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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통감관저”, 잊혀진 경술국치의 현장

2005년 7월 4일 2281

      오마이뉴스 이순우 기자         ▲ 이제 사람들은 덕수궁 중명전이 딱 100년전에 벌어진 이른바 ‘을사보호조약’의 현장이라는 사실쯤은 제법 들어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른바 ‘한일병합조약’의 현장은 과연 어디일까?   ⓒ2005 이순우 정동 미국대사관저가 갈라놓은 덕수궁 권역의 건너편에는 서양식 근대건축물인 중명전(重明殿)이 홀로 남아 있다. ‘중명’이란 본디 “일월이 함께 하늘에 있어 광명이 겹친다”는 뜻으로 “임금과 신하가 각각 제자리에 나란히 서서 직분을 다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전해진다.하지만 이 건물의 역사를 알고 나면 여기가 참으로 제 이름값조차도 하지 못한 곳이라는 사실을 금세 깨닫게 된다. 명색이 중명전이라 해놓고 광명은커녕 암울한 역사의 현장이 되고 말았으니까 하는 얘기이다.그러니까 국권피탈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이것이 벌써 100년 전의 일이 되고 말았지만, 그 사이에 건물의 외형이나마 용케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어 부끄러운 역사의 교훈을 오늘에 되새겨주고 있는 셈이다.그런데 여느 사람들의 관심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이곳만큼이나 주목할 만한 곳이 하나 있다. 대한제국의 멸망을 가져온 이른바 ‘한일합병조약’의 체결장소가 바로 그곳이다.을사조약의 현장이 그럭저럭 관심과 보존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정작 ‘경술국치’의 현장에는 아무런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니까 당연히 이곳은 오래 전부터 잊혀진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부근에는 길거리마다 보이는 그 흔하디흔한 기념표석 같은 것도 하나 세워져 있지 않다.그렇다면 이른바 ‘한일합병조약’의

가짜 독립운동가 판친다?

2005년 7월 4일 1120

      시민의 신문  조은성 기자 가짜 독립유공자가 많다는 얘기는 광복사회에서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특히 광복군에 대한 가짜 의혹은 예전부터 제기돼왔다. 광복군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40년 9월 17일에 창설한 임시정부의 군대이다. 광복군은 학계에서 실제 활동한 것 이상으로 과대평가되기도 하고 반대로 과소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국사교과서에 광복군의 활동이 상당히 부각돼 있다는 점은 대체로 공통분모를 이룬다. 염인호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교과서를 만드는 주체가 오랫동안 정부였기 때문에 국사교과서는 정부입장이 반영돼있다”고 말한다. 염 교수는 “헌법을 보면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돼있고 따라서 정부가 임시정부 군대였던 광복군을 높이 받드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해방직후 시행됐어야 할 독립유공자 서훈은 그로부터 17년이나 지난 63년 박정희 정권 때에야 이뤄졌다. 이때 광복군 출신 독립유공자는 여타 독립운동가보다 높은 대우를 받았다. 지금도 광복군은 직속상관을 포함해 동지 2명 이상의 증언만 있으면 활동여부를 인정받는 유일한 서훈 기준을 갖고 있다. 그러나 활동사실을 증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어디 광복군뿐이겠는가. 관련기사 포상된 이상 어쩔 수 없다?(시민의신문, 05.07.03)박정희 정권 포상남발 ‘원죄’(시민의신문, 05.07.03)"그들과 같은 광복군인 게 창피하다"(시민의신문, 05.07.03)   조은성기자  광복군 제1지대 대원이었던 김득명씨 현재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올라있는 광복군은 총 5백86명. 광복군 제1지대 대원으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김득명씨(82)는 광복군 활동으로 포상 받은 사람 중에 “가짜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을 “국고금 도둑”이라고 비난했다.임시정부 의정원 문서를 보면 1945년 4월 1일 김원봉 광복군

국치현장에 국치와 무관한 표지석?

2010년 8월 25일 326

한겨레신문 길윤형 기자 ..통감부 터의 정확한 위치를 고증한 역사연구가 이순우씨는 “녹천정이 이 터에 들어선 첫 건물일 수는 있겠지만, 이 터가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는 이곳에서 치욕적인 병합조약이 체결됐다는 역사적 사실 때문”이라며 “녹천정 터라는 이름은 너무 뜬금없고 몰역사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박한용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한국실행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도 “우리가 통감관저의 장소성에 주목하는 것은 강제적이고 불법적으로 체결했던 아픈 역사를 기억하자는 것”이라며 “국치 100년을 맞아 역사..<기사 발췌> 국치현장에 국치와 무관한 표지석?(한겨레신문, 10.08.18) 관련기사 “잊혀진 경술국치현장, 이제 알려야…”(천지일보, 10.08.25)“부끄러운 역사, 스스로 들춰낼 필요 있나”(세계일보, 10.08.20)경술국치현장 표석명칭 ‘녹천정 터’로 결정(헤럴드경제, 10.08.20)경술국치현장 표석명칭 ‘녹천정 터’로 결정(연합뉴스, 10.08.20)경술국치 현장에 표지석 두 개 서나(한겨레신문, 10.08.20)강제병합조약 100년…‘통감관저’ 치욕의 흔적(한겨레신문, 10.08.20)시민단체 “경술국치 현장 ‘통감관저’ 표석 세우겠다”(경향신문, 10.08.19)

“일제찬양 친일파 노래, 제대로 알자”

