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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만세 백찬백소(日本萬歲 百撰百笑 : 청일전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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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자료 톺아보기 58]

중국·중국인 멸시관을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전쟁 만화
『일본만세 백찬백소(日本萬歲 百撰百笑 : 청일전쟁편』

[작품 설명]
② 밟아 부수기 노래(踏潰しの歌)
일본군 병사가 풍도, 아산, 평양에서 청국 함대와 청국 군대를 밟아 부수고 이제 만주와 북경으로 향하고 있다. 변발한 청국인은 털썩 주저앉아 일본군의 엄청난 기세에 눌려 속수무책으로 울고 있을 뿐이다.

③ 지옥의 대번창(地獄の大繁昌)
지옥에서 염라대왕이 풍도해전과 성환·아산전투에서 전사한 청국 병사들을 문초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이름이 ‘도자에몬(土左衛門)’ – 일본 설화에서 土左衛門은 무쓰국(陸奧國) 출신의 스모 선수였는데 그 몸이 매우 비대하였다. 그 모습이 물에 빠진 사람들의 배가 가스로 가득차 온몸이 부풀어 오른 자태와 비슷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당시 일본인들은 익사자를 가리켜 土左衛門이라 일컬었다고 한다.이라고 한다. – 
너무 많은 전사자들이 몰려와 7일 밤낮을 조사하는데 나중에는 황해전투 사망자까지 떼지어 들어왔다. 염라대왕은 이 사망자들의 나라 이름이 死國이라 규정했다. 여기서 死國(しこく)은 곧 淸國(しんこく)으로 발음이 비슷한 것에 착안한 언어유희다. 이렇듯 청국의 전사자는 모두 지옥으로 간다는 설정과 ‘도자에몬=익사자’라는 명칭으로 청국과 청국 병사를 신랄하게 멸시하고 비하하였다.

④ 이홍장의 대두통(李鴻章の大頭痛)
청일전쟁 당시 직예총독(直隸總督)이자 북양대신(北洋大臣)이었던 이홍장은 연일 들려오는 청국의 패전 소식에 심한 두통을 앓고 있다. 수면제를 먹고 잠시 눈을 붙이려 해도 꿈속에서까지 일본군이 나타나 자신을 괴롭히자 처음부터 일본에 항복했더라면 하고 후회한다.

⑤ 패퇴한 장군(御敗將)
청국 장군이 여장을 한 채 화장하면서 “여인의 모습으로 적군을 물리쳤다는 이야기는 있어도 여인으로 변장해 도망쳤다는 이야기는 내가 처음이다”라며 얼토당토않은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화장대를 들고 있는 병졸의 등에는 ‘탈영부대(にげ隊)’라고 적혀 있고 주위에 널브러져 있는 화장품에는 ‘고마치스이(小町水)’라는 일본산 라벨이 달려있다. 이 청국 장군은 곧 아산전투와 평양전투에서 잇따라 패전한 청국 제독 섭지초(葉志超)이다. 섭지초는 압록강 전투 때 간신히 살아남아 북경으로 도주했다가 직위를 박탈당한 뒤 얼마 후 죽었다. 이렇듯 패전한 적국 장수를 도주하는 여장 남자로 묘사하여 조롱거리로 만들어 놓았다.

⑥ 돼지의 당혹(豚の當惑)
긴 칼을 차고 총으로 위협하는 잠자리는 일본인이고, ‘英, 佛, 露’의 글자가 새겨진 벌들은 각각 영국인, 프랑스인, 러시아인을 나타낸다. 돼지꼬리(豚尾) 머리 곧 변발을 한 돼지는 청국인으로 벌들에게 마구 쏘이고 잠자리에게 총으로 겨냥당하고 있다. 괴롭히는 자들이 “자, 이 정도로 몰아넣었으니 아무리 멍청한 돼지라도 조금은 아프거나 가렵겠지. 아니면 여전히 거만한 낯짝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끓여 먹거나 구워 먹을테니 이쪽의 승리다”라고 하자, 이에 돼지는 “모두 제 잘못입니다”라며 용서를 빌고 있다. 청일전쟁을 전후해 중국이 서구 열강과 일본에 짓밟히고 있는 국제 역학 관계를 냉혹하게 풍자하였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일본만세 백찬백소(日本万歳 百撰百笑) : 청일전쟁 편』은 우키요에(浮世 絵)의 캐리커처 스타일인 희화적인 그림과 전쟁을 풍자한 내용을 담은 대중출판물로서 고바야시 기요치카(小林清親)의 그림과 골피도인(骨皮道人) – 본명은 니시무라 다케키(西森武城, 1861~1913). 메이지 20년대에 왕성한 활동을 한 작가이다. 필명으로 骨皮道人, 痩々亭骨皮道人을 사용하며 주로 세상을 풍자하는 골계미 가득한 이야기나 센류(川柳)를 썼다. 메이지시대 게사쿠(戲作)의 대표적 작가로 연설체를 빌려 꽤 정확하게 당시 사회상황을 희화하여 보여줌으로써 게사쿠 분야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된다. – 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주로 한 페이지 안에서 위쪽에 글이 아래에 그림이 배치되어 있는 형식이나 그림 속에 글이 자유롭게 섞여 있는 경우도 있다.

