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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보도자료]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소송 판결의 압류신청서 제출에 대한 소송대리인·지원단 공식 입장

2019년 1월 2일 1418

[다운로드] [보도자료]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소송 판결의 압류신청서 제출에 대한  소송대리인·지원단 공식 입장 1.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대리인단은 지난 2018년 12월 4일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신일철주금에게 2018년 12월 24일 오후 5시까지 확정 판결에 따른 손해배상에 관한 협의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법에서 정해진 절차에 따라 강제집행에 들어갈 것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신일철주금은 위 시한까지 아무런 협의의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2. 70여 년 동안 자신의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권리구제를 위해 싸워 온 원고 및 원고의 유가족들에게 해를 넘기면서까지 판결의 이행에 관해 어떠한 성의도 보이지 않는 신일철주금의 무성의하며 반인권적인 태도에 대해 강력한 유감의 뜻을 밝힌다. 아울러 일본 정부에게도 한국 사법부의 판결을 공개적으로 무시하고, 일본 기업에게 판결에 따르지 말도록 공공연하게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하는 바이다. 3. 이에 따라 지난 12월 31일 피해자 대리인은 판결을 자발적으로 이행하지 않는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강제집행절차에 들어갔다. 이날 최종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원고 4인 중 생존자 이춘식 외 1인(나머지 2인은 승계집행문 발급수속 중) 등에 대해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에 손해배상채권을 보전하기 위한 압류신청서를 제출하였다. 압류 대상 재산은 신일철주금이 소유한 ㈜피엔알의 주식이다. * 신일철주금은 (주)피엔알의 주식 30%에 해당하는 2,343,294주를 소유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4. 압류신청을 할 때 주식 압류의 경우 매각명령을 함께

국립현충원, 친일과 항일의 불편한 동거

2019년 1월 2일 1218

[앵커] 새해 기해년은 3.1 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입니다. YTN은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애국 지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한편, 아직 청산되지 못한 친일의 흔적을 되짚어보는 연속 보도를 준비했습니다. 첫 순서로 국립현충원에 독립운동가들과 나란히 친일 인사들이 안장돼 있는 실태를 함형건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조선주둔군 사령관을 암살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맹활약하는 여성 독립운동가. 영화 암살의 주인공인 안윤옥의 실제 모델로는 조선 총독의 암살을 기도하기도 했던 독립 운동가 남자현 의사가 꼽힙니다. 역시 영화 속 결혼식장 장면에서 일본 현병과 군인들을 제압하는 독립투사 ‘속사포’의 모습은, 일제시대 종로 일대에서 일본 경찰과 대담한 총격전을 벌인 김상옥 의사를 빼닮았습니다. 치열했던 항일 독립운동사의 주역이었던 남자현, 김상옥 의사 두 분은 현재 서울 국립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잠들어 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이 대거 안장된 애국지사 묘역을 상공에서 살펴보았습니다. 부근으로 이동하니, 독립투사들의 묘를 바로 굽어보는 위치에 제2장군 묘역이 나옵니다. 불과 100 m 거리입니다. 장군 묘역엔 정부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 규명위원회가 반민족 행위자로 발표한 친일 인사 신태영과 이응준의 묘가 있습니다. 부근의 장군 묘역에도 정부가 친일 인사로 공표한 사람들의 묘가 즐비합니다. 김백일과 김홍준은 조선인 독립군을 토벌하는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고, 신응균, 이종찬 등은 일본군에서 장교로 복무하다가 해방 후에 한국군 장성이 된 사람들입니다. 일제시대 태평양전쟁을 성전이라고 주장하는 등의 친일 행적이 문제가 된 백낙준의 묘도 있습니다.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이 서울 현충원에 안장된

“3·1혁명으로 근대 이후 한국 사회 가장 크게 바뀌었죠”

