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uge collection of 3400+ free website templates, WP themes and more http://jartheme.com/ at the biggest community-driven free web design site.

주요기사

[야스쿠니 캠페인] 동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7년 9월 11일 1100

    한겨레21 길윤형 기자   야스쿠니신사는 동아시아만의 문제일까? 죽은 이를 참배하는 문화적 차이 때문에 늦어지긴 했지만, 미국 등 서구 사회에서도 야스쿠니신사가 갖는 퇴행적 역사 인식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는 중이다. 김은식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사무국장은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다에서 ‘참배’를 영어로 표현하면 ‘visit’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참배’나 ‘강제 합사’ 등이 갖는 함의를 ‘visit’라는 중립적인 표현 속에 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그만큼 야스쿠니신사는 서구인들에게 어렵고 낯선 주제였다.   △ 2006년 8월 도쿄에서 모인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관계자들이 앞으로의 투쟁 방안을 놓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정효 기자) 그러나 상황은 바뀌고 있다. 주목할 만한 첫 움직임은 2005년에 나왔다. 2005년 12월 국제위기감시기구는 야스쿠니신사를 대체할 제3의 추도시설을 만들어 신사를 둘러싼 갈등을 풀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이듬해인 2005년 9월14일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에서는 야스쿠니신사와 류슈칸이 갖는 역사인식에 대한 보다 통렬한 비판이 이어졌다. 헨리 하이드 국제관계위원장은 “일본은 거의 모든 주변국가와 미청산 이슈를 갖고 있어 미국의 동맹국으로 영국과 같은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의 류슈칸이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아시아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은 아시아, 태평양의 제 민족을 서방 제국주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시작했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는 한국·필리핀·싱가포르·솔로몬제도를 방문해 그들과 비참한 기억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일본의 황군이 해방자였다고 기억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박물관에서 가르치고 있는

한국인 강간실태 다룬 일본 ‘혐한 동영상’ 논란

2009년 10월 7일 1070

한국인 강간실태 다룬 일본 ‘혐한 동영상’ 논란(스포츠서울, 09.10.07)

“한국인은 해부학상으로 봤을 때 야만인?”

2009년 10월 7일 625

“한국인은 해부학상으로 봤을 때 야만인?”(프레시안, 09.10.07)

민족일보 고 조용수 선생 묘소 참배 후기

2007년 9월 11일 627

    경기동부지부 안길환 회원   모처럼 화창한 가을날씨에 경기동부지부 9월 정기모임으로 민족일보 조용수선생님 묘소참배를 위한 남한산성 검복리 주차장으로 가족과 같이 서둘러 도착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아주 가까운 곳에 그분의묘소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으며,  동생 되시는 조용준선생님께서 참석하신다니  역사 속의 인물과 마주한다는 마음이 들어 들뜨기까지 했습니다.일행이 모두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조용준선생님께서 재심결정이 내려지기까지 과정과 당시 민족일보 기획실장을 맡으시며 겪으셨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며,  위원장님께서  이번 모임의취지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김하욱위원장님,  서울북부지부 김일송님, 광복회 광주지회장 송재복님,  광복회 성남지회장 이용위님,류정일님,  문종현님 내외분, 정태경님, 저희 가족들  모두 조용준 선생님의 안내로 묘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얼마 걷지 않아 묘소에 도착하니  조용준선생님 사모님과 며느님께서 미리 오셔서 참배준비를 해 놓으셨습니다.  조용준선생님께서 큰절을 올리시기전에 “형님, 여기 여러 동지들께서 형님께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말씀하시는데 새삼 동지란 말의 의미가 가슴에 깊게 박혀왔습니다.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역사 속의 인물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숱하게 본 반공영화 속에서는 살벌한 느낌을 주던 동무,  동지란 표현이  원래는 좋은 의미를 지닌 것이었는 데 라는생각을 해 보았습니다.모두들 큰절을  올리고 나서 음복을 한 후, 잠시 묘소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32세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셔서 묘비에 약력조차 없는  것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후손이 사산했다는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더욱 아팠습니다. 1961년 일본에서  귀국하셔서 민족일보를 창간하시고, 5.16 이후 구속되어 그 해12월 사형을 당하신

당신은 국가에 충성할 수 있나

2007년 9월 11일 1311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대표   최근 정부는 식민잔재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되어 온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수정하여 발표했다. 그러나 인권관련단체 등은 수정된 맹세문 역시 국가주의적 발상이라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인권재단 <사람>의 발행인 박래군님의 글을 <사람> 편집진의 허락을 받아 싣는다. <편집자 주>   국가주의의 저주 한국군이  파병된 아프가니스탄에서  23명의 한국인이 납치되었다.  나흘 뒤인 7월 24일 대한민국 국무회의는 새로운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담은 ‘대한민국 국기법 시행령’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그 국기법이 시행되는 첫날,  비정규직 대량해고에 항의하며 또 다시 매장점거에 들어갔던 뉴코아-이랜드 조합원들은 국가공권력에 의해 처참하게 끌려 나와야 했다. 이것이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과거의 국가폭력 행위자이자 인권침해의 가해자였던  국가는 인권옹호의 탈을 뒤집어쓰고 더욱 지능적인 폭력을, 더욱 교묘한 통제와 억압을 일삼고 있다.  이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고, 법과 제도에 스며들며, TV 드라마에서까지 활개를 치는 국가주의의 문제를 이번 월간 <사람>에서  다뤘다. 당신은 국가에 충성할 수 있나 누구를 위한 국익이고, 누구를 위한 동맹인가 국가보안법의 변신, 악플과 만나다 병역의무에 기초한 ‘국민 됨’을 다시 생각하자 TV 속으로 들어온 국정원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지난 7월 27일부터 시행된 ‘대한민국국기법 시행령’(대통령령 제20204호) 제4조에 규정된 ‘국기에 대한 맹세문’이다. 1970년대 학교를 다니면서 애국가와 국민교육헌장과 함께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열심히 외워야만 했던

