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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민주행동, 제2의 민주화운동 발기인 대회

2015년 3월 24일 463

[신문고뉴스]박훈규 기자 = 함세웅 신부와 김상근 목사 등 민주화운동 원로들이 주축이 된 ‘민주행동’이 24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발기인대회를 열고 ‘제2의 민주화운동’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민주행동은 지난 16일 ‘2.28범국민대회’를 제안하면서 “박근혜정권의 독재와 무능이 한국사회에 심각한 위협을 끼치고 있다”며 87년 체제를 넘어 남북의 화해와 민주,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범민주, 진보세력의 초당파적 참여를 통해 제2의 민주화운동을 일으켜 친일과 독재잔당의 청산, 국가권력 구조의 민주적 재편을 이루어내자고 강조했다. ▲ 지난달 28일 서울역광장에서 개최한 박근혜 정부 규탄 범국민대회 ? 박훈규 이어 “관권부정선거와 군사작전권 포기, 복지공약 파기는 탄핵 대상”이라며 “박근혜정권은 국민의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총체적 관권부정선거 진상규명 요구에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하고 내란음모 정치공작을 감행하는가 하면 검찰총장을 찍어내고 특별수사팀을 공중분해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질타했다. 더불어 “박 대통령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 2년 동안 추천한 공직후보자의 상당수는 범죄자로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는 수준”이라면서 “이것만 봐도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기본적 능력과 인적 자원조차 갖추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나서 민생,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무도한 정권에 맞서 싸우자”면서 “발기인대회를 통해 국민적 지지를 모아나가고 20대부터 90대까지 국민항쟁의 주역이 돼서 제2의 민주화 운동을 시작하자”고 밝혔다. 민주행동은 또 지난 18일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시민단체 토론회’를 개최하고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인 ‘다수결의 원칙’이 선거제도의 허점으로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대한민국 ‘정통성’ 채운다…1천억대 친일재산 환수

2015년 3월 24일 718

친일재산 환수 10년 만에 마무리 눈앞…승소율 97%·역사 부조리 해소 10년간 끌어왔던 친일재산 국고환수 사업이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1천억 대의 친일재산이 올해 안으로 국고로 환수될 예정이다.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 환수에 관한 특별법’을 근거로 정부 차원의 조사 활동을 거쳐 소송을 시작한 지 10년 만이다. 친일재산 환수 문제는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강제 해산 이후 제대로 매듭짓지 못했던 문제였다. 법무부는 1일 친일재산 환수 관련 소송 96건 중 94건이 대부분 국가 승소로 확정됐고, 나머지 2건은 1·2심 판결 뒤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라고 밝혔다. 승소율 97%의 매우 의미있는 성과이다.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요즘 국가가 돈이 없어서 증세를 해야하는 형국인데 국고가 늘어서 좋다.”, “광복 직후에 했어야 할 일이긴 하지만 지금에라도 이뤄져서 다행이다.”라는 의견이 있었다. 반면, “취지 자체는 좋은데, 배상을 해야 할 대상으로 선정된 사람들이 공평하게 선택된 것인지 유력자나 재력가는 배제된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렇다면 친일재산환수사업의 대상이 된 친일재산 환수는 누구를 대상으로 한 것일까? 친일재산환수사업에서 친일재산이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권 침탈이 시작된 러·일 전쟁 개전 시(1904.2)부터 광복 시까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받은 재산을 의미한다. 여기서 ‘친일반민족행위자’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제2조 1호의 규정에 의거한 자로, 다음과 같다. 친일재산의 국가 귀속은 위에서 규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러·일 전쟁 개전 시(1904.2)부터 광복 시까지 일제에

