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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국정교과서 반대운동, 올해는 정치적 심판이 기본”

2016년 1월 30일 612

[현장] 거리 역사강좌 마지막 날, “김무성·황우여·이정현 낙선운동 예정” ▲  거리 역사강좌 마지막날인 30일 오후 강의를 들은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 윤근혁 관련사진보기 “올바른 역사교과서? IS와 같은 발상에서나 가능한 소리다. 합리성과 다양성이라는 민주주의 가치가 전제되지 않은 이런 발상은 ‘이단’을 처벌하듯 반대 세력을 밟아 죽이게 된다.” 국정교과서 반대 거리 역사강좌 마지막 날인 30일,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빌딩 앞 길섶. 강의에 나선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장(서울 독산고 역사교사)은 국정교과서 추진 세력을 이슬람 과격테러세력인 IS(이슬람국가)에 견주며 날을 세웠다. “국정교과서 추진, ‘이단’ 처벌하듯 반대세력 밟는 것” ‘역사쿠데타를 멈춰라!’, ‘국정교과서,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란 글귀가 적힌 손팻말을 든 80여 명의 참석자들은 손뼉을 치며 호응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해 11월 복면을 쓴 채 거리 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겨냥해 “아이스(IS)도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 당시 ‘시민을 IS에 비유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날 오후 1시, 김 소장은 ‘제10강-역사교과서의 대안을 탐색한다’는 주제의 강의에서 “지난해 11월 황교안 국무총리가 기존 역사교과서는 99.9%가 편향된 교과서이며 0.1%만 올바른 교과서라고 말했다”면서 “누가 뭐라 해도 갈 길은 가겠다는 이런 태도는 IS와 같은 발상에서나 가능한 소리”라고 몰아붙였다. 이어 김 소장은 “합리성과 다양성이라는 민주주의 가치가 전제되지 않은 이런 발상은 ‘정통과 이단’을 떠오르게 한다”면서 “이단을 처벌하듯 ‘자신들이 올바르다’는 이유만으로 반대 세력을 밟아 죽이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김 소장은 “실제로 공당 최고위원이 말한 ‘국정교과서 반대하는

“국정교과서 반대운동, 올해는 정치적 심판이 기본”

2016년 1월 30일 690

[현장] 거리 역사강좌 마지막 날, “김무성·황우여·이정현 낙선운동 예정” ▲  거리 역사강좌 마지막날인 30일 오후 강의를 들은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 윤근혁 관련사진보기 “올바른 역사교과서? IS와 같은 발상에서나 가능한 소리다. 합리성과 다양성이라는 민주주의 가치가 전제되지 않은 이런 발상은 ‘이단’을 처벌하듯 반대 세력을 밟아 죽이게 된다.” 국정교과서 반대 거리 역사강좌 마지막 날인 30일,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빌딩 앞 길섶. 강의에 나선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장(서울 독산고 역사교사)은 국정교과서 추진 세력을 이슬람 과격테러세력인 IS(이슬람국가)에 견주며 날을 세웠다. “국정교과서 추진, ‘이단’ 처벌하듯 반대세력 밟는 것” ‘역사쿠데타를 멈춰라!’, ‘국정교과서,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란 글귀가 적힌 손팻말을 든 80여 명의 참석자들은 손뼉을 치며 호응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해 11월 복면을 쓴 채 거리 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겨냥해 “아이스(IS)도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 당시 ‘시민을 IS에 비유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날 오후 1시, 김 소장은 ‘제10강-역사교과서의 대안을 탐색한다’는 주제의 강의에서 “지난해 11월 황교안 국무총리가 기존 역사교과서는 99.9%가 편향된 교과서이며 0.1%만 올바른 교과서라고 말했다”면서 “누가 뭐라 해도 갈 길은 가겠다는 이런 태도는 IS와 같은 발상에서나 가능한 소리”라고 몰아붙였다. 이어 김 소장은 “합리성과 다양성이라는 민주주의 가치가 전제되지 않은 이런 발상은 ‘정통과 이단’을 떠오르게 한다”면서 “이단을 처벌하듯 ‘자신들이 올바르다’는 이유만으로 반대 세력을 밟아 죽이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김 소장은 “실제로 공당 최고위원이 말한 ‘국정교과서 반대하는

