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uge collection of 3400+ free website templates, WP themes and more http://jartheme.com/ at the biggest community-driven free web design site.

주요기사

[재판으로 본 현대사](28) 인혁당 사건 (上)

2015년 4월 20일 724

ㆍ중정 “북괴 지령 받은 지하조직”… 검사들 불기소 ‘항명파동’ ■ 학생운동에 붉은 색칠, 1차 인혁당 사건 이른바 ‘인혁당 사건’은 박정희 정권하에서 두 번 있었다. 1964년에 ‘1차 인혁당 사건’이 있었고, 그로부터 10년 후인 1974년에 ‘2차 인혁당 사건’이 터졌다. 1974년 사건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라고도 부르며, 통상 ‘인혁당 사건’이라고 하면, 여덟 분의 억울한 형사(刑死)를 빚어낸 후자를 가리킨다. 먼저 1차 인혁당 사건부터 살펴본다. 당년 44세의 박정희 소장은 5·16 쿠데타로 민주정부를 쓰러뜨린 뒤, 민정 복귀의 공약을 어기고 군복만 벗은 채 대통령이 된다. 그리고 무단통치와 대일 굴욕 외교에 반대하는 국민 각계의 저항에 부딪힌다. 그중에서도 대학생들의 움직임이 격렬했다. 1964년 5월20일, 서울대 문리대 학생들은 집단시위와 아울러 당시 박정희가 내세운 ‘민족적 민주주의’의 장례식을 치르기도 하였다. 박 정권은 학생들을 대거 연행하여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다. 하지만 법원에서 기각당하자 한밤중에 무장 군인들이 법원과 영장 담당 판사의 집에 난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분노한 국민 각계, 특히 대학가의 항거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달아오르자 정부는 6월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공산당 내지 불순세력이 학생들을 배후 조종하고 있다며 학생운동에 ‘적화’의 색칠을 하고 나선다. ㅣ일러스트 | 박건웅 ■ 수사검사들의 기소 거부와 사표 파동 마침내 중앙정보부(중정)는 “북괴의 지령을 받고 국가 변란을 기도한 대규모 지하조직인 ‘인혁당’을 적발했다”고 발표하면서,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학생 데모도 인혁당 관련자들이 북괴의 지령에 따라 배후 조종한 것이라고 했다. 동시에

[2015.04.17] 조선일보의 ‘리즈’ 시절은? II

2015년 4월 19일 483

<img src="http://news.kukmin.tv/news/photo/201504/9225_68441_5129.jpg" width="570" height="300" <2015-04-17> 국민TV ☞기사원문: 4월 17일 보이는 라디오 ‘박한용의 백년전쟁’ 다시보기

화투 치고, 술 먹고… 몸살 앓는 독립선열 묘역

2015년 4월 19일 879

[카메라고발] 효창공원… 버려진 무덤, 짓밟힌 대한민국 법통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지난 9일 <경향신문> 시론에서 “‘대한민국’이란 국호는 1919년 4월 11일 공포된 대한민국 임시헌장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는 데서 시작하여, 그해 9월 통합임시정부 임시헌법의 ‘대한민국은 대한 인민으로 조직’한다는 조항을 거쳐, 1948년 제헌헌법 제1조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계승되었다”면서 “1948년 대한민국 정부를 세울 때, 새 정부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을 설명했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은 기념식장에 화환을 보냈고 보훈처(처장 박승춘)는 이완구 국무총리와 광복회원, 유족과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13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96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기념식’을 거행했다. 박승춘 보훈처장은 광복회가 주관한 추념식에 참석한 뒤 광복회원 등 독립유공자들과 점심을 같이 했다.  그런데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1969년부터 올해까지 46년째 효창공원을 찾고 있는 김용삼(66) ‘효창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아래 효사모) 운영위원은 13일 “국무총리와 보훈처장과 광복회장이 묘역에 참배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서 “독립선열 묘역이 먼 데도 아닌 기념관 바로 옆인데도 참배하지 않은 것은 선열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보훈처 관계자는 같은 날 “보훈처장은 7위 선열의 위패를 모신 추념식에 참석하고 독립유공자와의 오찬 등 일정이 빠듯해 참배를 하지 않았다”면서 “대신에 보훈처장 명의의 화환을 묘역에 보냈다”고 참배 불참 배경을 설명했다.  버려진 무덤, 짓밟힌 법통의 현장으로  ▲  의열문은 열쇠로 잠겨 있고(위쪽 왼쪽), 의열문 왼쪽 문에는 의미심장한 낙서가 있고(위쪽 오른쪽) 의열문에는 ‘지옥’이라는 낙서(아래쪽 왼쪽) 그리고, 효창공원