2010년 8월 25일 577

‘국치 100년 기억 친일음악제’민족문제연구소 28일 광주서 경향신문 배명재 기자 ..‘희망의 나라로’ 가사에 등장하는 ‘배를 저어’ 찾아가는 희망의 나라는 ‘광복된 조선’이 아니라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을 간절히 염원하는 희망곡이었다. 이 노래는 일본에 당당하려 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연주돼 참석자들을 황당케 만들기도 했다. ‘선구자’도 우리 민족의 기상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만주국 건설을 위해 나선 사람들을 칭찬했다.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바로 알리기 위한 음악회가 오는 28일 광주 서구 치평동 광주시청 야외음악당에서 열린다. 이름하여 ‘국치 100년 기억 친일음악제’.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와 지역 클래식 음악 동호회 ‘광장음악회’가 3개월여 동안 준비했다. 한일병합 100년째인 29일을 앞두고 국권 상실..<기사 발췌> “일제찬양 친일파 노래, 제대로 알자”(경향신문, 10.08.24) 관련기사 국치100년 음악회, 광주시청 야외무대서 28일 오후7시(광주드림, 10.08.25)광주서 경술국치 문화제·음악회(연합뉴스, 10.08.25)광주시청 야외 무대서 28일 친일(?) 음악회(뉴시스, 10.08.24)“선구자, 대동아 공영에 바쳐진 친일노래”(한겨레신문, 10.08.24)국권침탈 100년 기억 광주서 친일 음악회?(뉴시스, 10.08.15)“친일파 제대로 알자” 광주서 친일음악회(연합뉴스, 10.08.15) 

이어 재향군인회까지 색깔론 가세

-0001년 11월 30일 509

    민족문제연구소   (가칭) 평화재향군인회(www.pcorea.com) 출범 준비 소식이 우연히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과거 친일․친독재 경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신문들이 앞 다퉈 평화재향군인회를 분열세력, 반미․친북으로 몰아세우더니 이제는 이에 동조하듯 재향군인회(회장 이상훈-사진)조차 자신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기관지 코나스(www.konas.net) 1면 톱기사를 통해 평화재향군인회를 주도적으로 준비하는 표명렬 지도위원과 함께 임시 사무공간을 제공한 우리 연구소에까지 무차별 색깔공세를 자행하고 있다. 특히 향군은 국군의 날을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38선을 넘은 10월 1일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대인 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로 변경하자는 주장에 대해 “국군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궤변”이라는 적반하장의 주장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군대의 연원은 당연히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대인 광복군에서 찾는 것은 너무 당연한 논리의 귀결이다. 이와 같은 상식적인 주장에 대해서도 수긍하지 못하는 재향군인회의 모습이야말로 왜 평화재향군인회가 필요한지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끝으로 생존 항일독립운동가를 이사장으로 모시고 있고 우리 연구소에 대해서 ‘반미친북’성향 운운하며 단체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하고 있는 재향군인회의 향후 언동을 예의주시할 것이다.   아래는 재향군인회 홈페이지에 게재된 기사이다   향군 “평화재향군인회는 불법단체” 공식입장 표명 written by. 정미란   “표씨 주장은 반미친북 성향의 허구맹랑한 논리에 불과”    최근 한 예비역 장성이 ‘평화재향군인회(평군)’를 표방하며 제2의 향군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많은 국민들이 “<평군>이 좌파세력의 힘을

“경술국치 100년, 한일평화를 여는 역사기행” 를 연재합니다

2010년 8월 25일 484

글·사진 : 이윤옥·김영조 나의 고향은 경상북도인데어찌하다 석탄 캐러 이역만리 끌려왔더냐! 막장에서 하루 종일 석탄 캐어도주린 배 채울 길 없어고향집 어머니 부르며 눈물지었네 눈물 들키자 감독 놈 몽둥이 날아와사정없이 두들겨 맞았네  -탄광 노동자의 노래 중- 기타큐슈 치쿠호 탄광 일대에 수용된 조선인 광부들은 몽둥이를 맞으면서도 고국의 어머니를 잊지 않았다. 어찌 탄광에서뿐이랴! 군수품 수송용 비행장 활주로 건설과 철도건설, 탄약고, 탄광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던 조선인들의 삶의 흔적이 곳곳이 배어있는 곳을 답사하면서 느낀 것은 기록의 중요함이었다. 해방 65년의 세월은 숱한 조선인 강제연행 현장을 사라지게 했고 이제 남은 것은 탄광 굴뚝 몇 개와 조선인 집단거주지 몇 곳뿐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강제연행의 역사를 생생하게 기억하던 1세들의 빈자리를 메워주던 2세들마저 고령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그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을 때 빠짐없이 기록해야 할 책임을 답사기행 내내 절실히 느꼈다 ▲ 옛 미츠비시광업의 이이즈카 탄광 굴뚝만이 삐죽이 남아 조선인 노역현장을 말해준다.  ▲ 이이즈카 탄광의 석탄을 들어 올리는 시설 앞에서 설명을 듣는 답사단  2010년 8월 6일 금요일 오후 저녁 7시 40분.‘경술국치100년 한일 평화를 여는 역사기행’ 답사단 45명은 시모노세키 건너편 항구인 모지행(門司) 세코마루에 올랐다. 배는 냉방이 잘되어 있었고 배 안에는 제법 큰 욕조를 갖춘 목욕탕과 식당, 레스토랑, 편의점, 면세점은 물론 음료수를 손쉽게 빼먹을 수 있는 자판기 등이 곳곳에 설치되어

[부일시론] 국치일 무렵의 상념

2010년 8월 24일 276

[부일시론] 국치일 무렵의 상념(부산일보, 10.08.24)