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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로서 최선의 삶을 살도록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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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운동 원로’ 김병상 몬시뇰
15일 회고록 ‘따뜻한 동행’ 출간기념회
사제·교우들 ‘김병상과 함께’ 꾸려 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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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로사제 김병상 신부가 지난 15일 ‘따뜻한 동행-헌정미사와 출판기념회’에서 휠체어에서 일어나 답례 인사로 기도문을 읽고 있다. 사진 ‘김병상과 함께’ 제공

천주교 사회참여 운동 1세대 원로인 김병상(86·필립보) 신부의 삶과 신앙을 기록한 회고록 <따뜻한 동행> 헌정미사와 출판기념회가 15일 인천시 심곡동 국제성모병원 3층 마리아홀에서 열렸다. <따뜻한 동행>(리북 펴냄)은 요양중인 김 신부를 위해 그와 인연을 맺어온 천주교 인천교구의 사제와 평신도들로 구성된 모임인 ‘김병상과 함께'(대표 김일회 신부·구월1동 성당 주임)에서 펴냈다.

“사제로서 죄선의 삶을 살도록 노력했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 몸 바쳐 뛰었습니다. 모든 은인 교우들과 동지들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지난 3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인천교구 시니어타운 마리스텔라에서 요양중인 김 신부는 이날 직접 참석해 미리 준비한 기도문을 무사히 낭독해 300여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정의구현사제단 ‘동지’이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낸 함세웅 신부가 축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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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함께 시작했던 함세웅(왼쪽) 신부가 김병상(오른쪽) 몬시뇰이 지켜보는 가운데 축사를 하고 있다. ‘김병상과 함께’ 제공

책에는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 찬 세상’(정신철 주교), ‘따뜻한 미소, 오랜 동행’(황상근 신부),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함세웅 신부), ‘아름다운 인연’(김일회 신부) 등 선후배 동료 사제들이 김 신부를 소개한 글이 담겼다. 이어 그의 구술·인터뷰·일기를 비롯해 지인들의 증언까지 생생한 기록을 바탕으로 현대사 한복판을 앞장서 헤쳐온 그의 일대기를 충실히 정리해 놓았다.

‘1932년 교우촌인 충남 공주 요골공소에서 태어난 김병상은 어머니로부터 순교자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막내아들이 사제가 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기도대로 1948년 용산 소신학교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 와중에 폐결핵에 걸려 53년 7월 신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병마에서 벗어나 61년 홍익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63년 서울가톨릭신학대에 다시 입학했다. 69년 12월 13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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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제와 교우들이 지난 15일 김병상 원로 사제가 요양중인 병원에서 ‘따뜻한 동행-헌정미사와 출판기념회’를 마련했다. ‘김병상과 함께’ 제공

조용히 신부의 길을 걷던 그는 1974년 유신독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지학순 주교가 구속된 사건을 계기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창립되자 창립 회원으로 참여했다. 이때부터 김 신부는 천주교 인천교구의 민주화 상징이 됐다. 77년에는 유신헌법 철폐 기도회 사건으로 옥고도 치렀고, 76년~80년 인천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대책위원장을 맡았다. 김 신부는 특히 1989년~95년 정의구현사제단 공동대표와 더불어 같은 기간 인천지역에서 양심적인 지식인 40여명과 함께 창립한 ‘목요회’의 초대 회장을 맡아 인천시민운동의 모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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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한 동행-헌정미사와 출판기념회’를 마치고 김병상 원로신부와 수녀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병상과 함께’

그는 2003년 8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몬시뇰에 임명되었으며, 학교법인 인천가톨릭학원 이사장 대리를 끝으로 사목 일선에서 물러났다. 은퇴 이후에도 2008년~13년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으로 교회 안팎의 현장에서 기도와 활동을 해왔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2018-12-17> 한겨레 

☞기사원문: “사제로서 최선의 삶을 살도록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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