독일서 日 강제징용·야스쿠니참배 규탄 집회 열린다

2015년 4월 19일 1678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한국과 일본, 독일 시민단체가 모여 독일에서 일제 강제징용과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규탄하는 촛불 집회를 연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9일 “다음 달 7일은 베를린, 10일은 하이델베르크에서 한·일·독 국민이 참가한 가운데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는 촛불 집회를 열 것”이라며 “매년 8월 일본 도쿄 야스쿠니신사 일대에서 열던 집회를 올해 처음으로 독일에서 열게 됐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등 한국 단체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단체들과 함께 2000년대 중반부터 참배 반대 촛불 집회를 벌여왔다. 연구소는 한반도 이슈를 다루는 독일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의 제안을 받아 독일 촛불 집회를 준비해 왔다. 민족문제연구소 김민철 박사는 “독일이 일본과 같은 전범 국가이지만 모범적으로 과거 청산을 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유럽에서 야스쿠니,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이번 집회를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집회에서 민족문제연구소는 여자근로정신대, 위안부, 시베리아 억류자, 포로감시원, 탄광 근로자, 군대 징용자 등 7명의 강제징용자 증언을 영상과 책자로 만들어 배포할 예정이다.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법무법인 해마루 등과 함께 제작한 이 영상은 현재 모두 완성돼 번역을 맡긴 상태다. 김 박사는 “집회의 취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것”이라며 “그동안 설명 자료를 많이 만들었지만 일제의 만행을 모르는 이들이 여전히 많아 피해자의 이야기를 직접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영상은 독일인인 마리아 뵈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위원회 의장에게도 전달된다. 일본 정부는 나가사키(長崎)

“‘과거사 사건’ 진실규명 신청 없었다면 국가배상 인정 안 돼”

2015년 4월 17일 647

대법, ‘대구 10월 사건’ 국가배상 원심 깨고 환송 【서울=뉴시스】장민성 기자 = 과거사 사건 피해자 유족이더라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 규명을 신청하지 않았다면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대구 10월 사건’의 희생자 정모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국가는 정씨 유족에게 174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재판부는 “정씨 유족이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이유로 권리 소멸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신뢰를 가질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며 “유족의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 국가가 시효 소멸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反)해 허용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즉, 정씨 유족이 뒤늦게 소송을 낼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정씨에 대해서 유족들이 진실 규명을 신청하지도 않았고,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직권으로 정씨에 대한 조사를 하지도 않았다”며 “정씨는 ‘대구 10월 사건’과 관련한 진실 규명 결정의 주문에 포함돼 있지 않으며, 정씨에 대해 진실 규명 결정이 내려졌다고 인정할 만한 다른 자료도 없다”고 설명했다. ‘대구 10월 사건’은 해방 직후 미군정의 친일관리 고용과 강압적 식량 공출 등에 저항해 1946년 10월1일 대구·경북 지역 주민 수천명이 시위를 벌인 사건이다. 당시 미군정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경찰을 동원해 무력진압에 나서 7500여명을 검거하고 그 중 일부는 사살했다. 정씨 역시