일제금융-민족자본 맞선 곳…거대은행 격전지 되다

2016년 1월 29일 4492

일본 세운 조선저축, 민족계 한성은행…세월 흘러 신한·우리·SC 품으로 서울 중구 2호선 을지로입구역 일대는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여러 은행들이 위치해 한국 금융의 심장부로 불린다. 중앙은행 주변으로 시중은행의 본점 등이 위치하면서 거대 규모에 걸 맞는 높은 부동산 가치를 자랑한다. 이곳에는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은행, 조선식산은행, 동양척식주식회사 등 금융 착취 기관이 있었다. 또 조선저축은행, 조선신탁주식회사, 한성은행, 대한천일은행도 이 일대에 위치했다. 이 은행들은 현대사를 거치면서 상장폐지, 흡수합병을 반복한 이후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현대적 은행으로 변신했다. 조선저축은행과 조선신탁은 일제가 설립했다. 조선저축은행은 수차례 인수합병을 거친 후 현대에 이르러 영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이 주인이 됐다. 조선신탁 역시 여러 변화를 겪은 후 지금에 와서 우리은행이 됐다.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한성은행과 대한천일은행 역시 변화를 거친 다음 현대에 와서 각각 신한은행, 우리은행에 흡수됐다. 은행들은 일제에 의해 조선금융 수탈에 동원되거나 친일파가 은행을 좌지우지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과거 일제가 설립한 은행들은 현재는 일제와 관련성이 거의 없다. 남대문로 일대에는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 한국 금융사의 한 획을 그은 은행들이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역사 속 남대문로 빌딩들’ 하편으로 SC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건물을 취재했다. 편집자주 ▲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전신 제일은행이 있던 건물(사진)은 1933∼1935년 지어진 근대건축물로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71호로 지정됐다. 제일은행은 영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 매각돼 현재는 외국계은행이다. 해당 건물은 지난해 신세계가 약 850억원에 사들였다. ⓒ스카이데일리 일제가 세운 은행들…조선 금융수탈 동원, 친일파가 행장 맡기도 한국은행과 마주하고

나라 팔아 먹었을 때도 이상한 엄마들이 나섰지

2016년 1월 29일 12402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국민 정서를 거스르는 수구 시민단체가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단체들이 생긴 건 아니다. 일제시대 친일 단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들의 원조 격이라 할 만하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여성에게 어머니·노동자·창부의 역할을 요구했다. 자식을 전쟁터에 보내는 것을 반대하는 조선 어머니는 전쟁의 큰 장애물이었다.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 여성들에게 ‘군국의 어머니가 되자’는 선전전을 전개했다. 자식을 나라에 바치는 것이 영광이라는 작품이 쏟아졌다. <원술의 출정>(이광수), <군국의 어머니>(박태원), <일본의 어머니>(김상덕), <여인전기>(채만식) 등. 당대 여성 문인이나 교육자들의 홍보도 활발했다. 모윤숙·노천명 등 여성 문인들이 강연에 나섰고, 언론에 기고했다. 소설가 최정희는 전시 동원을 미화하는 소설 <환상의 병사> <여명> 등을 냈다. 무엇보다 일본 제국주의의 시각을 대변하는 여성 관변 단체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일제 때 관이 못하는 일을 주로 ‘애국’ ‘부인’ 등이 붙은 친일 단체가 대신하게 했다. 일본을 이해하자거나 여성을 정신대에 보내자는 일에 친일 여성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라고 말했다. ▲ 친일화가 김은호가 그려 일본 총독에게 바친 ‘애국금차봉납도’(왼쪽). 위는 1940년 경성가정의숙(현 중앙여고) 교직원 사진. 제자를 정신대에 보낸 교장 황신덕(앞줄 오른쪽 두 번째)은 광복 후 이승만 정부의 관선 대변인을 맡았다. 1906년 설립된 ‘애국부인회’는 조선의 최대 여성 단체로, 1942년에는 가입 회원만 46만명에 이르렀다. 주로 군인 영접, 위문금 모집, 발모 헌납, 폐품 회수, 저금 장려 등에 앞장섰다. 정신

