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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땅은 일본땅’…일제 을사늑약 전부터 토지관리-‘연합뉴스'(07.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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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땅은 일본땅’…일제 을사늑약 전부터 토지관리 

 
 



            ▲ `한국땅은 일본땅’ 일본영사관 건물등기부


 
 


             ▲ `한국땅은 일본땅’ 일본영사관 건물등기부


대법원, 日영사관 발행 건물ㆍ토지등기부 발견 차이나타운 첫 등기부, 인민군 낙서 등기부도 나와

(서울=연합뉴스) 심규석 이광철 기자 = 일제가 을사늑약 체결로 통감부를 설치하며 우리나라 내정에 본격 간섭하기 시작한 1905년 이전부터 일본인들이 사들인 서울 시내의 건물과 토지를 일본 소유로 관리해 온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대법원은 2003년 말부터 시작한 폐쇄등기부 이미지 전자화 작업 과정에서 한일합병 이전 경성(京城) 일본영사관이 작성한 `잡지방(雜地方) 건물등기부 제4편’과 `주동(鑄洞ㆍ현 중구 주자동 일대) 토지등기부 제3편’을 발견했다고 27일 밝혔다.

두 등기부에는 서울에 거주했던 일본인들이 1904년(명치 37년)부터 1914년까지 건물과 토지를 매매한 사실이 명시돼 있다.

지금의 중구 회현동 일부인 옛 장동(長洞)의 대지 638평에 지어진 건평 19평의 목조 건물을 시데하라(幣原)가 1904년 1월 취득해 2년 뒤 모토노부(本信)에게 팔고, 그가 1907년 일본 다카마쓰(高松)시에 본점을 두고 있는 권농(勸農)주식회사에 넘기는 과정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또 일본인들이 이 건물과 대지를 담보로 일본 제일은행과 제58호은행에서 각각 1천500엔과 1만1천엔을 빌렸다 갚았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토지등기부에는 주자동의 대지 117평이 1905년부터 일본인들 사이에서 매매되는 과정 등이 실려 있다.

이번에 발견된 토지ㆍ건물등기부가 각각 3, 4편이라는 점에서 이 등기부가 작성되기 시작한 1904년 이전부터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 땅을 일본 소유로 간주하며 등기부로 관리해 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건물등기부 3편은 통감부가 등기부 전 단계인 토지가옥증명규칙을 제정, 시행했던 1906년보다 두 해 앞선 1904년 1월부터 작성됐다는 점에서 일제가 주권을 무시한 채 우리나라를 침탈 대상으로 삼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토지가옥증명규칙은 토지나 가옥의 매매, 담보대출 등의 계약을 체결할 경우 일본 이사관(통감부 설치 전 영사관)의 인증 절차를 거쳐 대장에 기재하는 것을 골자로 한 통감부 칙령이다.

앞서 대한제국은 1893∼1906년 외국인 거주자의 토지ㆍ건물 소유관계 증명을 위해 매도인, 매수인, 증인을 기재한 가계(家契)ㆍ지계(地契)제도를 운영해 왔다.


일본 영사관이 운영하던 건물ㆍ토지등기부 내용은 통감부가 조선부동산등기령을 시행한 이후 법원 등기부로 옮겨 기재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 관계자는 “구한말 토지 소유권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는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에도 소유권을 증명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다. 일본영사관이 자체 등기부를 만들어 일본인 소유의 토지ㆍ건물을 자국 땅처럼 관리해 온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등기부는 소유권 등 물권을 공시하는 제도로 해당 국가의 주권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이 지역에 일본인들이 집단 거류했더라도 사용권이 아닌 소유권을 멋대로 인정하고 담보권을 행사하는 것은 주권을 침해한 행위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인천 차이나타운 원조 등기부에 해당하는 `중화민국 인천 조차지 등기부’도 발견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1912년 등기제도가 처음 시행되면서 인천 조차지에 대한 권리자를 파악하기 위해 일제 당국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며 이 자료를 토대로 소유권을 인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또 6.25 전쟁 당시 인민군 간부가 충남 당진 지역에서 지뢰 매설 방법, 작전계획 등을 적어놓은 등기부등본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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