고교생들이 제작한 위안부 할머니 다큐영화

2015년 3월 24일 538

[지방시대] [앵커] 부산의 고등학생이 일본의 한 맺힌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부산에서 김선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지난 15일 오후 부산 양정청소년수련관에서 이색 상영회가 열렸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지만 광복 70년이 지나도록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조차 받지 못한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스크린에 상영됐습니다. 10여분의 상영시간 동안 관객들은 숨죽이며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픈 과거와 현재를 마주했습니다. ‘우리 할머니다’는 제목의 이 영화는 부산의 고등학생 5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이 학생들은 운영난으로 폐관 위기를 맞은 부산 민족과여성역사관에 기부금을 내다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직접 영화로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김재우 / 부산 동인고 (감독)>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이 먼저 올바르게 알고 정확한 지식을 알고자, 이런 것을 말하기 위해서 저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보시고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들은 지난해 더운 여름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민족문제연구소,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위안부 할머니를 직접 찾아다니며 영상을 찍었습니다. 국내외 각종 위안부 관련자료를 모아 영화제작에 활용했습니다. <김문숙 / 민족과여성 역사관 이사장> “이 학생들이 정말 짧지만은 잘 포착해서 할머니들의 고통이나 또 우리가 위안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가 이런 것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작품은 올해 여름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서 상영돼 보다 많은 관객을 만날 예정입니다. 연합뉴스 김선호입니다. 연합뉴스TV 제보:02-398-4409, yjebo@yna.co.kr <2015-03-23>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 뜻 재조명

2015년 3월 23일 1147

‘見利思義見危授命(견리사의견위수명)’   “이로움을 보았을 때에는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당했을 때에는 목숨을 바치라”   이 문구는 안중근 의사가 남긴 20점의 유묵(遺墨) 중 하나다. 의사의 위인적인 풍모와 나라사랑에 대한 정신이 묻어나는 글귀로 잘 알려져 있다.   서울시 용산구(구청장 성장현)가 광복 70주년, 안중근의사 순국 105주년을 맞아 항일 독립운동과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 안중근 의사를 추모하기 위해 ‘안중근의사 순국 105주년 추모식’ 지원에 나섰다.   현재 용산구 효창원 내에는 1946년, 백범 김구 선생 주도로 삼(三)의사의 묘 바로 옆에 조성된 안중근의사의 가묘가 모셔져 있다.   추모식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안중근평화연구원, 민족문제연구소 주최로 21일 효창원 내 안중근의사 묘역에서 진행됐다.   안중근의사가 순국한 뤼순형무소 투옥 당시 일본인 간수마저 경외한 그의 기개와 관련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일본 간수 지바 도시치는 “일본이 당신 나라의 독립을 방해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이에 대해 안중근의사는 “그 말을 정중히 받아드리겠소. 일본인, 더구나 군인인 당신이 그 같은 말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역사의 흐름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오. 그러나 나의 이번 거사가 가까운 장래, 아니 먼 장래 일지도 모르지만 대한 동포들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소이다.”   안중근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했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칠 것을 오늘 우리 모두 손가락을 끊어 맹세하자”라며 1909년 2월 7일, 결사

‘장인환·전명운의거 107주년’ (上)1908년 美신문 스티븐스저격 대서특필

2015년 3월 23일 2054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1908년 3월23일 오전 9시30분 샌프란시스코 페리호 선착장 앞에서 세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대한제국 고문으로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더램 화이트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 56)를 전명운 의사(25)와 장인환 의사(33)가 저격했다. 두 의사의 의거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매체에 타전됐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은 깜짝 놀랄정도로 많은 분량의 속보를 이어갔다. 유력지 샌프란시스코 콜은 3월23일부터 25일까지 사흘 연속 대서특필이었다. 사진은 1면기사. 2015.03.20. <사진=샌프란시스코콜 DB> robin@newsis.com 2015-03-21 ‘샌프란시스코 콜’ 1면부터 3면 도배 현장 그래픽까지 소개 눈길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인 최초의 ‘의혈 투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쓰러진 미국인은 더램 화이트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 56), 부상당한 동양인은 전명운(田明雲) 의사(25), 총을 쏜 동양인은 장인환(張仁煥) 의사(33)였다. 긴급 후송된 스티븐스는 치료를 받다가 이틀 후 총탄 제거 수술을 받다 숨졌다. 당시 대한제국 고문이었던 스티븐스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로부터 모종의 밀명을 받고 미국에 들어온 지 사흘만에 저격당한 사건은 커다란 파장 속에 국권 회복을 염원하는 한국인들의 피를 끓게 했고 이듬해 10월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처단으로 이어졌다. 장인환·전명운 두 의사의 의거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매체에 타전됐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분량의 속보를 이어갔다. 유력지 샌프란시스코 콜은 3월23일 월요일자부터 25일까지 사흘 연속 대서특필이었다. 저격 다음날인 3월24일자는 1면부터 3면까지 이 사건 기사로 도배할만큼 비상한 관심을 기울였다. 1856년 창간한

