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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항일의 불꽃, 박차정
※[뉴스타파][타파스] – 잊혀진 이름, 여성독립운동가 1편: 독립을 향한 날갯짓, 권기옥 ※[뉴스타파][타파스] – 잊혀진 이름, 여성독립운동가 2편 : 가려진 독립운동, 박자혜 ※[뉴스타파][타파스] – 잊혀진 이름, 여성독립운동가 3편 : 대한민국 임시정부, 그리고 정정화 [타파스] 잊혀진 이름, 여성독립운동가 4편 : 항일의 불꽃, 박차정 (2016.01.08) 동래일신여학교 재학 당시 차별적인 식민 교육에 항거해 동맹 휴학을 주도하는가 하면 항일여성운동의 전국적 조직인 ‘근우회’에서 활동하며 개혁적인 여성해방과 민족해방의 길을 모색했던 박차정. 서울지역 11개 여학교의 대표들을 만나 시위 방법을 논의해 1930년 1월 대규모 학생시위를 주도한 박차정은 이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한 박차정은 1930년 의열단에 합류했고, 이를 이끌던 독립운동의 거두 김원봉과 결혼해 사랑과 혁명의 길을 함께 걷는다. 1935년, 의열단 등 좌우 독립운동단체 5개를 통합한 조선민족혁명당이 창당되자 박차정은 남경조선부녀회를 결성해 조선 여성들이 총단결해 민족독립과 여성해방 쟁취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우리 조선 부녀를 현재 봉건적 노예제도 하에 속박하고 있는 것도 일본 제국주의이고 또 우리를 민족적으로 박해하고 있는 것도 일본제국주의이다. 우리들이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지 않는다면 우리 부녀는 봉건제도의 속박 식민지적 박해로부터 해방되지 못한다. -남경조선부녀회 선언문 中- 1938년 조선의용대 창설 후 부녀복무단 단장으로 활약하며 항일투쟁의 선봉에 선 박차정은 1939년 2월, 곤륜산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1944년 34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그토록 꿈꾸었던 독립을 한 해 앞두고 숨을 거둔
박정희는 왜 일본 극우를 그토록 칭찬했나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43> 유신 쿠데타, 서른여섯 번째 마당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열한 번째 이야기 주제는 유신 쿠데타다. [현대사 이야기 연재 이전 주제 바로 가기] [유신 쿠데타, 첫 번째 마당] 여당도 당황케 한 청와대의 ‘공화국 죽이기’ 작전 [유신 쿠데타, 두 번째 마당] 궁정동의 은밀한 ‘사업’과 박정희, 그 특별한 관계 [유신 쿠데타, 세 번째 마당] 박정희와 김일성, 1인 독재 위해 뒷거래? [유신 쿠데타, 네 번째 마당] ‘멸공’ 박정희, 김일성과 대화하려 쿠데타? [유신 쿠데타, 다섯 번째 마당] 온 국민이 춤춘 그때, 청와대는 딴마음 품었다 [유신 쿠데타, 여섯 번째 마당] 북한보다 야당이 더 못됐다? 박정희의 위험한 선동 [유신 쿠데타, 일곱 번째 마당] “쿠바가 백악관 습격했다면”…분노한 박정희[유신 쿠데타, 여덟 번째 마당] <타임>은 왜 박정희 주장을 ‘상상’ 취급했나[유신 쿠데타, 아홉 번째 마당] 美·日이 박정희 쿠데타 초안에 퇴짜 놓은 이유 [유신 쿠데타, 열 번째 마당] 박정희, 경제 살리려 쿠데타? 치명적인 오해
“‘목숨 걸고 친일 청산’, 내 자식 안 막겠다”
구순 맞은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 여사, 그가 밝힌 소원은 201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리고 이틀째가 되던 지난 2일 늦은 시각, 제 휴대전화로 짧은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장준하 선생님의 부인, 김희숙 여사님이 구순을 맞이하여 조촐한 식사 모임을 하는데 참석할 수 있는지를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 김희숙 여사님의 구순 생신 축하모임. 가족과 가까운 몇 분만 모시고 조촐한 행사를 가졌습니다. ⓒ 고상만 관련사진보기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님. 1918년 평북 의주에서 태어난 후 일제강점기에는 광복군으로, 해방 후에는 백범 김구의 비서로, 또 <사상계> 언론인으로, 다시 국회의원과 재야 민주주의 지도자로 일생을 바친 ‘대한민국 진짜 민주주의자’. 그 위대한 업적을 남긴 장준하 선생님 옆에서 함께한 분이 바로 부인 김희숙 여사입니다. 사제지간에서 부부가 된 ‘동지’, 장준하와 김희숙 두 분의 첫 인연은 사제지간으로 출발합니다. 1938년 평안북도 선천의 신성중학교를 졸업한 장준하 선생님이 잠시 소학교 교사로 일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만난 제자 중 한 명이 김희숙 여사였습니다. 처음엔 그저 사제지간이었던 두 분이 부부의 연으로 맺어지는 과정에는 일제강점기 시절의 특별한 사연이 숨어 있었습니다. 1941년, 3년간의 소학교 교사 생활을 접고 장준하 선생님은 신학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그러면서 과거 자신이 소학교 교사로 재직할 당시 지냈던 하숙집의 아주머니에게 종종 안부 편지를 전했다고 합니다. 글을 모르던 하숙집 아주머니는 딸에게 그 편지를 읽어달라고 했고 답장도 대신 써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검찰, 문창극 친일 발언 보도 KBS 기자 무혐의…“명예훼손 아냐”
