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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日 돗토리현 독도 침탈 본격화-연합뉴스(07.02.28)

2007년 2월 28일 346

日 돗토리현 독도 침탈 본격화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시마네현에 이어 한국의 동해를 끼고 있는 일본 돗토리(鳥取)현이 현의회를 중심으로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명)의 날’ 제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돗토리현이 청사 앞마당에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주장하는 대형 전광판을 세우는 등 독도 침탈을 본격화하고 있다. 28일 독도본부(의장 김봉우)에 따르면 돗토리현은 현 청사 앞에 최근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이니 빨리 되찾아야 한다’는 내용의 전광탑을 세워 현민들에게 홍보하고 있다. 이 전광판은 시마네현이 현청사에 마련한 전광판보다 커 훨씬 멀리서도 글씨를 볼 수 있게 제작했다. 돗토리현은 또 과거 일본이 울릉도와 독도에 다녔던 자취를 모아 놓은 ‘산인역사관’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전시하고 있다. 이곳은 옛날부터 독도와 울릉도를 자기들이 지배했다는 증거로 내세우는 것이다. 김봉우 의장은 “그동안 돗토리현은 독도 침략계획을 상품으로 내세우면서 시마네현에 협력하는 자세를 취했다”며 “올해 다케시마의 날에도 돗토리현은 현의원을 비롯한 대표단을 시마네현에 보내 공조를 과시했고, 앞으로는 협력 뿐만 아니라 경쟁도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돗토리 현민들도 일본 주코쿠(中國) 지역의 민간단체 연대기구인 ‘연합주코쿠블록’에 가입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단체는 오는 8월 일본 중앙정부에 다케시마 문제를 담당하는 전담부서의 신속한 설치 요구와 다케시마 영유권의 조기 확립을 위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집회를 열 계획이다. 한편 돗토리현 의회는 지난해 말 현의회 실력자인 히로에 하지메(廣江戈) 의원이 우파성향 단체인 니혼카이기(日本會義)의 돗토리현 본부장 자격으로 제출한 다케시마의 날 제정 진정서를

[단독]”간도는 조선 땅” 日 지도 발견-세계일보(07.02.28)

2007년 2월 28일 372

[단독]”간도는 조선 땅” 日 지도 발견   ‘백두산 공정’ 등 중국의 역사 왜곡이 심화되는 가운데 과거 간도가 우리나라의 영토였음을 해석할 수 있는 지도가 발견됐다.박선영 포항공대 교수는 “기존에 불확실하던 간도의 영역을 획정하는 한편 동북공정에도 대응할 수 있는 지도를 일본 방위성 산하 연구소에서 발견했다”고 27일 밝혔다.이 지도는 ‘일한병합시말’(日韓倂合始末·문서번호 ‘만주, 조선 372-2’)이라는 문서에 부록으로 첨부된 것으로, 이는 일본 방위성 산하 방위연구소 자료실에서 보관돼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북부수비관구수비대배치도’라 이름 붙은 이 지도에는 명치 43년 8월 하순이라고 표기가 돼 있어, 1910년 일제의 지배가 시작됐던 시기에 작성됐음을 알 수 있다.지도에는 한국을 관할하는 수비대를 동부 수비구, 서부 수비구, 남부 수비구, 북부수비관구 등 4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이 중 관심을 끄는 부분은 북부수비관구로 압록강과 두만강 대안에 배치돼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일본이 간도협약 이후인 1910년에도 조선군(주조선일본군)을 파견하면서까지 간도 지역을 관할했다는 점에서 간도 지역이 당시 조선인이 거주했던 영토였음을 해석할 수 있다. 동북공정에 대항할 수 있는 사료가 일본에서도 발견된 셈이다.이 지도에 현재의 국경선 위로 표시된 부분이 18세기 청조 강희제가 프랑스 선교사 레지를 파견하여 그렸던 지도, 1882년 일본의 조선전도, 1948년 중화민국 국방부가 그린 비밀 문서에서 볼 수 있는 간도의 범주와 비슷하다. 박 교수는 “이는 북부수비관구의 표시가 단순한 군관할을 표시한 것을 넘어 간도가 조선영토였음을 입증하는 사료로 해석할 수 있다”며 “특히 일본의 방위 정책을 전담하는

