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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심장부’를 자본의 손에 넘기려나-프레시안(07.08.22)
서울의 ‘심장부’를 자본의 손에 넘기려나[열려라, 광화문광장!③] 시민과 문화가 주인되는 광장으로 얼마 전 광화문의 한 서점에 갔다가 고등학교 신입생 정도의 학생이 최인훈의 <광장>을 구입하는 것을 보고, 신기해서 물어보았더니 신입생 필독서라고 읽고 독후감을 내라고 했다한다. 우리의 교육현장에 ‘필독서’라는 전근대적인 교육방법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답답함보다는 이런 필독서 제도는 있어도 좋은데 하면서 웃었던 적이 있다. 문화와 역사가 ‘자동차’로 연결돼 있는 곳=한국? 8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 중 <광장>을 읽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20여 년 전 필자는 ‘광장’다운 광장이 없는 우리네 상황에서 광장의 의미를 사상적 공간, 다양한 이념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아둔함에 젖어 있다가 우리전통문화를 공부하며 ‘마당’이라는 유기적 공간을 발견했다. 서양의 광장 개념과 우리의 마당 개념은 문화적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주어진 공간과 처해 있는 사람과의 유기적이고 다양한 변화와 욕망의 분출을 표현하는 것으로는 서로 유사한 점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광장문화가 분출해 낼 수 있었던 최고의 순간이 2002년 월드컵의 거리응원이 아니었을까 한다. 필자는 다시 광장에서 뿜어 나오는 열정과 전율을 느끼려 광화문과 세종로를 걸어보았으나, 사람이 다니기에 너무도 자동차중심인 거대도시 서울에서 걷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600년이라는 오랜 역사의 정체성을 발견해보고 싶어도 콘크리트 숲속과 자동차 중심의 서울에서는 무리인 듯싶다. 북경의 천안문 광장과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 파리시내와 콩코드 광장을 걸어보는 느낌과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우리나라에 방문하는 외국관광객의 70~80%는 서울에 머물며,
서울의 ‘심장부’를 자본의 손에 넘기려나-프레시안(07.08.22)
서울의 ‘심장부’를 자본의 손에 넘기려나[열려라, 광화문광장!③] 시민과 문화가 주인되는 광장으로 얼마 전 광화문의 한 서점에 갔다가 고등학교 신입생 정도의 학생이 최인훈의 <광장>을 구입하는 것을 보고, 신기해서 물어보았더니 신입생 필독서라고 읽고 독후감을 내라고 했다한다. 우리의 교육현장에 ‘필독서’라는 전근대적인 교육방법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답답함보다는 이런 필독서 제도는 있어도 좋은데 하면서 웃었던 적이 있다. 문화와 역사가 ‘자동차’로 연결돼 있는 곳=한국? 8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 중 <광장>을 읽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20여 년 전 필자는 ‘광장’다운 광장이 없는 우리네 상황에서 광장의 의미를 사상적 공간, 다양한 이념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아둔함에 젖어 있다가 우리전통문화를 공부하며 ‘마당’이라는 유기적 공간을 발견했다. 서양의 광장 개념과 우리의 마당 개념은 문화적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주어진 공간과 처해 있는 사람과의 유기적이고 다양한 변화와 욕망의 분출을 표현하는 것으로는 서로 유사한 점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광장문화가 분출해 낼 수 있었던 최고의 순간이 2002년 월드컵의 거리응원이 아니었을까 한다. 필자는 다시 광장에서 뿜어 나오는 열정과 전율을 느끼려 광화문과 세종로를 걸어보았으나, 사람이 다니기에 너무도 자동차중심인 거대도시 서울에서 걷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600년이라는 오랜 역사의 정체성을 발견해보고 싶어도 콘크리트 숲속과 자동차 중심의 서울에서는 무리인 듯싶다. 북경의 천안문 광장과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 파리시내와 콩코드 광장을 걸어보는 느낌과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우리나라에 방문하는 외국관광객의 70~80%는 서울에 머물며,
