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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러시아 동포 61명 제천시에 안착..새 생활 시작

2010년 2월 26일 433

러시아 동포 61명 제천시에 안착..새 생활 시작(연합뉴스, 10.02.25)

황선열씨, 만주·옌볜 독립군 시가 담은 자료집 출간-부산일보(06.11.25)

2006년 11월 27일 306

황선열씨, 만주·옌볜 독립군 시가 담은 자료집 출간  잊혀지면 가슴 아팠을…시인 이육사는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라고 시 ‘광야’에서 외쳤다. 문학평론가 황선열(사진) 씨가 그 ‘가난한 노래’들을 찾아 ‘광야의 노래'(한국문화사/1만4천원)라는 편저를 냈다. ‘만주·연변지역 독립군 시가 자료집’이다. 여기에 실린 노래들은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찾으려고 만주 벌판에서 독립군 활동을 하던 이들이 불렀던 아득한 노래이다. 망각의 캄캄한 수렁에 빠질 뻔한 169편의 노래가 세상에 부활한 것이다.황씨는 2년 전 서울에 온 권철 옌볜대 교수로부터 자료를 받았다. 그중 두꺼운 필사본의 표지에는 ‘항일투쟁시기노래집’이라는 제목 아래 ‘이 노래집은 항일투사 ×× 동지가 보존하고 있던 수첩에서 적힌 원문을 그대로 등사한 것이다. 이를 중국 조선민족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연구자료로 제공하는 바이다’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애초 이 자료를 채집한 때는 ‘1957년 8월’로,그리고 이를 다시 필사한 때는 ’84년 7월’로 명기돼 있었다. 황씨는 “뜨거운 것이 울컥하고 올라왔다”라고 말했다. 그 필사본에 채록된 노래는 124편이었다. 그리고 함께 받은 다른 자료의 것을 합쳐 노래는 총 169편에 이르렀다.그는 “이들 노래는 주로 공산주의·사회주의 계열이던 동북항일연합군이 불렀던 노래로 대체로 투쟁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우리들은 동북인민혁명군이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하는 유명한 ‘동북 인민혁명군가’도 있고,’결사전가’는 ‘부르주아 사회를 낱낱이 박멸하자’는 구절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노래가 총 들고 혁명을 외치는 것은 아니다. ‘싸락싸락 하늘에서/ 싸락눈이 내려와요/ 떡 쌀인가 밥 쌀인가’로 이어지는 ‘눈’ 같은 서정적인 노래도 많다.황씨는 2001년

한용운 ‘님의 침묵’ 시비 제막식 각계인사 ‘만해’ 민족혼 기려-매일신문(06.11.24)

2006년 11월 27일 295

한용운 ‘님의 침묵’ 시비 제막식 각계인사 ‘만해’ 민족혼 기려     대구 도심 사찰 앞마당에 항일 독립투사이자 시인이며 대사상가인 만해 한용운 스님의 시비가 자리잡았다. 23일 대구시 수성구 지산동 보광원에서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 시비 제막식이 열렸다.이날 행사에는 보광원 조실 화산(88) 큰스님을 비롯해 전 동화사 주지 무공 스님과 현 동화사 주지 허운 스님, 권준호 광복회 회장, 김형렬 수성구청장 등 각계 인사 100여 명이 참석해 만해의 민족혼과 문학정신을 기렸다.대구에서 처음 세워진 만해 시비는 이 사찰 조실 화산 스님의 오랜 원력으로 이루어진 것. 젊은 시절 만해를 손수 시봉하기도 한 화산 스님은 이날 만해의 행적을 이야기하며 눈시울을 붉혔고, 만해를 추모하며 지은 시 ‘님의 철학’을 직접 낭송하기도 했다.한편 시비 제막식과 함께 화산 스님의 수상집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의 출판기념식도 가졌다.

