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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오키나와 주민의 역사바로잡기-한겨레신문(0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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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오키나와 주민의 역사바로잡기 
 
  
 
역사 왜곡에 항의하는 오키나와 주민의 분노 앞에 강경으로 일관하던 일본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달 29일 11만명에 이르는 오키나와 주민의 대규모 집회에 놀란 일본 정부는 이틀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한발짝 물러난 것이다. 오키나와 현지사와 현의회 의장 등은 문부과학상과 참의원 의장을 만나 오키나와 현민대회의 “집단자결이 군의 관여 없이는 일어날 수 없었다는 것을 전하는 것이 우리들의 책무”라는 결의문을 읽고, “현민의 뜻을 받아들여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대해 문부성은 “관계자들과 지혜를 모아 여러분들의 뜻이 반영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답변하였다. 2차 대전 끝무렵의 오키나와전투 때에 발생한 ‘집단자결’ 사건은 일본군에 의한 자국민 학살사건이다. 전투에 방해가 되거나 스파이 행위를 우려한 일본군은 주민에게 자결을 강요한 것이다. 미군 상륙 전에 마을의 병사주임을 통해 군으로부터 수류탄을 건너받아 유사시에 자결하도록 명령받았으나 불발탄이 많아 자결의 수단은 칼, 낫, 끈 등으로 가족 간, 주민 간에 서로 죽이는 참혹상이 발생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천황을 위해 죽는 것이 최고의 국민도덕으로 추앙받는 철저한 황민화 교육이 시행되고 있었다. 그 황민화 교육은 천황의 군대가 관철시켜야 할 최대의 과제였다. 그러나 주민에게는 집단자결을 강요했지만, 당사자인 군인은 오히려 살아남았다. ‘살아서 포로의 굴욕을 받지 말고, 죽어서 죄과의 오명을 남기지 말라’는 전쟁 훈령이나 ‘군·관·민 공생공사의 일체화’도 무시된 채 무고한 주민만 희생양이 되었다.

이번 역사교과서 검정은, 1990년대 이후의 일본의 우경화 경향과 맞물려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주도한 우익교과서의 출현이라는 일련의 흐름과 맥이 닿아 있다.

일본 우익들은 오키나와전투의 ‘집단자결’이 ‘군에 의한 강제’라는 서술을 교과서로부터 필사적으로 떼어내려고 한다. 일본군이 자국민에게 죽음을 강요한 사실이 알려지면 군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형성되고, ‘국민보호법’ 아래 국민을 전쟁의 협력자로 가담시키려는 일본 정부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들은 역사교과서야말로 청소년들의 ‘의식개조’ 수단이자 전위대라고 보았던 것이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미덕이라고 교육받던 군국주의시대의 이데올로기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군 개입을 부정하는 발언에 이어 확연히 드러난 ‘집단자결’ 사건조차 은폐하려는 반교육적 현상으로 표출한 것이다.

오키나와 주민들의 ‘역사 바로잡기’는 일본 정부의 잘못된 역사인식에 대한 저항이자 왜곡된 역사의 피해자로서 진실을 밝히려는 정당한 주장이다. 오키나와전투에서 15만명이 넘는 주민이 희생당하고 어린 소년, 소녀들이 ‘철혈근황대’ ‘히메유리대’란 이름으로 포화 속에 뛰어들었던 국가주의 전쟁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

이번에 일본 정부가 역사교과서를 재수정할 뜻을 비친 것이 다가올 선거에 대한 전략적 차원이거나 분노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미봉책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나아가 이런 생각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대한 일본의 침략주의적 역사관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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