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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국가유공자 보훈정책-내일신문(07.08.09)
외국의 국가유공자 보훈정책 프랑스, 반민족 행위자 아직도 처벌유공자는 최고의 예우외국의 경우도 2차세계대전의 와중에 반민족행위자와 독립운동자가의 행위가 분명히 갈라진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애국과 매국의 기준과 원칙을 명확히 하고 처벌과 예우는 하늘과 땅차이다.◆유럽, 반민족행위자 엄격한 처벌 = 1944년 독일을 몰아낸 프랑스는 ‘고등법원’을 설치하고 비쉬정권의 수상 페탱 원수와 라발 전 총리를 필두로 친독 고위 관료들에 대한 재판을 실시했다. 프랑스는 레지스탕스에 대한 밀고 등 대독 협력행위와 부역행위가 드러나면 주저 없이 처벌했다. 드골 임시정부는 같은 해 ‘부역자재판소’와 ‘공민권 박탈’ 형을 부과할 목적으로 ‘공민재판소’를 설치했다.이 재판 결과 약 5만여명이 ‘비국민’ 인사로 규정돼 공민권을 박탈당했다. 이들의 공직사회 진출도 금지됐다. 프랑스는 아직도 부역자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부역 문인들에게는 작품 발표금지령을 내렸다. 친독 언론들도 폐간하고 레지스탕스 언론이 프랑스 국민들에게 다가갔다. 드골은 “자랑스럽지 않은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다”라고 역설하기도 했다.다른 유럽국가도 부역자 처리에 대해서 엄격했다. 벨기에,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는 종전뒤 5만여명의 부역자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독일에 대한 부역행위로 구속된 사람의 비율은 프랑스가 10만명 당 94명, 벨기에 596명, 네덜란드 419명, 노르웨이 638명이다.조세율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독립유공자 포상에 앞서 반민족행위자를 처단해야 된다”며 “우리는 그 과정을 철저히 거치지 못했다”고 말했다.◆국가유공자는 국민적 영웅으로 대우 = 프랑스는 국방부 향군성과 재향군인·전쟁피해자 사무국이 보훈 정책을 전담해 연간 약 63조원의 예산으로 유공자 450만명에게 보훈혜택을 실시하고 있다.미국의 보훈부 예산은
외국의 국가유공자 보훈정책-내일신문(07.08.09)
외국의 국가유공자 보훈정책 프랑스, 반민족 행위자 아직도 처벌유공자는 최고의 예우외국의 경우도 2차세계대전의 와중에 반민족행위자와 독립운동자가의 행위가 분명히 갈라진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애국과 매국의 기준과 원칙을 명확히 하고 처벌과 예우는 하늘과 땅차이다.◆유럽, 반민족행위자 엄격한 처벌 = 1944년 독일을 몰아낸 프랑스는 ‘고등법원’을 설치하고 비쉬정권의 수상 페탱 원수와 라발 전 총리를 필두로 친독 고위 관료들에 대한 재판을 실시했다. 프랑스는 레지스탕스에 대한 밀고 등 대독 협력행위와 부역행위가 드러나면 주저 없이 처벌했다. 드골 임시정부는 같은 해 ‘부역자재판소’와 ‘공민권 박탈’ 형을 부과할 목적으로 ‘공민재판소’를 설치했다.이 재판 결과 약 5만여명이 ‘비국민’ 인사로 규정돼 공민권을 박탈당했다. 이들의 공직사회 진출도 금지됐다. 프랑스는 아직도 부역자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부역 문인들에게는 작품 발표금지령을 내렸다. 친독 언론들도 폐간하고 레지스탕스 언론이 프랑스 국민들에게 다가갔다. 드골은 “자랑스럽지 않은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다”라고 역설하기도 했다.다른 유럽국가도 부역자 처리에 대해서 엄격했다. 벨기에,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는 종전뒤 5만여명의 부역자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독일에 대한 부역행위로 구속된 사람의 비율은 프랑스가 10만명 당 94명, 벨기에 596명, 네덜란드 419명, 노르웨이 638명이다.조세율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독립유공자 포상에 앞서 반민족행위자를 처단해야 된다”며 “우리는 그 과정을 철저히 거치지 못했다”고 말했다.◆국가유공자는 국민적 영웅으로 대우 = 프랑스는 국방부 향군성과 재향군인·전쟁피해자 사무국이 보훈 정책을 전담해 연간 약 63조원의 예산으로 유공자 450만명에게 보훈혜택을 실시하고 있다.미국의 보훈부 예산은
[國恥百年] ⑤ 용서받지 못할 매국노들