2010년 2월 26일 266

<새로 드러난 일제 만행…‘남양군도의 비극’>(연합뉴스, 10.02.25)

남양군도 한인 노무자, 태평양전쟁 때 총알받이로

2010년 2월 26일 345

남양군도 한인 노무자, 태평양전쟁 때 총알받이로(헤럴드경제, 10.02.25)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 후손, 러시아에서 돌아오다

2007년 3월 23일 1451

    오마이뉴스 박도 기자   <!– –>   ▲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왕산 허위 선생 손자 허게오르기와 허블라디슬라브(왼쪽)   ⓒ 박도 민들레는 기름진 땅도 척박한 땅도 가리지 않고 아무데서나 잘 자란다. 민들레는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혀서 만신창이가 되어도 다시 일어나  꽃을 피운다.  흔히들 우리 겨레가 한반도에  정착한 이래 반만년 이어온 끈질긴 역사를 민들레의 강인한 생명력과 굳은 절개에 비유하기도 한다. 민들레는 땅속 1미터까지 깊이 뿌리를 내려 추운 겨울에도 시들거나 말라죽지 않고 냉해도 거뜬히 이겨낸다. 겨울을 이겨낸  민들레는 새 봄이 되면 꽃을 피우고 씨를 맺어 바람에 흩날려 강한 생명을 이어간다. 한 세기 전에  이 땅에서 흩날린 민들레 홀씨들이 북국의 언 땅에서도 생명력을 잇고 절개를 지키며 다시 고국 땅에 돌아왔다.   ▲ 마침내 발급된 대한민국 주민등록증.   ⓒ 박도 지난  주초 미국에서 귀국하여 막 손전화에 전원을 충전하고  그동안 꺼두었던 전원을 켜자 곧 신호음이 울렸다. 임은 허씨 종친 허벽 씨의  반가운 인사와  초대였다. 2주 동안 해외에서 빡빡했던  일정과 무리한 여정, 거기다가 시차 부적응으로 몸이 녹초가  되었지만 왕산 후손 임은 허씨 집안 잔치모임 초대에 어찌 거절할 수 있으랴. 지난 3월 17일 저녁 7시, 종로의  한 허름한  한식집에서 열린 임은 허씨 집안 잔치모임은  마침내 대한민국 국민으로 주민등록증과 정착금을 받은 왕산 막내아들 허국 선생의 손자 허게오르기(62)와  허블라디슬라브(56)

日야스쿠니 전쟁박물관 ‘한반도 병합’ 왜곡 그대로-경향신문(07.01.03)

2007년 3월 22일 298

日야스쿠니 전쟁박물관 ‘한반도 병합’ 왜곡 그대로   일본 야스쿠니(靖國)신사가 전쟁박물관 유슈칸(遊就館)의 전시물 내용 중 군국주의로 비판받는 일부 내용을 바꾸면서도 주장의 근간은 바꾸지 않아 ‘무늬만 수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나마 수정 부분도 태평양전쟁, 중·일전쟁 등 미국, 중국 관련에 국한돼 있고 한반도 관련 부분은 전혀 바뀌지 않아 한국은 안중에 없다는 인식도 드러냈다. 3일 경향신문이 도쿄(東京) 중심부에 있는 유슈칸을 찾아 확인한 결과 야스쿠니 신사는 1일부터 반미(反美)사관 등의 비판을 받아온 유슈칸내 태평양전쟁 관련 표기 중 일부를 수정, 전시하기 시작했지만 한반도 관련 설명은 전혀 수정되지 않았다.청·일전쟁, 일본의 한반도 강제침탈 등 한반도 관련 내용이 전시돼 있는 제6, 제8 전시실.우선 6전시실에는 청·일전쟁 발발 원인에 대해 “1894년 조선 정부군은 남부에서 번진 농민반란에 패퇴해 청국에 원병을 요청했으며, 청국의 출병통보를 받은 일본도 즉각 출병을 결정했다”고 명기돼 있다. 전쟁은 청국을 끌어들인 조선, 조선에 진주한 청국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반도가 왜 청·일 양국의 전쟁터가 됐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혀없다.제8전시실인 ‘일·러전쟁과 만주사변’ 전시실에는 일본의 한반도 강제침탈에 대해 ‘일·한병합’이라는 제목으로 “1909년 7월 고무라 외상 제안의 한국병합 의견서가 각의에서 승인됐다. 1910년 8월 신임 데라우치 마사다케 통감이 이완용 총리와 회담, 조약안에 합의했다. 한국 정부는 8월22일 어전회의에서 이를 승인, 한국병합 조약이 조인됐다”고 설명돼 있다. 일본의 강제 침탈을 의미하는 표현은 물론 배경 설명도 전혀 없다. 전시관을 찾은 한 30대 시민은

