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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을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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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들에게 친일인명사전을 꼭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




















이 글은 <동양일보> 2월 17일자에 실린 글로 전재를 허락해 준 청주 나눔교회 김창규 목사님께 감사드린다. – 엮은이 주


김창규 목사







새해 들어 친일인명사전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지난 역사의 100년을 돌아보는 해이기 때문에 반성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국가의 수치를 겪었던 과거를 떠올려 좋을 것은 없지만 2010년 경인년 새해 백호의 기상으로 살 것을 다짐하며 읽었다. 당시 필자가 세상에 태어났다면 난 분명히 독립운동가가 되었을 것이다. 아니 무장투쟁을 통하여 제국주의 강도 일본을 물리치는 데 앞장을 섰을 것이다. 그런데 그 부끄러운 친일역사를 기록 한 책, 친일인명사전을 읽는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필자가 목사이기 때문이다.


친일인명사전 맨 첫 장에 이름을 올린 갈홍기(葛城弘基 1904~1989)목사는 일본기독교 조선감리교단 연성국장. 감리교 목사이다. 1904년 4월 14일  경기도 강화에서



▲ 김창규 목사


태어 났다. 1925년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8년 3월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했다. 그해 6월 미국에 유학하여 개렛신학교를 졸업하고 노스트웨스턴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1934년 6월 시카고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1933년 1월 흥사단에 가입하였고 1938년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했다. 1937년 6월 발생한 동우회사건으로 체포되어 교수직을 상실했으나 1938년 6월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뒤 관련자들과 함께 친일 단체인 대동민우회에 입회한다는 전향 성명서를 내고 교수직에 복직하였다.


1938년 7월부터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본부 간사 겸 경성지부 상임감사로 활동했다. 이 때 부터 그의 적극적인 친일 행각이 시작된다. 이광수, 현영섭 등과 내선일체 구현화 문제, 동아협동체의 건설문제, 국내 혁신의 문제 등 좌담회를 가지며 1941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감리교 신학교와 장로교 조선신학원에서 강의를 했다. 그 때부터 그는 신의주, 선천, 정주방면으로 다니면서 일본을 선전하는 강사가 되었다. 그는 1942년 9월 12일부터 기독교 일본화를 논한다는 글을 경성일보에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하였다. 1943년 11월에는 학병 권유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1944년 2월에도 일본기독교 조선감리교단 황해도교구가 주최한 연성회의에서 황도기독교 수립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였다. ‘종교 봉사 총진격 강연회’에 이동욱, 김종대 목사 등과 함께 연사로 참여하였다. 1945년 해방되기 전 7월에는 각 교파가 통합된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의 종교교육국장을 맡았다. 친일파인 그가 해방 후에 더 승승장구하였다. 1948년 숙명여자대학교 문학부장을 맡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초대공보실장에 임명되었다. 1951년 주일대표부참사관 1952년 외무부 차관을 1953년 3월부터 1955년 2월까지 공보처장을 지냈다. 1957년에는 동명학원 이사장을 지냈고 1966년에는 말레이시아 대사에 임명되었다. 1973년에는 아스팍 사회문화센터 사무국장을 맡았다. 1989년 8월 25일 캘리포니아 주 롱비치에서 사망하였다.


이상과 같은 기록을 읽으면서 개신교 목사들의 친일한 행적을 찾아보니 너무나 많았다. 목회자가 42명이었고 나머지 14명은 평신도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친일 했겠지만 유독 눈에 띄는 사람만 골라 실었을 것이다. 필자가 속한 흥사단도 반성해야 한다. 2013년이면 도산 안창호 선생이 만든 이 단체가 100년이 되는 해를 맞는다. 앞에서 언급하였지만 이광수가 흥사단이었고 갈홍기(葛弘基)목사도 흥사단이었기 때문이다. 필자도 흥사단이다. 참으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부끄럽고 우리민족에게 죄스러울 뿐이다. 필자가 속한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 중에도 친일파 목사가 있었다. 조승제라는 목사였다. 한신대 이사장도 지냈고 총회장도 지냈다. 정말 창피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친일인명사전을 읽다보니까 알게 되었다. 필자가 속한 교단은 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선구자적인 자랑스러운 교단이었는데 이런 씻지 못할 오점도 발견 되는 것이다.


필자가 속한 독서모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소설을 읽었다. 그 책이 얼마나 많이 팔렸는가 하면 예상을 뒤엎고 수십 만 부가 국내에서 팔렸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100만부 이상이 팔렸다고 하는 소설책이다. 이 책을 좋은 책이라고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문학이 한국 독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 만큼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이 진정성을 가지고 있고 그런 작가들에 의해서 일본 소설이 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 하는 것이다. 일본의 인기작가 소설을 읽는 것처럼 친일인명사전도 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말이다.


일본소설이라고 무조건 모두 나쁘다고 읽지 마라 말하지 않겠다. 일본은 노벨문학상을 탄 걸출한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 두 명이나 배출해 내었다. 좋은 것은 본받고 해야 하지만 그들의 침략적제국주의가 우리 민족에게 악행을 저지르고 나쁜 영향을 끼친 것은 참을 수 없고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들의 좋은 책을 찾아 읽어야 할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이 많을 때 우수한 민족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개신교 목사들에게 친일인명사전을 꼭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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