방 70년, 분단 역사 70년이 되는 해”라는 것. 조세열 사무총장은 17일 서울 청량리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올해를 “을미사변 120년 되고, 을사늑약 110년, 경술국치 105년 되는 해”이자 “현대사에서 중요한 것은 한일협정 50년이 되는 해”라고 짚었다. “굴욕적인 한일협정으로 인해 지금까지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든지, 영토 문제, 동북아 전후청산이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있기 때문에 “한일협정 50년 간의 변화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민족문제연구소는 ‘해방 70년’을 맞아 일회적 이벤트성 행사를 지양하기 위해 2년 전부터 준비를 해왔다며 “성과를 남기고 활용할 수 있는 사업에 치중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장이 광복 70주년과 한일협정 50주년 관련 주요 사업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조정훈

친일인명사전과 탄핵반대 촛불시위, 도올의 호소에 3천만원 원고료 쌓여

2015년 2월 23일 662

[창간 15주년] 오마이뉴스를 만든 100대 기사·사건③ 언론사상 최초의 본격적인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가 2월 22일로 창간 15주년을 맞이합니다. 돌이켜보면, 오마이뉴스가 헤쳐온 길이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다사다난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오마이뉴스 15년의 역사를 100대 기사와 사건으로 풀어 5회에 걸쳐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41] 국민 모금으로 만든 친일인명사전 (2004. 1. 8) ▲ 2004년 1월 19일 저녁 <친일인명사전> 편찬 성금 5억 달성 기념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독립군가 ‘압록강행진곡’을 다같이 부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지금이라도 일제강점기 친일행위의 진상을 규명하자는 호소를 야당은 대놓고 묵살했고, 행정자치부와 국무조정실 등 정부 부처들은 서로 책임지지 않으려고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결정적으로 2003년 12월 29일 국회 예결위 예산조정소위(위원장 박종근 한나라당 의원)가 예산조정과정에서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기초자료 조사에 책정된 예산 5억 원 전액을 삭감해 사업 자체가 좌초돼 버렸다. 이런 분위기에서 “차라리 친일인명사전 발간비용을 우리가 모으자”는 고등학교 철학교사 김호롱씨의 익명 댓글(1월7일)은 광야를 불사르는 한알의 불씨가 되었다. (http://omn.kr/bnre) 이튿날부터 시작된 캠페인으로 모인 성금은 19일 5억 원을 돌파해 7억 원의 편찬자금으로 결실을 거두었다. 그날 저녁 7시 서울 명동의 옛 반민특위 표석 앞에서는 작은 성공을 축하하는 누리꾼들의 ‘번개’가 열렸다. 2009년 11월 8일 완간된 친일인명사전(총3권, 3000여 쪽)은 친일인사 4389명의 기록을 담았다. [42] ‘탄핵 반대’ 촛불시위 현장 중계 (2004. 3. 20) ▲ 2004년

25일 ‘화성의 독립운동’ 역사문화 토크콘서트

2015년 2월 22일 373

【화성=뉴시스】김기원 기자 = 경기 화성시는 ‘화성의 독립운동, 무엇이 일제를 두렵게 했나?’란 주제로 역사문화 토크콘서트를 연다고 22일 밝혔다. 역사문화 토크콘서트는 오는 25일 오후 2시∼4시까지 화성문화원 대강당에서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편찬실장의 사회로 진행된다. 전문패널로 수원대 박환 교수, 청암대 성주현 교수,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김승태 연구위원이 참석해 화성지역 독립운동의 학술적 연구 성과를 발표한다. 이날 발안만세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스코필드 박사를 통해 제암리 학살사건이 전 세계로 알려지게 된 과정과 독립운동에 미친 영향 등이 소개된다. 일제강점기 화성은 어떤 모습이었나, 향남?팔탄지역의 독립운동 이끈 사람들, 일제는 왜 제암리 학살사건을 일으켰을까, 전 세계에 일제의 만행을 알리다 등의 소주제로 나눠 시민들의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갈 예정이다. 화성문화원은 이 같은 연구성과를 토대로 화성독립운동 기념관 건립를 추진할 계획이다. 고정석 문화원장은 “이번 행사로 시민들이 화성지역 순국열사들에 대한 자긍심과 애향심을 높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kkw517@newsis.com <2015-02-18> 뉴시스 ☞기사원문: 25일 ‘화성의 독립운동’ 역사문화 토크콘서트 ※관련기사 ☞경기인터넷뉴스: [영상뉴스] 화성시, 25일 ‘화성의 독립운동’ 조명 토크콘서트 ☞경기eTV뉴스: 화성시 역사문화 토크 콘서트, “화성의 독립운동, 무엇이 일제를 두렵게 했나?” ☞케이에스피뉴스: 화성문화원, 화성시 역사문화 토크콘서트 개최 ☞아시아투데이: 화성시, 25일 역사문화 토크 콘서트 개최 ☞신아일보: 화성, 제1회 역사문화 토크 콘서트 개최

80세 보성여관 여전히 손님 맞고… 78세 보성강발전소 ‘생생’