[시론] 세월호특위, 제2의 반민특위 되지 않도록 제대로 지켜내야

2015년 4월 15일 946

[시론] 세월호특위, 제2의 반민특위 되지 않도록 제대로 지켜내야 장완익 연구소 이사,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   지난 3월 27일 정부가 입법예고한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안」을 처음 읽어보고는 특별법의 취지를 완전히 무시한 시행령안에 참으로 놀랐다. 모든 사항을 법률로 정하는 것이 어려워서, 법률에서 위임한 사항을 대통령령인 시행령으로 정하게 되는데, 이번 시행령안은 특별법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어서 심하게 말하면 정부가 새로운 입법 행위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정도다. 시행령안의 자세한 내용은 이미 널리 알려졌기에 언급하지 않겠다. 특별법에 따라 설립되는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그 구성부터 매우 이례적이다. 새누리당은 작년에 국회 산하에 세월호 4·16사고 반성과 진상조사 및 국가재난방지체계 혁신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두거나(서청원의원 대표 발의), 국회의원 10명, 유족과 부상자 대표 4 명, 국회에서 추천한 6명으로 구성되는 독립된 지위를 가지는 세월호사고진상조사위원회를 두는(김학용의원 대표 발의) 법안을 냈었다. 새누리당이 낸 두 법안 모두 정부가 조사 대상이므로 정부 입김을 배제하기 위하여 국회 주도의 위원회가 진상조사를 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야당 법률안과 가족들의 청원안도 국회가 단독으로 위원을 선출하거나 국회와 피해자 단체가 추천하는 위원들로 위원회를 구성하는 내용이어서 위원회 구성에서 정부의 몫을 없앴다. 국회는 여당과 야당이 제출한 법률안과 가족들이 국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청원한 법률안을 놓고 힘든 논의 과정을 거쳐서 국회가 선출하는 10명과 대법원장과 대한변호사협 회장이 지명하는 각 2명, 그리고 희생자가족대표회의에서 선출하는

[재판으로 본 현대사](27) 대통령 긴급조치 4호 사건 (下)

2015년 4월 15일 1080

ㆍ긴급조치 9호 땐 일반 법원서 재판… 박정희 “유신헌법, 내가 봐도 엉터리” ■ 대법원도 못 믿어, 상고 포기 속출 앞서 살펴본 사건들 외에도 긴급조치 4호로 기소된 피고인들은 많았다. 그중에는 대법원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아예 상고를 포기한 사람도 많았는데, 여기서는 지면 사정으로 그 가운데 일부만 열거해 보기로 한다.(괄호 안은 항소심 판결의 징역 형량) 이해찬(서울대·10년), 유홍준(서울대·7년), 제정구(서울대·15년), 강창일(서울대·10년), 정찬용(서울대·12년), 문국주(서울대·10년), 최민화(연세대·12년), 김학민(연세대·15년), 김경남(한국신대·12년), 이학영(전남대·7년), 윤한봉(전남대·15년), 정명기(감신대·7년), 장영달(국민대·7년), 여익구(동국대·15년), 방인철(중앙일보 기자·10년). 이철을 비롯한 민청학련 그룹과 같은 날(1974년 5월27일) 기소되었던 일본인 다치가와 마사키(太刀川正樹, 자유기고가)와 하야가와 요시하루(早川嘉春, 대학 강사) 두 사람은 이철, 유인태 등에게 폭력혁명을 사주하고 7500원을 ‘거사 비용’(실은 취재 사례비)으로 주었다는 혐의로 내란선동, 긴급조치 위반, 반공법 위반 등으로 비상군법회의에서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다. ㅣ 일러스트 | 박건웅 ■ 문세광 사건 반응 내세워, 1·4호 해제 그해 8월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대통령 저격사건이 발생했다. 재일교포 문세광이 쏜 총탄에 박정희 대통령은 무사했는데 부인 육영수가 총상을 입고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그런데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난 8월23일, 박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하여 긴급조치 1호와 4호를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묘하게도 문세광 사건의 반응을 내세운 조치였다. 즉 ‘지난번 광복절 식전에서의 참변을 본 우리 국민들은 북한의 흉계가 무엇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을 것이고… 그동안 정부가 취해온 긴급조치의 참뜻도 이해했으리라고 믿고, 이 사건을 계기로 국민총화가

