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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신일철주금 강제징용 대법 판결 이후, 실제 배상까지 ‘갈 길 머네’

2019년 1월 11일 1219

대법원이 전범기업 신일철주금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각 1억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지난해 10월 확정 판결을 내린 이후 전범기업 측이 배상을 이행하지 않음에 따라 실효성 있는 후속 절차가 무엇인지 궁금증이 모아진다. 9일 민족문제연구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등 주관으로 국회에서 열린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전문가 정책토론회’에서 피해자들의 소송대리를 맡은 임재성 변호사는 실제 배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후속 절차에 대해 설명했다. 임 변호사 등 소송대리인들은 신일철주금의 한국소송대리인인 김앤장 소속 변호사에게 대법 판결이 내려진 이후인 지난해 11월 초 협의 요청, 면담 요청 등을 전달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이후 한 달 뒤 다시 접촉을 시도했으나, “할 말이 없다”는 답변만을 받았다고 전했다. 다만 협의 요청서는 전달됐다. 당시 협의 요청서에는 ‘이 사건 판결에 따른 손해배상의무 이행 방법’, ‘배상금 전달식을 포함한 피해자들의 권리회복을 위한 후속조치’ 등의 안건이 담겼다. 그러나 또다시 아무런 협의의사를 확인할 수 없었고, 이에 소송대리인단은 지난해 12월 31일 신인철주금이 소유한 PNR의 주식 중 원고 이춘식씨, 망 여운택씨의 소송수계인들의 채권액에 상당하는 주식 4억 여원에 대해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에 압류를 신청했다. 법원은 지난 3일 압류 신청을 승인하고 PNR 측에 서류를 보냈다. 이후 송달이 되면 압류 효력이 발생해 팔거나 양도할 수 없게 된다. 이후 토론회가 열린 이날 9일 PNR 측에 송달이 완료돼 압류 효력이 발생한 것으로 일본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친일 음악인 작곡한 학교 교가 논란…“변경 검토 필요”

2019년 1월 11일 2379

친일인명 사전 수록자 4명이 만든 교가 9곳 학교 사용 광주시, 친일 잔재 조사 결과 및 활용방안 제시 용역 3·1운동 100돌이 되는 해를 맞아 친일 음악인들이 만든 교가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친일 반민족 행위자가 작곡한 교가를 변경하는 작업은 일제 잔존 역사를 청산하는 첫걸음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10일 광주시가 광주교대 산학협력단에서 받은 ‘광주 친일잔재 조사 결과와 활용방안’ 용역 최종 보고서를 보면, 광주 지역의 중·고교와 대학 9곳에서 친일 인명사전에 수록된 현제명·이흥렬·김동진·김성태 등 친일 음악인 4명이 만든 교가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친일 인명사전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일제강점기에 민족 반역, 부일 협력 등 친일반민족행위를 자행한 4389명의 목록을 정리해 2009년 발간했다. 전남대와 숭일·중고는 현제명(1903~60)이 작곡한 교가를 사용하고 있다. 현제명은 대구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때 전시체제에 협조하기 위해 일본 국민음악 보급을 목표로 공연을 개최한 경성후생실내악단의 이사장을 지낸 인물이다. 광주제일고의 교가는 이흥렬(1909~1980)이 작곡했다. 이흥렬은 1944년 친일음악단체인 대화악단의 지휘자를 맡아 활동했다. 2002년 제주에선 이흥렬이 작곡한 ‘섬집 아기’라는 노래비를 건립하려다가 친일행적 때문에 무산된 바 있다. 김동진이 작곡한 교가를 부르는 학교는 호남대·서영대(중·고)·금호중앙(여자)중·고, 대동고, 동신(여자)중·고 등이다. 광덕중·고교 교가 작곡가는 친일음악인으로 등재된 김성태다. 친일 시설물은 없애지 말고 친일 행각을 알리는 ‘단죄비’를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교가 등 무형문화 잔재는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덕진 광주교대 교수는 “학생 항일운동의 상징인 광주제일고의 교가가 친일 인물이 작곡했다는

광주 친일 잔재물 ‘수두룩’…단죄비 설치 검토(종합)

