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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 좌파 독립운동가 2명 진실규명-프레시안(07.05.16)
진실화해위, 좌파 독립운동가 2명 진실규명 ‘신간회 평북철산지회’와 ‘여수수산학교 독립운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 진실화해위)는 15일 열린 전원위원회를 통해 ‘정상윤의 신간회 평북철산지회 결성 활동’과 ‘박창래 여수수산학교 학생독립운동’의 진상을 규명했다고 16일 밝혔다. 정상윤(1905년 생)과 박창래(1914년 생)의 유족들은 “좌익 활동으로 인해 독립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진실규명 신청을 했었는데, 진실화해위가 비로소 이 두 인물의 항일독립운동을 인정한 것이다. “좌익이라고 독립운동 안 한 것 아닌데” 정상윤의 신간회 평북철산회 결성 활동에 대해 진실화해위는 “문헌자료 조사와 신청인 및 참고인 진술을 통한 조사 결과, 신간회 철산지회 사건을 다룬 당시 신문 등을 통해 명치대학교 3학년 생이던 정상윤이 1928년 8월 19일 신간회 철산지회 설립대회에서 개회사를 낭독했으며 회원들과 함께 집행부를 구성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정상윤은 또 같은 해 8월 ‘일제의 착취와 억압에 항거해 민족의 대동단결을 천명하고 자주독립의 숨은 의지를 불어넣자’는 내용으로 된 ‘신간회 철산지부 설립취지서’ 200여 매를 배포하려다 체포돼 1930년 경성고등법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날 때까지 약 1년 8개월간 옥고를 치른 사실도 확인됐다. 이밖에 1976년 발행된 ‘철산군지’에는 정상윤이 출옥 후 반제동맹사건에 연루됐으나 무혐의로 석방된 것으로 나와 있고 ,평북 철산에서 문맹퇴치와 민족사상 고취를 위해 야학 등 청년 활동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창래는 여수공립 수산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30년 학생독립운동 비밀결사 조직인 독서회 활동을 하다 회원 21명과 함께 퇴학 처분과
‘태평양전쟁 유족회’, 군인.군속 재판 상고키로
‘태평양전쟁 유족회’, 군인.군속 재판 상고키로(연합뉴스, 09.11.23)
대학·공공기관, 진보성향 행사 잇단 불허
대학·공공기관, 진보성향 행사 잇단 불허(경향신문, 09.11.24)
한 총리, 아베 야스쿠니 공물 봉납 유감 표명-연합뉴스(07.05.17)
한 총리, 아베 야스쿠니 공물 봉납 유감 표명 (도쿄=연합뉴스) 이홍기 특파원 = 한덕수 총리는 1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공물 봉납에 대해 “총리라는 공식 직함으로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올바른 역사인식의 확립에 보탬이 되지않는다”며 유감을 표명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17일 보도했다.한 총리는 이날 한국을 방문한 일본 언론사 외신부장단과의 회견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그러나 한.일 양국의 긴밀한 경제.사회 교류에 영향을 주지않도록 양국이 노력하고 있으며, 실제로 별 영향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한 총리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일본 방문 가능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여건이 갖춰졌다고는 보기 힘들다”며 임기중에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했다.그는 지난 1998년 당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김대중 대통령과의 ‘한일 파트너십 선언’에서 ‘통절한 반성과 사과’를 표명했던 점을 예로 들면서 “당시의 분위기와 현재가 같은 지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일본 지도자들의 역사인식 문제를 지적했다.또 일본과 중단된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는 일본이 농업 분야에서 시장 개방을 확대하지않는 한 협상 재개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한 총리는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해서는 “핵포기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지금이 최고다”면서 해결을 낙관했다. 그러나 북한이 핵 포기에 응하지않을 경우 일본과 대만이 핵무장에 나설 가능성도 있음을 지적했다.그는 북한이 6자회담에서 합의한 초기단계 조치의 이행이 미국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대한 금융제재로 지연되고 있는 점에 관해서는 “단순한 기술적인 문제로, 어떤 국가의 의사로 곤란에 직면해 있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한 총리, 아베 야스쿠니 공물 봉납 유감 표명-연합뉴스(07.05.17)