[논쟁으로 읽는 70년](2) 찬탁과 반탁

2015년 4월 15일 7134

ㆍ신탁통치는 미국 제안… 언론 “소련 제안” 오보에 미군정 모른 척 이용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한국에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것이다.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4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새로운 국가를 스스로의 손으로 건설한다는 희망에 부풀었던 한국인들에게는 절망의 소식이었다. 1945년 12월27일자 동아일보의 1면 톱기사였다.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 기사의 제목이었다. 모스크바에서 만난 미국, 소련, 영국의 외상들이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에 합의했는데, 특히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했다는 내용이었다. 이튿날부터 정당, 사회단체의 반탁성명이 잇따랐다. 이후 10일간 한반도는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동아일보의 보도가 나간 지 3일 후 동아일보 사장이자, 한국민주당의 수석총무였던 송진우가 자택에서 암살당했다. 그가 신탁통치안을 지지한다는 소문이 난 직후 과거 자신의 경호원이었던 사람들에게 암살된 것이다.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튿날인 12월31일 임시정부는 포교령인 국자 1호, 국자 2호를 발표했다. 신탁통치안을 반대하기 위한 총파업을 통해 정권을 접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나라 전체가 마비되었다. 화가 난 미군정 사령관은 1946년 1월1일 김구를 소환했고, 총파업은 하루 만에 끝났다. 1월3일 또 하나의 소동이 벌어졌다. 조선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좌익은 동대문운동장에서 ‘3상회의 결정에 대한 총체적 지지’ 결정을 내렸다. 신탁통치 반대 모임으로 알고 나갔던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틀 후 조선공산당의 책임비서 박헌영은 이 결정에 대해 해명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은 좌익세력에게 독(毒)이 되었다. 박헌영이 소련의 일국 신탁통치를 찬성하고 있으며, 한국이 소비에트 연방의 하나로 편입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고

[나의 해방 70년] 정일형 박사 아들 정대철 前의원

2015년 4월 14일 2820

[광복·분단 70년, 대한민국 다시 하나로] “민주주의·통일 위해 힘써 살아가라던 아버지 유언 생생” 새정치민주연합 정대철(71) 상임고문이 기억하는 광복은 부친인 정일형 박사와 춘원(春園) 이광수의 만남이었다. 정 고문이 다섯살이나 여섯살 때의 일이다. “춘원과 아버지가 상당히 친했다. 춘원이 아버지보다 10살이 많았는데 일제하에서 아버지에게 ‘현실을 수용하고 일본에 협조를 좀 해야 할 것 같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항상 ‘새벽 4시쯤 됐다. 동 트기 얼마 전이니까 우리가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해방 후 춘원이 우리집에 왔다. 1950년 북한에 납치되기 전이었다. 아버지가 말리는데도 춘원은 돗자리를 펴더니 큰절을 하고 ‘이제 내가 정 박사를 거꾸로 선생으로 모시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날 집에서 춘원을 본 기억이 남아 있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정 고문을 만났다. 정 고문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로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부친에 대해 “아버지는 유언으로 ‘교회와 국민과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힘써 살아가세요’라고 말씀하셨다”고 소개를 대신했다. l 새정치민주연합 정대철 상임고문이 13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광복 70년을 맞는 소회를 밝히고 있다. 정 고문은 “일제의 잔재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정 박사는 정치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아버지는 광성고보 2학년이던 1919년 만세운동을 하다 주동인물로 체포돼 훈계방면됐고 이듬해에는 독립신문을 배포하다 체포돼 고문을 받았다. 미국 유학 후 1938년부터 1945년까지 8년 동안 일제에 22번 체포됐고 5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다. 창씨개명,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도전’ (2015.04.17)

2015년 4월 14일 741

<embed width="570" height="370" src="http://www.youtube.com/v/jw4-YU0oNiY &autoplay=1&autohide=1&loop=1"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style="width: 570px; height: 370px;" allowscriptaccess="always" allowfullscreen="true" hl="ko_KR&feature=player_embedded&version=2&" >="" ※관련기사 ☞한겨레: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도전 ☞뉴시스: 17일 서울광장서 ‘촛불 세월호’ 만든다…기네스북 도전 ☞오마이뉴스: 4160개 촛불로 서울광장에 ‘세월호’ 만든다 ☞뉴스1: 4160개 촛불로 만든 세월호 형상 불꽃…기네스북 도전 ☞한국NGO신문: 4,160개 촛불로 만든 세월호, 기네스북 등재 추진  ☞민중의소리: 4160개 촛불로 만든 세월호, 서울광장에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