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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만에 햇빛 보는 민간인 학살자

2016년 2월 23일 549

충남 홍성에서 한국전쟁 유해 발굴 공동조사 실시 (내포=국제뉴스) 박창규 기자 =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한국전쟁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에 대한 유해들은 전국 곳곳에 아직까지 방치돼 있다. 이에 한국전쟁유족회, 민족문제연구소, 4.9통일평화재단, 포럼진실과정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장준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2014년 지난 2월 18일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하 공동조사단, 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을 출범시켰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2014년 2월 24일부터 3월 4일까지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진주지역 보도연맹사건 관련 민간인 학살 희생자’에 대한 1차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최소 39명의 유해와 탄두와 탄피, 버클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한 바 있으며, 2015년 2월 23일부터 3월 2일까지 대전광역시 동구 낭월동 ‘대전형무소사건 관련 민간인 학살 희생자’에 대한 2차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최소 20구의 유해와 탄두, 탄피, 의안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한 바 있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두 차례의 유해발굴조사에 이어 지난 2015년 11월 15일 충남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산 92번지에서 제3차 유해발굴을 위한 시굴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다수의 유해와 탄두를 발견함으로써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해매장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공동조사단은 오는 24일부터 29일까지 충남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산 92번지에서 제3차 유해발굴조사를 벌인다. 이번 3차 발굴조사 지역인 홍성군 광천읍 사건과 관련해 유족과 목격자는 1950년 10월 8일 광천지서 유치장에 구금됐던 주민 36명이 광천지서 경찰에 의해 트럭에 실려와 담산리 중담마을 한복판에서 한밤중에

[스토리펀딩] 3화 반드시 밝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2016년 2월 22일 1003

[저널리즘] 아버지, 어디에 잠들어 계십니까 About you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은 국가폭력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의 유해를 발굴하여 민간인학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2014년 진주, 2015년 대전에서 시민들의 뜻과 힘을 모아 학살 희생자들의 유해를 발굴하였습니다.  ‘빨갱이 가족’이라는 오명을 쓰고 살아온 유족들, 아직까지 묻혀 있는 희생자들의 유해, 발굴작업에 나선 시민들, 발굴진행 보고를 통해 민간인학살 희생자들의 삶과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Funding plan 오는 2월 24일(수)부터 29일(월)일까지 충남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에서 제3차 유해발굴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여러분들께서 모아주시는 소중한 후원금은 희생자 유해발굴작업에 필요한 비용과 결과보고서 발간비용으로 쓰겠습니다. Details “여기 억울한 주검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 때문에, 어떤 이는 단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아낙네는 빨치산에게 밥을 줬다는 이유만으로, 또 어떤 어린애는 영문조차 알지 못한 채 죽은 주검들입니다. 전쟁이라는 비상상황이기 때문에 이들의 죽음은 어쩔 수 없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옳지 못합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국가가 적법한 절차 없이 함부로 사람을 죽일 수 없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사라져간 수많은 민간인들의 죽음은 전투로 인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스스로 법을 무시하며 저지른 학살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60여년이 지난 2005년 과거청산을 위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설립되어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유해발굴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3년간의 사업을 통해 1,617구의 유해와