손으로 하늘을 가릴쏘냐? : 친일 매국노 처단 이야기

2016년 1월 29일 1336

<이한수의 공감 팩션> 영화 『암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안중근, 윤봉길 의사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일제의 대륙 침략 음모를 전 세계에 알린 분입니다.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로 중국은 조선을 대일 항쟁의 동맹국으로 존중하게 됩니다.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연해주의 한인 독립운동의 상징이며 윤봉길 의사는 상해 임시정부 김구 선생의 지휘를 받아 일제 장성들을 척살하였습니다. 그래도 이 분들은 많이 알려진 분들입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많은 독립투사들이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김구’ 선생이 조직한 ‘한인애국단’ 못지않게 혁혁한 전공을 세운 김원봉의 ‘의열단’이라든지 이회영의 ‘흑색공포단’은 많이 생소할 겁니다. 이 분들의 희생으로 독립 투쟁은 대륙에 뿌리를 내리고 나중에는 거대한 군사 조직으로 성장을 하게 됩니다. 이 군사 조직이 국내 진공을 앞두고 있었던 만큼 일제의 패망을 앞당긴 전승의 공을 인정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잊혀지고 김구 선생마저도 역사 왜곡의 무덤에 묻힐 지경이 되었습니다. 조국 광복이 1945년이 아니라 1948년이라고 망발을 하는 저들에 의해 말입니다. 영화 『암살』에 의해 잊혀져가는 의열단과 ‘김원봉’이 구사일생으로 되살아난 건 천운이라 해야 할까요. 왜 이런 통탄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김원봉’은 3.1운동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군사훈련을 받고 의열단을 조직해 조국 해방 투쟁에 몸을 바친 분입니다. 광복 이후에 좌우합작운동을 벌이다 ‘여운형’ 동지가 암살을 당하자 월북하였습니다. 북한에서 요직을 맡아

[성명] 20대 국회는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고 있는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청문회를 개원 즉시 개최하라!

2016년 5월 30일 1996

[성명] 20대 국회는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고 있는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청문회를 개원 즉시 개최하라! 1. 작년 11월 3일 박근혜정부는 국민의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 고시하였다. 그러나 고시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정화 반대 53%· 찬성 36%로 나타난 것처럼, 국민 대다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한 국민들 인식은 이번 4?13 총선에서 박근혜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독선과 오만으로 점철된 국정운영에 대한 냉엄한 심판으로 이어졌다. 국정화의 주역이었던 황우여 전 교육부장관이 6선 고지에서 낙선하였으며, ‘새누리당 역사교과서개선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김을동 의원 역시 여당 텃밭에서 패배하였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헌법정신을 부정하고 무차별적인 색깔공세로 국정화를 주도한 인사들에 대해 국민들이 투표로 심판한 것이다. 2. 그러나 총선참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는 국정화를 계속 추진할 뜻을 강력히 피력하였다. 총선직후 야당이 국정화 폐기를 ‘공조 1호’로 발표하자, 교육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는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맞섰다(4.18.). 그리고 이준식 교육부 장관은 “현행 법령상 (교과서 편찬은) 교육부 고시로 추진하게 돼 있다”며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 작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4.25.). 박근혜 대통령 역시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지금과 같은 교과서로 배우면 정통성이 오히려 북한에 있기 때문에 북한을 위한, 북한에 의한 통일이 될 수밖에 없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근거로, 야권에서 국정화 중단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원래 계획대로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였다(4.26.). 3. 민주주의의 근간인 주권재민(主權在民)을 거스르는 뻔뻔스러운 작태라

바로 잡습니다.