원래 채색 목판화로 낱장으로 판매하던 것인데 이 책에는 『일본만세 백찬백소 : 청일전쟁 편』50점과 『사회환등(社會幻燈) 백찬백소』 12점이 묶여 있다. 1894년 청일전쟁과 관련된 『일본만세 백찬백소』(상권) 시리즈가 인기를 끌자 1895년 속편 격의 하권(10점)이 이어졌다. 아울러 청일전쟁 후의 일본 사회 풍속도에 풍자적으로 그린 『사회환등 백찬백소』가 출판되었고, 1904년 러일전쟁기에 『일본만세 백찬백소 : 러일전쟁편』 80점이 간행되었다.

고바야시 기요치카(1847~1915)는 1847년 에도(현재의 도쿄)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도쿠가와 막부의 가신이었다. 기요치카는 전통 일본 화가로 훈련받았으나 이내 당시 인기 매체였던 목판화로 관심을 돌려 급속한 서구화가 진행되는 근대 일본 사회의 변화상을 즐겨 다루었다. 메이지 시대 초기부터 신문, 잡지, 서적의 삽화와 스케치 작업에 폭넓게 참여했다. 특히 골피도인(骨皮道人)과 협업하여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다룬 『일본만세 백찬백소』 시리즈로 백 수십 점의 채색판화를 제작하여 일반 대중으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그는 종종 자연주의적인 명암과원근법을 사용하는 등 서양 미술 스타일을 자신의 판화에 접목시켰는데 이로 인해 후대에 독창적인 우키요에 화가로서 평가받았다.

일본인의 중국·중국인에 대한 인식은 청일전쟁를 계기로 크게 바뀌었다. 역사적으로 한자문 화권의 자장 안에 있었던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학문과 기술 등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많은 물품을 수입했다. 이에 따라 중국의 선진 사상과 문물에 대한 경외감과 존경심을 품었다. 하지만 1844년 페리 제독의 일본 강제 개항 이후 서구 문물을 급속히 받아들였고 아편전쟁으로 중국이 서구 열강에 힘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중국(인)에 대한 호감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청일전쟁 개전 이후 일본군이 해전뿐 아니라 육전에서도 청국군에 연전연승하면서 청국은 이제 이빨 빠진 늙고 나약한 호랑이로 인식되었다. 청일전쟁기에 나온 신문이나 화보, 통속잡지 등 대중출판물에서 청국에 관련한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묘사되었고 아울러 조소와 멸시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특히 서민이 즐겨 보는 우키요에와 화보잡지에는 청국과 청국인에 대한 과도한 비하과 멸시가 일상화되었는데 메이지 정권과 일본 군부는 이를 부추긴 면도 분명 있었다.

앞서 소개한 그림에서도 보듯이 청국인은 만주족의 상징인 변발을 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청국측 장군이나 병사들은 낡은 군대 복장에다 형편 없는 무기(칼, 창, 낫 등의 농기구)을 휴대한 채 항상 일본군에 주눅 들어 도망치기에 바쁜 캐릭터로 묘사된다. 또한 「돼지의 당혹」에서처럼 청국이 뚱뚱하고 둔하며 불결한 ‘돼지’로 표상되고 있다. 신문기사에서도 청국인을 가리키는 ‘돈미한(豚尾漢)’이나 ‘돈미방(豚尾坊)’이란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이는 변발=돼지꼬리 머리스타일에 빗대어 청국인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용어였던 것이다.

손정아는 『백찬백소』를 심도 있게 논구한 그의 논문(손정아, 2021)에서 “『햐쿠센햐쿠쇼(百撰百笑)』 속에서 전쟁을 표상한 이미지와 스토리 활용 방식은 오늘날의 서브컬처를 일본우익 정치를 위해 빌리는 양상과 비교해 볼 가치가 있다. 비록 그것이 청이나 러시아가 아닌 우주나 로봇 그리고 가상 미래 세계로 대상이 바뀌었을 뿐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하였다. 『일본만세 백찬백소 : 청일전쟁 편』에서 드러난 일본의 중국(인) 멸시는 현재 일본인의 정신 속에 여전히 내재하고 있으며, 일본과 불가분한 관계에 있는 우리도 이에 대해 경각심을 늦춰서는 안될 것이다.

• 박광종 특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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