총독부 은사금 76명이 900억…致富발판 전국 땅 사재기 박한용 연구실장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이들은 조선총독부의 은사금과 조선 귀족의 작위를 받았다. 대부분 조선총독부의 최고 자문기구인 중추원의 찬의·부찬의로 참여했다. 그러나 이들이 어떤 논리로 일본의 병탄을 미화하든 백성은 일본의 노예가 됐다. 조선 백성은 망국의 대가로 모든 것을 빼앗겼지만 이들은 매국의 대가로 돈과 명예, 권력을 한꺼번에 거머쥐었다. ‘매국이 출세의 기회가 된 것’, 이것만이 그들의 진..<기사 발췌> [國恥百年] ⑤ 용서받지 못할 매국노들(매일신문, 10.01.25)
김영일 광복회장
<인터뷰> 김영일 광복회장(연합뉴스, 10.01.25)
[커버스토리]소안도 항일운동사, 전설에서 역사로-뉴스메이커(07.08.14)
[커버스토리]소안도 항일운동사, 전설에서 역사로 ‘좌익계열’ 이유로 핍박받아… 지워진 기억 되살리는 후손들 1909년 1월 어느 밤, 소안도 남쪽의 작은 섬 당사도에 장정 다섯이 탄 배가 닿았다. 당사도엔 개항을 요구하던 일제가 상선의 항해를 위해 설치한 등대가 있었다. 배에서 내린 장정들은 가파른 절벽을 기어올라 일본인 등대원 넷을 죽이고 시체는 바다에 던졌다. 이른바 ‘당사도 등대원 살해사건’이다.소안도. 일제강점기 36년간 섬 주민이 투옥된 기간을 합하면 300년이 넘을 정도로 독립운동의 정신이 드높은 곳이다. 현재까지 20명이 독립유공자로 서훈됐다. 소안면(소안도)이 일제강점기 당시 가장 작은 군이던 완도군에서도 가장 작은 면이었음을 생각한다면 놀라운 일이다.등대원 살해사건은 불꽃처럼 타오른 소안도 항일운동의 강렬한 예고편이었다. 장정들은 소안인 출신 동학군 이준화와 해남의 의병들이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 김명석 부회장(60)은 “1894년, 동학의 접주 나성대가 소안도에 동학군을 이끌고 와 훈련을 했다”며 “훗날 불붙은 소안도 항일운동의 바탕에는 동학혁명군의 정신이 깔려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등대원을 죽인 후 등대 램프를 부숴버리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끝내 안 깨졌답디다. 독일제라 그런지 꿈쩍도 안 했대요. 결국 바다에 던졌는데 일제가 잠수부까지 파견해서 램프를 찾아다녔지만 결국은 못 찾았다네요.”(황영우·55) 예순을 바라보는 후손은 조부모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마치 직접 겪은 일처럼 들려줬다.섬주민 투옥기간 합하면 300년등대원 살해사건이 예고편이었다면, 소안도 항일운동의 ‘본사’는 토지반환소송에서 시작한다. 1905년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상당수 토지의 소유권을 친일파나 동양척식주식회사, 일본이민자 등에게 넘겼다. 수백만의 조선 농민은 소작농으로 전락했다.당시 소안도 주민들도 소작농이 될
-연합뉴스(07.08.13)
<학교현장에 아직도 남아있는 日帝 잔재> 액자 속 태극기ㆍ거수경례ㆍ두발검사ㆍ아침조회 등 “모두 일제 잔재라는 건 어불성설” 의견도(서울=연합뉴스) 박상돈 기자 = 교실 앞 벽에 걸린 액자 속 태극기, 교장 선생님 훈화를 듣는 아침조회, 머리털을 ‘빡빡’ 깎는 두발검사, 학생들의 군대식 거수경례, 선생님께 구령 붙여 인사하기, 수학여행과 운동회’13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 현장에 아직도 전통이라는 이유 등으로 학생과 교사, 학부모 및 교육당국조차 별다른 문제 의식 없이 하고 있는 통제와 규율 중심의 학사행정이 일제 잔재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그동안 민족 정기를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국민학교’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꾸는 등 변화도 있었지만 아직 충분치 못해 이제 검증을 통해 받아들일 것은 수용하고 청산할 것은 깨끗이 털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황국 신민의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던 일제 교육이 아니라 민주화ㆍ국제화시대에 발맞춰 학생 개인의 능력과 인성을 중요시하고 다양성을 소중히 여기는 교육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다.우선 거수경례만 하더라도 오랜 역사를 지닌 사학을 중심으로 일부 학교에서는 아직도 입학ㆍ졸업식 등 각종 학교 행사에서 네모 반듯하게 도열한 학생들이 힘찬 구호와 함께 거수경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하지만 이런 모습은 제복 입은 교사들이 긴 칼을 옆에 차고 학생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을 부르짖던 일제시대의 잔재로 1970년대 군사정부시절 반공 구호 속에 집단의식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수용됐다는 비판이 있다.지난해 한 경찰 최고위 간부는 자신이 제복을 입고 수십년간 거수경례를 해왔지만 모교를 방문했을 때 까마득하게