[단독]日 ‘유튜브 외무성’ 구축…독도·동해 영유권 강화

2009년 10월 6일 636

[단독]日 ‘유튜브 외무성’ 구축…독도·동해 영유권 강화(경향신문, 09.10.06)

[캠퍼스에서]“독도 지키고 싶다면 논리를 세계 알려라”

2009년 10월 6일 635

[캠퍼스에서]“독도 지키고 싶다면 논리를 세계 알려라”(아시아경제, 09.10.06)

아물지 않은 ‘전쟁 상처’ 증언… 가해·피해 ‘역사 화해’ 나선다-경향신문(07.09.10)

2007년 9월 11일 836

아물지 않은 ‘전쟁 상처’ 증언… 가해·피해 ‘역사 화해’ 나선다    일본 관동군 출신인 이케다 고이치(85)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 중이다. 그는 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 러시아와의 전선에 투입됐다가 종전 후에도 귀국하지 못하고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강제노역을 했던 60만 일본군 전쟁 포로들 중 한 명이다.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모르는 전쟁 통에 ‘젊음’을 그렇게 흘려보낸 뒤 1948년 9월 조국에 돌아왔지만 패전국 일본에서 그는 ‘영웅’이 아니었다. 러시아 정부는 물론이고, 그가 사랑했던 조국마저 그를 외면하는데 대해 그저 망연할 뿐이었다.그는 “추운 시베리아에서 겪었던 고통보다 조국의 차가운 태도에 화가 나고 가슴이 더 아팠다”고 한다. 그는 “책임과 용서는 둘 중 하나라도 빠지면 의미가 없다. 일본 정부와 군수기업들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진다면 나는 그들을 용서하겠다”는 생각으로 1999년 일본 정부와 군수기업을 상대로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전쟁으로 인해 치러야 했던 노역과 피, 땀, 눈물을 보상해 달라”는 것이었다. 소송은 기각당했다.한국인의 입장에서 이케다는 침략국 일본의 가해자 중의 한 명이지만, 그 역시 일본 군국주의 안에서 희생된 피해자이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한국에 와서 자신의 체험을 증언한다. 서울에서 열리는 ‘제1회 세계 역사NGO대회’의 일환으로 마련된 ‘가해와 피해-피해자 증언대회’에서다. 15일 서울 정동 사랑의열매 회관에서 열리는 증언대회에는 이케다 외에도 강제징용돼 B·C급 전범이 된 조선인들 모임인 동진회 대표 이학래씨(82)와 한국인 원폭피해자협회 대표 곽귀훈씨(83)도 자신들의 전쟁 체험을 증언한다. 양미강 대회 운영위원장은 “피해자들의

국가기록원, 훼손된 국가 중요기록물 6천매 복원-헤럴드경제(07.09.10)

2007년 9월 11일 569

국가기록원, 훼손된 국가 중요기록물 6천매 복원       국가기록원은 지난 2004년부터 훼손된 국가 중요기록물 복원 작업을 실시한 결과 8월말(3년 8개월)까지 근대 건축설계도ㆍ토지조사부ㆍ형사판결문ㆍ일제강제연행자명부 등 국가 중요 기록물 총 66,347매를 복원했다고 10일 밝혔다.특히 국가기록원은 근대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서대문 형무소ㆍ대한의원(현 서울대학교병원 부설연구소)ㆍ서울시청사 등 현재 보유하고 있는 근대 건축물 설계도면 26,232매 중 75%(19,733매)를 복원 처리함으로써 향후 마이크로필름 촬영ㆍ디지털화 등을 통해 일반 및 학술열람에 제공할 방침이다.근대 건축설계 도면의 사료적 가치는 그당시 공사 과정과 재료 및 기술의 실제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건축 및 문화, 생활사적 측면에서 사료적 가치를 높이 평가 받고 있다.한국예술종합학교 우동선 건축과 교수는 “이번 복원기록물은 멸실된 건축물에 관한 도면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도면의 보존ㆍ복원처리 작업은 건축사 연구의 대상을 더욱 넓히고 연구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실제로 토지조사부의 경우 현재 토지소유권과 같은 재산관계 증빙자료로 열람 요청이 많은 기록물 가운데 하나다.또한 형사판결문(33권, 15,015매), 수형인명부, 제소자신분카드 등 독립운동 관련 기록물도 복원된 기록물을 바탕으로 숨겨져 있던 독립운동가 발굴하는 중요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고 있다.특히 일제 말기 강제로 연행된 한국인들이 등재되어 있는 일제강제연행자명부(544권 48만명)는 복원을 통해 일제강제징용진상규명위원회가 일제강점하의 피해자 진상 규명 등 진실을 밝히는데 실질적인 근거자료로 활용하고 있다.국가기록원은 앞으로도 기록물 보존ㆍ복원처리 전문기관으로서 훼손되어 멸실의 위기에 처한 국가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중요기록물에 대해 지속적인 수선ㆍ복원 작업을 실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안중근 이야기 뮤지컬 ‘영웅’, 관객들 기대감 고조

2009년 10월 6일 635

안중근 이야기 뮤지컬 ‘영웅’, 관객들 기대감 고조(노컷뉴스, 09.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