우리 국화로 만든 안중근 의사 손
우리 국화로 만든 안중근 의사 손(뉴시스, 09.10.30)
화순군, 독립운동가 양한묵 선생 기념관 추진
화순군, 독립운동가 양한묵 선생 기념관 추진(연합뉴스, 09.11.02)
[야스쿠니 캠페인] 전몰자묘원은 대안인가
한겨레21 길윤형 기자 8월15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찾은 곳은 ‘지도리가후치(千島ケ淵) 전몰자묘원’이었다. 도쿄 지하철 도에이신주쿠선 구단시타역 1번 출구에서 내려 앞으로 쭉 걸어가면 야스쿠니신사, 신사의 입구를 지나쳐 왼쪽으로 꺾은 뒤 15분쯤 걸으면 치도리가후치 전몰자묘원이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을 위해 만든 시설이라는 점에서 두 시설의 존재 의미는 비슷하지만, 그들이 갖는 역사적 배경은 사뭇 다르다. △ 아베 신조 총리는 8·15를 맞아 야스쿠니신사가 아닌 지도리가후치 전몰자묘원을 찾았다. 그의 뒤로 아키히토 일왕 부부의 실루엣이 보인다.(사진/ AP PHOTO/ ITSYO INOUYE) 야스쿠니신사가 모시는 것은 일왕을 위한 전쟁에 참여해 목숨을 잃은 246만여 명의 영령들이다. 전쟁 전 일왕은 야스쿠니신사를 특권화하면서, 그를 위해 전장에 나가 목숨을 잃은 전사자들을 직접 제사 지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가족을 잃은 유족의 슬픔은 일왕을 위한 존경과 고마움으로 변했고, 이는 “천황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독특한 신앙관으로 발전해왔다. 적어도 전쟁이 처참한 패배로 끝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전쟁은 끝났고 신사는 국가시설에서 종교시설로 변했지만, ‘A급 전범’ 합사 문제에서 드러나듯 지난 침략 전쟁을 반성하지 않는 퇴행적 역사관으로 주변 나라들의 분노의 대상이 돼왔다. 지도리가후치 전몰자묘원이 생긴 것은 태평양전쟁에 끌려가 죽은 조선인들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기 시작한 1959년이다. 묘원은 일본 후생성이 만든 국가시설이다. 태평양전쟁으로 폐허가 된 각 지역에서 수집한 유골 가운데 연고자를 알 수 없는 유골이
-연합뉴스(07.08.28)
<한-일, 유엔서 동해 표기 놓고 설전>(유엔본부=연합뉴스) 김계환 특파원 = 27일(현지시간)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9차 지명표준화회의에서 동해 표기 문제를 놓고 한국과 일본의 설전이 재연됐다. 이날 회의에서 송영완 외교통상부 국제기구정책관은 수석대표 연설을 통해 동해 표기의 정당성을 역사적, 규범적 차원에서 접근했다. 송 정책관은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지도 가운데 근 24%가 동해를 병기하고 있어 일본해라는 표기가 국제적으로 확립됐다는 일본측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강력 반박하면서 동해 병기는 지명표준화회의와 국제수로기구의 기존 결의에도 부합되는 조치라는 점을 강조, 참가국들의 호응을 얻어냈다. 송 정책관은 지명표준화회의와 국제수로기구의 기존 결의는 명칭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인근 국가들이 사용하는 명칭을 병기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다면서 동해 표기 문제도 이 같은 관련 결의에 따라 병기돼야 한다는 말로 일본의 비타협적 태도를 비판했다. 이스라엘 대표단도 동해를 일본해와 같이 병기하는 것이 맞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등 우리 입장에 지지를 보냈다. 이에 대해 일본 대표단은 일본해가 국제적으로 확립된 명칭이며 한국이 동해 표기 문제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제기하고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 했다. 지명표준화회의가 동해표기 문제를 논의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도 내놨다. 수단 대표단은 이번 회의에서 동해 병기 문제를 다루는 게 의미가 있느냐면서 동해 병기문제에 대한 논의 중단을 주장, 일본측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참석국가들로부터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대표단 관계자들은 일본이 동해문제가 국제회의에서 논의되는 것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가운데 동해 병기가 추진된
