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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사할린 소송’, 한일협정에도 영향 줄까

2010년 3월 22일 461

‘사할린 소송’, 한일협정에도 영향 줄까(연합뉴스, 10.03.22)

‘일제 강제동원’ 피해규명ㆍ지원 정부기관 단일화

2010년 3월 22일 433

‘일제 강제동원’ 피해규명ㆍ지원 정부기관 단일화(연합뉴스, 10.03.22)

‘친일파’ 가요제, 법원의 판결은?-오마이뉴스(06.09.14)

2006년 9월 29일 495

‘친일파’ 가요제, 법원의 판결은?                                           ▲ 진양호에 있는 남인수 동상.  ⓒ2006 윤성효법원은 ‘친일파 가요제’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까?친일행위가 드러난 남인수(1918~1962·본명 강문수)의 이름을 딴 가요제가 법정에 서게 되었다. 3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친일잔재청산을 위한 진주시민운동본부'(이하 진주시민운동본부)는 14일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 ‘명칭사용금지와 예산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소송을 냈다.가처분 신청은 김일식 진주YMCA 사무총장 외 27명의 시민사회단체 대표 명의로 했다.진주시민운동본부는 이날 오전 진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주시와 진주MBC는 ‘남인수 가요제’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이 단체는 가처분신청 배경에 대해 “예정대로 진주성에서 남인수가요제가 진행된다면 이는 목숨으로 반일애국의 전통을 만들어 온신 선조들에 대한 모욕이며 진주정신에 대한 심각한 훼손으로 될 것”이라고 밝혔다.또 이 단체는 “친일잔재의 청산을 바라는 진주시민들은 역사의식과 공공성을 망각한 진주시의 무분별한 예산지원과 집행 관행에 사법부의 정의로운 판단과 역사적 결정을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 단체는 “가요제 참가자들과 시민들에게 수치와 분노의 대상으로 번락해버리고 말 가요제를 반대한다”고 덧붙였다.남인수가요제는 11년 전 경남일보사와 진주KBS에서 추진하다 최근에는 진주MBC가 열어오고 있다. 남인수가요제는 지난해 진주시로부터 예산 5000만원을 지원받았고, 올해는 진주시(5000만원)와 경남도(2000만원)에서 예산지원을 받아 오는 10월 9일 개천예술제 행사의 하나로 진주성 특설무대에서 열릴 예정이다.남인수는 “일본왕을 위해 손가락을 깨물어 군대에 지원한다”는 내용인 ‘혈서지원’과 내선일체를 주장한 ‘그대와 나’ ‘이천오백만의 감격’ 등의 노래를 불렀다.그는 1948년 백범 김구 선생에 의해 ‘친일 부역자’로 지명되었고,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 의해 친일인명사전 수록 1차명단에 오르기도 했다.진주시와 진주MBC는 지난

“생존 애국지사 증언 기록화 시급”-세계일보(06.09.15)

2006년 9월 29일 395

“생존 애국지사 증언 기록화 시급”  작년 4월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가슴 뭉클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광주에서 사는 소시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방 국장에게 생존 독립운동가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기는 사업에 써달라며 거액의 기부 의사를 밝힌 것.광복 60주년 사업의 일환으로 생존 애국지사들의 독립활동을 기록으로 남길 것을 국가보훈처에 제안했다가 거절당해 분통을 터뜨렸던 방 국장으로서는 막힌 가슴이 뻥 뚫릴 만한 소식이었다.“전화를 건 그분은 1922년 생으로 일제강점기를 살았어요. 독립운동에 투신하지 못해 항상 독립투사들에게 빚진 마음으로 살았다고 하더군요.”방 국장은 “왜 이런 중요한 사업을 국가에서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선뜻 큰 돈을 내겠다는 그분의 마음이 그저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하지만 연구소 측은 자체 회의를 거쳐 그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마음은 고맙지만 독립활동 녹취사업은 민간이 아닌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이유에서다. 방 국장은 “정부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친일파 문제나 눈에 보이는 사업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실제로 보훈처는 이 연구소가 제안한 ‘광복군가 리메이크음반 제작’은 받아들였다.방 국장은 “지난해 광복 60주년이라며 정부에서는 떠들썩하게 행사를 했지만 1년이 지난 올해는 너무도 조용하지 않았느냐”며 “70주년이 되는 2015년이면 생존 독립운동가들은 이미 세상을 뜰 것인데 무엇을 가지고 70주년 사업을 할지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日 “영주귀국 사할린동포도 청구권소멸”

2010년 3월 22일 420

日 “영주귀국 사할린동포도 청구권소멸”(연합뉴스, 10.03.22)