한 총리, 아베 야스쿠니 공물 봉납 유감 표명 (도쿄=연합뉴스) 이홍기 특파원 = 한덕수 총리는 1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공물 봉납에 대해 “총리라는 공식 직함으로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올바른 역사인식의 확립에 보탬이 되지않는다”며 유감을 표명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17일 보도했다.한 총리는 이날 한국을 방문한 일본 언론사 외신부장단과의 회견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그러나 한.일 양국의 긴밀한 경제.사회 교류에 영향을 주지않도록 양국이 노력하고 있으며, 실제로 별 영향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한 총리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일본 방문 가능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여건이 갖춰졌다고는 보기 힘들다”며 임기중에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했다.그는 지난 1998년 당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김대중 대통령과의 ‘한일 파트너십 선언’에서 ‘통절한 반성과 사과’를 표명했던 점을 예로 들면서 “당시의 분위기와 현재가 같은 지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일본 지도자들의 역사인식 문제를 지적했다.또 일본과 중단된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는 일본이 농업 분야에서 시장 개방을 확대하지않는 한 협상 재개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한 총리는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해서는 “핵포기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지금이 최고다”면서 해결을 낙관했다. 그러나 북한이 핵 포기에 응하지않을 경우 일본과 대만이 핵무장에 나설 가능성도 있음을 지적했다.그는 북한이 6자회담에서 합의한 초기단계 조치의 이행이 미국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대한 금융제재로 지연되고 있는 점에 관해서는 “단순한 기술적인 문제로, 어떤 국가의 의사로 곤란에 직면해 있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 책은‘고발’이 아닌 ‘교훈’이다
최재천·변호사 ㆍ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의 문제를 대할 때마다 나 역시 두려움에 떨며 ‘내가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살았다면 독립운동에 참여했을까 일제의 주구가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고백컨대 자신이 없다.“일제 말 때 27세의 젊은 나이로 하동군수를 지내면서 저 자신의 출세와 보신에 눈이 어두워 (군민들을) 죽창으로 위협까지 했던 저를 너그럽고 따뜻하게 맞아주신 하동 군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원로 법학자 이항녕 교수는 1991년 7월 바르게살기운동 하동군협의회 초청 강연회에서 또다시 머리를 숙이고 용서를 빌었다. 이 교수의 친일 반성문은 이미 1970년대 중등 교과서에 실려 있던 터였다.일제 치하에서 당시 국민학교 교사로 일했던 김남식 선생이 있다. 광복 이후부터 지금까지 선생은 “왜정 때 학생들에게 일본말 쓰기를 시킨 것에 대해 벌을 받는 의미”로 하루도 빠짐없이 동대문구 주변의 쓰레기를 주웠다.충남 광공부장으로 일한 현석호 선생의 회고록이다.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 대열에 참여하지 못하고, 자신의 안일과 출세를 위해 힘쓴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해방과 독립이 일본의 패망과 미국의 승리에 기인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궁극적 원인이 조선 민족의 독립을 위해 3·1운동을 비롯한 국내외의 투쟁에서 뼈를 갈고 피를 뿌린 수많은 순국선열의 공로라는 것을 생각할 때 나 같은 사람은 참으로 죄스럽고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광복 후 대검차장을 지낸 엄상섭 등 8명의 검사는 1948년 8월 “왜제하(倭制下)의 검사, 즉 고관(高官)을 지냈다는 것만은 한없이 후회되는 일입니다. 왜제통치(倭制統治)에 협력을 하였다는 것만은 아무리 사과를 하여도 모자랄 것입니다”라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
아래 글은 다산연구소(이사장 박석무) 누리집(www.edasan.org) 다산포럼에 실린 글이다. <엮은이 주> 김정남·언론인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가 쓴 산문 가운데 미당(未堂) 서정주와 얽힌 사연이 나온다. 문학지의 주간으로 있던 조정래는 1985년 8월호에서 광복 40주년 기념특집으로 친일문인 문제를 다루기로 했다. 친일문인들 가운데 그 누구도 진정한 반성이나 사죄를 한 바 없었으므로, 차제에 사죄를 하게 하자는 것이 그 특집의 큰 방향이었다. 생존해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할 수 있도록 지면을 제공키로 한 것이다. 생존자 중에서 문학적 비중으로 보아 첫 번째로 꼽히는 사람이 서정주였다. 서정주는 대학시절 조정래의 선생님이었고, 그의 아내를 시인으로 등단시킨 스승이었으며, 그들 결혼식의 주례였다. 조정래는 아내와 상의 끝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서정주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선생님께서 글의 마지막에 잘못했다고 한 마디만 하시면 선생님은 자유로워지십니다.” 조정래가 조심조심 꺼낸 말이었다. “뭐라고! 넌 대학생 때부터 반골기질이 승하더니만…. 그래 들어봐라.” 안색이 변한 서정주는 두 시간이 넘도록 장광설을 폈다. 그러나 결국 서정주는 글쓰기를 거부했다. 서정주는 끝내 자신의 친일행각에 대하여 사과하지 않은 것이다. 죽음을 얼마 앞두고 어느 텔레비젼 방송국 기자가 마이크를 대며 물었다. 친일에 대해 말해 달라고. “거 뭐 잘들 봐달라고 해!” 초췌한 서정주의 대꾸였다. 조정래는 그 화면을 보면서 가슴이 쓰라렸다. 그의 선생님은 마지막 기회마저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미당은 그야말로 미당인 채로 이 세상을 떠났다. 있었던 사실을 있었던 대로 밝히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법의 의미와 전망
