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top-introduce[1]](/wp-content/uploads/2016/02/img-top-news1.png)
주요기사
한국인 강간실태 다룬 일본 ‘혐한 동영상’ 논란
한국인 강간실태 다룬 일본 ‘혐한 동영상’ 논란(스포츠서울, 09.10.07)
“한국인은 해부학상으로 봤을 때 야만인?”
“한국인은 해부학상으로 봤을 때 야만인?”(프레시안, 09.10.07)
민족일보 고 조용수 선생 묘소 참배 후기
경기동부지부 안길환 회원 모처럼 화창한 가을날씨에 경기동부지부 9월 정기모임으로 민족일보 조용수선생님 묘소참배를 위한 남한산성 검복리 주차장으로 가족과 같이 서둘러 도착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아주 가까운 곳에 그분의묘소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으며, 동생 되시는 조용준선생님께서 참석하신다니 역사 속의 인물과 마주한다는 마음이 들어 들뜨기까지 했습니다.일행이 모두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조용준선생님께서 재심결정이 내려지기까지 과정과 당시 민족일보 기획실장을 맡으시며 겪으셨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며, 위원장님께서 이번 모임의취지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김하욱위원장님, 서울북부지부 김일송님, 광복회 광주지회장 송재복님, 광복회 성남지회장 이용위님,류정일님, 문종현님 내외분, 정태경님, 저희 가족들 모두 조용준 선생님의 안내로 묘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얼마 걷지 않아 묘소에 도착하니 조용준선생님 사모님과 며느님께서 미리 오셔서 참배준비를 해 놓으셨습니다. 조용준선생님께서 큰절을 올리시기전에 “형님, 여기 여러 동지들께서 형님께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말씀하시는데 새삼 동지란 말의 의미가 가슴에 깊게 박혀왔습니다.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역사 속의 인물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숱하게 본 반공영화 속에서는 살벌한 느낌을 주던 동무, 동지란 표현이 원래는 좋은 의미를 지닌 것이었는 데 라는생각을 해 보았습니다.모두들 큰절을 올리고 나서 음복을 한 후, 잠시 묘소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32세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셔서 묘비에 약력조차 없는 것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후손이 사산했다는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더욱 아팠습니다. 1961년 일본에서 귀국하셔서 민족일보를 창간하시고, 5.16 이후 구속되어 그 해12월 사형을 당하신
당신은 국가에 충성할 수 있나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대표 최근 정부는 식민잔재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되어 온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수정하여 발표했다. 그러나 인권관련단체 등은 수정된 맹세문 역시 국가주의적 발상이라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인권재단 <사람>의 발행인 박래군님의 글을 <사람> 편집진의 허락을 받아 싣는다. <편집자 주> 국가주의의 저주 한국군이 파병된 아프가니스탄에서 23명의 한국인이 납치되었다. 나흘 뒤인 7월 24일 대한민국 국무회의는 새로운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담은 ‘대한민국 국기법 시행령’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그 국기법이 시행되는 첫날, 비정규직 대량해고에 항의하며 또 다시 매장점거에 들어갔던 뉴코아-이랜드 조합원들은 국가공권력에 의해 처참하게 끌려 나와야 했다. 이것이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과거의 국가폭력 행위자이자 인권침해의 가해자였던 국가는 인권옹호의 탈을 뒤집어쓰고 더욱 지능적인 폭력을, 더욱 교묘한 통제와 억압을 일삼고 있다. 이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고, 법과 제도에 스며들며, TV 드라마에서까지 활개를 치는 국가주의의 문제를 이번 월간 <사람>에서 다뤘다. 당신은 국가에 충성할 수 있나 누구를 위한 국익이고, 누구를 위한 동맹인가 국가보안법의 변신, 악플과 만나다 병역의무에 기초한 ‘국민 됨’을 다시 생각하자 TV 속으로 들어온 국정원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지난 7월 27일부터 시행된 ‘대한민국국기법 시행령’(대통령령 제20204호) 제4조에 규정된 ‘국기에 대한 맹세문’이다. 1970년대 학교를 다니면서 애국가와 국민교육헌장과 함께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열심히 외워야만 했던
[단독]日 ‘유튜브 외무성’ 구축…독도·동해 영유권 강화
[단독]日 ‘유튜브 외무성’ 구축…독도·동해 영유권 강화(경향신문, 09.10.06)
[캠퍼스에서]“독도 지키고 싶다면 논리를 세계 알려라”
[캠퍼스에서]“독도 지키고 싶다면 논리를 세계 알려라”(아시아경제, 09.10.06)
아물지 않은 ‘전쟁 상처’ 증언… 가해·피해 ‘역사 화해’ 나선다-경향신문(07.09.10)