춘원 이광수의 양부 일본의 괴벨스

2016년 2월 19일 1470

임헌영의 세계문학기행 <격변기 문호들을 찾아 떠나다> 전세계 문학 현장을 25년 누빈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의 새 연재 매주 만나는 세계 문학의 절정 “자유, 평화, 인도주의”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오래된 질문을 <한겨레21>이 다시 묻는다. 야차 같은 정권의 그늘 아래 한반도 남쪽 민주주의는 갈수록 창백해지고 있다. 농민은 병실에 누워 있고, 노동자는 붉은 띠 두르고 하늘에 오른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는 말이 넘쳐난다. 그런데도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세상살이의 태반은 말글살이다. 사람들은 비정한 비언어의 세계에서 언어로 소통하고 언어로 환호하며 언어로 절규한다. 언어 없는 인간세를 상상할 수 없듯이, 언어의 힘을 불신하는 문학은 존재할 수 없다. 문학이 ‘겨울공화국’의 혹한을 견디고 봄날을 꿈꾸며 삶의 근육을 다지는 데 조금이라도 이바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문학비평가 임헌영(75·사진)의 세계문학기행 연재를 이번호부터 싣는 까닭이다. 연재는 일본의 두 형제 이야기로 시작해, 유일한 한국인 이미륵에서 마침표를 찍을 참이다. 전쟁과 역사, 민중의 저항, 침략과 제국주의 반대를 열쇳말 삼아 세계문학의 ‘절정’이 차례로 소개된다. 작품의 현장을 두루 돌아본 저자의 안내에 따라 독자들 또한 시대를 읽고 자신을 해석하며 타인과 공존하는 길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연재는 매주 이어진다. _편집자 [연재] 1화 일본의 윤동주 일본의 톨스토이 [연재] 2화 춘원 이광수의 양부 일본의 괴벨스 조선의 모든 신문을 총독부 기관지로 만들었던 언론인 도쿠토미 소호 평화주의 작가 도쿠토미 로카가 등을

[아침 햇발] 아직, 친일파의 나라 / 박용현

2016년 2월 19일 593

#2016년 대한민국 서울: 교육청이 <친일인명사전>을 중·고교 도서관에 배포하려 하자 교육부가 절차 위반이니 자율권 침해니 들먹이며 훼방을 놓고 있다. #2015년 프랑스 파리: 나치 독일에 부역한 행위를 뜻하는 ‘협력’(콜라보라시옹, 우리 식으로 번역하면 ‘친일’)을 주제로 국립기록보관소에서 전시회가 열렸다. 주최자는 프랑스 국방부였다. 극명한 대조다. 프랑스는 해방 70년이 지나도 정부가 나서서 ‘매국노를 기억하자’고 부추기는 반면, 우리나라는 그런 노력을 정부가 발 벗고 말리는 꼴이다. 혹간 <친일인명사전>이 편파적이라서 그렇다는 주장이 있다. 장지연을 예로 꼽는다. 1905년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그 장지연을 친일파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장지연은 1914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객원기자로 들어가 4년여 동안 일제를 찬양하는 수많은 글과 한시를 썼다. 한때 착하게 산 사람은 이후 잘못을 저질러도 죄책을 지지 않는단 말인가.(<친일인명사전>은 해당 인물의 지사적 활동과 친일적 활동 양면을 공정하게 소개한다.) 프랑스 국립 레지스탕스 박물관에 가보면 총기나 폭탄 같은 무력 저항의 상징물보다 낡은 인쇄기 한 대가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나치 치하에서 지하신문을 찍던 인쇄기다. 저항의 ‘정신’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무기였다는 뜻이다. 지식인·언론인의 부역 행위는 그 정신을 좀먹은 것이기에 더 엄혹하게 다뤄야 한다는 게 프랑스의 과거 청산 원칙이었다. ‘협력’ 언론은 폐간하고 소유주를 처벌했다. 나치 점령 초기엔 저항하다가 압박에 못 이겨 ‘협력’으로 돌아선 언론인도 징역 20년에 처해졌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일제에 협력했던 <조선일보> 사장 방응모나 <동아일보> 사장 김성수는 아무런 단죄도

‘친일인명사전 배포’ 왜 자꾸 딴지 거나?…’예정대로 추진’

2016년 2월 18일 562

▲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교육부가 ‘친일인명사전’ 배포에 제동을 걸고 나섰지만 서울시 교육청은 배포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는 만큼, 예정대로 추진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지난 12일 ‘친일인명사전의 교육자료 적합성 검토 및 관련 규정 준수 요청’ 공문을 서울시 교육청에 보냈다. 교육부는 우선, 시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친일인명사전을 구입해 수업자료로 활용하고 학교도서관에 비치하도록 해 학교현장의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특정도서 구입 예산을 교부한 것이 적절한지 검토하는 한편, 중고등학교에서 교육자료로 활용하거나 학교도서관에 비치할 경우 관련 법령에 따른 절차, 즉 학교운영위원회와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를 거치도록 안내하고 그 결과를 29일까지 보도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면서 각급 학교의 교육활동이 교육의 중립성을 훼손할 경우 엄정 조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서울시 교육청은 친일인명사전 배포는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만큼, 학교운영위원회 등을 거치도록 학교에 안내하라는 교육부 지시를 따르지 않기로 했다. 자문변호사 자문을 통해, 친일인명사전 구입 예산은 특정도서를 구입하도록 내려보낸 목적사업비이므로, 학교운영위원회나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 심의 사항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는 게 서울시 교육청의 입장이다. 특히, 법원 판결을 통해 친일인명사전의 내용에 대한 공정성도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서울시 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이정희 장학관은 “법원 판결을 통해 정당성을 인정받은 도서를 구입하도록 예산을 교부한 것이기 때문에 학교운영위원회를 거칠 사항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 유족 및 보수단체들은 ‘발행 또는 게재의 금지를 구하는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지만 2010년 3월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 판결을 받았고, 2009년

