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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1] 1909년 11월. 이토히로부미 추도회와 친일파
▲[2015.03.11] 라디오백년전쟁: 1909년 11월. 이토히로부미 추도회와 친일파 ☞[팟빵]: http://www.podbbang.com/ch/6647?e=21638249 ☞[다운]: http://down-cocendn.x-cdn.com/data1/guitarkirk/150311nrh1.mp3
박한용 “선대는 군사쿠데타 하고 후대는 역사쿠데타 한다”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금속노조 경남지부 ‘노동자 통일학교’ 강연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친일파를 연구하고 친일인명사전을 내는 사람들이 ‘종북’으로 몰리는 사회가 되는 게 문제”라며 “사전을 내고 <100년 전쟁> 영화를 만들고 하니까 북한과 연계된 거 아니냐고 하던데, 친일 문제 제기가 민족반역이 되는 사회가 문제”라고 말했다. 박 실장은 12일 저녁 창원노동회관에서 금속노조 경남지부가 마련한 ‘노동자 통일학교’에서 “친일역사로 본 근현대사 100년”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뉴라이트 교과서’와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그는 “친일 문제를 넘어 역사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교학사 교과서 내용을 노동자를 포함한 시민들은 잘 모르는데, 그 내용은 끔찍하다”며 “현 수구보수세력이 무엇을 꿈꾸는지 알 수 있고, 미래 파시스트 양성 교육자료이며, 새누리당 지지자를 만드는 교육”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한 곳에서만 채택했다, 교육부가 검정교과서를 해서 실패하자 이번에는 국정교과서화를 하려고 한다”며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총대를 멨는데,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찮다”고 덧붙였다. ▲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12일 저녁 창원노동회관 대강당에서 금속노조 경남지부 초청으로 “친일역사로 본 근현대사 100년”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 윤성효 그러면서 그는 “세계에 유래가 없는 역사 쿠데타다, 애비(박정희)는 군사쿠데타를 하고 딸(박근혜)은 역사쿠데타를 한다”고 말했다. 박정희기념관에서 방영하는 4분 짜리 홍보동영상을 틀어준 뒤, 그는 “웃음이 나오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런 게 현재 초등학생한테 먹힌다는 것”이라며 “가장 좋은 학습은 세뇌다, 박정희기념관은 세뇌공작소다, 그 동영상을 교과서로 만든 게 교학사 역사교과서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쁜 여인’ 박근혜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단박 인터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 신부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의 직분은 봉사자고, 종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면, 왕처럼 행세합니다. 1인 독재 체제가 오랫동안 지속된 잘못된 역사의 산물입니다. 대통령도 우리 중의 하나입니다. (국민 곁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고문인 함세웅 신부를 찾았다. 지난달 28일 있었던 집회에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낸 함 신부는 ‘정의’에 대해 물었다. “5세기경 로마 제국의 멸망을 지켜보던 성 아우구스티노가 신국(神國)론에서 국가 공동체의 기본적 가치로 ‘정의’를 설파하며, ‘정의가 없는 국가는 강도 집단과 똑같은 것이다’라고 선언했다”는 것. 2012년 대선과 관련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달 9일 국정원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법정 구속된 일이 벌어진 가운데, 전임 대통령이었던 이명박도, 그 선거를 통해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도 ‘침묵’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함 신부는 강조했다. 함 신부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위해서 아버지와 같이 폭압을 휘두르는 박근혜 대통령을 폭압에서 구원시켜야 하는 게 종교인으로의 신학적 사명”이라고 했다. 이어 “자신이 휘두르는 권력의 폭압에서 그 자신을 해방시켜 아름다운 인간성을 회복하게 해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대선 후보 시절 공약을 되찾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이행’에 대한 비판이 곧 박 대통령에겐 ‘폭압자’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 함 신부는 이어 더 긴 안목을 주문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시대가 바뀌는데 100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우리 사회도
