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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보도자료]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2011년 5월 12일 1816

  잊혀진 독립전쟁기지 – 신흥무관학교 재조명 설립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신흥무관학교와 항일무장독립운동’ 오는 6월 10일은 항일무장투쟁의 금자탑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돌이 되는 날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5월 13일 오후 2시 국회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신흥무관학교가 독립운동사에 차지하는 위상을 재조명하는 학술회의가 신흥무관학교100주년기념사업회 주최 국가보훈처 후원으로 열린다. 신흥무관학교는 나라를 잃은 경술국치 다음 해인 1911년 만주 길림성 추가가 삼원포에서 신흥강습소란 이름으로 개교한 뒤, 교세 확장을 거듭하여 1920년까지 3천 5백 여 명에 이르는 독립군 간부를 배출한 일제강점기 최대의 항일무장투쟁 기지이다. 이번 학술회의에는 독립운동사 분야의 권위 있는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해, 실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신흥무관학교의 활동상을 조명하고 역사적 의미를 재해석한다.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의 저자로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 성균관대 사학과 서중석 교수는 학술회의에 앞서 배포한 기조강연문을 통해 신흥무관학교는 “대한제국 무관학교와 의병의 맥을 이어받았다는 점에서도 민족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하면서, 전세계 독립전쟁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규모 전쟁인 청산리대첩도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주도하였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나라) 군은 독립운동의 정신을 이어받는 문제를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사관학교의 경우 대한제국무관학교, 신흥무관학교의 맥을 이어받고 독립운동사, 독립군사를 교육해야 할 것”이라고 군의 역사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와 신흥무관학교’를 주제로 다룬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은 양자의 연관성을 교육과정과 군사간부 양성을 중심으로 살폈다. 즉,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국권 상실 후 곧바로 만주로 망명, 신흥무관학교를 비롯한 독립군

[보도자료] 한일과거사 시민단체, 일본 대지진 피해 복구를 위한 공동모금 전개

2011년 3월 21일 2089

<보도자료> –한일과거사관련 시민단체들, 일본대지진 피해 복구를 지원하기 위한 공동모금 전개- 한일과거사 청산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일본의 재해 극복을 돕기 위해 공동 모금을 전개한다. 3월 15일 재해를 입은 일본사회에 대한 공동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공동모금에 착수한 것이다. 한일과거사 관련 단체들이 공동모금에 나선 것에 대해 모금 관계자들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한일 과거사는 잊지 말아야 하며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그 길이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진정한 한일 우호의 출발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피해를 입어 고통을 겪었기에 이번 일본의 피해에 대해 누구보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한일과거사 청산이 인간의 생명과 인권의 존엄성에 기초했기에, 이제 일본 시민들과 재일동포를 비롯한 재일외국인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적극 돕는 것은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제 직접적인 도움의 손을 우리가 내밀 차례입니다.” 모금에 참가한 단체들은 열흘에서 보름 정도 모금운동을 전개해 일본에서 한일과거사 청산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일본의 시민단체를 통해 이재민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1923년 일본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 강제동원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 야스쿠니문제, 독도문제, 일본교과서문제, 재일동포와 사할린동포문제, 친일파문제 등의 분야에서 한일과거사 청산운동의 최전선에 서있는 시민단체들이 일본의 피해 복구와 구호를 위해 공동모금을 전개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특히 이번 공동모금은 작년 1월에 50여 개의 일본 시민단체들이 참가해 조직한 강제병합100년 공동행동 일본실행위원회와 연계해 한일시민의 모범적 연대로 전개하는 것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한편 일본실행위원회의 야노 사무국장은 “과거

[보도자료] 인권평화운동가 서승 교수 출판기념회 및 퇴임식 안내

2011년 3월 18일 2393

[보도자료] 인권평화운동가 서승 교수 정년퇴임식 겸 『서승과 함께 하는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 출판기념회 – 2011년 3월 26일(토) 오후 4시, 남산 서울유스호스텔 강당 –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인권, 평화운동가의 한 사람인 재일동포 서승 리츠메이칸대(일본 교토) 교수가 정년을 맞아 오는 3월 26일 고국에서 퇴임식 겸 출판기념회를 가진다. 주최측은 군사독재정권 시기의 암울했던 지난날을 되새겨본다는 의미에서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살인적 고문을 당한 현장인 남산 옛 안기부 청사(현 서울유스호스텔 대강당)를 행사장으로 정했다.     ▶ 서승 리츠메이칸대 교수 (출처- 한겨레) 1945년 4월 교토에서 ‘해방둥이’로 태어난 서승 교수는 1968년 일본 도쿄교육대학을 졸업한 뒤 모국의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로 유학했다. 그러나 1971년 박정희 정권의 보안사령부에 연행되어 형언하기 힘든 반인륜적 고문 속에 용공조작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듬해 이른바 ‘재일교포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고, 같은 해 무기징역을 언도받았다. 수감 중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에 의해 ‘1974년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되는 등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은 그였지만, 특별사면으로 석방되는 1990년 2월까지 무려 ‘19년의 청춘’을 차가운 감옥에서 보내야만 했다. 그는 1994년(한국어판 1999년) 지울 수도 잊을 수도 없는 오랜 인고의 세월을 담아『옥중 19년』이란 회고담을 펴냈다. 석방 이듬해인 1991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University of California-Berkeley 사회학과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 STIK(Stop Torture In Korea)라는 인권운동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는 등 한국사회의 참담한 인권 현실을 국내외에 고발하고 시정을