2018년 12월 30일 1074

[짬] 독립기념관 이준식 관장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은 지난 18일 취임 1년을 맞았다. 그는 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고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다. 어머니(고 지복영 선생)는 1940년 광복군으로 처음 군복을 입은 여성 넷 가운데 한 명이다. 해방되던 해까지 광복군 모집, 광복군 기관지 발간 등의 항일 활동을 했다. 외삼촌인 고 지달수 선생도 독립유공자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뒤 독립유공자를 한 명이라도 더 찾겠다고 했다. 독립기념관이 올해부터 체계적으로 유공자 발굴 업무에 나선 이유다. 이전엔 국가보훈처가 직접 했다. “올해 티에프를 만들어 300명 이상 유공자를 찾아 포상 신청을 했죠. 이 중 20명 이상 포상을 받았어요.” 27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이 관장 얘기다. 독립기념관 소속 ‘한국독립운동사연구사’는 현 정부 들어 정규직 연구자가 9명에서 16명으로 늘었다. “정부에서 연구소 확대에 협조적입니다. 연구소가 독립운동 연구의 중심 구실을 하려면 25명 정도는 돼야 합니다. (인력 확충을) 희망적으로 보고 있어요. 연구소는 독립운동 연구자 후속 세대를 양성하는 기능도 해야 합니다.” 지난 2년 새 독립기념관 정부 보조금도 10%가량 늘어 300억 원가량 된단다.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 산하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이다. 이 관장은 기록조차 없는 무명 독립군을 기리는 사업이 유공자 발굴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다. “1919년 시위에 최대 100만 명이 참여했지만 이름을 알 수 있는 이는 만 명도 안 됩니다. 독립군도 비슷해요. 당시 기록은 주로 일본 쪽 자료인데, 거기엔 독립군 간부만 이름이 나옵니다. 모스크바나 파리를

민족사랑 2018년 12월호

2018년 12월 24일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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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구, 2018 근현대사기념관 국제학술회의 개최”

2018년 12월 22일 1401

강북구, ‘학살, 원폭, 강제동원 피해’에 대해 논하다 [뉴스에이=천선우기자] 강북구(구청장 박겸수)가 21일(금)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덕성여자대학교 대강의동 1층에서 ‘학살, 원폭, 강제동원 피해’를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회의는 일제의 식민지배와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로 인한 동아시아 시민들의 인권피해 문제를 점검하고 식민주의 극복과 피해회복 방안을 찾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가 주관하고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가 주최하는 행사는 서울시와 강북구,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도 함께 했다. 심포지엄 형식으로 치러질 학술회의는 1부 주제별 발표, 2부 종합토론 순으로 진행된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이 1부 사회를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이 2부 사회를 맡았다. 발표를 위해 나설 6명의 발제자는 김승은 책임연구원(민족문제연구소), 김강산(성균관대)씨, 이치바 준코 대표(재한원폭피해자를구원하는 모임), 김민철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히구치 유이치(전 고려박물관장)씨, 고바야시 도모코 교수(후쿠오카교육대학) 등이다. 이들 발제자는 한반도 내 인명피해 조사 현황과 과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히로시마, 나가사키 조선인 피폭자, 한국 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 활동성과와 과제, 일본에서의 강제동원 연구 현황과 과제, 일본 내 조선인 유골 진상조사 성과와 과제 등에 대해 집중 조명하였다. 이날 오후 5시부터 시작되는 종합토론에서는 류준범(국사편찬위원회)씨, 이상의(인천대)씨를 비롯해 히다 유이치씨와 고바야시 히사토모씨(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하수광씨와 량대륭씨(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특히 의견을 나눌 단체의 활동가와 연구가들은 일제의 강제동원 피해를 조사하고 회복을 위해 힘써온 당사자로 토론을 통해 시민사회의 노력과 국가차원의 진상규명 성과를 공유할 예정이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일제 강점기 피해와 이에 따른 동아시아 시민들의 인권문제는

민족문제연구소 찾은 정우성, “친일 영향 알아야 한다”