2016년 1월 29일 686

△ 25일자 19면 팔면경 `아버지와 아들` 중 박헌영의 아들이 “민족문제연구소 2대 소장을 역임했다”는 사실이 아니기에 바로잡습니다. <2016-01-27> 경북매일 ☞기사원문: 바로 잡습니다 ※관련기사 ☞경북매일: 아버지와 아들 1940년대는 소련 공산주의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한반도에도 `사회주의 실천가`들이 설쳤는데, `남한 담당 총책`이 박헌영(朴憲永)이었다. 그는 점쟁이나 벽돌공으로 위장해 노동현장을 다니면서 `남조선 노동당`을 조직했다. 1941년 그는 청주에서 한 처녀의 몸에서 아들 박병삼을 얻었다. 그 후 6·25가 터지고, 인천상륙작전 후 박헌영은 10살 된 아들과 같이 지리산에 숨어 들었다. 그는 얼마후 월북하면서 아들을 한 스님에게 맡겼고, 아들은 절간으로 흘러다니며 불경공부를 했다. 성년이 될 때까지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그는 친구의 이름으로 해군 특수부대에 지원 입대해 3년 복무를 마친 후 스님이 됐고, 현재 조계종 원로 의원으로 있으며, `민족문제연구소` 2대 소장을 역임했다. 그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증오했지만, “원수는 갚지 말고, 은혜는 반드시 갚아라”란 좌우명을 써붙이고 아버지를 용서했다. 박헌영은 1956년 `미제국주의와 내통한 간첩죄`를 쓰고 처형됐다. 정진석 추기경은 평생 아버지의 얼굴을 못 봤다. 아버지 정원모는 아들이 태어날 무렵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고, 본래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지만, 사회주의에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했다. 해방이 될 무렵 그는 서울에 오지 않고 북으로 가버렸다. 당시 아들 정진석은 서울공대 화공과 학생이었는데,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경에 건너간 후 소식이 없다”고만 했다. 아버지는 북으로 가 공업성 부상(상공부 차관)을 지냈다는

손으로 하늘을 가릴쏘냐? : 친일 매국노 처단 이야기

2016년 1월 28일 1694

<이한수의 공감 팩션> 영화 『암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안중근, 윤봉길 의사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일제의 대륙 침략 음모를 전 세계에 알린 분입니다.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로 중국은 조선을 대일 항쟁의 동맹국으로 존중하게 됩니다.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연해주의 한인 독립운동의 상징이며 윤봉길 의사는 상해 임시정부 김구 선생의 지휘를 받아 일제 장성들을 척살하였습니다. 그래도 이 분들은 많이 알려진 분들입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많은 독립투사들이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김구’ 선생이 조직한 ‘한인애국단’ 못지않게 혁혁한 전공을 세운 김원봉의 ‘의열단’이라든지 이회영의 ‘흑색공포단’은 많이 생소할 겁니다. 이 분들의 희생으로 독립 투쟁은 대륙에 뿌리를 내리고 나중에는 거대한 군사 조직으로 성장을 하게 됩니다. 이 군사 조직이 국내 진공을 앞두고 있었던 만큼 일제의 패망을 앞당긴 전승의 공을 인정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잊혀지고 김구 선생마저도 역사 왜곡의 무덤에 묻힐 지경이 되었습니다. 조국 광복이 1945년이 아니라 1948년이라고 망발을 하는 저들에 의해 말입니다. 영화 『암살』에 의해 잊혀져가는 의열단과 ‘김원봉’이 구사일생으로 되살아난 건 천운이라 해야 할까요. 왜 이런 통탄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김원봉’은 3.1운동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군사훈련을 받고 의열단을 조직해 조국 해방 투쟁에 몸을 바친 분입니다. 광복 이후에 좌우합작운동을 벌이다 ‘여운형’ 동지가 암살을 당하자 월북하였습니다. 북한에서 요직을 맡아