2019년 1월 9일 1747

광주교대 산학협력단 친일 잔재 연구용역 결과 경찰·사법·교육 분야 친일 인사 150여명 발굴 건축물·교가 등 곳곳 산재 “단죄비, 교육 필요” 【광주=뉴시스】구길용 송창헌 기자 = 사법·경찰·교육 등 각 분야 친일인사 156명과 관련된 친일 잔재물이 광주지역 곳곳에 산재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석과 누정현판은 물론 일선 학교 교가에 까지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으며 이들 ‘친일 흔적’에 대해서는 단죄비 설치와 교육자료 활용 등이 추진된다. 광주시는 9일 본청 행복회의실에서 광주교대 산학협력단(대표 홍기대)이 주관한 ‘광주 친일 잔재 조사 결과 및 활용 방안 제시 용역’ 최종보고회를 가졌다. 이번 용역은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광주·전남 출신 친일인사 156명(광주 13, 전남 143)의 행적과 잔재물에 대해 체계적인 조사와 함께 향후 활용 방안을 찾기 위해 지난해 7월27일부터 150일간 진행됐다. 용역 결과 1876년 개항 이후 1945년 8월 해방 직후 사이에 만들어진 비석, 비각, 누정현판, 각급 학교 교가를 비롯해 군사·통치·산업시설 등에 친일 시설물이 광주 도심 곳곳에 산재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친일 인물은 크게 경찰·사법·관료·교육·음악 분야로 구분되는데 전남도 경찰부 경찰청장, 광주고법원장, 광주고검장, 전남도 관찰사, 도지사, 전남대 총장, 광주일고 교장, 유명 사찰 주지, 영화감독 등 상당수가 포함됐다. 학교 교가를 만든 일부 작사·작곡가들도 친일 인물로 분류됐다. C대, H대, S고, G여고, D고 교가가 대표적이다. 친일 잔재물로는 광주공원 사적비와 관찰사 윤웅렬 선정비, 관찰사 이근호 선정비, 행군수 홍후난유 구폐선정비, 원효사

법원, 강제징용 신일철주금 자산 압류신청 승인

2019년 1월 8일 925

신일철주금-포스코 합작사 PNR 주식 8만1천75주 (포항=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은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 변호인단이 신청한 신일철주금 한국 자산 압류신청을 승인했다고 8일 밝혔다. 포항지원 관계자는 “지난 3일 주식회사 PNR 주식 압류신청을 승인하고 회사 측에 관련 서류를 보내 절차를 밟고 있다”고 말했다. 압류명령결정은 PNR에 서류가 송달되는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 이에 따라 신일철주금은 변호인단이 신청한 PNR 주식 8만1천75주의 매매, 양도 등 처분할 권리를 잃는다. 다만 이 자체만으로 기업 운영에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PNR 측은 아직 관련 서류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5)씨 등을 대리한 변호인단은 대법원 확정판결에도 신일철주금이 손해배상을 하지 않자 지난달 31일 신일철주금의 한국 자산을 압류해달라며 법원에 강제집행을 신청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압류 절차에 들어간 신일철주금의 한국 내 자산은 포스코와 함께 설립한 합작회사 PNR이다. 이 회사는 경북 포항에 본사와 포항공장, 전남 광양에 광양공장을 둔 제철 부산물 자원화 전문기업이다. 변호인단은 신일철주금은 PNR 주식 234만여주(110억원 상당)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한다. 변호인단은 피해자 2명의 손해배상금과 지연손해금에 해당하는 8만1천75주에 압류를 신청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말 이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신일철주금이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은 공식 입장문을 통해 “신일철주금이 계속 피해자 측과 합의하지 않고 있어 압류된 주식에 대한 매각명령을 신청할 수밖에 없다”며 “신일철주금은 피해자 권리

[보도자료]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소송 판결의 압류결정에 대한 소송대리인·지원단 공식 입장