2018년 12월 22일 1912

배우 정우성이 민족문제연구소를 찾았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셜미디어 계정은 19일, “배우 정우성 씨가 17일 민족문제연구소를 방문해 임헌영 소장을 면담하고 박물관을 관람했다”라며 그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찍은 몇 장의 사진을 함께 게재했다. 사진 속에는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과 식민지역사박물관 앞에 나란히 서 있는 정우성의 모습, 그가 쓴 방명록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정우성은 방명록에 “대한민국에는 친일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라며 “민족문제연구소가 상실된 민족정신을 되찾기 위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어 감사하다”라는 내용을 적었다. 이날 임헌영 소장은 정우성에 리영희 선생과의 대담집 ‘대화’를 선물하며 격려했다. <2018-12-20>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찾은 정우성, “친일 영향 알아야 한다”  ※관련기사  ☞뉴스엔: 정우성, 식민지역사박물관서 포착 “친일 어떻게 영향 미치는지 알아야”  ☞스포츠경향: ‘얼굴만은 따라할 수 없다’는 정우성 근황…“친일에 대해 알아야 한다”

새로 편곡된 애국가, 여전히 찜찜한 까닭

2018년 12월 19일 1929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다시 돌아보는 안익태 친일 논란 새로 편곡된 애국가가 선을 보였다. 금관악기와 목관악기 소리를 가미해 현대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데 편곡 초점이 맞춰졌다. 영화음악을 하는 박인영 감독이 편곡을 맡고,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서울시립합창단이 녹음에 참여했다. 박인영 감독은 지난 17일 YTN과의 인터뷰에서 “최대한 안익태 선생님의 원곡, 오케스트라 편곡 의도가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조금만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애국가를 세련되게 만드는 데 참여한 분들의 노력은 충분히 감사할만한 일이다. 그런데 ‘애국가 작곡가가 과연 애국자였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한국 사회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의문을 품어왔다. 으레 국가(國歌) 작곡가의 자격은 ‘애국자’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가 작곡가는 애국자가 아니었다. 애국가가 민족반역자의 작품이라면, 애국가를 듣거나 부를 때 잡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광고 모델에 도덕적 하자가 알려지면,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제품보다는 스캔들이 먼저 떠오르는 이치와 같다. 안익태의 친일 행보 고대 이래로 국가는 음악을 국민 통치에 활용했다. 강태공의 사상을 정리한 책으로 기원전 11세기부터 주나라의 백성 통치에 활용된 <삼략>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허리를 굽혀 복종하게 하려면 예법으로써 해야 하고, 마음으로부터 복종하게 하려면 음악으로써 해야 한다.” 어느 시대든 정치 권력은 사사건건 군대를 동원해 백성을 누르기보다는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복종하기를 원한다. 그래야 정치 체제가 안정되고 통치 비용(군대 양성 비용 등)도 절감된다. 그런 복종을 유도하고자 정치 권력이 사용해온 도구 중 하나가 교육이다.

“사제로서 최선의 삶을 살도록 노력했습니다”

2018년 12월 18일 1714

‘민주화 운동 원로’ 김병상 몬시뇰 15일 회고록 ‘따뜻한 동행’ 출간기념회 사제·교우들 ‘김병상과 함께’ 꾸려 헌정 천주교 사회참여 운동 1세대 원로인 김병상(86·필립보) 신부의 삶과 신앙을 기록한 회고록 헌정미사와 출판기념회가 15일 인천시 심곡동 국제성모병원 3층 마리아홀에서 열렸다. (리북 펴냄)은 요양중인 김 신부를 위해 그와 인연을 맺어온 천주교 인천교구의 사제와 평신도들로 구성된 모임인 ‘김병상과 함께'(대표 김일회 신부·구월1동 성당 주임)에서 펴냈다. “사제로서 죄선의 삶을 살도록 노력했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 몸 바쳐 뛰었습니다. 모든 은인 교우들과 동지들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지난 3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인천교구 시니어타운 마리스텔라에서 요양중인 김 신부는 이날 직접 참석해 미리 준비한 기도문을 무사히 낭독해 300여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정의구현사제단 ‘동지’이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낸 함세웅 신부가 축사를 했다. 책에는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 찬 세상’(정신철 주교), ‘따뜻한 미소, 오랜 동행’(황상근 신부),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함세웅 신부), ‘아름다운 인연’(김일회 신부) 등 선후배 동료 사제들이 김 신부를 소개한 글이 담겼다. 이어 그의 구술·인터뷰·일기를 비롯해 지인들의 증언까지 생생한 기록을 바탕으로 현대사 한복판을 앞장서 헤쳐온 그의 일대기를 충실히 정리해 놓았다. ‘1932년 교우촌인 충남 공주 요골공소에서 태어난 김병상은 어머니로부터 순교자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막내아들이 사제가 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기도대로 1948년 용산 소신학교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 와중에 폐결핵에 걸려 53년 7월 신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병마에서 벗어나 61년 홍익대 국어국문학과를