김종필 받아쓰기, 거짓 역사 만드는 중앙일보
[비평] 5·16 쿠테타 미화하고 좌익전력 선긋기… 굴절된 현대사, 아전인수 왜곡 증언 쏟아내 어렸을 때 술꾼인 아버지의 폭력 속에 있다가 부모를 잃고 고아로 살았지만 술·담배를 멀리한 채 그림 그리기에 빠졌던 한 사람이 있다. 약 5000만명의 희생자를 낳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600만 유태인 학살의 책임자인 아돌프 히틀러(1889~1945)다. 개인의 삶을 강조하는 것은 그에 대한 연민을 자아내는 동시에 역사적 검증의 칼날을 무디게 만든다. 중앙일보는 지난 2일부터 김종필 전 총리 인터뷰 연재를 시작했다. 2일 첫 인터뷰 연재에 중앙일보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오른손이 불편해 왼손으로 커피 잔을 든 김 전 총리’의 사진을 사용했다. “그의 기억력은 녹슬지 않았다”는 사진설명은 인간적 연민과 경외심을 모두 자극한다. 지난해 10월부터 진행했다는 인터뷰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자신을 좌익세력과 선을 긋고, 성공한 쿠데타를 혁명으로 둔갑시키려는 김 전 총리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 ▲ 2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쿠데타면 어떻고 혁명이면 어떠냐” 인터뷰에서 그는 5·16 쿠데타를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김 전 총리는 “쿠데타면 어떻고 혁명이면 어떠냐”며 부패한 군의 개혁(정군)과 장면 총리가 이끄는 무능한 정부의 개혁을 위해 “혁명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지배계층과 사회구조가 바뀌어 과거와의 단절이 있어야 하고 민심을 담아야 혁명이다. 그런 측면에서 4·19도 미완의 혁명인데 어떻게 5·16이 혁명일 수 있느냐”며 “진짜 민심을 담은 혁명을 원했다면 4·19 때 조용히 지나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의 바른’ 메르켈, ‘위안부 발언’은 작심했다
남의 집을 방문해 초대한 집주인에게 이런저런 충고를 한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일지 모릅니다. 더구나 방문자와 초대자가 한 나라의 정상이라면 더욱 그럴 겁니다. 언론이라는 제삼자가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7년 만에 일본을 방문한 메르켈 총리는 그런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도 할 말을 다했습니다. 메시지는 콕콕 짚어 전달하면서 ‘예의 바르다’는 평을 들은 메르켈 총리의 노련함을 다시 정리해봤습니다. ● ‘예의 바른’ 메르켈, 독일의 경험만 얘기했다 메르켈 총리는 자신은 독일의 경험만을 말할 뿐이라는 전제를 꼭 붙였습니다. 기자의 질문에 답하면서도 ‘일본에 조언할 위치에 있지 않다’ ‘일본에 이래라저래라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라’ ‘과거 정리가 화해의 전제조건이다’라는 메시지를 정중하게 날렸습니다. 일본 기자가 한국 중국과의 관계 개선 방법을 묻자, 메르켈 총리는 ‘독일이 과거 정리를 하니까 프랑스나 유럽이 독일에 관용을 베풀었다’고 답했습니다. 언론이 이런 답을 어떤 기사로 만들 지 메르켈 총리가 모르지 않습니다. 상대가 직접 반발할 수 없는 화법으로 충고와 조언의 메시지를 날렸습니다. ● ‘위안부 발언’은 간접화법으로 전달했다 한국과 일본은 현재 ‘위안부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위안부 관련 발언은 대단히 민감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메르켈 총리는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위안부를 끄집어 냈습니다. 일본의 제1야당인 민주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입니다. 메르켈 총리와 오카다 민주당 대표의 회담은 비공개로 진행됐습니다. 회담
[뉴스펀딩] 1화 살아 돌아오면 다행이었던 강제징용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당한 여운택 할아버지의 증언 2012년 5월 24일 오후 2시 대법원 1호 법정실. 이날따라 처리해야 할 사건이 많아서인지, 법정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재판관은 사건번호와 결과를 빠른 속도로 무표정하게 읽어나갔다. 재판관의 낮은 목소리에 다소 무료하고 짜증도 슬슬 나려했다. 15분 쯤 지났을까. “사건번호 2009다22549 손해배상 청구 소송, 원고 망 박창환의 소송수계인 외 4명, 피고 미쓰비시중공업주식회사,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사건번호 2009다68620 손해배상청구소송, 원고 여운택 외 3명, 피고 신일본제철주식회사,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어, 이게 뭔 소리야.’ 옆자리에 앉아 있던 법무법인 해마루의 장영석 변호사와 서로 눈이 마주쳤다. ‘이겼다’는 것을 서로 확인했다. 우리 둘은 서둘러 1호실을 빠져나왔다. 