80년 전 항일운동 체포학생 탄원서 발견
80년 전 항일운동 체포학생 탄원서 발견(뉴시스, 09.11.02)
“일본, 진솔히 사과해야 평화공존”
“일본, 진솔히 사과해야 평화공존”(내일신문, 09.10.30)
마지막 일장기-‘문화'(07.08.21)
<오후여담> 마지막 일장기 누구나 죽을 때까지 숨기고 싶은 비밀이나 콤플렉스 한두개쯤은 지니게 마련이다. 그런 비밀 등이 탄로날 때 당사자는 물론 지켜보는 사람 역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계속되는 ‘가짜 학력’ 파문이 비근한 예일 듯싶다.국가나 민족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역사가 길수록 숨기고 싶은 사실(史實)과 기록도 많아지게 마련이다. 한국사에서 나라를 빼앗긴 경험은 치욕 중의 치욕이다. 일부에서는 그 역사를 애써 숨기려 하고 일부에서는 오히려 그 역사를 끄집어내 교훈으로 삼자고 주장하기도 한다.대표적인 게 서울 송파구 석촌동 삼전도비(三田渡碑). 치욕과 수난의 역사 상징인 만큼 수차례 훼손되는 굴욕을 겪었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2월 ‘애국’를 앞세운 사람으로부터 붉은 페인트 세례를 받았다. 3개월의 복원 작업 끝에 지난 6월 제모습을 다시 찾았다.원래 명칭이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인 이 비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가 1637년 청 태종 앞에서 머리를 땅에 9번 찧는 항복의식을 치르고도 그의 공덕을 찬미하는 글을 담아 ‘치욕의 문화재’로 인식돼 왔다.고종 32년(1895년)에는 이 비를 강물에 수장시켰으나 일제에 의해 다시 건져올려졌다. 광복 후 주민들이 땅에 파묻었지만 1963년 대홍수 때 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모질게도 되살아나 굴욕의 한국사를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최근 서울역사박물관이 유사한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박물관은 조선총독부 시절 현재의 서울시 청사인 경성부 청사에 마지막으로 걸렸던 일장기를 소장하고 있는데 상설전시 문제에 대해 결정을 못내리고 있다는 것이다.이 일장기는 8·15 광복 직후 시청을 접수한 미군
마지막 일장기-‘문화'(07.08.21)
<오후여담> 마지막 일장기 누구나 죽을 때까지 숨기고 싶은 비밀이나 콤플렉스 한두개쯤은 지니게 마련이다. 그런 비밀 등이 탄로날 때 당사자는 물론 지켜보는 사람 역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계속되는 ‘가짜 학력’ 파문이 비근한 예일 듯싶다.국가나 민족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역사가 길수록 숨기고 싶은 사실(史實)과 기록도 많아지게 마련이다. 한국사에서 나라를 빼앗긴 경험은 치욕 중의 치욕이다. 일부에서는 그 역사를 애써 숨기려 하고 일부에서는 오히려 그 역사를 끄집어내 교훈으로 삼자고 주장하기도 한다.대표적인 게 서울 송파구 석촌동 삼전도비(三田渡碑). 치욕과 수난의 역사 상징인 만큼 수차례 훼손되는 굴욕을 겪었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2월 ‘애국’를 앞세운 사람으로부터 붉은 페인트 세례를 받았다. 3개월의 복원 작업 끝에 지난 6월 제모습을 다시 찾았다.원래 명칭이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인 이 비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가 1637년 청 태종 앞에서 머리를 땅에 9번 찧는 항복의식을 치르고도 그의 공덕을 찬미하는 글을 담아 ‘치욕의 문화재’로 인식돼 왔다.고종 32년(1895년)에는 이 비를 강물에 수장시켰으나 일제에 의해 다시 건져올려졌다. 광복 후 주민들이 땅에 파묻었지만 1963년 대홍수 때 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모질게도 되살아나 굴욕의 한국사를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최근 서울역사박물관이 유사한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박물관은 조선총독부 시절 현재의 서울시 청사인 경성부 청사에 마지막으로 걸렸던 일장기를 소장하고 있는데 상설전시 문제에 대해 결정을 못내리고 있다는 것이다.이 일장기는 8·15 광복 직후 시청을 접수한 미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