“‘징용공→노무자’ 말 바꾼 아베 총리… 남북이 ‘기억투쟁’ 나서야”

2018년 12월 16일 1304

[인터뷰] 남북공동기억센터(가칭) 설립 추진하는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60년대 한일수교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와 전쟁 강제동원 관련 자료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당시 일본 정부는 군인·군속 강제동원의 피해 규모를 축소해서 한국에 제시했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원폭 피해자 문제 등은 거론조차 되지 못했다. 한국인 BC급 전범 문제는 일본의 거부로 교섭대상에서 제외됐다. 한반도 내 동원자도 한국의 협상력 미숙으로 대상에서 제외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대부분의 가해 자료는 일본이 갖고 있었기 때문에, 피해의 ‘증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문제에 관해선 한국은 수세적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박정희 정권은 제대로 된 사죄와 배상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맺었다. 당시 잘못된 협상으로 피해자 개인의 배상 청구를 어렵게 하는 결과를 낳으면서 피해자와 희생자 및 유족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 등 현재까지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다가오는 북일수교에서 북한만은 우리와 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나선 이가 있다. 우리가 북한을 도와 북한지역 강제동원 피해 실태를 제대로 조사하고 밝혀내 향후 대일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북한이 일본을 상대로 제대로 된 사죄와 배상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아래 민문연) 연구위원 겸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지난 3일 “다가올 북일수교를 전망할 때 수교과정에서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와 배상 문제가 다시 제기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라며 “사과와 배상의 전제가 되는 피해 실태가 먼저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철 교수에

“위안부 연구소 독립성 보장 안돼…‘연구할 과거사’ 인식 부족”

2018년 12월 18일 1910

위안부 기록 발굴 연구자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 용역 형태 연구소 설립…진실규명 등 지속적 수행 한계 역사적 사건 아닌 외교 사안·보상·명예회복에 치우쳐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어떠한 관점도, 로드맵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들어진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소가 제대로 운영되기 힘들다는 건 출범 전부터 많은 사람이 예상했던 일입니다.” 지난 8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소’가 출범했다. 정부 산하에 생긴 첫 위안부 연구기관이다. 연구소는 국내외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위안부 관련 기록들을 모아 데이터베이스(DB)화하고, 위안부 구술기록집을 외국어로 번역해 국제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맡았다. 3개월이 지난 지금, 연구소는 제대로 시작도 못해보고 위기를 맞았다. 초대 소장인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사임 의사를 밝혔다. 연구소 사정을 잘 아는 주변의 연구자들은 “연구소의 독립성이 보장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김 소장이 버텨내질 못했다”고 했다. 위안부 기록 발굴 연구자인 강성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는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진실규명이 필요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외교적 사안으로만 대하면서 휘발적으로 소비하고 있기에 생긴 일”이라며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 5일 성공회대 연구실에서 강 교수를 만났다. 그는 우선 “위안부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알려지고 3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위안부 관련 기록을 발굴하고 체계적으로 보존하는 연구기관이 없다”고 지적했다. 전쟁사를 주로 연구해온 강 교수가 위안부 문제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약 4년 전쯤이다. 그의 지도교수였던 서울대 인권센터장 정진성 교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