검색대 밖에서 이희자 대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겼습니다.” “이겼대? 정말.” “예.” 말을 한 나 자신도 믿기 어려웠다. 15년간의 싸움, 그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원폭 피해자 소송을 제외하면 다른 모든 강제동원 피해 소송에서 졌다. 그것을 뒤집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세상에, 세상에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 – 김민철, 보수적인 재판부가 내린 혁신적인 판결 『내일을 여는 역사』, 2012년 가을호.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인’ 120만명 정도가 해외로 징용·징병 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군인과 군속 36만 5000여명, 군수기업 등에 노동자로 끌려간 사람 66만 7684명 정도가 확인되었습니다. 수치는 어느
“일본군위안부 문제 ‘주범’은 일제 식민지배와 친일세력”
윤명숙 박사.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짬] 충남대 국가전략연구소 전임연구원 윤명숙 박사 “김학순 할머니가 내 연구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제도>(옮긴이 최민순, 이학사 펴냄)의 지은이 윤명숙(54·사진)씨의 얘기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1991년 8월14일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세상에 폭로한 피해자 김학순(1924~97) 할머니의 공개증언이었기 때문이다. “그해 일본 히토쓰바시대학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하지만 식민지 시기 여성 지식인을 염두에 둔 연구 주제에 회의를 느껴 공부를 계속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던 때였다. 필연이었을까? 그해 9월 김 할머니를 만나, 직접 인터뷰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위안부’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85년 일본에 건너가 2년 뒤 도쿄외국어대에 들어간 윤씨는 91년 재일동포 역사학자 강덕상 교수가 재직하던 히토쓰바시대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김학순 충격’ 속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연구 주제를 바꿨고 94년 석사, 2000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 공개증언 ‘충격’ 연구주제 바꿔 ‘위안부 문제’ 9년 몰입 ‘일본군위안소제도…’ 박사논문 책으로 업자들 통해 인신매매·취업사기 징모 “왜 조선 소녀들이 팔려갔는지” 규명 ‘강제연행’은 일본 우익의 프레임 불과 그의 이번 책은 2003년 일본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약간 손질해 출간했던 <일본의 군대위안소 제도와 조선인 군대위안부>(아카시서점)를 10여년 만에 한국어판으로 다시 펴낸 것이다. 위안부 문제 연구의 방향을 가른 책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위안소 문제가 제기된 지 25년이 흘렀지만
‘이달의 스승’ 논란에 황우여 “장관이 낄 일 아니다”
[즉석 인터뷰] “추천위 재심사 결과 존중해야… 정치권 개입 안돼” ▲ 11일 오전 즉석 인터뷰에 응한 황우여 교육부장관. ⓒ 윤근혁 친일반민족행위자 선정 논란을 빚고 있는 교육부의 ‘이달의 스승’ 사업에 대해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중요한 것은) 사과 여부가 아니며, 그 일(추천 재심사)은 교육부 장관이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사업은 지난해 8월 황 장관이 직접 지시한 사업이어서 ‘선 긋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관련기사 : ‘이달의 친일 스승’ 그후, 너무나 뻔뻔한 교육부와 교총) 황 장관은 11일 오전 서울의 한 학교 방문 행사장에서 기자와 만나 ‘이달의 스승 사업을 직접 지시했는데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같이 말하면서 “이 사업은 우리가 지시를 했지만 선정위원회에서 재심사 중이니까 조금 기다려보면 어떨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황 장관은 “지금 재검토를 하고 있는데 (최규동 등 친일 행적 의혹을 가진 이들을) 막 몰아붙이고 매도하는 분위기는 안 된다”면서 “우리의 아픈 과거의 문제니까 전문적인 기관의 판단을 존중해야지 정치권 등에서 개입할 것은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앞서 교육부는 한국교총(교총)과 함께 선정위원회를 만든 뒤 ‘이달의 스승’ 12명을 뽑아 발표했지만 일부 인사들의 친일 행적이 논란이 된 바 있다. ‘3월,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된 최규동 전 교총 초대 회장의 경우 1942년 6월 “죽음으로써 임금(일왕)의 은혜에 보답하다”란 제목의 글을 <문교의 조선>이란 잡지에 쓴 사실이 지난 7일 드러난 바 있다.