친일인명사전을 읽으며

2010년 3월 18일 714

– 목사들에게 친일인명사전을 꼭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 이 글은 <동양일보> 2월 17일자에 실린 글로 전재를 허락해 준 청주 나눔교회 김창규 목사님께 감사드린다. – 엮은이 주 김창규 목사 새해 들어 친일인명사전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지난 역사의 100년을 돌아보는 해이기 때문에 반성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국가의 수치를 겪었던 과거를 떠올려 좋을 것은 없지만 2010년 경인년 새해 백호의 기상으로 살 것을 다짐하며 읽었다. 당시 필자가 세상에 태어났다면 난 분명히 독립운동가가 되었을 것이다. 아니 무장투쟁을 통하여 제국주의 강도 일본을 물리치는 데 앞장을 섰을 것이다. 그런데 그 부끄러운 친일역사를 기록 한 책, 친일인명사전을 읽는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필자가 목사이기 때문이다. 친일인명사전 맨 첫 장에 이름을 올린 갈홍기(葛城弘基 1904~1989)목사는 일본기독교 조선감리교단 연성국장. 감리교 목사이다. 1904년 4월 14일  경기도 강화에서 ▲ 김창규 목사 태어 났다. 1925년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8년 3월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했다. 그해 6월 미국에 유학하여 개렛신학교를 졸업하고 노스트웨스턴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1934년 6월 시카고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1933년 1월 흥사단에 가입하였고 1938년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했다. 1937년 6월 발생한 동우회사건으로 체포되어 교수직을 상실했으나 1938년 6월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뒤 관련자들과 함께 친일 단체인 대동민우회에 입회한다는 전향 성명서를 내고 교수직에 복직하였다. 1938년 7월부터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본부 간사 겸 경성지부 상임감사로 활동했다. 이 때 부터 그의

[충남] 아산 ‘조명암 가요제’ 잡음-한국일보(06.09.19)

2006년 9월 29일 404

[충남] 아산 ‘조명암 가요제’ 잡음   시민단체 “친일인사 중단 마땅” 예총 “예정대로 추진” 한국예총 충남 아산시지부가 친일작사가로 알려진 조명암(趙鳴岩 1913∼1993)을 기리는 가요제를 추진해 물의를 빚고 있다.19일 예총 아산시지부에 따르면 22일부터 열리는 제18회 설화예술제 기간에 아산 영인면 출신 시인이자 작사가인 조명암을 ‘제1회 조명암 가요제’가 열린다. 조명암은 꿈꾸는 백마강, 선창, 알뜰한 당신, 바다의 교향시, 무정천리, 목포는 항구다, 선창 등을 작사했다.그러나 그는’아들의 혈서”지원병의 어머니”결사대의 처’등 청년들에게 일본군 입대를 독려하는 가사를 많이 쓴 것으로 드러나 지난해 발표된 제1차 친일인사 공연 예술인 부문에 포함됐다.‘지원병의 어머니’에서 그는 ‘나라에 바치자고 키운 아들을/ 빛나는 싸움터로 배웅을 할 제……/지원병의 어머니는 자랑해주마’라며 일본을 찬양했다. 또 1943년 발표된 ‘혈서지원’에서는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 일장기 그려놓고 성수만세 부르네’라는 등 노골적인 친일가사를 썼다.가요제 개최 사실이 알려지자 민족문제연구소와 지역 시민단체는 “친일 행위가 분명한 상황에서 그를 기념하기 위한 가요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민족문제연구소 박수현 연구원은 “경남 진주시의 남인수 가요제도 친일 행적으로 중단됐다”며 “아산시나 예총에서 조명암의 행적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것이 오히려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 지역예술계 인사들은 “이념과 정치적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예술적인 측면을 바라 볼 필요가 있다”며 “정치적 접근보다 순수 예술인으로 봐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예총 아산시지부 관계자는 “가요제 추진과정에서 조명암의 친일행적에 대한 논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가요제 일정이 잡혀있는 상황이라 계획대로

1회로 끝나는 조명암 가요제-대전일보(06.09.19)