아물지 않은 ‘전쟁 상처’ 증언… 가해·피해 ‘역사 화해’ 나선다 일본 관동군 출신인 이케다 고이치(85)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 중이다. 그는 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 러시아와의 전선에 투입됐다가 종전 후에도 귀국하지 못하고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강제노역을 했던 60만 일본군 전쟁 포로들 중 한 명이다.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모르는 전쟁 통에 ‘젊음’을 그렇게 흘려보낸 뒤 1948년 9월 조국에 돌아왔지만 패전국 일본에서 그는 ‘영웅’이 아니었다. 러시아 정부는 물론이고, 그가 사랑했던 조국마저 그를 외면하는데 대해 그저 망연할 뿐이었다.그는 “추운 시베리아에서 겪었던 고통보다 조국의 차가운 태도에 화가 나고 가슴이 더 아팠다”고 한다. 그는 “책임과 용서는 둘 중 하나라도 빠지면 의미가 없다. 일본 정부와 군수기업들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진다면 나는 그들을 용서하겠다”는 생각으로 1999년 일본 정부와 군수기업을 상대로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전쟁으로 인해 치러야 했던 노역과 피, 땀, 눈물을 보상해 달라”는 것이었다. 소송은 기각당했다.한국인의 입장에서 이케다는 침략국 일본의 가해자 중의 한 명이지만, 그 역시 일본 군국주의 안에서 희생된 피해자이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한국에 와서 자신의 체험을 증언한다. 서울에서 열리는 ‘제1회 세계 역사NGO대회’의 일환으로 마련된 ‘가해와 피해-피해자 증언대회’에서다. 15일 서울 정동 사랑의열매 회관에서 열리는 증언대회에는 이케다 외에도 강제징용돼 B·C급 전범이 된 조선인들 모임인 동진회 대표 이학래씨(82)와 한국인 원폭피해자협회 대표 곽귀훈씨(83)도 자신들의 전쟁 체험을 증언한다. 양미강 대회 운영위원장은 “피해자들의
국가기록원, 훼손된 국가 중요기록물 6천매 복원-헤럴드경제(07.09.10)
국가기록원, 훼손된 국가 중요기록물 6천매 복원 국가기록원은 지난 2004년부터 훼손된 국가 중요기록물 복원 작업을 실시한 결과 8월말(3년 8개월)까지 근대 건축설계도ㆍ토지조사부ㆍ형사판결문ㆍ일제강제연행자명부 등 국가 중요 기록물 총 66,347매를 복원했다고 10일 밝혔다.특히 국가기록원은 근대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서대문 형무소ㆍ대한의원(현 서울대학교병원 부설연구소)ㆍ서울시청사 등 현재 보유하고 있는 근대 건축물 설계도면 26,232매 중 75%(19,733매)를 복원 처리함으로써 향후 마이크로필름 촬영ㆍ디지털화 등을 통해 일반 및 학술열람에 제공할 방침이다.근대 건축설계 도면의 사료적 가치는 그당시 공사 과정과 재료 및 기술의 실제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건축 및 문화, 생활사적 측면에서 사료적 가치를 높이 평가 받고 있다.한국예술종합학교 우동선 건축과 교수는 “이번 복원기록물은 멸실된 건축물에 관한 도면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도면의 보존ㆍ복원처리 작업은 건축사 연구의 대상을 더욱 넓히고 연구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실제로 토지조사부의 경우 현재 토지소유권과 같은 재산관계 증빙자료로 열람 요청이 많은 기록물 가운데 하나다.또한 형사판결문(33권, 15,015매), 수형인명부, 제소자신분카드 등 독립운동 관련 기록물도 복원된 기록물을 바탕으로 숨겨져 있던 독립운동가 발굴하는 중요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고 있다.특히 일제 말기 강제로 연행된 한국인들이 등재되어 있는 일제강제연행자명부(544권 48만명)는 복원을 통해 일제강제징용진상규명위원회가 일제강점하의 피해자 진상 규명 등 진실을 밝히는데 실질적인 근거자료로 활용하고 있다.국가기록원은 앞으로도 기록물 보존ㆍ복원처리 전문기관으로서 훼손되어 멸실의 위기에 처한 국가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중요기록물에 대해 지속적인 수선ㆍ복원 작업을 실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안중근 이야기 뮤지컬 ‘영웅’, 관객들 기대감 고조
안중근 이야기 뮤지컬 ‘영웅’, 관객들 기대감 고조(노컷뉴스, 09.10.04)
남산, 제국주의 통치 타운이 되다
제국주의 통치 타운이 되다 [2009.10.09 제780호] [기획연재- 돌아온 산, 남산]1부 2회 일제시대 남산 ①… 통감부·헌병대사령부 등 탄압기구와 조선신궁·신사 입주한 식민지배 상징으로 탈바꿈 조선의 500년 도읍 한양의 남쪽 수호산인 남산이 왜색으로 오염되기 시작한 것은 1880년대 중반부터다. 임오군란(1882)과 갑신정변(1884)으로 정국이 요동친 뒤 1885년 지금의 예장동(藝場洞) 일대에 일본인 거류지가 형성됐다. 본디 남산 주자동 막바지에 있던 평평한 넓은 잔디밭은 영문(營門) 군졸들이 기예를 연마하던 곳이었고, 단오절이 되면 청소년패가 씨름을 겨누던 곳이다. 그러기에 예장(藝場)이었다. ≫ 1929년 조선총독부는 서울 경복궁 안마당에서 조선박람회를 개최해 조선왕조를 우롱하며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당시 조선 8도에서 모여든 박람회 관광객에게 개화한 경성의 근대상을 보여주며 자연스레 자신들의 지배를 합리화한 것이다. 박람회 당시 제작된 일종의 관광 가이드인 이 지도에는 행사가 열린 경복궁 일대와 남산의 조선신궁은 강조돼 자세히 그려진 반면,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목숨을 잃은 서대문형무소는 나와 있지조차 않다. 사진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군대 머물던 터 다시 찾은 일본 그런데 임진왜란 중에 일본군 부대가 지금 조선호텔 자리인 남별궁에 지원부를 마련하고, 예장동에 일본군 1500여 명이 진을 치고 왜성을 쌓아 1년간 이곳에 주둔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이곳을 ‘왜장터’로 불렀다. 그로부터 300년이 지난 뒤 제국주의 침략자로 들어온 일본인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정한론의 선구자로 기리며 이곳을 자신들의 성역처럼 여겨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남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