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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뭐라도 하자’는 마음이 만든 찬란한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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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에 모인 작품들의 사연

기자말

자연에서 육각형은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도형이다. 그래서 완벽한 사람에게 ‘육각형 인간’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오늘은 광장의 동지들이 만들어낸 아름답고 찬란한, 더없이 완벽한 연대에 ‘육각형’을 사용하고자 한다. 오늘 소개할 내용은 ‘육각형 연대’를 만들어낸, 광장에서 처음 만났지만, 서로를 ‘동지’라 부르는 이들의 이야기다.

‘뭐라도 하자’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놀라웠던 점은 많은 이들이 ‘뭐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광장에 함께 있던 것이다. 단순히 ‘머릿수 채우기’를 위해 광장에 나간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무엇이든 해보려 했던 능동적 자세로 광장에 참여했다.

“깃발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집회 기간이) 길어지더라고요. 다들 깃발을 들고나오시길래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에서 저도 이렇게 쓱싹쓱싹 만들어서 가져왔습니다.”

_기증자 장세은님 인터뷰 중

“회사에 다닐 때는 저 스스로 제가 아닌 기분이었거든요. 그러니까 남의 말만 듣고 내가 정작 해야 할 말은 모르겠고, 그냥 그렇게 흘러갔는데, 투쟁하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은 이런 거구나. 적극성 있게 나가고 뭘 해도 같이하려고 하고, 연대하고 이런 걸 보면서 그래도 외면하던 그 시절보다는 일단 뭐라도 하는 게 좋구나. 이거를 깨달았었던 것 같아서 지금의 제가 좀 더 괜찮다고 생각해요.”

_기증자 이휘은(콘푸)님 인터뷰 중

“그때가 국회에서 ‘탄핵 가결해라’라고 했었을 때였고, 당시에 친구들이랑 일단 우리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 해서 갔었는데 핫팩을 좀 많이 가져갔었어요.”

_기증자 윤예원님 인터뷰 중

이들은 ‘뭐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깃발을 만들고, 다른 이들과 연대하고, 자원봉사에도 참여하면서 너와 내가 함께하면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만들었다. 그리고 ‘함께’라는 단어가 자신이 참여해야 비로소 ‘함께 바꾼다’가 된다는 것을 터득했다. 자신을 부정하고 타인을 혐오하는 시대에서 이들은 자신을 아끼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광장에서 배웠다.

▲<2부. 광장은 학교였고, 우리는 서로의 교과서였다> 전시 모습 ⓒ 식민지역사박물관

서로의 의미가 되어 온기를 전달한 123일

“(자원봉사를 하게 되면) 처음 보는 사람한테 계속 말 걸고 그래야 하니까 좀 힘들긴 한데 그래도 하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으니까 거기에 의미 부여를 하는 편이예요.”

_ 기증자 장세은님 인터뷰 중

“(자원봉사를 할 때) 아기를 안고 오신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어깨끈이 계속 흘러내리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고 아기를 안고 있어야 하니까 (어깨끈을 올릴) 그럴 시간이 없으신 것 같아서 제가 가서 ‘이거 끈 올려드릴까요?’ 하고 물어본 뒤 끈을 올려드렸더니 너무 감사하다고 아기 주머니 뒷주머니에 있던 사탕을 주셨는데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맛있기도 했었고.”

_기증자 브처님 인터뷰 중

“(한강진에서 집회를 하던) 그때 SNS에서 자봉단이 부족하다. 자원봉사가 너무 부족한데 물품은 너무 많이 온다는 이야기를 봤어요. 그날은 친구들하고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간 거여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밤샘에 함께하자’라는 마음으로 (자원봉사를) 하게 됐어요. … 조금 특이했던 경험은 한 자원봉사자분이 갑자기 인삼을 들고 계시길래 ‘이게 무슨 인삼이냐’ 물어보니까 시위장에 있던 어르신께서 자원봉사자들에게 주셨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다같이 인삼 뿌리 한 번씩 맛보고 했던 특이한 기억이 있어요.”

_ 기증자 유한님 인터뷰 중

엄동설한에 광장을 지켰던 이들의 따뜻한 일화들을 들을 때면 코끝이 시큰해진다. 자원봉사를 하면 다양한 민원을 응대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오히려 마음이 채워지는 일화들을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는 깃발과 응원봉을 들고, 누군가는 자원봉사자 조끼를 입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과정에 온기를 전달했다. 그들은 얼어붙은 광장을 따뜻하게 만들었을 뿐 자신이 하나의 촛불이 되어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리기도 했다.