2006년 9월 29일 420

1회로 끝나는 조명암 가요제   [牙山]‘1회 조명암 가요제’가 친일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예총 아산지부(지부장 이만우)는 오는 22일 신정호국민광광단지에서 18회 설화예술제 개막식을 가진 뒤 첫 행사로 ‘조명암가요제’를 개최할 예정이나 아산시 영인면 출신의 시인이자 작사가인 조명암(趙鳴岩·1913∼1993)의 친일 행적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것. 19일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조명암의 친일 행적은 너무나 뚜렷하다”며 “친일 인사를 기념하기 위한 가요제가 열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해 8월 발표한 1차 친일인사명단에 조명암(본명 조영출)의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조명암은 ‘아들의 혈서’, ‘지원병의 어머니’, ‘결사대의 처’, ‘2500만의 감격’ 등 청년들에게 지원병으로 나설 것을 독려하는 노래가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아산시민모임 김지훈 사무국장은 “조명암의 친일행적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이뤄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가요제를 연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현충사가 있는 충절의 고장에서 친일인사로 알려진 사람을 기념하는 가요제를 연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예총 아산지부 이만우 지부장은 “선생의 친일행적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며 “이미 예선을 거쳐 본선대회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대회를 취소할 수는 없으며 추후 가요제 명칭을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조명암은 1941년 일본 와세다 대학 불문과를 졸업하고, 193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동방의 태양’으로 등단했다. 생전에 ‘선창’ 알뜰한 당신‘ 등 500여곡의 대중가요를 작사했다. 1948년 월북, 북한에서 교육문화성 부상, 평양 가무단 단장, 조선문화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재출간

2010년 3월 17일 757

독립투사 이상룡 선생의 손부 허은 여사 회고록 편집부   이 책을 구술한 허은 여사는 1915년 아홉 살 어린 나이에, 만주로 망명한 허씨 일문을 따라 만주 영안현으로 이주했다. 열여섯 살이던 1922년 고성 이씨 집안으로 출가하여 1932년 시조부 석주 이상룡 선생의 서거로 귀국할 때까지, 석주 선생과 시아버지 동구 이준형 선생, 그리고 남편 이병화를 뒷바라지하며 만주독립운동의 현장에서 온갖 고난을 함께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역사책에서는 접할 수 없는 생생한 회고담을 남겨 1995년 7월『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라는 제목으로 초간되었다.  이 책에는 매년 8월 29일 국치일에 학교 운동장에 모여 망국을 주제로 한 연극을 보고 국치일 노래를 목 놓아 불렀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 열여섯 나이에 영안현 철령허에서 화전현 완령허까지 아버지와 시아버지를 모시고 남편과 함께 이천팔백 리를 꼬박 열이틀 걸려 시댁에 도착한 일, 이청천 신숙 황학수 이범석 등 당대의 지사들이 참석한 서로군정서 회의에 대한 목격담,  석주 선생이 임시정부 국무령을  사임하고 상 ▲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표지 해에서 돌아올 때 변복·변장하여 왜경의 감시망을 뚫고 무사히 도착한 일화, 석주 선생 서거 후 귀향길에 중국군 패잔병들에게 갖은 곤욕을 치른 끝에 선생의 유해를 화전현에 가매장하고 밤길을 타고 어렵게 귀환한 비사 등 독립운동 명가의 역경을 짐작하게 해주는 눈물겨운 증언들이 낱낱이 담겨있다.  1932년 허은 여사는 ‘고택제향(古宅祭香)에 호화반석(豪華磐石)’ 같은 고성 이씨 가문의 종부(宗婦)로서 ‘이역만리(異域萬里)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다가 안동 임청각으로 귀향했지만, 가산은

일제 강점기 ‘민초들 삶’ 생생히-한겨레신문(06.09.28)

2006년 9월 29일 407

일제 강점기 ‘민초들 삶’ 생생히 김제 아리랑 문학관서 일기·사진·유품 등 전시회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을 재현해 일제 강점기 민초들의 삶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전북 김제 아리랑문학관과 민족문제연구소는 다음달 2일부터 29일까지 김제시 부량면 아리랑문학관에서 ‘징게 맹갱 외에밋들’ 전시회를 연다. 부제는 ‘조정래의 아리랑과 식민지 조선인의 삶’이다. 딸림행사로 다음달 12일 오후 3시30분 김제시청에서 조정래의 문학강연도 있다.제목 ‘징게 맹갱 외에밋들’은 ‘김제·만경 너른 들’이란 뜻으로 〈아리랑〉의 주무대인 호남평야를 가리키는 이 지역 토속어다. 이번 특별전시는 누대에 걸쳐 민족의 쌀창고 구실을 해왔던 호남벌과 그 땅의 민초들이 일제의 악랄한 수탈 속에서 어떤 선택과 대응을 하면서 살았는지를 역사적 사건과 함께 그려냈다.소설을 전시자료로 재현하기 위해 농촌지도자를 꿈꾼 청년의 일기, 추억을 담은 졸업앨범, 교과서에 쓴 낙서, 무수히 자행된 학살 기록사진, 징용·징병 피해자들이 남긴 유품 등 다양한 실물자료를 사용했다(사진). 여기에다 설치미술, 캐릭터, 연대순으로 재구성한 패널 및 영상 등을 통해 현실감을 높였다.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