2015년 2월 18일 927

ㆍ(7) 전남 벌교읍 ▲ 쌀·해산물 수탈 포구로 번성 현부자 집·소화다리 과거 흔적 벌교금융조합은 문화재로 지정 ‘삐걱’. 널빤지가 부대끼며 내는 소리는 80년이나 된 건물이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2층에 오르자 4칸짜리 널찍한 ‘다다미방’이 펼쳐졌다. 다다미방 끝 창문에서 내려다본 전남 보성군 벌교읍은 퇴락한 건물들 속에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한 토막씩 숨어 있었다. ‘보성여관’. 1935년 문을 연 이 여관은 등록문화재이지만 현재도 숙박이 가능하다. 1층에서 이부자리를 정리하던 김성춘 매니저는 “지금으로 치면 5성급 호텔 정도로 보면 된다”고 했다. 건물이 7채에 방이 13개나 됐던 보성여관은 번성했던 벌교의 모습을 대변한다. 지금은 인구 1만4000명 남짓한 소읍이지만 일제시대 벌교는 전남 4대 도시였다. 조선총독부의 ‘국세조사자료’를 보면 1935년 전남지역 인구는 목포 6만734명, 광주 5만4607명, 여수 2만8205명, 벌교 2만4254명이었다. 순천은 2만1938명에 그쳤다. 일본인만 벌교에 550명이 넘게 살았다.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남아있는 ‘보성여관’. 일제시대인 1935년에 지어진 이 여관은 현재로 치면 ‘특급 호텔’ 수준으로 당시 방이 13개나 됐다. 한옥과 일본식 건축이 혼합된 독특한 형태로 1층은 온돌이지만 2층에는 4칸짜리 널찍한 ‘다다미방’이 있다. 해방과 함께 쇠락하며 잊혀진 도시 벌교를 다시 살려낸 것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부터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 조정래(72)였다. 벌교를 무대로 <태백산맥>을 쓴 작가는 벌교읍 100년을 기념해 발행된 ‘벌교읍지’에 이렇게 적었다. “시골이 무대가 되는 작품을 구성하게 되면 어김없이 벌교의 풍광 전체가 일시에 떠올라 의식을 꽉 채워버리는 것이다.

96년 전 독립선언 감격 그대로…성안길서 릴레이 낭독

2015년 2월 18일 493

▲【서울=뉴시스】 허경 기자 = 민족문제연구소가 삼일절을 맞아 1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연구소에서 독립선언서 원본 등 일본 식민지 시절의 자료를 전시하는 역사관을 열고 있다. 역사관은 일제시대 발간된 잡지, 엽서, 일본이 만든 ‘한국병합 기념화보’등 100여점의 자료가 전시된다. neohk@newsis.com 2010-03-01 다음 달 1일부터 연말까지 매일 낮 12시 성안길에서 【청주=뉴시스】강신욱 기자 = 96년 전 1919년 3월1일 기미독립선언의 감격이 충북 청주에서 이어진다.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은 충북발전연구원 부설 충북학연구소와 공동으로 다음 달 1일부터 연말까지 10개월간 ‘365일 독립선언서 릴레이 낭독 행사’를 개최한다고 18일 밝혔다. 주최 측은 일본에 강탈당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을 만방에 외쳤던 선열의 숭고한 역사를 계승 발전하기 위해 날마다 낮 12시 청주 성안길 로데오거리에서 행사를 진행한다. 독립선언서 낭독은 청주문화재단 인터넷 홈페이지(www.cjculture.org) 또는 전화(043-219-1014 문화예술부)로 국민 누구나 가족·단체 등으로 사전 신청하면 참여할 수 있다. 96주년 삼일절인 다음 달 1일에는 독립선언서 낭독을 비롯해 자유와 독립을 주제로 한 플래시몹 퍼포먼스, 시민이 자신의 주체적인 독립 의지를 공표하는 ‘나는 □□로부터 독립하련다’ 낭독 등 다채로운 개막 행사가 펼쳐진다. 청주문화재단 김호일 사무총장은 “기미년 독립선언을 주도했던 민족대표 33인 중 손병희·권병덕·신석구·신홍식 선생 등 4명의 인물이 청주 출신일 만큼 청주는 충절과 의기의 전통이 이어져 온 문화도시”라며 “청주의 역사·인문학 자산을 다시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지역의 문화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ksw64@newsis.com <2015-02-18> 뉴시스 ☞기사원문:

안중근의사 유해 말로만 찾는다는 국가보훈처

2015년 2월 18일 356

[헤럴드용산동작=권지나기자] 국가보훈처가 광복7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안중근의사 유해 매장지로 추정되는 지역에 탐지작업을 벌이겠다고 밝혔으나, 중국 측의 발굴 허가조차 받지 못한 상황에서 사업 추진 계획을 밝혀 빈축을 사고 있다. 또 안 의사의 고향이 황해도 해주임에도 불구, 남북한 공동 발굴작업에 대한 협의조차 검토하지 않아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국가보훈처는 지난달 19일 열린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지난 2013년 옛 뤼순 감옥 묘지에 매장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증언을 확인하기 위해 이 지역에 지표투과레이더 조사를 할 수 있도록 중국 측에 요청했다”며 “매장지로 추정되는 중국지역에 대해 올해 지하탐지 작업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안중근의사의 유해 발굴 사업은 지난 2005년, 2008년에 진행됐지만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올해로 세 번째를 맞고 있다. ◆올해 유해 찾기 사업, 이전 사업과 어떻게 다르나? 안중근의사의 유해 발굴 사업은 올해로 세 번째로 추진되는 사업으로 앞서 남북이 2005년 장관급회담에서 공동조사에 합의한 바 있으며, 지난 2008년에는 류순 감옥 소장의 딸이 증언한 내용을 바탕으로 발굴이 진행됐으나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 후 2013년 옛 뤼순 감옥 묘지터에 위치한 안 의사 묘지를 참배했다는 새로운 증언이 나오면서 보훈처를 중심으로 재발굴 작업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옛 뤼순 감옥 묘지 터에 대해서는 그동안 유해 발굴 조사나 탐지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뤼순 감옥 건물 뒤편에서만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보훈처는 해당

민문연, 23일 대전서 한국전쟁 민간인 유해 발굴

2015년 2월 18일 465

☞ 한국전쟁 유해발굴 개토제 및 발굴조사 참가신청 안내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민족문제연구소는 23일부터 대전시 동구 낭월동(옛 산내면) 인근 지역에서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민간인 유해 발굴을 진행한다고 17일 밝혔다. 연구소에 따르면 낭월동 인근 지역은 한국전쟁 당시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들이 학살당한 후 매장된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연구소는 지난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수천여명이 세 차례에 걸쳐 학살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연구소는 앞서 작년 2월 한국전쟁유족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4·9통일평화재단 등과 함께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 공동조사단’을 출범, 경남 진주 명석면 일대에서 1차 유해 발굴 조사를 거쳐 39명의 유해와 유품을 찾아낸 바 있다. 이번 대전 지역 발굴에서는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등 19개 지역 시민단체가 ‘한국전쟁기 대전 산내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함께 하기로 했다. 연구소는 “한국전쟁 당시 무수히 많은 민간인이 뚜렷한 이유 없이 죽임을 당하고 이름 모를 산속에 버려졌다”며 “우리나라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사회 통합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국가 폭력에 희생된 분들의 진상 규명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tsl@yna.co.kr <2015-02-17> 연합뉴스 ☞기사원문: 민문연, 23일 대전서 한국전쟁 민간인 유해 발굴 ※관련영상   ※관련뉴스 ☞YTN: 민족문제연구소, 한국전쟁 유해 발굴 예정 ☞대전뉴스: 대전 산내 민간인학살 2차 유해 발굴 ☞통일뉴스: “60년의 어둠 거두어 밝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한겨레: 한국전쟁 초기 민간인 4400~8000명 학살…대전 골령골 유해발굴 23일

‘신민’ 만들기가 ‘국민’ 만들기로… 일본도 버린 ‘잔재’ 여전히 답습

2015년 2월 17일 1092

ㆍ(6) 교육 – 교육에 숨은 식민권력 ▲ 미 군정의 일본 교육개혁 교사 권한 강화, 국가 통제 약화 평화·민주시민교육 강조 ▲ 한국은 중앙집권적 교육과정 사범대 중심 교원 양성 그대로 유신체제에서 오히려 강화 ▲ 과도한 국가주도적 교육 체제 교장·교사·학생 수직적 관계로 학생 인권·교권, 해방되지 않아 “어떤 선생님은 수업 전에 차렷 경례를 10번이나 시킨 적도 있어요. ‘각이 안 살아있다’고. 몇 년 전 다녔던 미국 중학교에서는 학생과 선생님이 수평적 관계고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한국에선 대체로 선생님들이 위에 있고 학생들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한자를 제대로 못 쓴다고 손바닥 맞고, 체육선생님들은 걸핏하면 엎드려뻗쳐를 시켜서 허벅지 뒤를 때리는데, 내가 맞을 때도, 친구들이 맞는 걸 봐도 기분이 정말 나빠요.” (서울 ㄱ중 3학년 여학생) “90년대 후반 사립중에 부임했는데, 제가 다닐 때의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에 깜짝 놀랐어요. 중앙현관으로 못 다니게 하고 한달에 한번은 운동장 조회에서 교장선생님 훈화를 듣고, 아침마다 선도부, 생활지도부 교사가 교문에서 아이들 두발, 복장을 단속하고…. 아이들에게만 그런 문화가 남아 있는 게 아니었어요. 월요일마다 열리는 교무회의는 교장, 교감선생님의 지시사항만 전달하는 자리고, 교사들은 입도 뻥긋 못하는 분위기예요.” (서울 ㄴ중 40대 교사) 1996년 3월 황국신민을 길러내는 학교라는 의미의 ‘국민학교’가 일제히 ‘초등학교’로 바뀌며 일제 잔재 청산의 물꼬가 터진 듯했다. 그러나 해방 70년이 지난 현재에도 일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