2019년 1월 8일 1389

[다운로드] [보도자료]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소송 판결의 압류결정에 대한 소송대리인·지원단 공식 입장 1. 신일철주금이 2018년 10월 30일 선고된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지 않음에 따라, 위 판결의 원고들(피해자들) 대리인은 2018년 12월 31일 신일철주금이 소유한 주식회사 피엔알 주식에 대한 압류 신청을 하였다. 2.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은 2019년 1월 3일 주식회사 피엔알 주식 81,075주(피해자 2명의 손해배상금 및 지연손해금 상당)에 대한 압류를 결정하였고, 법원 압류명령결정의 주식회사 피엔알에 대한 송달절차가 현재 진행중이다. 3. 압류명령결정은 주식회사 피엔알에 송달된 이후에 압류의 효력을 발생하게 된다. 압류가 효력을 발생하면 신일철주금은 신일철주금이 소유한 주식회사 피엔알 주식 중 81,075주에 대한 매매, 양도, 기타 일체의 처분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그 자체만으로 기업 운영에 장애가 발생하였거나 현실적인 피해가 발생한 것은 아니다. 4. 지난 압류신청서 제출 때에도 강조한 바 있지만, 피해자들은 통상적으로 압류명령 신청과 함께 이루어지는 매각명령 신청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 즉, 압류를 통한 자산보전은 이루어졌으나, 현금화 절차까지 나아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신일철주금과 협의할 여지를 남겨놓기 위해서였다. 5. 그러나 신일철주금이 계속 피해자 측과 협의하지 않고 있어, 피해자들의 대리인은 압류된 주식에 대한 매각명령을 신청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들의 대리인은 신일철주금에게 피해자들의 권리 구제를 위하여 신속히 협의에 나설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2019년 1월 8일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 김세은, 임재성(법무법인 해마루) 동 지원단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민족문제연구소

아베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결”… 강제징용 변호사 “아베가 말하는 ‘국제법’은 없다”

2019년 1월 8일 1560

피해자 변호인단 “강제징용 기업 한국 자산 압류해달라” 강제집행 신청 아베 주장하는 ‘국제법‘ 뭐냐 질문에… 법조계 “나도 물어보고 싶다” 법조계 “‘국제법 위반했다’ 국내외 향한 ‘여론전’… 그 이상 이하도 아냐”  [법률방송뉴스=유재광 앵커]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두고 일본이 범정부 차원에서 반발하고 있습니다. ‘LAW 인사이드’ 신새아 기자 나와 있습니다. 어제(6일) 아베 신조 총리가 뭐라고 입장을 밝힌 모양인데 어떤 내용인가요. [기자] 네. 아베 총리가 어제 NHK ‘일요토론’ 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받은 전범기업 신일본철주금의 한국 내 자산 압류 신청에 대해 “매우 유감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반도 출신 노동자’와 관련해서 압류를 향한 움직임은 매우 유감이다” “국제법에 근거해 의연한 대응을 취하기 위해 구체적 조치에 대한 검토를 관계부처에 지시했다”는 것이 아베 총리의 워딩입니다. 아베 총리는 그러면서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이 끝났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결”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앵커] 아베 총리가 “매우 유감이다”고 한 전범기업에 대한 자산 압류 신청, 어떤 내용인지 간략하게 설명해 주시죠. [기자] 네, 지난 연말 우리 강제징용 피해자들 변호인단이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에 일본 전범기업인 신일철주금이 포스코와 함께 설립한 합작회사 ‘PNR’의 한국 자산을 압류해달라며 강제집행을 신청했는데요. 관련해서 변호인단은 지난해 두 차례 신일철주금 본사를 직접 방문해 협의를 요청했지만 신일철주금 측이 면담조차 거부하며 모르쇠로 일관하자 이에 대한

문화재로 둔갑한 친일파의 집…세금 들여 보존

2019년 1월 7일 1834

[앵커] 3.1 운동 100주년 기획 보도, 오늘은 친일파가 살았던 집이 문화재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실상을 보도합니다. 문화재청이나 지자체는 유서 깊은 건물이라 보존할 가치가 있다면서, 친일파의 집이라는 사실조차 알리지 않고 있습니다. 홍성욱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서울시 민속문화재 22호. 하루 평균 5백여 명이 찾는 북촌 백인제 가옥입니다. 백병원 설립자 백인제 선생이 마지막 소유자라 해서 이름 붙여졌습니다. 그런데, 사실 집을 짓고 처음 거주한 사람은 을사오적 이완용의 외조카로 ‘창씨개명’에 앞장선 친일파 한상룡입니다. 하지만, 그의 친일 행적은 한 줄도 나오지 않습니다. 해설사도 설명을 꺼립니다. [백인제 / 가옥 해설사 : (친일 관련 역사)부각을 시킬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얘기는 했죠. (그건 해설사 선생님 생각이신가요? 서울시 입장인가요?) 약간 서울시가 그런 방향으로 가긴 하고요.] 서울시 민속문화재 12호, 윤웅렬 별장도 마찬가지. 남작 작위까지 받으며 친일에 앞장선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이 없습니다. 정부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천여 명과 관련된 잔재물은 전국 수백 곳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이렇게 문화재로 등록된 곳도 여러 곳입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친일 역사는 함께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강원도 문화재 66호 민성기 가옥. 경술국치의 주역 민영휘의 손자로, 할아버지 무덤을 관리하기 위해 지은 집이지만, 누구 무덤인지는 알리지 않습니다. 국가 민속문화재인 전북 부안의 김상만 고택. 친일파 김성수가 어린 시절을 보냈고, 심지어 김성수의 동상까지 설치했지만, 설명은 없고 그의 아들 이름을 붙였습니다. 친일의 흔적을