국정 교과서 ‘기준’마저 숨긴 채 집필 강행

2016년 1월 28일 599

ㆍ교육부 “국편·편찬심의위 의견 듣고 공개 시점 결정” ㆍ편찬기준 공개가 관례…“검증 거부하면서 뭘 담을지” 교육당국이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 기준 공개 없이 이미 교과서 집필을 강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집필진 비공개에 이어 수차례 공개를 공언했던 편찬 기준까지 공개하지 않고 교과서 집필에 들어간 것이어서, ‘깜깜이 집필’ 비판과 함께 교과서 내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영 교육부 차관은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을 통해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 기준이 이달 중순 확정됐으며 집필진이 집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차관은 “역사교과서 편찬 기준을 언제 공개할지에 대해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며 “국사편찬위원회와 편찬심의위원회 등의 의견을 듣고 공개 시점을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편찬 기준이 이미 확정돼 집필이 시작됐음에도 공개를 계속 미루고 있는 셈이다. 교육부는 집필진에 대해서는 아예 비공개 방침을 정한 상태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날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집필진에게 안정적인 집필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교과서가 완성되는 오는 11월까지 집필진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여부를 교육부 장관 권한으로 정하겠다고 밝힌 뒤 국정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를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는 집필진 공개 여부를 수차례 번복해 왔다. 지난해 10월18일 당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겠다”며 집필진 공개를 약속했었다. 하지만 9일 뒤인 27일에는 대표 집필진만 공개하겠다고 말을 바꿨고, 12일 뒤인 11월8일에는 대표 집필자였던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의 불명예 사퇴를

나라 팔아 먹었을 때도 이상한 엄마들이 나섰지

2016년 1월 27일 1893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국민 정서를 거스르는 수구 시민단체가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단체들이 생긴 건 아니다. 일제시대 친일 단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들의 원조 격이라 할 만하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여성에게 어머니·노동자·창부의 역할을 요구했다. 자식을 전쟁터에 보내는 것을 반대하는 조선 어머니는 전쟁의 큰 장애물이었다.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 여성들에게 ‘군국의 어머니가 되자’는 선전전을 전개했다. 자식을 나라에 바치는 것이 영광이라는 작품이 쏟아졌다. <원술의 출정>(이광수), <군국의 어머니>(박태원), <일본의 어머니>(김상덕), <여인전기>(채만식) 등. 당대 여성 문인이나 교육자들의 홍보도 활발했다. 모윤숙·노천명 등 여성 문인들이 강연에 나섰고, 언론에 기고했다. 소설가 최정희는 전시 동원을 미화하는 소설 <환상의 병사> <여명> 등을 냈다. 무엇보다 일본 제국주의의 시각을 대변하는 여성 관변 단체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일제 때 관이 못하는 일을 주로 ‘애국’ ‘부인’ 등이 붙은 친일 단체가 대신하게 했다. 일본을 이해하자거나 여성을 정신대에 보내자는 일에 친일 여성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라고 말했다. ▲ 친일화가 김은호가 그려 일본 총독에게 바친 ‘애국금차봉납도’(왼쪽). 위는 1940년 경성가정의숙(현 중앙여고) 교직원 사진. 제자를 정신대에 보낸 교장 황신덕(앞줄 오른쪽 두 번째)은 광복 후 이승만 정부의 관선 대변인을 맡았다. 1906년 설립된 ‘애국부인회’는 조선의 최대 여성 단체로, 1942년에는 가입 회원만 46만명에 이르렀다. 주로 군인 영접, 위문금 모집, 발모 헌납, 폐품 회수, 저금 장려 등에 앞장섰다. 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