[성명서]일본 대지진 재난에 대한 한국 시민단체의 성명

2011년 3월 16일 1705

일본 대지진과 관련하여 민족문제연구소를 포함한 국내의 과거사 단체는 공동 성명서를 통해 충격적인 대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일본 사회에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아래는 성명서의 전문>    

[보도자료] 일본 대지진 관련 민족문제연구소 논평

2011년 3월 14일 1597

  일본 대지진 관련 민족문제연구소 논평 민족문제연구소는 충격적인 대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일본 사회에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하면서 수많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더불어 피해자들이 하루빨리 참화 속에서 일어나 일상의 삶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한일시민사회는 그간 과거사문제 등 현안에 대해 긴밀한 협력을 통해 이해를 넓혀 왔습니다. 우리는 일본 우익세력의 망동과 일본정부의 회피정책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미래 한일관계를 낙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한일 시민사회의 교류와 연대가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발생한 상상조차 못할 엄청난 재해는 일본 시민사회의 아픔이자 우리에게도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연구소는 한일과거사 청산에 복무하는 중심 단체의 하나이지만 일본 시민사회와 고통을 나누는 대열에 함께 하려합니다. 또 이웃나라의 참상을 왜곡하는 어떠한 형태의 종교적,정치적 독선과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회주의적 태도에도 단호히 반대합니다. 우리 모두는 인류사회와 동아시아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일본 사회가 용기를 가지고 비극을 극복할 수 있도록 진정어린 성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011. 3. 14. 민족문제연구소

[보도자료] 3.1절 92주년 맞아 일본에서 ‘강제병합100년 특별전’ 개최

2011년 3월 2일 2182

3.1절 92주년 맞아 일본에서 ‘강제병합100년 특별전’ 개최 일제침략상을 전면적으로 조망한 일본 내 전시는 처음   – 지청천 광복군 총사령관 일기도 최초 공개 –   국내에서 15만 명이 관람하여 크게 호응을 받았던 강제병합100년 특별전「거대한 감옥, 식민지에 살다」기획전시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의 초청을 받아 3월 1일 교토 현지에서 개막식을 가진다. 한국의 민족문제연구소와 리츠메이칸대학의 코리아연구센터, 국제평화박물관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일본 내 개최 자체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일제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실상을 가감없이 전면적으로 조명한 전시는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수집 소장하고 있는 3만여 점의 유물 중 일본측에서 엄선한 80여 점의 희귀본만 소개된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통치자료(조선총독부 자료, 경찰앨범, 조선주둔군 앨범)와 의병격문, 독립선언서 등 항일의지를 보여주는 독립운동자료, 징병징용으로 끌려간 이들의 수난사 자료(사진, 엽서, 편지), 식민지 조선인들의 실상을 보여주는 생활사 자료와 교과서 등이 주를 이룬다. 일본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강제동원피해자들의 증언영상 “내가 겪은 강제동원”과 독립운동가들의 증언영상 “독립을 꿈꾼 청춘들”도 일본어 자막을 입혀 전시장 내에서 상영된다. 특히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 장군의 일기와 그 따님으로 역시 독립운동을 한 지복영 여사의 미간행 자서전 유고가 국내외를 통틀어 최초로 일본에서 공개될 예정이어서 주목을 끈다. 리츠메이칸대학 개교 14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3월 2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청소년과 시민들에게 과거 일본이 조선을 어떻게 침략, 지배, 수탈했는가를 생생하게 알림으로써, 제국주의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항일무장투쟁의 요람 신흥무관학교100주년기념사업회 출범

2011년 1월 26일 1189

※ 서승 교수 이력 보기   ※ 서승 교수 주요 약력 보기   ※ 서승 교수 강의록 내려받기   ※ 창립대회자료집 내려받기   <보도자료> 항일무장투쟁의 요람 신흥무관학교100주년기념사업회 출범   2011년 6월 10일은 항일무장투쟁의 금자탑 신흥무관학교가 설립된 지 100돌이 되는 날이다. 신흥무관학교 개교 100주년을 맞아, 설립과 운영에 참여한 우당 이회영, 석주 이상룡, 일송 김동삼 선생 등 독립운동가의 후손들과 사회 원로, 학계 중진들이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추진하기로 뜻을 모으고, 1월 27일 프레스센터에서 창립대회를 연다. 신흥무관학교는 나라를 잃은 경술국치 다음 해인 1911년 길림성 유하현 삼원포 추가가에서 신흥강습소란 이름으로 개교한 뒤, 교세 확장을 거듭하여 1920년까지 2천명이 넘는 독립군 간부를 배출한 일제강점기 최대의 항일무장투쟁 기지였다.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1920년대 만주의 독립군 군사조직인 서로군정서·북로군정서의 주축이 되었으며, 청산리?봉오동대첩의 주역으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이후에도 신흥 출신 독립운동세력은 의열단, 광복군 등 항일무장투쟁은 물론 교육, 사회 등 각 부문에서 치열하게 민족운동을 전개하는 활약상을 보여 주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 전기호 전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장, 한용원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허남성 국방대 명예교수 등 6명이 공동대표를 맡을 예정이다. 고문으로는 우당 이회영 선생의 후손인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이종걸 의원을 비롯해 김영일 광복회장, 김진현 신간회기념사업회장, 오명 한국과학기술원 이사장,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윤형섭 전 교육부 장관, 김동신 전 국방장관,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등