김종필 받아쓰기, 거짓 역사 만드는 중앙일보
[비평] 5·16 쿠테타 미화하고 좌익전력 선긋기… 굴절된 현대사, 아전인수 왜곡 증언 쏟아내 어렸을 때 술꾼인 아버지의 폭력 속에 있다가 부모를 잃고 고아로 살았지만 술·담배를 멀리한 채 그림 그리기에 빠졌던 한 사람이 있다. 약 5000만명의 희생자를 낳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600만 유태인 학살의 책임자인 아돌프 히틀러(1889~1945)다. 개인의 삶을 강조하는 것은 그에 대한 연민을 자아내는 동시에 역사적 검증의 칼날을 무디게 만든다. 중앙일보는 지난 2일부터 김종필 전 총리 인터뷰 연재를 시작했다. 2일 첫 인터뷰 연재에 중앙일보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오른손이 불편해 왼손으로 커피 잔을 든 김 전 총리’의 사진을 사용했다. “그의 기억력은 녹슬지 않았다”는 사진설명은 인간적 연민과 경외심을 모두 자극한다. 지난해 10월부터 진행했다는 인터뷰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자신을 좌익세력과 선을 긋고, 성공한 쿠데타를 혁명으로 둔갑시키려는 김 전 총리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 ▲ 2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쿠데타면 어떻고 혁명이면 어떠냐” 인터뷰에서 그는 5·16 쿠데타를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김 전 총리는 “쿠데타면 어떻고 혁명이면 어떠냐”며 부패한 군의 개혁(정군)과 장면 총리가 이끄는 무능한 정부의 개혁을 위해 “혁명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지배계층과 사회구조가 바뀌어 과거와의 단절이 있어야 하고 민심을 담아야 혁명이다. 그런 측면에서 4·19도 미완의 혁명인데 어떻게 5·16이 혁명일 수 있느냐”며 “진짜 민심을 담은 혁명을 원했다면 4·19 때 조용히 지나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달의 친일 스승’ 그후, 너무나 뻔뻔한 교육부와 교총
‘이달의 스승’ 사업 지시한 황우여 장관 사과해야 ▲ 교육부가 일선 초중고에 보낸 최규동 홍보 포스터. ⓒ 교육부 “역사를 한 가지 교과서로 균형 있게 가르치는 것이 국가 책임이다.”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지난 1월 8일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은 ‘균형 있는 역사’란 명분을 내세워 ‘국정교과서를 강행하겠다’는 속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됐다. ‘이달의 친일 스승’ 뽑은 교육부 이날 황 장관은 다음과 같이 역사교육에 대한 소신을 덧붙이기도 했다. “역사만큼은 분쟁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역사)교과서 오류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 이 같은 발언이 나온 지 일주일쯤 뒤인 지난 1월 중순부터 교육부와 한국교총은 ‘이달의 스승’ 12명을 뽑기 위한 선정위원회를 3차례 열었다. ‘존경받는 사도상을 정립하기 위해 이달의 스승을 선정해 스승 존경 풍토를 높이도록 하라’는 지난해 8월 황 장관의 지시에 따른 준비 작업이었다. 황 장관은 지난 1월 23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도 “독립유공자를 선정하듯이 ‘이달의 스승상’을 매달 선정하려고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달의 스승’을 뽑는 방식이었다. 황 장관 말대로 국정교과서처럼 획일적 방법을 써서 ‘분쟁의 씨앗’을 없애려는 이유였을까? 교육부는 선정위원 9명을 자신들과 보수교원단체인 한국교총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골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퇴직교장단체인 한국교육삼락회 회장을 선정위원장으로 세우고 교총 대표 1명,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2명 등으로 위원을 구성했다. 교육부가 지난 2월 17일 낸 ‘이달의 스승’ 선정 관련 보도자료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