국내봉환 예정 韓人 유골에 日人 섞였다

2010년 2월 17일 392

국내봉환 예정 韓人 유골에 日人 섞였다(연합뉴스, 10.02.17)

군국주의에 희생된 청년들 넋 팔아 ‘관광특수’

2010년 2월 16일 316

군국주의에 희생된 청년들 넋 팔아 ‘관광특수’(한겨레신문, 10.02.16)

‘짝퉁’ 유관순 영정, 30년간 이화여고에 걸려-노컷뉴스(07.02.27)

-0001년 11월 30일 1133

‘짝퉁’ 유관순 영정, 30년간 이화여고에 걸려    [남산 김구 선생, 안중근 열사 동상도 친일화가 작품…삼일절 앞두고 논란]친일 미술가가 그린 유관순 열사의 영정이 모교인 이화여고에 버젓이 전시돼 있는 사실이 30여년 만에 새롭게 확인됐다.유관순 열사의 모교인 서울 이화여고에는 유관순 기념관이 있다. 이 곳은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광복 60주년 3.1절 기념식이 열린 장소다.기념관 1층 정면 벽에는 세로 1미터 크기의 거대한 유관순 열사의 초상화가 걸려있다.지난 74년 건립된 기념관의 벽면 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이 그림은 놀랍게도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친일 화가 김인승이 1959년에 그린 것이다.이 그림은 유관순 열사의 기존의 영정 3점 가운데 하나. 나머지 두 영정이 친일 화가들이 그렸다는 이유로 폐기 처분될 예정이지만 이 그림은 그렇지 않다.30년간 유관순 열사 후배들에게 노출돼 왔던 것이 증명하듯 이 학교는 이 그림을 그린 김인승의 친일행적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눈치다.이 학교에서만 29년을 재직했다는 학교 관계자는 문제의 영정에 대해 “실물에 가장 근접해 있고 유관순의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낸 그림”이라며 최근 유관순 열사의 새 표준영정 제작 작업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김인승은 일제 강점기부터 80년대까지 한국 화단의 원로로 군림한 인물로 ‘성스러운 전쟁에 미술로 보국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친일 화가 단체 ‘단광회’에 참여해 활동한 전력이 있다.‘단광회’는 지난 43년 8월 조선인 징병제가 실시되자 이를 기념해 회원 18명 전원이 4개월간 합숙하며 백 호 크기의 ‘조선징병제시행

제주 해녀 수십 명 독도서 일제 강제 노역-노컷뉴스(07.02.27)

-0001년 11월 30일 393

제주 해녀 수십 명 독도서 일제 강제 노역   일본이 한국을 강점하던 일제강점기 때 제주 해녀 등 조선인 수십 명이 독도로 끌려가 수산물 채취 등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것으로 밝혀졌다.부산외대 김문길 교수가 최근 일본 시마네현에서 제출받은 다케시마관계 철에 따르면 일제는 1921년 대정 10년부터 해마다 많은 조선인 징용자를 독도로 끌고가 전복과 소라 등을 따도록 했다.한편 당시 독도에서 히사미 어업조합을 운영했던 야하다 사이다로가 쓴 다케시마 일지에 따르면 독도에는 30여 명이 이용할 수 있는 우물이 있었고 강제징용자들의 숙소로 추정되는 막사 2채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中 “야스쿠니신사, 군국주의 부활 연상시켜”

2010년 2월 16일 352

中 “야스쿠니신사, 군국주의 부활 연상시켜”(연합뉴스, 10.02.10)

[길을찾아서] 나치·파시스트 정권과 손잡은 일본 군국주의

2010년 2월 16일 335

[길을찾아서] 나치·파시스트 정권과 손잡은 일본 군국주의(한겨레신문, 10.02.02)

`한국땅은 일본땅’…일제 을사늑약 전부터 토지관리-‘연합뉴스'(07.02.27)