▲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명 14일만인 지난해 6월24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자진시퇴의사를 밝히고 인사하고 있다. 문창극 후보자는 자신이 일제시대 독립활동으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은 독립유공자의 후손임을 강조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검찰이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67)의 친일 발언 의혹을 보도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당한 KBS 기자를 1년5개월만에 무혐의 처분했다. 문씨는 지난해 6월 첫 기자 출신 총리 후보로 ‘깜작 발탁’됐다가 14일 만에 자진사퇴했다. 문씨의 낙마는 안대희 전 대법관에 연이은 총리 후보의 중도 하차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까지 포함하면 3번째여서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에 큰 차질을 빚었다. ■질질 끌다 17개월만에 무혐의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송강 부장검사)는 지난해 6월11일 KBS <9시 뉴스>에서 문씨의 교회 강연 내용을 왜곡·보도한 혐의(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로 피소당한 홍성희 기자를 무혐의 처분했다고 29일 밝혔다. 홍 기자는 뉴스에서 총리 자질 논란을 보도하면서 ‘일본지배 하나님 뜻 발언 파문’ ‘게으르고 자립심 부족…민족 DNA’라는 제목으로 문씨의 발언 장면을 방송했다. 당시 문씨가 중앙일보 재직 중 쓴 강경 보수칼럼에 이어 친일 발언 의혹이 새롭게 불거지면서 자격 시비가 정점에 달했다. 문씨는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여론이 돌아서지 않자 지난해 6월24일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 시점에서 사퇴하는 게 박 대통령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판단했다”면서 스스로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이날 문씨는 ‘친정격’인 언론에 대해 “언론의 생명은 진실보도인데 발언 몇 구절을 따내 그것만 보도하면 그것은 문자적인 사실보도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美진보매체 “이게 사과라면 한국 국가기능 더 못할 것”
카운터펀치 “美 막강한 압력, 朴 완전한 항복…日아베 조부는 박정희 멘토였다” 이런 것이 국가냐는 물음이 외국 언론에서 터져 나왔다. 아니 ‘한국은 국가로서의 기능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치욕적이 지적이 나왔다. 미국의 진보적인 월간지인 ‘카운터펀치’는 이번 위안부 문제 해결을 두고 ‘이보다 완전한 항복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만약 이것이 사과라면 ? 그래서 한국 정부가 피해보상 요구를 중단해야 한다면 -이와 비슷한 사과를 몇 번 더 받으면 한국은 국가로서 기능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고 통렬하게 지적했다. 카운터펀치는 구랍 31일 ‘South Korea’s Betrayal of the “Comfort Women”-‘위안부’ 피해자 배신한 한국 정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배경과 실상에 대해 광범위하고 정확하게 보도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이 기사는 이번 문제에 한국이 치욕적인 결과를 수용하면서도 합의를 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 미국이 있었음을 지적하고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에 있어 한일 동맹국의 걸림돌인 위안부 문제 해결에 미국의 막강한 압력이 있었음을 폭로했다. 카운터펀치는 미국의 압력에 대해 ‘아버지가 나서서 서로 사과하고 화해하라고 말해줘야 할, 서로 다툰 두 형제’처럼 ‘이번 합의는 그 꾸짖음의 최종 결과물로서, 두 아이는 자기들 사이의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협력에 필요한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는 데에 협조했다’고 표현했다. 이 기사는 미국이 뒤에 있음을 이해한다면 ‘대한민국 정치의 부조리하고, 자멸적인 행동, 자기학대적 무역 협정, 자기 파괴적 경제