함경도 삼일운동 관련 일제 검찰자료 최초 공개

2010년 2월 26일 1195

‘일제 검사가 남긴 생생한 만세운동 탄압 기록’-민족문제연구소, 함경도지역 3·1운동 관련자 기소 준비자료 발굴 공개 민족문제연구소보도자료 내려받기 2월 26일, 91주년 3·1절을 앞두고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는 함경도지역 3·1운동 참여자에 대한 조선총독부 검사의 기소 관련 기록 원본을 일본에서 입수하여 공개했다. 이 기록을 작성하고 소장했던 이시카와 노부시게(石川信重, 1871~?)는 일본 후쿠오카현(福岡縣) 출신으로 1908년 12월 통감부 검사로 내한하 여 의주구 재판소, 전주구 재판소 등에서 근무하였으며, 1910년 강제병합 후에도 조선총독부 검사로 유임되어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과 군산지청 등에서 근무했다. 주로 의병활동이 활발했던 호남에서 재직하여 의병 탄압에도 관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8년 함흥지방법원 검사로 자리를 옮겨 근무하던 1919년, 3·1 ▲이시카와 검사가 소장했던 대정8년보안법사건 문서의 표지 ⓒ 민족문제연구소 운동이 일어나자 함경도 일대의 항일운동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를 지휘하고 기소하는 책임을 맡았다.함흥지방법원용 미농지에 세필 붓과 펜과 연필 등으로 빼곡하게 적은 이 기록은 기소를 위한 준비 자료로 보인다. 표지에는 “다이쇼(大正) 8(1919)년, 보안법사건, 이시카와(石川) 검사”라고 붓글씨로 쓰고 날인이 되어있다. 서두에는 (사건)번호, 죄명, 피고(이름과 수), (수록)페이지 등이 기록된 목록이 있다. 목록에는 “193(호) / 보안법 출판법 위반 / 이근재(李根栽) 외 40명 / 1(쪽)”부터 “709(호) / 보안법 출판법 위반 / 이구준(李求準) 외 3명 / 224(쪽)”까지 총 115개 사건 항목이 13쪽에 걸쳐 적혀 있다. 함흥지방법원 관할 지역인 함경도 일대에서 3월부터 5월 사이에 일어난 삼일만세운동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목록 바로 뒤부터는 순서대로

일 학교 기미가요 강제, 끝나지 않는 거부 파동-한겨레신문(07.03.21)

2007년 3월 22일 316

일 학교 기미가요 강제끝나지 않는 거부 파동 2003년 이후 교사 300여명 징계   “‘기립하세요. 노래하세요’라는 방식은 교육행위가 아니다. 전쟁 기간 교육의 재현이다.” 도쿄 도내 중학교 교사인 네쓰 기미코(56)는 19일 졸업식에서 ‘국가제창’이란 방송멘트가 흘러나오자 천천히 제 자리에 앉았다. “교사로서 이상한 것은 이상하다고 얘기하지 않으면 사회 전체가 이상하게 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러나 교장은 곧바로 징계절차에 착수했다.네쓰는 지금까지 신념을 지키려다 9번이나 징계를 받았다. 도쿄도 교육위가 2003년 11월 ‘히노마루 게양·기미가요 제창’을 졸업식에서 엄수하도록 지시를 내린 이후 그처럼 행동한 교사 340명 이상이 징계를 받았다.〈도쿄신문〉은 21일 올해에도 국가제창 때 기립하지 않은 교사 20명이 새롭게 생기는 등 도쿄 도립고교 졸업식에서 30명 가까운 교사가 교육위 조처에 저항해 대량 처벌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일본 법원이 히노마루와 기미가요 강요에 대해 엇갈린 판결을 내린 점도 도교육위가 강경한 태도를 굽히지 않는 이유이다. 지난해 9월 도쿄지방재판소가 히노마루와 기미가요 강요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으나, 최근 기미가요 반주를 거부한 음악교사(58)에 대한 징계는 합법이라는 판결이 나왔다.기미가요·히노마루 문제는 다음 달로 예정된 도쿄도 지사 선거의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도쿄도 교육위 방침을 사실상 주도한 것으로 평가받는 이시하라 신타로 지사는 “처벌은 당연한 것”이라는 태도인데 반해, 도전장을 내민 아사노 지로 전 미야자키현 지사는 “강제적인 대응은 재고할 생각”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