“이달의 스승 12명 중 8명 친일 의혹”… 깡통검증 교육부

2015년 3월 23일 972

교육부가 선정한 최규동 전 서울대 총장 등 ‘이달의 스승’ 12명 가운데 8명에 대해 친일 행적 의혹이 제기됐다. 이달의 스승 대상자 부실 검증에 대한 비판과 함께 선정 및 검증 과정의 정파성 논란이 불가피해 사업의 원래 취지가 퇴색될 수밖에 없게 됐다. 교육부는 소속 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와 민간 기관인 민족문제연구소에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된 12명 전체에 대한 검증을 의뢰해 최 전 총장 등 8명에게서 크고 작은 친일 행적이 발견됐다는 결과를 통보받은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들에게서 발견했다는 친일 행적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받은 결과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며 “이달의 스승 사업을 앞으로 어떻게 할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최 전 총장에게서 2건의 친일 행적을 더 발견하는 등 모두 8명의 크고 작은 친일 행적을 찾아내 교육부에 통보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증 결과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친일 행적이 지나치다고 판단되는 인물은 교체하고, 매달 1명씩 새로 선정해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된 이들에게서 발견된 행위 중에는 본인 의지와 관계없이 행해진 것들도 있고, 명의 도용 등의 가능성도 있어 이를 침소봉대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앞서 최 전 총장에 대한 친일 의혹이 제기되자 일부 단체는 “파편 같은 흔적들을 찾아내 선생의 민족교육에 대한 열정을 모조리 친일로 매도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했었다. 하지만 민간단체들은 선정위원 재구성

[뉴스펀딩] 4화. 유골은 말하고 있다

2015년 3월 21일 2068

2009년 5월, 일본의 홋카이도(北海道) 사루후쓰촌(猿拂村) 아사지노(淺茅野) 공동묘지 옛터. 강제동원 희생자의 유골 발굴 현장에 부는 바람이 차갑습니다. 한국에서 온 지옥동 할아버지가 희생자의 유골이 서서히 드러나는 모습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닷새간의 발굴 작업을 마무리하던 때였습니다.  강제노동의 끝에 이역의 땅에서 이름도 없이 죽어간 유골의 주인공이 척추 뼈 한 마디를 세상에 내보이며 고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온 것입니다. ㅣ 60여년 만에 세상에 드러난 희생자의 척추뼈 오호츠크 바다를 향해 뻗어 있는 아사지노 비행장은 일본 최북단의 땅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일본은 소련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1200m와 1400m의 목판 활주로를 갖춘 비행장을 건설했습니다. “조선에서 끌려와비행장 만들었던 젊은이들” 이 비행장을 만든 사람들은 식민지 조선에서 끌려온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가혹한 강제노동과 굶주림, 전염병에 시달린 끝에 모두 89명의 조선인들이 이 곳에서 희생되었습니다. 고향을 떠나와 홋카이도에서 이름도 없이 죽어간 조선의 젊은이들은 해방이 된 뒤에도 아무도 찾지 않는 자작나무 숲 아래에서 60여년이 넘는 세월을 잠들어 있었습니다. 지옥동 할아버지도 10대 후반의 나이에 이 곳에 끌려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았습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강제로 끌려 온 청년이 여든을 넘긴 노인이 되어 강제노동의 땅 홋카이도에 다시 선 것입니다.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지옥동 할아버지는 징용으로 이 곳까지 왔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언제 돌아올지도 모른 채 부산에서 관부연락선을 타고 시모노세키(下?)에 닿았습니다. 그 곳에서 다시 일주일 동안 기차를 타고 일본열도를 횡단하여 혹한의

“안중근 의사, 지금 우리에게 ‘남북통일 헌신’ 당부했을 것”