어버이연합 막아선 효녀연합, 이렇게 탄생했다
[인터뷰] 대한민국효녀연합 결성한 홍승희씨 “할아버지들, 안타까워” ▲ ‘어버이연합’에 맞선 ‘효녀연합’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6일 오후 일본군위안부 한일협상을 환영하는 집회를 열기 위해 종로구 일본대사관앞 소녀상(평화비)쪽으로 이동하자, 한일협상 무효와 소녀상지키기 운동을 벌이고 있던 홍승희씨 등 시민들이 ‘대한민국효녀연합’ 피켓을 들고 가로막고 있다. 피켓에는 ‘애국이란 태극기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는 것입니다’고 적혀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단체 이름도 마음씨도 훌륭합니다.” (zi* ***) “대한민국에 두 개의 어버이연합, 어머니연합이 있었는데요, 오늘 새로운 가정 연합이 만들어졌습니다 “효녀 연합”입니다.” (Diva****) 6일 오후, 한 장의 사진이 누리꾼의 눈을 붙잡았다. 검정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 손팻말을 든 20대 여성의 모습이었다. 손팻말엔 ‘애국이란 태극기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는 것입니다’라 적혀 있었다. 그의 코앞에는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 있었다. 제1212차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가 마무리될 즈음 벌어진 일이다. 이날 오후 3시께 등장한 보수단체 회원들은 ‘아베 총리 규탄’ 기자회견을 하겠다면서도 ‘아베 신조! 책임 인정! 사과! 적극 환영!’, ‘한일 위안부 협상 굴욕 협상 아니다’와 같은 손팻말을 내걸었다. 항의하는 시민들에게는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관련 기사 : 박근혜 잘했는데 아베가 나쁜 놈? 어버이연합의 이상한 ‘수요집회’). 이때 나타난 이들이 ‘대한민국 효녀연합(아래 효녀연합)’이다. 이들은 “우리도 아베를 규탄하러 왔다”는 한 보수단체 회원의 말에 “저희도 소녀상을 지키러 왔다”고 응수했다. “같이 조용하게, 평화롭게
[신청] 제3차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개토제 및 발굴조사
※유해발굴 개토제 및 발굴조사 참가 신청 ☞ [바로가기]
기모노 입어야 아픈 역사 체험 되나요?
포항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기모노 관광상품 市 비난 확산 경북 포항시가 조성한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에서 일본 기모노를 입고 일제강점기 문화를 즐기는 관광상품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포항시가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특히 연말에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 타결로 ‘소녀상 철거’를 거론해 반일 감정이 거센 상황에서 시비는 확산됐다. ▲ 경북 포항시 구룡포읍에 조성된 ‘근대문화역사거리’ 관광객들이 일본인 가옥을 개조해 만든 구룡포 근대역사관에서 일본 전통복인 기모노 체험을 하고 있다. 포항시문화관광해설사회 제공 포항시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국비 37억여원를 투입하는 등 모두 86억원을 들여 일제강점기 일본인 어부들이 집단적으로 살았던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를 ‘근대문화역사거리’로 조성했다. 일본인 가옥 27채를 보수하고 가옥 거리 457m를 정비했다. 역사관도 조성했다. 당시 일제 잔재를 관광자원화하는 것이 적절한가 논란이 일었지만, 시는 사업을 강행했다. 인천시가 개항장을, 군산시가 미곡수탈창고가 있던 거리를 근대문화유산으로 개발하자 이를 따라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포항시는 관광자원과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겠다고 했지만, 거리가 완성되고서 2014년과 2015년 2년 동안 국내외 관광객은 불과 34만여명이었다. 지난 3일 사회적 미디어에 ‘포항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라는 제목으로 기모노를 입은 여성 사진 한 장과 함께 ‘기모노, 유카타를 입고 근대문화가 느껴지는 거리를 거닐자’라는 게시물이 등장하자 “포항시가 정신이 나갔다”는 비판들이 쏟아졌다. 포항시가 지역 관광 및 경제 활성화 명분으로 일제 잔재를 미화하려는 시도를 수수방관한다는 지적들이다. 6일 포항시청에는 시민의 항의전화가 잇따르고 있다고 했다. 구룡포 거리에서는 기모노와 유카타를 입고 거리를