“사실 처음에는 저 하나라도 머릿수를 보태자 그런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이제 석 달이니까 일상이 돼 버려서 안 나오면 마음이 불편하고 이제 평일 집회도 찾아서 나가야 속이 풀리게 됐어요.”

_부천에 사는 20대 자원봉사자와의 인터뷰 중

▲김영호님, 박의초님, 딴지자봉단님이 기증해주신 자원봉사자 조끼 ⓒ 식민지역사박물관

보이지 않는 숨은 공신들 : 일상을 돌려받고 싶은 사람들(일돌사), 비건감튀

광장에는 또 다른 이들이 존재했다. 추운 겨울, 광장에 나온 이들의 위와 장을 따뜻하게 채워준 푸드트럭이 그들이다. 이번 전시 기증자 중 2명의 푸드트럭 운영자를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는 또 한 번 심금을 울렸다.

▲식민지역사박물관 입구에 전시된 ‘일돌사’ 배너 ⓒ 식민지역사박물관

“일단 ‘뭐라도 먹이자’는 마음으로 처음에 대여섯 명의 친구들이 모여서 여의도 집회에서 음료를 선결제하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_일돌사 신아름 팀원 기증사연 중

“1월에 모금으로 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모여서 익명의 모금방이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저도 모금에 참여하고 싶어서 카톡방에 들어갔다가 이럴 게 아니라 내가 직업이 푸드트럭을 하는 사람이니 좀 더 적극적으로 큰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자원하게 되었어요… 저는 재능기부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더 뭔가 해줄수 있는 게 없을까?’라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_비건감튀 배수아님 인터뷰 중

광장에 모인 많은 이들이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연대했다면, 푸드트럭 운영자들은 ‘뭐라도 먹이자’는 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들의 뒤에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다. 선결제 문화에서부터 시작한 후원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한국에 있는 분들만 참여하신게 아니고 전 세계 익명의 시민분들이 다 참여해서 만들어진 푸드트럭이죠. 눈물이 날 것 같네요 … 저희가 느끼기에 장난으로 하는 말이긴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행동하는 독립군들이고 그분들은 해외 원조를 해주시는 분이다. 약간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기는 해요.”

_비건감튀 배수아님 인터뷰 중

추운 광장을 어묵과 떡볶이, 꽈배기 등으로 따뜻하게 만든 이들은 후원자와 운영자만이 아니었다.

“남태령 2차 소식을 듣고 푸드트럭을 준비할 때였어요. 푸드트럭 사장님은 오전에 다른 일정을 가셨다가 남태령으로 와주셨는데, 처음에는 경찰버스에 막혀서 들어가지 못하셨어요.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셨는데, 국회의원과 비상행동에서 인도적으로 푸드트럭이 들어올 수 있게 길을 열어달라고 협상을 진행했고 푸드트럭이 들어올 수 있게 되었어요.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다시 오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이 자리를 빌려 500인분을 주문하면 600인분을 만들어와 주시고, 연락하면 언제든지 달려와주신 ‘오빠네컴퍼니 판다의꿈’ 사장님께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습니다.”

_일돌사 신아름 팀원 인터뷰 중

일돌사 신아름 팀원은 푸드트럭 사장님 외에도 감사를 전할 이들이 많다고 했다. 음료를 주문하면 광화문으로 배송지가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1박스씩 더 얹어주시던 사장님들, 현수막을 인쇄하려고 하면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한사코 거절하던 사장님 등 우리 사회의 수많은 자영업자들도 이 광장의 숨은 공신이었다.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

이 글에 소개된 깃발과 기증자 사연은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기획 전시실과 온라인 전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전시 안내]
– 기간 : 5월 16일 ~ 8월 17일 (매주 월요일 휴무)
– 장소 : 식민지역사박물관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 특별 해설 : 6월 12일 ~ 7월 26일 / 매주 목, 금, 토 오후 2시
해설 신청 : https://forms.gle/uoZx6UZwk6SUMP7i8
– 문의 : museumoch@gmail.com

[온라인 전시]
https://democracyflag.oopy.io/

[기록집 제작 후원 안내]
긴급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 기록집을 제작합니다.
*후원참여 링크 : https://naver.me/5pqx0Dj2

박이랑 기자

<2025-06-27>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뭐라도 하자’는 마음이 만든 찬란한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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