김은식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사무국장 2005년 8월 한일협정 외교문서 256권이 전면 공개된 후 한국정부는 민관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지원방안에 대해 시민사회의 여론을 수렴하였고, 최종 2006년 3월 8일 국무총리 주재로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지원대책을 논의하였으며, 3월 16일 「일제강점하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지원법률안’이라 한다)을 입법예고 하였다. 이 법률안의 취지는 「일제의 강제동원과 관련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일본의 법적 책임을 충분히 규명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 해결과 경제협력에관한 협정이 체결(1965. 6. 22. 체결, 1965. 12. 18. 발효)된 이후 1975년에 실시된 정부보상에서 일제강점하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와 그 유족 등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충분하지 못하였음을 감안하여 국가가인도적 차원에서 이들의 오랜 고통을 위로하고 국민화합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위로금 등을 지급하려는것」을 제안취지로 하고 있다. 이 법률안은 금년 4월 25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심의를 거쳐 기존 법률안의 일부를 수정하여 통과됨으로써 법률안 제정의 가장 큰 고비를 넘겼다고 볼 수 있다. 이 법률안은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되어 있으며, 6월 국회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고 있다. 행정자치위원회에서 수정의결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족의 범위는 당초 정부안에서는 강제동원희생자 또는 미수금피해자의 배우자 및 자녀, 부모, 형제자매로 정하고 있었으나, 손자녀까지 범위를 확대했다. 둘째, 지원내역에서 강제동원기간 중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경우의 유족에 대해서는 1인당 2000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하고 부상으로 장해를 입은 강제동원희생자 또는 그 유족에 대해서는 장해 정도에 따라 1인당
[야스쿠니 캠페인] 한-일 협정… 숨이 턱턱 막힌다
한겨레21 길윤형 기자 정확히 2년 전이다. 2005년 5월4일 대한민국 국회는 일본 정부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흥미로운 결의안을 채택해 통과시켰다. 결의안의 이름은 ‘야스쿠니신사의 한국인 합사 취하 및 일본 각료 등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중단 촉구 결의안’이다. 김원웅 열린우리당 의원(현재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 등 79명의 서명을 받아 2004년 12월7일 발의됐다. 그 뒤로 많은 일이 있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계속했고, 도쿄 지방재판소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합사 취하’를 요구한 한국 유족들의 소를 기각했다. 김원웅 위원장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미국 하원의 결의안 채택 움직임에 일본 정부가 벌벌 떠는 모습을 보며 착잡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야스쿠니신사 문제 해결은 미래 협력적 한-일 관계가 가능한지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라고 강조했다. 정교분리란 “하기 싫다”는 말 2005년 결의안 이후 2년이 지났다.=그 무렵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2001년 취임 이후 계속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문제가 논란이 됐다. 국회에서는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를 “일본이 침략 전쟁에 대한 반성 없이 전후 세대들에게 왜곡된 역사관을 심어주기 위한 행동”으로 이해했다. 또 야스쿠니신사에 강제 합사된 조선인이 2만1천여 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줬다. 결의안은 일본 총리와 각료들에게는 참배를 중단해줄 것을, 정부 쪽에는 조선인 합사 취하에 적극 나서줄 것을 각각 촉구했다. 조선인들을 야스쿠니신사에 합사한 것은 조선인에게 신사참배와 궁성요배를 강요하고, 참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고문하고 투옥했던
驚弓之鳥(경궁지조)의 해괴함 全언론인을 모독말라
청주기별 김제영 논설위원·소설가 ..이승만은 반민특위를 해체시킬 때도 죽산(竹山) 조봉암의 사형을 끌어낼 때도 반공 청년들(서북청년)을 동원했다. 자신의 위헌적 부당성을 국민의 뜻 즉 민의로 포장하기 위해서였다. 당해 동아일보 사설은 간악한 이승만의 책략을 고스란히 차용했다. 임헌영을 간판으로 내세워 빨갱이들이 사회를 분열시키고 어쩌고 하며 친일인명사전을 무용지물화 하려는 계략이 접시바닥처럼 환히 들여다보인다. 하지만 착각하지마라.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위한 국민 헌금이 순식간에 수억대로 쌓였다지 않은가. 임헌영이 그리도 만만한가. 학자의 생명은 학문의 신뢰에서 오는 명예이다. 정치검사의 허무맹랑한 공소만으로 사실여부의 확인도 없이 멋대로 간첩 운운하여..<기사 발췌> 驚弓之鳥(경궁지조)의 해괴함 全 언론인을 모독하지 말라(청주기별, 09.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