악명 높았던 친일파들이 전쟁 영웅으로…지워진 과거

2019년 1월 7일 1359

[앵커] 3.1 운동 100주년 기획 보도, 오늘은 세 번째 시간으로, 일제 강점기 악명 높았던 친일파들이 전쟁 영웅이나 교육자로 그려지고 있는 현실을 보도합니다. 시민단체들이 친일 행적을 바로 알리기 위한 단죄문 설치에 나서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지원은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홍성욱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1950년 12월, 이른바 ‘흥남 철수 작전’으로 피난민 10만 명을 남으로 옮긴 김백일 장군. 그의 공적을 기리는 동상입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독립군 토벌로 악명 높았던 간도특설대 일원이었던 과거는 감췄습니다. [류금열 / 거제개혁시민연대 대표 : 악랄했던 간도특설대의 대표적인 장교였습니다. 과거 전력, 즉 친일파 전력을 완전히 속인 채 있다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죠.] 전쟁영웅이나 교육자로 후세에 알려진 친일파와 관련된 기념물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일제강점기의 행적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부산 경남고에 세워진 초대 교장 안용백 동상도 마찬가지. 일제 찬양 글을 기고하고 강연까지 했지만, 당시 약력은 출생과 학력이 전부입니다. [부산 경남고등학교 학생 : (친일 행적에 대해서 학생들이 아나요?) 아니요. 그런 것은 잘 몰라요. 그냥 동상 세워져 있는 정도만…누가 말해주진 않고 아이들끼리만 알아요.] 서울 휘문고등학교에 세워진 민영휘의 동상 역시 친일 기록은 없지만, 친일파라는 것은 학생들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휘문고등학교 학생 : 그분(민영휘)의 업적이 좋든 나쁘든 간에 다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좋은 업적이고 나쁜 업적이고 모든 업적을 다 써주는 게 저는

“대장부 제 한몸 아끼랴”…피로 써 내려간 ‘분노’

2019년 1월 2일 1138

◀ 앵커 ▶ 나라를 빼앗기고 다시 찾기까지 30여 년. 그 막막하고 험난했던 세월 동안 독립지사들은 수많은 말과 글을 남겼는데요. 앞서 들으신 간절한 노래에서처럼 나라를 잃은 애통함과 분노, 그리고 다시 찾겠다는 강한 의지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번에는, 그 말과 글에 담긴 역사의 궤적을 김미희 기자가 따라가 봤습니다. ◀ 리포트 ▶ 1910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일본에게 주권을 넘긴 그날, 나라 잃은 치욕의 역사는 시작됐습니다. [강동민/민족문제연구소 자료팀장] “이완용과 데라우치 마사다케 (조선 통감부) 통감이었죠. 그 둘이 비밀리에 (1910년 8월 22일) 모임을 하고 일주일 후인 8월 29일날 공포가 되는데요.” 경술국치의 부당함에 항거하는 애국지사들의 죽음이 이어졌습니다. 황현 선생은 “망국의 날에 죽는 선비 한 명 없다면 그 또한 애통한 노릇 아니겠는가” 개탄했고, 홍범식 선생도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습니다. 항일투쟁도 본격화됐습니다.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 선생은 온 가족이 전 재산을 팔고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나섰습니다. 본가인 경북 안동의 임청각에는 고국을 떠나며 남긴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가문에서 독립운동가 10명이 배출되자 일제는 그 정기를 꺾을 목적으로 집을 관통하는 철로를 놓았고, 지금까지도 임청각은 반토막 난 모습 그대로입니다. [이항증/독립운동가 이상룡 선생 증손] “우리가 열심히 했으니까 다음 사람도 열심히 하면 언제든지 나라 찾는 건 찾을 수 있다.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나라를 잃는 것보다 더 무서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