-연합뉴스(07.08.09)
<전쟁의 이중 희생양 조선인 전범>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전범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교수형에 처해진 일본인은 7명이다.BㆍC급 전범은 아시아 전역에서 2만5천여 명이 용의자로 체포됐으며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5천700명, 그중 948명이 사형에 처해졌다.대부분은 일본인이지만 BㆍC급 전범 가운데는 조선인 148명이 포함돼 있었으며 이 중 23명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정말 ‘일제의 앞잡이’였을까?우쓰미 아이코 일본평화학회장이 펴낸 ‘조선인 BㆍC급 전범, 해방되지 못한 영혼(동아시아 번역ㆍ출간)’은 이중 희생양이 된 조선인 전범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저자는 “조선인 전범 가운데 군인은 필리핀 포로수용소장이던 홍사익 중장과 지원병 두 명 등 단 3명 뿐이었다”고 말한다.나머지 145명 가운데 16명은 통역으로 징용됐으며 129명은 타이, 자바, 말레이 등 동남아 지역 포로수용소에서 감시원으로 모집된 군속이었다. 오늘날 군무원에 해당하는 군속은 당시 이등병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저자는 군마나 군견보다 못한 존재였던 그들이 전범이 된 까닭을 파헤쳤다.조선인 감시원은 날마다 연합군 포로와 접하고 살았다. 일본군 사령부가 내린 포로 학대 명령을 직접 실행한 것은 조선인 감시원의 몫이었다. 자연히 종전 후 연합군 포로의 분노가 그들에게 집중됐다.일본 군부가 포로 학대의 책임을 조선인 감시원에게 돌린 것도 한 이유였다.1945년 9월17일 시행된 ‘포로 취급과 관련 연합국 측의 심문에 대한 응답 요령 등에 관한 지시’는 당시 육군대신 시모무라 사다무가 하달한 문서로 ‘시모무라 문서’라 불린다.시모무라는 연합국이 포로 학대를 중요한 전쟁범죄로 여긴다는 것을 알고 연합국 측 신문에 ‘포로 학대의 원인은
-연합뉴스(07.08.13)
<학교현장에 아직도 남아있는 日帝 잔재> 액자 속 태극기ㆍ거수경례ㆍ두발검사ㆍ아침조회 등 “모두 일제 잔재라는 건 어불성설” 의견도(서울=연합뉴스) 박상돈 기자 = 교실 앞 벽에 걸린 액자 속 태극기, 교장 선생님 훈화를 듣는 아침조회, 머리털을 ‘빡빡’ 깎는 두발검사, 학생들의 군대식 거수경례, 선생님께 구령 붙여 인사하기, 수학여행과 운동회’13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 현장에 아직도 전통이라는 이유 등으로 학생과 교사, 학부모 및 교육당국조차 별다른 문제 의식 없이 하고 있는 통제와 규율 중심의 학사행정이 일제 잔재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그동안 민족 정기를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국민학교’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꾸는 등 변화도 있었지만 아직 충분치 못해 이제 검증을 통해 받아들일 것은 수용하고 청산할 것은 깨끗이 털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황국 신민의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던 일제 교육이 아니라 민주화ㆍ국제화시대에 발맞춰 학생 개인의 능력과 인성을 중요시하고 다양성을 소중히 여기는 교육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다.우선 거수경례만 하더라도 오랜 역사를 지닌 사학을 중심으로 일부 학교에서는 아직도 입학ㆍ졸업식 등 각종 학교 행사에서 네모 반듯하게 도열한 학생들이 힘찬 구호와 함께 거수경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하지만 이런 모습은 제복 입은 교사들이 긴 칼을 옆에 차고 학생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을 부르짖던 일제시대의 잔재로 1970년대 군사정부시절 반공 구호 속에 집단의식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수용됐다는 비판이 있다.지난해 한 경찰 최고위 간부는 자신이 제복을 입고 수십년간 거수경례를 해왔지만 모교를 방문했을 때 까마득하게
[한·일 100년 대기획] 민족종교, 항일독립운동 구심점
[한·일 100년 대기획] 민족종교, 항일독립운동 구심점(서울신문, 10.01.20)
광복회 “역사박물관 철회때까지 장외투쟁”
광복회 “역사박물관 철회때까지 장외투쟁”(연합뉴스, 10.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