-0001년 11월 30일 375

`한국땅은 일본땅’…일제 을사늑약 전부터 토지관리                ▲ `한국땅은 일본땅’ 일본영사관 건물등기부                 ▲ `한국땅은 일본땅’ 일본영사관 건물등기부 대법원, 日영사관 발행 건물ㆍ토지등기부 발견 차이나타운 첫 등기부, 인민군 낙서 등기부도 나와 (서울=연합뉴스) 심규석 이광철 기자 = 일제가 을사늑약 체결로 통감부를 설치하며 우리나라 내정에 본격 간섭하기 시작한 1905년 이전부터 일본인들이 사들인 서울 시내의 건물과 토지를 일본 소유로 관리해 온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대법원은 2003년 말부터 시작한 폐쇄등기부 이미지 전자화 작업 과정에서 한일합병 이전 경성(京城) 일본영사관이 작성한 `잡지방(雜地方) 건물등기부 제4편’과 `주동(鑄洞ㆍ현 중구 주자동 일대) 토지등기부 제3편’을 발견했다고 27일 밝혔다.두 등기부에는 서울에 거주했던 일본인들이 1904년(명치 37년)부터 1914년까지 건물과 토지를 매매한 사실이 명시돼 있다.지금의 중구 회현동 일부인 옛 장동(長洞)의 대지 638평에 지어진 건평 19평의 목조 건물을 시데하라(幣原)가 1904년 1월 취득해 2년 뒤 모토노부(本信)에게 팔고, 그가 1907년 일본 다카마쓰(高松)시에 본점을 두고 있는 권농(勸農)주식회사에 넘기는 과정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또 일본인들이 이 건물과 대지를 담보로 일본 제일은행과 제58호은행에서 각각 1천500엔과 1만1천엔을 빌렸다 갚았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토지등기부에는 주자동의 대지 117평이 1905년부터 일본인들 사이에서 매매되는 과정 등이 실려 있다.이번에 발견된 토지ㆍ건물등기부가 각각 3, 4편이라는 점에서 이 등기부가 작성되기 시작한 1904년 이전부터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 땅을 일본 소유로 간주하며 등기부로 관리해 왔을 것으로 추측된다.특히 건물등기부 3편은 통감부가 등기부 전 단계인 토지가옥증명규칙을 제정,

‘짝퉁’ 유관순 영정, 30년간 이화여고에 걸려

2007년 2월 27일 582

    노컷뉴스 강인영 기자   친일화가 월전 장우성(1912~2005)이 그린 유관순 열사 표준영정이 연구소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로 29년 만에 교체된다. 그동안 연구소는 충남지부를 중심으로 문화관광부와 충청남도, 천안시를 상대로 여러 차례의 집회와 시위, 성명서 발표 등을 통해 영정 교체를 요청해 왔다. 따라서 늦긴 했지만 천안시의 영정교체 결정을 환영한다. 그러나 전체적인 상황을 보면 여전히 친일화가가 그린 표준영정이 전체 표준영정의 약 22%에 달하는 상황이다. 특히 이번에 교체되는 유 열사의 표준영정을 그린 월전 장우성은 이 밖에도 충무공 이순신(1973년, 아산 현충사) 정약용(1974년, 한국은행 본점) 강감찬(1974년, 낙성대) 김유신(1977년, 진천 길상사) 윤봉길(1978년, 예산 충의사) 정몽주(1981년, 한국은행 본점) 등의 표준영정을 그렸으나 이들 표준영정에 대한 교체 계획은 현재까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장우성 외에도 김은호, 김기창 등 대표적인 친일화가들이 그린 표준영정은 세종대왕(1973년, 여주) 신사임당(1986년, 강릉 오죽헌) 율곡 이이(1975년, 강릉 오죽헌) 김정호(1977년, 국립현대미술관) 을지문덕(1975년, 한국은행 본점) 조헌(1977년, 칠백의총) 무열왕(1977년, 경주 통일전) 문무왕(1977년, 경주 통일전) 등이 있다. 또한 비록 표준영정은 아닐지라도 이화여고의 유관순 영정 역시 대표적인 친일화가인 김인승의 작품이다. 천안 유관순 열사 표준영정 교체를 계기로 향후 친일화가의 작품을 전면 교체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아래는 이화여고 유관순 영정에 대한 CBS 기사 내용이다.<편집자 주>     친일 미술가가 그린 유관순 열사의 영정이 모교인 이화여고에 버젓이 전시돼 있는 사실이 30여 년만에 새롭게 확인됐다. 유관순 열사의 모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