민족문제연구소, 일제 전시체제하 조선인의 생활상을 조명하는 학술회의 개최

2010년 12월 2일 1190

  <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 일제 전시체제하 조선인의 생활상을 조명하는 학술회의 개최     민족문제연구소는 경술국치 100주년인 2010년을 정리하면서 “일제의 전쟁, 조선인의 삶”이란 주제로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일제 식민지시기 가운데서도 가장 억압과 수탈이 심했던 전시체제기(1937-45년), 일제가 어떤 논리로 전쟁 동원을 정당화하였으며 여기에 대응하여 조선인의 일상생활은 어떻게 변모하고 있었는지를 검토한다. 1부에서는 당시 발행된 매일신보와 같은 관제 언론이나 각종 전쟁영화 등을 통해 조선인을 전쟁에 동원하고 죽음을 강요한 논리와 작동 메카니즘을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아울러 일제가 당시 인구의 대다수를 점하고 있던 조선 농민들을 어떻게 통제했으며, 이에 대응하는 조선인들은 어떻게 전쟁을 인식하고 있었는지 그 내밀한 사정을 일기를 분석해 재구성한다. 2부에서는 전시체제기 조선인의 경제생활상에 대해 집중 조명한다. 이 시기 조선 농민이나 아동들의 영양 상태나 발육 상태 등이 현저히 악화되었음을 각종 조사통계자료를 통해 분석하고, 나아가 전시 ‘국민생활’이 강요되는 상황 속에서 소비생활이 극도로 위축되었음을 입증한다. 또 ‘전시공채’의 발행 등 식민지의 ‘민’에게 전쟁의 부담을 고스란히 전가하는 양상과, 그 결과 각종 경제범죄가 급증하는 등 구조적 모순에 직면한 식민지조선의 참담한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조명한다. 이번 학술회의는 민족문제연구소가 경술국치 100년 기획사업으로 4년 동안 추진해 온 ‘일제강점기 피해 종합조사연구’의 1기 사업(2007-2010년)을 결산하는 행사의 하나로서, 내년부터는 5년간의 계획으로 제2기 사업(2011-2015년)에 착수해, 해방 70주년이 되는 2015년에는 조사·연구사업의 성과를 모아 일제강점기 인적·물적·제도적 피해의 전모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방대한 자료집으로

강제동원 피해자 일본 증언집회 기자간담회

2010년 10월 7일 2092

간담회 자료집 내려받기 1. 대회명 : 한국·조선 유족과 함께 – 유골문제 해결로 증언집회 2. 목적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의 증언을 통해 강제동원 피해의 지속성을 일본사회에 알림특히 자료가 없어 피해의 진상을 규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유족들이 중심이 되어 증언함으로써 일본 정부에 관련 자료의 전면 공개를 촉구하고 정치권과 사회에 법적·제도적 지원을 촉구 3. 공동주최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한국)‘한국·조선의 유족과 함께’ 전국연락회(일본) 4. 참가자와 일정 ◎ 방일하는 사람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이희자, 장완익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실무간사 송경섭유족 강종호, 김금순, 김용자, 남양강, 남영주, 박진부, 최낙훈 ◎ 일 정 10월 7일(목) 일본 도쿄 도착 후 국회의사당 원내집회 (15시~17시)장소 : 중의원 제2의원회관 다목적회의실(이시게 에이코(石毛えい子) 의원 등 참석)15:00 개회15:10 국회의원 및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인사15:30 유골문제 보고15:50 방일 유족 증언 10월 8일(금) : 일본 후생성 및 우정성에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명부 전면 공개 및 유골봉환을 요구하는 항의방문10월 9일(토) : 일본 각지의 증언집회를 위해 참가자 이동10월 10일~11일(일~월) : 도쿄, 홋카이도, 오사카, 교토에서 동시 집회10월12일(화) ; 각지에서 귀국 5. 장완익 공동대표 발언 요지1. 한일유골협의를 통하여 일정한 성과가 있었으나 종교단체나 납골당 등의 신고에만 의존한 한계가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앞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유골의 발굴과 조사에 힘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특히 노무자 출신 사망자 유골에 대한 조사와 봉환에 있어서는 관련 일본 기업의 협조도 꼭 필요합니다.또한 한국과 일본의 민간 차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