[긴급토론회] “한일외교장관 회담의 문제점”
[다운로드][자료집] 한일외교장관은 2015년 12월 28일 공동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양국정부의 합의를 발표했습니다. 정작 피해자 할머니들은 한일정부간에 협상을 알지 못했고 또 합의도 이해할 수 없다며 피해자가 빠진 협상과 합의는 무효이며 취소돼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일본군위안부 연구회 설립추진모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2015년 한일외교장관회담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 마련을 위한 긴급토론회를 2016년 1월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했습니다. 인사말 : 홍익표 김제남 국회의원, 한택근 민변 회장 피해자 발언 : 2015년 한일외교장관 회담을 인정할 수 없는 이유/김복동 이용수 할머니 토 론 : (사회: 장완익 변호사) 1. 피해자의 입장에서 본 2015년 한일외교장관 회담의 문제점/양현아(서울대 법학과) 2. 일본군위안부 운동에 비추어 본 2015년 한일외교장관 회담의 문제/이나영(중앙대 사회학과) 3. 법적 관점에서 본 2015년 한일외교장관 합의의 문제점/김창록(경북대 법학과) 4. 2015년 한일외교장관 합의와 법적 함의/조시현(전 건국대 법학과) 5. 책임의 책임성 – 책임의 다의성과 기회주의적 성격/이재승(건국대 법학과) 6. 한일 시민단체에서 바라본 2015년 한일외교장관 회담의 문제점 한국 – 윤미향(정대협 상임대표), 일본 – 가와카미 시로우(변호사) 질의응답 : 청중, 취재기자, 발표자 박찬남 기자ㅣ기사입력 2016.1.6 3 <2016-01-06> 마로니에방송 ☞기사원문: [긴급토론회] “한일외교장관 회담의 문제점”
무지와 억지, 탐욕과 광기, 그끝은 어디에
〔안내〕 2016년부터 계간 『내일을 여는 역사』를 민족문제연구소와 내일을여는역사재단이 함께 발행합니다 『내일을 여는 역사』는 2000년 3월 창간되었으며 2015년 겨울호까지 통권 61호가 나왔습니다. 그간 『내일을 여는 역사』는 대중 역사 잡지를 표방하며 유익한 내용으로 전문가들의 호평을 받았으나 생각만큼 널리 읽히지는 못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내일을 여는 역사』를 통해 올바른 역사인식의 대중적 확산에 기여하면서 연구소의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가고자 합니다. 『내일을 여는 역사』가 역사의 진실을 알리고 사회의 정의를 지키는 데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 역사를 사랑하는 시민 회원 여러분들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기존의 『역사와 책임』은 반년간 근현대 과거사청산 전문학술지로 계속 발간됩니다. 2015년을 보내며 무지와 억지가 난무하고, 탐욕과 광기가 온 나라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을 본다. 사실을 거짓이라 하고, 정상을 비정상이라 하고, 불법을 합법이라 하고, 분열을 통합이라고 강변한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했다는 아주 옛날 중국에서 있었던 저급한 정치가 21세기 10대 경제 강국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온 국민은 먹고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대통령은 역사 교과서가 문제라고 억지를 부린다. 역사 교과서 어디가 문제냐고 물었더니 그런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다. 대통령이 무당이 아닐진데, 이것은 역사 ‘교과서’에 대한 무지를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고 나서 대통령이 생각하는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비정상’이 된다고 억지를 부렸다. 그리고 국정화에 반대하는 소신을 가지고 있던 교육부장관과 국사편찬위원장 그리고 여당 대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