“윤동주 시는 사랑하면서 그의 삶은 잘 모르더라”

2016년 2월 17일 1026

<2016-02-16> 한국일보 ☞기사원문: “윤동주 시는 사랑하면서 그의 삶은 잘 모르더라” ※관련기사 ☞오마이뉴스: 윤동주를 부끄럽게 한 박정민, 시사회에서 꺽꺽 울다 ☞포커스뉴스: [영화뷰] ‘동주’, 윤동주-송몽규를 통해 써내려가게 될 참회록 ☞수원뉴스: 빼앗긴 조국의 아픔을 詩로 절규했던 청년 윤동주 ☞시크뉴스: ‘동주’ 이준익 감독 “윤동주가 살던 순간 마주하면 죄스럽고 부끄러워” [인터뷰] ☞쿠키뉴스: [쿡리뷰] ‘동주’ 누구나 아는 시인 윤동주, 아무도 모르는 청년 윤동주 ☞BBS뉴스: [BBS 사랑방 열번째 이야기] 우리가 지금 윤동주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민족사랑 02월호

2016년 2월 17일 707

[바로보기]   서울시 동대문구 왕산로 283, 3층(청량리동 금은빌딩) 대표전화: 02-969-0226 / FAX: 02-965-8879 누리집: www.minjok.or.kr / 이메일: minjok@minjok.or.kr   트위터: https://twitter.com/minmoonyeon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injok

육시랄 놈의 역사 ‘이육사’

2016년 2월 17일 4476

<이한수의 공감 팩션> MBC 광복절 특선 드라마 『절정』 조국 독립 투쟁에 혁혁한 공을 세웠으면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의열단 ‘김원봉’을 알게 해준 영화 『암살』을 만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를 계기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 아낌없이 받쳤는데도 후대에 알려지지 않은 원통한 고혼들을 찾아 함께 떠나 봅시다. 앞 기사에서도 언급했듯이 약산 ‘김원봉’은 남북 협상에 이바지하려고 북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중국 국민당 ‘장제스’와 가까웠고 군자금도 지원받은 적이 있다는 빌미로 북 정권에 의해 숙청당합니다. 북의 정권을 세운 이들 중에 중국 공산당과 함께 항일 투쟁을 한 조선의용군 출신들이 많고 그들은 ‘장제스’를 원수로 여겼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할 수도 있지만 그놈에 이념이란 게 우릴 이토록 갈라지게 만드는구나 싶은 원통함도 있습니다. 그런데 ‘김원봉’과 밀양에서 앞뒷집에 살고 “형, 동생” 하며 지낸 석정 ‘윤세주’는 사람들이 더 모릅니다. 둘은 고향 친구이기도 하면서 의열단을 같이 만든 평생 동지입니다. 그런데 ‘김원봉’은 중국 충칭(중경) 임시정부 광복군에 남고 친구 ‘윤세주’는 의용대를 조직하여 중국 공산당 팔로군에 결합하기 위해 옌안(연안)으로 갔습니다. 먼저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절친 사이인 둘은 이념 문제로 결별하게 되었을까요? 아니면 정치선전 활동을 군사작전으로 확장시키기 위해 역할을 나누었을 뿐인 걸까요? ‘윤세주’ 의사를 찾아가기 위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시인 ‘이육사’를 먼저 만나 봅시다. ‘윤세주’는 ‘이육사’를 독립투사로 이끈 선배이자 ‘이육사’가 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