2015년 3월 20일 959

ㆍ내일 ‘안 의사 순국 105주년 추모식’ 여는 함세웅 신부 “순국선열들께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안중근 의사 순국(3월26일) 105주년을 일주일 앞두고 함세웅 신부(사진)는 머리부터 조아렸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함 신부는 19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으셨는데 우리는 남북분단을 막지 못했고, 지금은 서로 적대시하고 있다”며 “북한은 일제강점기 함께 독립전쟁을 치른 동포다. 형제국으로서 북한이 미국·일본과 수교를 맺고 국제사회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광복과 분단 70년이 되는 해인 만큼, 국가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자각할 것을 함 신부는 주문했다. 그는 “반민족 친일 세력과 독재 잔당들은 국가안보가 아니라 정권안보를 위해 이념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며 “상식을 기초로 한 건강한 민족공동체를 지향한다면 개개인이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주체성을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함 신부는 “남북 화해와 협력을 도모하면 사전에도 없는 ‘종북’이란 말로 훼손하고 있는 현실이 슬프다”고 했다. 이어 “북을 적대시하는 정책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며 이젠 ‘실질적 행동’으로 남북화해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방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은 어머니가 같다는 증거로 이는 축복받은 민족이다. 어려운 형제를 돕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안중근 의사 역시 우리에게 ‘남북통일을 위해 헌신하라’고 당부하실 겁니다.” 함 신부는 현 정권을 향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등으로 생긴 슬픔과 분노는 국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이

역사의 오물에 맞선 기록

2015년 3월 20일 1097

잠깐독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 2 서중석·김덕련 지음 오월의봄·각권 1만5000~1만6000원 반세기 동안 한국 현대사 연구를 천착해온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프레시안> 기획 인터뷰가 책으로 묶여 나왔다. 9가지의 굵직한 주제 중 4가지를 1권(해방과 분단, 친일파)과 2권(한국전쟁, 민간인 집단학살)에 담았다. 책은 해방 이후로도 줄곧 기득권력을 움켜쥔 친일·분단·반공·극우·독재협력 세력이 뉴라이트 집단을 앞세워 현대사를 왜곡하는 이념 공세를 통렬하게 논박한다. 서 교수에게 “역사전쟁은 수구세력의 불장난” 같은 것이다. 기획자는 “부박함에 휘둘리고 편협한 진영논리에 자신을 가두는 진보세력의 각성과 분발을 촉구하는 의미”도 책에 담았다. 거짓과 궤변, 기피와 외면을 거둬낸 자리에 사실과 진실이 오롯하다. 서 교수가 책머리에서 지적한 ‘역사의 죄인’들이 저지른 잘못과 만행을 역사로 접하는 것은 불편함을 넘어 참혹하고 고통스럽다. 노학자는 “극우반공세력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앞장섰다는 주장을 접하면 소름이 끼친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책은 얼룩진 역사도 정면으로 응시하라고 권한다. 우리 현대사는 그런 “역사의 오물에 맞서 한걸음씩 나아간” 기록이기 때문이다. 책은 연대기 서술이 아닌 이야기 마당 형식으로 쓰여 딱딱함을 덜고 생동감을 보탰다. 더 큰 미덕은 풍부하고 구체적인 연구 성과와 당당한 역사 평가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2015-03-19> 한겨레 ☞기사원문: 역사의 오물에 맞선 기록

민족문제연구소, 행주나루 선상 만세운동 28일 재현

2015년 3월 20일 785

고양시 시정연수원 기념식 후 한강에서…”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기 위해 만전” ▲ 경기도 고양시 행주나루터.(민족문제연구소 제공) News1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는 28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행주나루 선상 만세운동’을 복원·재현한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지난 1919년 3월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에 촉발돼 행주나루 일대에서 진행된 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마련됐다. 행주나루 일대에서는 같은 해 3월11일, 24일, 28일 등 세 차례에 걸쳐 한강 선상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됐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강에 띄운 배 위에서 시위를 진행한 것이다. 연구소는 28일 오전 10시 고양시 시정연수원에서 기념식을 연 뒤 행주나루터로 자리를 옮겨 오전 11시부터 만세운동을 재현할 예정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자원봉사로 참여하는 다수의 고양 시민과 학생들이 만세꾼과 일제 헌병으로 분장해 만세운동 당시의 상황을 재현한다”며 “기마병과 어선을 동원하는 등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기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pej86@ 박응진 기자 | 2015.03.20 14:54:21 송고 <2015-03-20> 뉴스1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행주나루 선상 만세운동 28일 재현 ※관련기사 ☞연합뉴스: 민족문제연구소, 행주나루 선상 만세운동 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